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레벨리오 (3)
브릭은 갖은 고생 끝에 자신과 조직의 유일한 연결점을 찾아갔다.
자신이 활동하던 도시가 아니라, 제법 떨어진 도시에 있었기에 찾아가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브릭이 그렇게 조직의 연결점을 찾아가는 동안 벌써 2개의 적 기반이 박살 났다.
실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하지만 아직 적 조직이 가진 기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다.
어서 빨리 자신이 조직에 이 물건을 전해 줘서 그자와 연계할 필요가 있었다. 아마 적 조직은 상당한 기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시 근처에 도착한 브릭은 도시로 가지 않고 도시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부분을 열심히 뒤졌다. 곳곳에 바위가 놓여 있고, 드문드문 나무가 있긴 했지만 그저 황무지에 불과했다.
그런 곳을 열심히 뒤지고 다니는 브릭의 태도는 더없이 신중했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을까 상당히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찾았다."
브릭은 커다란 바위 아래에 놓인 넓적한 돌판을 잡고 힘을 주었다.
"끄응."
돌판이 옆으로 밀려나며 구멍 하나가 나타났다. 그곳이 도시 안의 하수구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레벨리오가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 낸 비밀 통로였다.
브릭은 구멍으로 쑥 들어간 다음 돌판 바닥에 만들어진 손잡이를 잡고 힘껏 당겼다.
돌판이 흙을 긁으며 움직여 다시 구멍을 덮었다. 더불어 구멍 안은 어둠으로 잠겨 버렸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이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브릭은 능숙하게 길을 찾아 나아갔다.
통로는 직선이 아니라 이리저리 구불거렸다. 하지만 브릭은 정확히 어디를 가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딱 정확한 순간 방향을 틀었고, 걸음걸이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이동했을까. 희미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이 바로 하수도와 비밀 통로가 연결되는 곳이었다.
레벨리오에서 브릭이 상부와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점이 바로 하수도였다. 여기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비로소 도시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레벨리오의 상부에는 황족이 있다고 하는데, 그에 대해서는 소문과 짐작만 무수했지 정작 진실은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아무튼 브릭은 하수도 안에 있는 거점으로 향했다.
하수도의 거점에서 머물고 있던 사내가 브릭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지? 이렇게 찾아와선 안 된다는 걸 모르나!"
사내는 브릭의 상급자이자, 하수구와 도시에 있는 조직의 연결점을 가진 자였다.
"긴급 사항입니다."
브릭의 말에 사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긴급 사항?"
긴급 사항이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부에서 상부로 보고할 만한 일 중에서 긴급이라고 할 만한 사항은 없었다.
그렇기에 사내의 표정은 심드렁하기만 했다.
브릭도 그 제반 사정을 다 이해하기에 사내의 태도가 별로 불쾌하지는 않았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브릭도 사내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뭔지 보고해 보도록."
"위력이 향상된 마나폭탄과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스크롤을 구했습니다."
사내의 눈이 커다래졌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이건 정말로 긴급하게 보고할 만한 사항이었다. 또한 자신이 더 위로 올라가는 데 지대한 도움이 될 물건들이었다.
"그게 정말인가? 어디 보여 주게!"
브릭은 사내의 말에 미리 준비한 마나폭탄 하나와 스크롤 한 장을 건넸다.
사내는 그것을 받고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마나폭탄과 스크롤을 이리저리 살폈다.
"이게 정말로 그런 건가?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확인하셨으면 절 상부로 안내해 주십시오. 직접 보고하고 싶습니다."
그 말에 사내가 피식 웃었다.
"그건 안 될 말이지. 그런 예외는 인정할 수 없다. 그러니 물건을 놓고 돌아가도록. 보고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브릭의 표정이 굳었다. 사내가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죠."
브릭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고는 미리 준비한 물건을 내밀었다. 상자에 담아 뒀기에 따로 챙기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었다.
사내는 상자를 받으며 씨익 웃었다. 이 물건만 있으면 상부에 인정을 받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럼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브릭은 상자만 넘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미리 생각한 바가 있었기에 최대한 서둘렀다.
사내는 브릭이 떠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마나폭탄 3개와 스크롤 3장이 들어 있었다. 그걸 본 사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이건 수가 너무 적은데?"
고작 이걸 누구 코에 붙인단 말인가. 사내는 순간 정신이 들어 브릭을 찾았다. 하지만 브릭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젠장, 이놈이 날 물 먹였군."
사내는 잠시 고민했다. 일단 이걸 상부에 제출한 다음 브릭에게 나머지 물량을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먼저 물건부터 확보해야 할지 말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브릭이야 갈 곳이 뻔했다. 또한 사내에게는 브릭을 찾을 방법이 있었다.
"일단 물건부터 확보해야지."
물량이 얼마나 있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지속적으로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또한 이 물건이 얼마나 성능이 뛰어난지 테스트도 해 봐야 했다.
그러니 먼저 브릭부터 찾는 게 나았다. 테스트는 그동안 하고 말이다.
사내는 상자를 품에 넣고, 작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플리커."
시동어와 함께 구슬에 희미한 빛이 어렸다. 그리고 구슬에서 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빛은 아주 느리게 깜빡였다. 사내는 그 구슬을 들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사내의 걸음에 따라 구슬이 점멸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이 구슬은 미리 시드를 심은 상대와 가까워지면 점멸 속도가 빨라지는 간단한 아티팩트였다.
보통은 조직에 갓 들어온 신입을 믿기 어렵기 때문에 혹시 있을지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시드를 심는다. 하지만 브릭은 이미 그런 시기를 넘었다.
사내는 브릭뿐 아니라 자신이 관리하는 모든 조직원에게 시드를 심었다. 당연히 동의를 구하지 않고 몰래 심었다.
레벨리오라는 조직의 목표와 비밀을 우연히 알아낸 이후부터 사내는 활동 방식을 많이 바꾸었다. 일단 조직의 중추에 올라가야만 했다.
레벨리오가 승리할 확률은 지극히 낮았지만, 일단 성공한 이후에는 무한한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사내는 레벨리오를 배신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레벨리오는 일단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면 배신이 불가능했다. 사내도 그걸 알기에 배신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다만 레벨리오가 진짜 목표를 달성했을 때 좀 더 많은 영광을 가져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물건은 레벨리오의 승리에 도움을 주는 건 물론이고, 자신의 목표도 달성하게 해 줄 달콤한 열매였다. 사내는 그 열매를 놓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쓰레기군."
제론은 태블릿을 통해 브릭을 지켜보고 있었다. 브릭보다 먼저 이 도시에 와서 유적을 찾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 브릭의 목표가 있으니 그걸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이 도시의 유적은 아주 조용히 얻었다. 상당히 많은 준비가 필요했지만 예전처럼 통짜 건물로 막아 놓지 않아서 그래도 은밀히 유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만 다시 나오는 게 문제였는데, 그건 아주 간단히 해결되었다. 이 도시의 유적에는 폴타가 있었다. 그래서 일단 들어가서 등록한 이상,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현재 제론은 유적의 침대에 누워 아주 편안한 자세로 태블릿을 조작하고 있었다.
태블릿에는 브릭의 모습과, 브릭을 쫓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아마 브릭은 사내에게 붙잡힐 것이다.
그리고 물건을 몽땅 빼앗길 것이다. 하지만 사내는 브릭의 목숨을 노리지는 않을 것이다. 물건의 출처를 알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브릭도 모른다. 나중에 제론이 브릭에게 접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마 사내는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날 기다리거나, 아니면 그냥 보고하러 가거나."
제론은 보고를 먼저 할 거라고 확신했다. 자신이 이렇게 모든 걸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까 말이다.
상황은 제론이 예상한 대로 흘러갔다. 제론은 혹시 몰라 폴타를 통해 언제든 근처로 이동할 수 있게 미리 준비를 해 뒀다.
사내가 브릭을 죽이기라도 하면 곤란하니 말이다. 제론은 일단 브릭을 통하는 게 훨씬 편했다. 또한 브릭이 레벨리오라는 조직의 요직에 앉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도 좋았다.
제론이 지켜보고 있는 동안 브릭은 결국 가지고 있는 모든 물건을 강탈당했다. 사내의 실력이 상당해서 브릭이 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나마 고문까지 가지 않은 것은 브릭이 타이밍 좋게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렇지 않았다면 상당한 고문이 뒤따랐을 것이다.
"역시 쓰레기야."
브릭이 쉽게 포기한 것은 고문이 두려웠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결과적으로 누가 보고를 하건 조직에 득이 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공로만 포기하면 끝이니 그걸 선택하는 것이 가장 편했다.
다만 그걸 강탈해 간 사내에 대한 앙금은 잔뜩 남았지만 말이다.
브릭은 허탈한 표정으로 주저앉아서 쉬고 있었다. 제론은 브릭을 살피며 동시에 브릭에게서 물건을 강탈해 간 사내를 추적했다.
마티 하나만 붙여 놓으면 끝이니 별로 어려울 것도 없었다.
사내는 하수구에서 나가 도시의 빈민가로 향했다. 어쨌든 가장 숨기 쉽고 활동하기 편한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레벨리오의 수뇌부가 거기에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사내는 빈민가 골목골목을 지나 깊이 들어갔다. 그리고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다.
"슈틀러 님."
슈틀러는 다음 작전을 짜고 있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외침에 인상을 썼다. 복잡하게 이어지던 머릿속의 작전이 그대로 헝클어졌다.
"무슨 일이냐!"
슈틀러의 몸에서 항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기세가 피어올랐다. 사내는 그걸 마주하고는 다리를 덜덜 떨었다.
"슈, 슈틀러 님. 기, 긴급 보고 사항이……."
그제야 슈틀러의 기세가 가라앉았다. 사내는 비틀거리며 다가가 공손하게 상자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
"신무기입니다."
"신무기?"
슈틀러가 인상을 찌푸렸다. 사내의 성정은 슈틀러도 잘 알고 있었다. 레벨리오는 생각보다 치밀한 조직이었다. 하부자의 성정쯤은 애초에 다 파악해 두었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을 건사하기 어려웠으니까.
슈틀러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사내가 내미는 상자를 받아서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마나폭탄 3개와 스크롤 3장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뭐지? 마나폭탄인가?"
사내가 자신만만한 어조로 말했다.
"개량한 마나폭탄과 스크롤입니다."
"스크롤?"
마나폭탄이라는 말은 듣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 스크롤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파괴력은 그 정도로 대단했다.
슈틀러는 스크롤을 한 장 들었다.
"이게 스크롤이라고?"
"그렇습니다. 모습을 감춰 주는 스크롤입니다."
슈틀러가 스크롤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확인했다. 특별한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3장뿐이니 만일 진짜 스크롤이라 하더라도 그저 연구할 가치밖에 없었다.
사내는 그런 슈틀러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물량은 충분히 있습니다."
슈틀러의 눈이 번득였다.
"물량이 충분하다고? 그게 무슨 말이지?"
사내는 브릭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해 주었다. 물론 물건을 공급해 줄 사람이 브릭을 찾아갈 거라는 말을 뺐다. 모든 공을 자신이 가졌다.
사내의 설명을 모두 들은 슈틀러가 물었다.
"그럼 지금 물량이 얼마나 있지?"
사내는 말없이 스크롤 더미와 마나폭탄들을 내려놓았다. 그걸 보는 슈틀러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물량이 많으니 괜찮겠군. 한 장 찢어 봐라."
"예."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 스크롤 한 장을 찢었다. 사실 처음 테스트 하는지라 조금 떨리긴 했다. 하지만 내친 걸음이었다.
찌익!
스크롤이 찢어졌다. 그 순간 스크롤에 잠들어 있던 마나가 깨어나 사내의 몸을 휘감았다.
슈틀러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갑자기 눈앞에 있던 사내가 사라져 버렸다.
"기척은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군."
슈틀러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기척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건 슈틀러의 실력과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이지 결코 스크롤의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건 기대 이상이었다.
"이걸…… 대체 얼마나 더 얻을 수 있는 거지?"
"꾸준히 공급해 준다고 했습니다."
"꾸준히? 더 정확히 말해라. 어느 정도의 기간을 두고 몇 장이나 전해 준다고 했느냐?"
"아직 그건 확실히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충분히 쓸 정도는 되지 않겠습니까?"
슈틀러는 크게 흥분했다. 이런 물건이 있다면 앞으로 작전을 짜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게다가 피해도 확 줄일 수 있었다.
대체 누가 이런 대단한 물건을 공급해 주는지 고맙고 궁금했다. 반드시 만나 보고 싶었다.
"언제 다음 물건을 받기로 했지?"
"이걸 다 소진하면 알아서 찾아오기로 했습니다."
"알아서?"
슈틀러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알아서 찾아오다니.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한단 말인가. 이건 레벨리오 내의 정보가 새나 간 게 분명했다.
'문제가 있군. 확인을 좀 해 봐야겠어.'
내심 고개를 끄덕인 슈틀러가 섬뜩한 눈으로 사내를 쳐다봤다.
"이만 가 봐라. 난 다음 작전을 짜야 하니까. 조만간 부르겠다."
"예. 알겠습니다."
사내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인사를 했다. 조만간 요직을 차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슈틀러는 사내가 물러가자 싸늘한 표정으로 눈앞에 놓인 물건을 쳐다봤다.
"왜 하필 저런 쓰레기 같은 놈에게 접근한 거지? 대체 무슨 목적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걸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 물건을 이용해 쓸 만한 작전을 짜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마 당분간은 승승장구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