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결사대 (3)
위이이이잉!
제론의 심장에 있는 마나링이 세차게 가속했다.
9개의 마나링이 가속하며 주변 마나를 장악했다. 제론은 이제 모든 마나링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마나에 간섭할 수 있는 9개의 손을 가진 것이다.
제론의 앞을 가로막은 마나는 복잡하게 얽혀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9개나 되는 마나의 손을 다 쓸 필요도 없었다. 3개만으로 앞을 가린 마나를 활짝 열었다.
그 안으로 제론이 쑥 들어갔다. 거침이 없었다. 담장을 넘는 동안에도 마나의 손은 3개만으로 충분했다.
담장을 넘고 나자, 바닥에 깔린 마법진도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2개의 손이 더 필요할 뿐이었다.
아마 이 저택과 관계된 누구도 상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간단히 이곳을 통과할 수 있는 존재를 말이다.
제론은 유적이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건물로 스며들어 갔다. 예상했던 대로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광경도 있었다.
'마나스톤!'
건물 안에는 수많은 마나스톤이 빛을 밝히고 있었다. 즉, 유적의 에너지를 끌어 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이 건물 안에서 쓰는 에너지는 몽땅 마나스톤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뭘 하는 건물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곧장 밖으로 나왔다.
'스키아를 통해 확인했어야 하는 건데.'
이런 건물의 경우는 스키아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했다. 마티가 없다면 말이다. 하지만 제론은 예전의 경험을 떠올려 확인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저택을 빠져나간 제론은 나머지 세 군데 저택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래서야 날이 새기 전에 일을 끝낼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스키아."
그래도 일단 시도는 해 봐야 했다. 더 시간을 끌 생각은 없었다. 제론은 자신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그게 가능할 거라고 믿었다. 그건 소드 마스터라면 당연히 가지는 자신감이었다.
먼저 스키아를 목표 중 하나에 보내고, 제론은 그와 정반대에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사실 제론이 가는 곳은 저택이라기보다는 그저 건물이었다. 하지만 건물의 크기가 워낙 커서 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다만 건물의 모양이 아름답지 않았다. 그저 커다란 사각 상자 같았다. 게다가 건물의 크기에 비해 창이나 문의 수가 너무 적었다.
마치 일부러 안을 보여 주지 않기 위해 만든 건물 같았다. 건물의 크기는 어찌나 큰지 제론이 목표로 한 다른 저택의 건물과 정원을 몽땅 합한 것보다 더 거대했다.
제론이 그 건물에 다가가는 사이, 스키아는 벌써 저택 안으로 스며들어 내부를 확인하고 있었다.
그 저택 역시 경계가 상당했다. 하지만 스키아를 통해 본 바에 따르면 별다른 특별한 점이 없었다. 그곳에도 유적이 없었던 것이다.
제론은 일단 스키아를 남은 장소로 보냈다. 그리고 자신은 눈앞의 건물에 집중했다.
이 건물은 일단 들어갈 방법이 많지 않았다. 건물을 통틀어 문이라고는 딱 2개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엄청난 수의 경비병과 기사가 거의 문을 틀어막다시피 했다.
또한 창문도 달랑 5개뿐이었다. 창으로 숨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는데, 창문에도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얼핏 봐서는 몰래 숨어 들어가는 게 전혀 불가능할 듯했다. 하지만 제론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렇게 큰 건물에 구멍이 고작 7개뿐일 리가 없었다.
또한 혹시 정말로 건물에 들어갈 구멍이 그것뿐이라도 제론은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
스키아를 통해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은밀한 장소로 텔레포트하면 된다.
마나링이 9개였기에 텔레포트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다만 마나링을 통한 마법만으로는 조금 어려웠다. 마법진의 도움을 살짝 받아야 했다.
물론 9개의 마나링을 훨씬 더 세밀하게 다룰 수 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그때부터는 그저 마법만으로 텔레포트를 쓸 수 있었다.
제론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이대로 쭉 성장을 하면 10개째 마나링을 얻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제론이 건물 주변을 살피는 동안 스키아는 벌써 목표로 한 마지막 저택을 확인했다. 그곳도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여기가 진짜 목적지라는 뜻인데…….'
대체 이런 투박한 건물에서 그 막대한 에너지를 가지고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제론은 스키아를 건물 안으로 넣었다. 한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팅.
스키아가 튕겨 나왔다. 건물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제론은 깜짝 놀라 다시 스키아를 이동시켰다. 창문이나 문을 통해 안으로 넣어 봤지만 번번이 튕겨 나왔다.
다른 빈틈을 찾아 넣어 봤지만 여전히 결과는 같았다. 놀랍게도 저 건물은 정령을 막고 있었다.
제론은 궁금해졌다. 과연 다른 정령도 같은 반응일지 말이다. 그래서 일단 아네모스를 불렀다.
"아네모스."
휘류루루루룽.
바람이 뭉치며 아네모스가 나타났다. 제론은 아네모스를 건물의 문으로 보냈다. 아네모스는 바람의 정령, 문에 난 미세한 틈을 통해 안으로 스며드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는 스키아와 똑같았다.
팅!
아네모스가 문에 채 닿기도 전에 튕겨 나오는 광경은 정말로 놀라웠다. 설마 정령의 존재를 파악해 방어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제론은 텔레포트를 이용해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일단 접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정령도 튕겨 내는 마당에 텔레포트가 제대로 성공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게다가 제론의 텔레포트는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9개의 마나링을 더욱 완숙하게 다룰 수 있고, 또 텔레포트와 관계된 마법을 충분히 숙련시키기 전에는 이렇게 위험한 상황에서 쓸 수 없었다.
제론은 건물 주위를 돌며 빈틈을 찾아봤다. 이미 스키아를 통해서도 빈틈이 없다는 걸 확인했지만, 그래도 혹시 스키아로는 찾아낼 수 없는 빈틈이 있을지도 몰랐다.
상당히 큰 건물이었지만, 제론이 워낙 빨라 건물 전체를 살피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게 건물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제론은 빈틈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몰래 들어가는 건 어려웠다. 이럴 때는 지난번처럼 외부의 변수가 필요했다.
'그자들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당시 광장의 분수대를 습격해 부수던 자들 덕분에 아주 쉽게 유적을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을 떠올린 제론은 문득 이번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적인 도움은 아니었지만, 간접적으로는 얼마든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좋아. 일단 오늘은 준비만 좀 해 볼까?'
당시 그들의 싸움은 확실히 기억해 두었다. 아니, 태블릿에 저장이 되어 있었다. 일단은 그걸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제론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굳이 오늘이 아니어도 된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에어스트 왕국은 안정되었고, 이제 제대로 된 국가의 기반을 다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 일에 제론의 힘은 필요 없었다.
에어스트 왕국에는 상당히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인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바인의 힘이었다.
그리고 제론이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제론은 크란 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상당히 자주 에어스트 왕국에 다녀왔다. 제론이 아니면 처리할 수 없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예를 들면 기간트에 관한 문제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건 없었다. 에어스트 왕국은 그냥 내버려 둬도 자연스럽게 굴러갈 것이다. 점점 더 강해지고 부유해지는 방향으로.
아무튼 제론은 그날은 포기하고 도시에서 나갔다. 그리고 도시에서 제법 떨어진 작은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할 일이 있었다.
이튿날 밤, 제론은 다시 성벽을 넘었다. 이번에는 전날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빨랐다. 같은 곳을 두 번 뚫으니 훨씬 익숙해진 것이다.
또한 하루 만에 제론의 마법 운용 능력이 향상된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제론은 곧장 예의 건물로 향했다. 오늘은 반드시 안에 들어갈 것이다.
건물에 도착한 제론은 아공간에서 작은 구슬 하나를 꺼냈다. 그 구슬은 예전 분수대를 습격하던 자들이 쓰던 것과 닮아 있었다.
제론은 그때의 영상을 보고 똑같은 모양의 마나폭탄을 만들어 냈다. 제론에게 그것은 아주 간단했다. 모양만 똑같이 맞추고 폭발력만 갖추면 되는 일이었다.
제론은 똑같은 모양으로 훨씬 강력한 폭발력을 내는 폭탄을 만들 수 있었다.
이걸 이용하면 아마 이 건물과 관계된 비밀 조직은 상당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제론은 자신을 가리는 방편으로 그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 습격대는 분명히 비밀 조직에 반감을 가진 자들이었다.
어차피 이 건물도 비밀 조직의 것이니, 건물을 한바탕 뒤집어 놓으면 그 습격자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제론은 빠르게 건물로 다가가며 감각을 최대한 활성화시켰다.
마나폭탄을 아무 데나 써선 안 된다. 가장 효과적인 부분에 써야 빈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모습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서 힘을 쓰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곳 건물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건 불가능했다.
지원군이라도 오면 상당히 곤란해질 테니 말이다. 어디까지나 제론은 스스로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유적을 얻기만 하면 된다.
제론은 그 부분을 절대 잊지 않았다.
가장 먼저 제론이 노린 곳은 건물 외벽에 있는 마법진의 빈틈이었다.
건물 외벽에는 마법진이 촘촘히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 구조적 특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빈틈이 있었다. 그곳은 마나가 닿지 않는 곳이었고, 또 약점이 될 만한 곳이었다.
제론의 감각은 그런 부분을 어렵지 않게 잡아낼 수 있었다. 빠르게 움직이면서 정확히 그 부분에 마나폭탄을 붙였다.
턱!
마나폭탄은 마치 접착력이라도 갖고 있는 듯이 벽에 착 달라붙었다. 그리고 색을 바꿔 벽과 동화되었다.
자세히 보면 알아보겠지만, 밤에 얼핏 봐서는 절대 그곳에 마나폭탄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없었다.
제론은 건물을 돌며 모든 빈틈에 마나폭탄을 붙였다. 어제 밤을 새워서 만든 것들이었다.
만들기가 비교적 간단해서 엄청나게 많은 수를 만들었다. 어찌나 많았는지 건물의 모든 빈틈에 폭탄을 설치하고도 백여 개가 남을 정도였다.
제론은 그 남은 폭탄을, 빈틈에 설치한 마나폭탄이 폭발했을 때 상승 작용을 일으켜 가장 큰 힘을 낼 수 있을 만한 위치에 붙였다.
마법진의 빈틈에 붙인 게 아니었기에 당연히 벽의 마법진이 일제히 발동했다.
하지만 제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남은 마나폭탄을 툭툭툭 붙이고 다녔다. 제론의 손길은 빠르고 정확했다.
마법진이 가동되니 건물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문과 창문을 지키는 경비병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은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빛났다.
제론은 그것도 미리 예상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3개의 마나폭탄을 문에 휙 던졌다.
터더덕!
마나폭탄이 마치 원래 자리를 찾아가듯 문에 착착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안에서 일단의 병력이 뛰쳐나왔다.
"찾아라! 결사대 놈들이 왔을지 모르니 정신을 바짝 차리도록!"
지휘관의 명령에 일사불란하게 대답한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11명이 한 조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마법진을 발동시킨 범인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달렸다.
그리고 제론은 살짝 떨어진 곳에서 기척을 지운 채 그 광경을 지켜봤다.
제론이 손가락을 튀겼다.
따악!
그 순간, 문 앞에 서 있던 지휘관의 눈빛이 변했다. 그가 시선을 제론이 있는 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대신 작열하는 열기를 온몸에 뒤집어썼다.
꽈아아아아아아앙!
문에 있던 마나폭탄이 가장 먼저 터졌다.
그리고 연쇄적으로 벽에 설치한 폭탄이 터져 나갔다.
꽈앙! 꽈앙! 꽈앙! 꽈앙!
꽈과과과과과광!
건물 벽에서 연달아 폭탄이 터져 나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제론은 자신이 만든 장면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그리고 몸을 날렸다.
문에서 일어난 폭발 때문에 상당수의 병사와 기사가 휘말려 죽고 다쳤지만, 지휘관은 멀쩡했다. 그는 상당한 강자였다.
제론은 그에게 달려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만은 반드시 처리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건물 안을 휘젓고 다니기가 어려울 거란 예감이 강렬하게 들었다.
쉬이익!
어느새 뽑은 제론의 검이 불길에 휩싸인 지휘관의 목으로 날아갔다.
쩡!
제론은 어느새 나타난 검이 자신의 공격을 막았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몸을 빙글 돌렸다.
화아악!
지휘관의 몸에 붙었던 불길이 일제히 날아가 버렸다. 몸 곳곳에 제법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비교적 멀쩡해 보였다. 마나폭탄을 정면으로 맞았는데도 고작 그 정도이니 얼마나 강한 자인지 예측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