소설리스트

148화 (149/217)

Chapter 10 마나폭탄과 스크롤 (1)

브릭은 억울해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체념했다. 당시 제론을 만났을 때의 느낌을 떠올리면 자신을 동정할 것 같지 않았다. 상당히 냉정해 보였다.

그러니 이런 억울한 심정을 토로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제론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저 마나폭탄과 스크롤을 전해 주기만 하면 되는 일 아닌가.

"후우, 신세 처량하군."

그냥 처량한 정도가 아니었다. 아주 처절했다. 설마 이렇게 구금될 줄은 몰랐다.

현재 브릭이 있는 장소는 하수도 깊숙한 곳에 땅을 파고 만든 곳이었다. 특별히 뭔가를 감출 일이 있거나 몸을 숨길 때 쓰라고 레벨리오에서 제공한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그 장소는 원래의 목적과 다르게 쓰이고 있었다. 브릭은 팔다리가 묶인 채 그곳에 갇혔다. 워낙 비좁은 곳이라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게 몸을 구기고 있으려니 연신 한숨만 흘러나왔다. 하지만 어쩌랴 힘이 없는 것을.

브릭이 그렇게 한숨만 푹푹 쉬고 있을 때, 비밀장소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리고 브릭을 이곳에 구금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있었나?"

브릭은 사내를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반쯤은 체념했다. 아마 사내가 물건 공급책을 담당하게 되는 순간 자신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현재 브릭의 효용은 딱 하나였다. 물건을 들고 찾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것 말이다.

"자, 슬슬 움직여 보자고. 네가 원래 있던 자리에 돌아가야 그 사람이 찾아오지 않겠어?"

브릭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사내는 비열한 미소를 머금었다.

사내는 브릭을 어깨에 짊어지고 하수도의 비밀 통로를 통해 빠져나갔다. 브릭이 원래 담당하던 도시로 가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사람을 짊어지고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내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자신의 미래가 활짝 열릴 거라고 생각하니 온몸에서 기운이 샘솟았다.

반면 브릭은 이동하는 내내 죽을 지경이었다. 누군가의 어깨에 걸쳐진 채 오랫동안 버티려니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그렇게 브릭이 담당하는 도시로 향했다.

슈틀러는 차가운 눈으로 사내를 노려봤다. 약속한 대로 이루어질 거라고 믿고서 작전에 마나폭탄과 스크롤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스크롤로 모습을 감추니 작전을 수행하기가 훨씬 편해졌다. 게다가 처음에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마나폭탄의 위력은 정말로 엄청났다.

그 두 가지가 어우러지니 작전 성공률이 올라가는 건 너무나 당연했고, 피해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두 가지 물건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가정하에 수많은 작전을 세웠다. 그동안은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작전도 수두룩했다.

만일 이 작전들이 모두 성공한다면 적 조직을 크게 뒤흔들 수 있을 터였다.

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다음 물량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눈앞의 사내를 불러 추궁하는 중이었다.

"아직도 연락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지?"

"그, 그게……."

사내는 솔직히 말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브릭의 공을 가로채기 위해 그로부터 물건을 강탈했고, 공급책을 맡기 위해 브릭을 감금했다는 말을 어떻게 하겠는가.

만일 그 사실이 알려지면 그냥 죽은 목숨이었다. 아니, 곱게 죽지도 못할 것이다. 갖은 고초를 다 겪은 다음 천천히 죽어 갈 것이다.

그러니 입을 꾹 다물고 그저 모른다는 말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슈틀러는 눈살을 찌푸린 채 사내를 노려봤다. 분명히 뭔가 속이는 게 있었다. 짐작 가는 바가 몇 가지 있었지만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가 정작 공급책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말이다.

"네가 연락을 취할 방법은 없나?"

"어, 없습니다."

사실 모른다. 브릭을 고문해 봤지만 브릭 역시 아는 게 없었다. 제론이 알아서 찾아가기로 했으니 브릭이라고 뭐 다르겠는가.

"무책임하군."

슈틀러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많이 아쉬웠을 뿐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펼칠 작전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자연 슈틀러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리고 그 눈빛을 정면에서 마주해야 하는 사내의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정말 아무것도 숨기는 것이 없나?"

"없습니다!"

사내가 즉시 대답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의심을 더 크게 살 수 있었기에 최대한 신경을 썼다.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글쎄, 과연 정말일까?"

슈틀러는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크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문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다가오는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이곳은 허름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상당한 방비가 되어 있었다. 각종 마법이 감춰져 있었고, 허락받지 않은 자가 이곳까지 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곳에 걸린 마법은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종류였다. 허락받지 않은 자가 오면 길을 빙 둘러 다시 밖으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것을 억지로 뚫고 들어오면 슈틀러에게 신호가 간다. 즉, 지금 들어온 사람은 그 마법을 강제로 뚫고 들어온 게 아니라 마법 자체를 해체하면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그런 실력자가 눈앞에 있으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슈틀러는 슬그머니 허리춤에 있는 검을 쥐었다.

"그러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제론은 그렇게 말하며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 순간 제론의 몸이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슈틀러 앞에 나타났다.

턱!

제론이 슈틀러가 쥔 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눌렀다. 슈틀러는 검을 뽑으려다가 막히는 바람에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났다.

제론은 그걸 보며 빙긋 웃었다. 쫓아가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싸우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스릉!

슈틀러가 검을 뽑았다. 일단 검을 뽑자 바닥에 착 가라앉은 듯한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검을 겨누자, 산 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제론은 살짝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아직 소드 마스터는 아니었다. 정확히 따져 보면 소드 마스터가 되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그 직전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마지막 한 발을 걸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했다. 그 마지막 걸음은 슈틀러보다 훨씬 낮은 성취를 얻은 사람도 충분히 걸을 수 있었다.

"굳이 싸울 필요가 있을까?"

"정체를 밝혀라. 그리고 여기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었는지 말해라."

슈틀러의 단호한 말에도 제론은 피식 웃기만 했다.

"일단 정체부터 밝혀야겠지?"

제론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마나폭탄 하나를 꺼냈다.

"이걸 보면 알 수 있겠지?"

슈틀러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리고 그 옆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사내의 눈도 커졌다.

드디어 물건을 공급해 줄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게 기다려도 오지 않더니 이렇게 놀라게 할 줄이야. 사내는 기쁜 표정으로 제론에게 다가갔다.

"기다렸습니다. 안 그래도 물건이 떨어져서 필요하던 참이었습니다."

제론이 슬쩍 고개를 돌려 사내를 쳐다봤다. 그 눈빛에 어린 차가움에 사내가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제론은 다시 고개를 돌려 슈틀러를 쳐다봤다.

"원래는 물건을 공급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제론의 말에 사내가 깜짝 놀라 외쳤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제론은 사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제론의 시선은 시종일관 슈틀러에게 머물러 있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나?"

"조건을 붙일 생각이오?"

슈틀러가 정중히 물었다. 어쨌든 칼자루를 쥔 것은 저쪽이었다. 최대한 맞춰 줄 필요가 있었다.

"조건은 처음부터 없다고 했을 텐데?"

"그럼 이유가 무엇이오?"

"레벨리오의 미래가 어두워 보여서."

슈틀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른 건 몰라도 레벨리오를 폄하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우리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소!"

제론이 씨익 웃었다.

"발끈하기는. 동료를 핍박해 공을 가로채는데도 가만히 보고만 있는데, 미래가 어둡지 않다고? 그 말 진심인가?"

슈틀러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던 사내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렸다.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브릭의 동의를 얻어서……."

"동의? 고문이 아니라?"

"고, 고문이라니요.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사내가 슈틀러를 향해 피를 토하듯 말했다. 하지만 슈틀러의 표정은 굳은 채 다시 펴지지 않았다.

사내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감하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솔직히 말해. 알고 있었지?"

제론의 물음에 슈틀러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푹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작은 하고 있었소."

"그런데 왜 내버려 뒀지?"

슈틀러는 대답하지 못했다. 공급책을 바꿔도 되는지 확인하고자 했다고 말하기가 민망해졌다. 사실 마나폭탄과 스크롤을 슈틀러가 직접 받고 싶었다. 그렇게 하면 작전 구상이 훨씬 편해질 것이다.

또한 직접 협상을 벌이는 것도 가능해진다. 공급을 늘이거나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다른 아티팩트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솔직히 스크롤의 존재는 슈틀러에게 있어서도 충격적이었다. 만일 스크롤 제작 기술을 얻게 된다면 향후 레벨리오의 미래를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도 있었다.

"자, 내가 레벨리오의 미래에 대해 내린 평가가 과했나?"

제론이 다시 물었다. 슈틀러는 대답할 수 없었다. 레벨리오를 지금 이 상황 하나만으로 평가해선 안 된다. 하지만 그 말조차 못 했다.

"부끄럽소."

슈틀러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사내를 돌아봤다.

사내는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전신을 감쌌다.

슈각!

슈틀러가 난데없이 검을 휘둘렀다. 사내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온갖 생각이 가득한 표정 그대로 잘려 바닥에 뒹굴었다.

제론은 그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결단력이 뛰어났다. 그동안 지켜본 대로였다.

"향후 물건은 브릭을 통해 공급하지."

"브릭?"

"저 몰염치한 놈이 감금한 진짜 공로자."

제론은 그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슈틀러는 그 웃음이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되도록 가까이 놓고 대우해 주는 게 좋을 거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제론이 사라졌다. 슈틀러는 등줄기를 벼락처럼 관통하는 소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보이지 않았어.'

마법도 아니었다. 마법을 썼다면 분명히 마나가 조금이라도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징후는 없었다. 그저 사라져 버렸다.

그 말은 슈틀러가 눈으로 좇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겹겹이 둘러싼 마법트랩을 뚫으며 말이다.

마법트랩도 발동하지 않은 걸 보면 차근차근 해체하면서 지나갔다는 뜻이다. 그런 복잡한 일을 하면서도 슈틀러의 안력을 벗어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니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멍하니 있던 슈틀러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수하들에게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브릭! 브릭을 찾아와라!"

슈틀러의 명령에 수하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도 다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브릭이 누군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수하들을 보며 슈틀러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부디 아무 일 없었으면 좋겠군."

예감이 나쁘지는 않았다. 고문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브릭을 죽였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브릭이 죽었다면 레벨리오의 미래는 여전히 어둠 속에 맴돌 것이다.

☆ ☆ ☆

제론은 브릭이 감금된 곳으로 갔다. 유적을 통해 도시 자체를 순식간에 왕복할 수 있기 때문에 슈틀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수도 안에 마련된 비밀 장소에 도착했다.

제론은 그동안 수없이 봐 온 장면이었기에 아주 간단히 비밀 장소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문을 여니 온몸이 꽁꽁 묶인 브릭이 보였다. 제론은 말없이 다가가 브릭의 몸에 감긴 끈을 향해 손날을 휘둘렀다.

투두두둑!

그저 허공에 손짓을 한 번 했을 뿐인데 끝이 가닥가닥 끊어져 버렸다.

브릭은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벅차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먹였다.

"가, 감사합니다."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브릭의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더 일찍 구해 줄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약간 방치했다. 그래야 더 고마워할 테니까.

앞으로 브릭은 제론이 하기에 따라서 레벨리오보다 오히려 제론을 더 따를 수도 있었다. 물론 제론은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았다.

그저 브릭이 레벨리오의 중추에 앉아 제론과의 연결을 원활히 하도록 도와주기만 하면 충분했다.

"기다려라. 몸을 치료해 주지."

제론이 브릭을 향해 손바닥을 내밀었다.

위이이이잉!

마나링이 가속하며 손바닥 앞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브릭을 삼켜 버리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마법진이었다.

샤아아아아.

마법진이 흩어지며 브릭을 향해 빛가루를 쏟아 냈다. 브릭은 마나의 가루에 갇혀 멍하니 제론을 바라봤다.

그리고 곧 경악했다. 고문으로 인해 온몸에 난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제론은 그걸 보며 아공간에서 포션 한 병을 꺼내 브릭에게 내밀었다. 포션과 병행하면 훨씬 빨리 상처가 나을 것이다.

브릭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 마셨다. 청량한 향이 혀끝에 맴돌았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시원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이어져 온몸으로 쫙 퍼져 나갔다.

"가, 감사합니다. 으흐흑."

완전히 나은 건 아니었지만 제법 움직일 만했다. 워낙 고문을 심하게 받아서 이 정도로 나아진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사실 포션만으로는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었다.

포션이 대단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잘린 팔을 붙이는 건 가능해도, 팔을 칼로 잘게 저미면 포션으로도 완치가 불가능했다.

포션은 회복력을 비정상적으로 높이는 약이지, 모든 걸 원래대로 돌리는 약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론의 마법이 큰 역할을 했다. 브릭은 포션과 마법의 상승 작용으로 인해 부작용 없이 대부분의 상처가 아물었다.

브릭은 한동안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그동안 갇혀 있으면서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또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른다.

고문을 받을 때마다 정신이 날아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모든 걸 다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고문은 끝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성과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브릭은 정말로 몰랐는데, 고문을 하는 사내는 그걸 믿지 않았다. 그래서 고문이 더 심해졌고, 상처도 많아졌다. 몸에도 마음에도.

그리고 그 두 가지 상처를 제론이 치유해 주었다. 제론의 존재 하나만으로 브릭은 마음에 큰 안정을 찾았다.

처음에는 냉정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구함을 받고 나니, 완전히 달리 보였다.

"일단 나가지."

제론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비밀 공간을 나갔다. 브릭은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머뭇거리다가 다시 이곳에 갇힐까 봐 두려웠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그 사안에 한해서는 논리적인 접근이 불가능했다.

제론은 성큼성큼 앞장서서 걸었다. 제론이 향하는 곳은 원래 브릭이 머물던 공간이었다.

그곳에 도착한 브릭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안을 둘러봤다.

그런 브릭 앞에 제론이 상자를 턱턱 쌓았다. 상자가 쌓일수록 브릭의 눈이 점점 커졌다.

"이, 이게 다 뭡니까?"

"알면서 왜 묻지?"

브릭의 입이 쩍 벌어졌다. 앞에 놓인 상자의 수는 모두 10개였다. 게다가 상자 하나하나의 크기도 상당했다.

"이건 젖지 않게 잘 보관해야 하는 것 알고 있겠지?"

제론은 커다란 종이 뭉치를 건넸다. 브릭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종이 뭉치를 받았다.

1천 장은 넘는 것 같았다. 너무 무거워서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그 정도로 많은 스크롤을 한꺼번에 받았다.

"그걸 어떻게 전달하건 다 네 마음대로다. 알아서 해라."

제론은 그 말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브릭은 멍하니 제론이 서 있던 자리를 바라봤다. 대체 자신에게 무슨 복이 있어서 저런 사람을 만났는지, 그저 고맙고 또 고마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브릭은 슈틀러의 호출을 받았다. 드디어 레벨리오의 중추에 접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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