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3/217)

Chapter 8 두 공작의 선택 (1)

제론은 결사대를 이용해 상당히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그 덕분에 벌써 일곱 군데의 유적을 추가로 확보했다. 또한 조만간 몇 군데의 유적을 더 등록할 수 있을 듯했다.

일단 더 활발하게 움직이니, 크란 제국은 오히려 다른 왕국보다 편한 점이 많았다.

일단 기본적으로 도시만 체크하면 된다. 크란 제국의 유적은 몽땅 도시 아래에 잠들어 있었다. 아니, 도시의 에너지원이 되어 있었다.

유적을 많이 얻은 만큼 마티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범위도 늘어났다.

거점 형식의 유적은 고작 도시를 중심으로 반경 몇 킬로미터 정도를 확인하는 게 전부였지만, 조금 특별한 시스템이 깃든 유적의 경우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심지어 최근 얻은 유적은 마티가 어찌나 많은지 정보 수집 범위가 다른 도시에 살짝 걸칠 정도였다.

어쨌든 그렇게 새로 유적을 많이 얻은 덕분에 바인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의 양도 상당히 광범위해졌다.

최근 바인은 비밀 조직의 실체에 아주 조금씩이나마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비밀 조직은 크란 제국에 있었고, 크란 제국 황실이나 귀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지만, 그들에게 속한 조직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찌 보면 크란 제국 자체가 그들의 손아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다.

제론은 가장 최근 얻은 유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크란 제국의 지도를 확인하고 있었다.

새로 얻은 7개 유적의 위력은 대단했다. 유적에 있는 시스템도 그랬지만, 그보다 유적을 얻음으로써 생겨난 마티 덕분에 상당히 폭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만일 제론 혼자라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정보를 다루는 것은 제론이 아니라 바인이라는 점이 중요했다.

바인은 새롭게 마티의 영역이 된 도시들에서 중요한 정보를 쭉쭉 뽑아냈다. 그중에는 군사 기밀이나 다름없는 지도도 여럿 포함되어 있었다.

대륙의 전체적인 모양은 알고 있으니, 크란 제국의 지도를 작성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더구나 크란 제국에서 제론이 원하는 건 고작 도시의 위치 정도였다. 도시만 찾으면 거기에 속한 유적을 등록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음은 이 도시로 가는 게 좋겠군."

제론이 다음 일정을 점검하고 있을 때, 바인으로부터 보고가 도착했다. 모든 보고는 태블릿을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제로는 지도를 보면서 바인의 보고서를 쭉 읽었다.

"음? 전쟁?"

바인의 보고는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전쟁 징후에 관한 보고였다.

"체스터 공국과 벨룸 왕국이야 예전부터 기미가 있긴 했지만, 여긴 좀 의외인데?"

체스터 공국과 벨룸 왕국 사이에는 제법 오래전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었기에 당장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지만 레늄 왕국과 미테 왕국은 얘기가 좀 달랐다.

레늄 왕국은 예전 슈린 왕국과 손을 잡고 에어스트 왕국에 전쟁을 걸었다. 당시 전쟁의 여파로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데, 그걸 채 복구하기도 전에 또 전쟁을 벌인다는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제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고서를 마저 읽었다. 그리고 점점 표정이 굳어 갔다.

발단은 벨룸 왕국과 체스터 공국의 전쟁이었다. 아직 벌어지진 않았지만 벌어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물밑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에 미테 왕국과 레늄 왕국이 말려들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레늄 왕국이 거기에 발을 들였다.

현재 레늄 왕국에 국경을 맞대고 있는 것은 벨룸 왕국이었다. 또한 미테 왕국은 체스터 공국과 살짝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체스터 공국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미테 왕국의 도발에 자유롭기 위해 레늄 왕국에 병력을 지원해 주었다. 그리고 레늄 왕국은 그 병력을 이용해 미테 왕국을 치기로 계약을 맺었다.

사실 체스터 공국 입장에서 보면 그 정도 병력을 지원할 수 있다면 국경을 보강하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그들은 더 먼 상황을 대비했다.

벨룸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면 다음 목표는 미테 왕국과 레늄 왕국이었다. 그리고 차근차근 에어스트 왕국까지 집어삼킬 계획이었다.

그렇게 모든 왕국을 아우른 다음 제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의도이자 목표였다.

문제는 체스터 공국에 그걸 이룰 수 있을 정도의 힘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러니까 그들이 계속 감춰 두고 있었던 힘이 서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내버려 두자니 미테 왕국이 마음에 걸렸다. 어찌 되었건 미테 왕국에는 세나와 바이스의 가문이 살고 있었다. 이 전쟁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들도 상당한 타격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아니, 반드시 멸문하겠지. 왕국의 중추 세력을 내버려 두면 흡수가 어려워질 테니까.'

체스터 공국의 성향은 상당히 호전적이었다. 그들은 나중에 해가 될 만한 싹을 남겨 두지 않는다. 벨루스 가문과 말레피 가문은 아마 철저히 무너질 것이다.

'어쨌든 그다음은 우리 차례겠지.'

하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저 귀찮을 뿐이었다.

현재 에어스트 왕국에서는 착실히 신형 기간트 아모르를 생산하고 있었다. 초고대문명에서 쓰던 대량생산체제를 어느 정도 도입했기 때문에 제작 속도가 다른 기간트 공장에 비해 엄청나게 빨랐다.

그렇게 만들어진 아모르는 일선 군대에 지급되어 기간트를 순차적으로 교체하고 있었다.

기존의 기간트 중 성능이 뛰어난 것들은 라이더 지망생의 훈련기로 쓰고, 남은 것들은 판매를 준비 중이었다.

아모르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재료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가장 많이 필요한 것이 강철이었고, 그다음으로 필요한 것이 테페룸과 포로스였는데, 그것들은 거의 무한정 생산이 가능했다.

제론은 이제 슬슬 초고대문명에서 쓰던 테페룸의 다른 가공물을 만들까 계획 중이었다. 그것까지 쓸 수 있게 되면 아마 대륙 전체의 마법공학에 대한 패러다임을 확 바꿔 버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시작은 에어스트 왕국이고 말이다.

제론은 고민했다. 미테 왕국을 도와주려고 해도 그 방법이 문제였다. 솔직히 제론은 미테 왕국 자체에는 미련이 없었다.

그들이 망하건 말건 무슨 상관인가. 솔직히 그냥 망하면 더 좋을 수도 있었다. 순식간에 모든 영토를 집어삼킬 수가 있으니 말이다.

가장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결정한다면 그냥 방치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그렇게 전쟁으로 약화된 두 왕국을 한꺼번에 도모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미테 왕국에 있는 두 가문은 그렇게 냉정하게 쳐낼 수 없었다. 그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설혹 에어스트 왕국이 도와서 미테 왕국이 전쟁에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 공이 벨루스 가문이나 말레피 가문에 고스란히 돌아가는 것도 아니었다.

'몰래 두 가문에 힘을 실어 줘야 하나?'

최소한 그렇게 하면 두 가문의 영향력이 훨씬 커질 것이다. 하지만 제론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역시 미온적인 대처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제론이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 두 가문의 선택에 맡겨야겠어.'

어떤 선택을 하든 존중해 줄 것이다. 또한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제론은 그들이 부디 자신이 마음에 둔 선택을 했으면, 하고 바랐다.

"자, 그럼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 또 슬슬 일을 하러 가 볼까?"

제론은 힘차게 일어나 유적 밖으로 나갔다. 이제 또 새로운 유적을 등록하러 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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