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9화 (140/217)

Chapter 7 결사대 (2)

"제론님은 제가 어디로 갔으면 좋겠어요?"

제론의 의견을 묻는 로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신중했다. 그렇기에 제론도 신중하게 생각해서 대답해 주었다.

"잘하는 게 뭐가 있지?"

"잘하는 거요?"

로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잘하는 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실험체로 살아오면서 폭주와 안정을 반복하는 단순한 삶을 살아왔는데 말이다.

제론은 로스가 무슨 결정을 내리든 도와주겠다고 결정을 내렸기에 끝까지 그녀가 말하기를 기다려 주었다.

아직 시간은 많았다. 국경을 넘어 크란 제국을 벗어나려면 최소한 이틀은 더 필요할 것이다.

사실 이틀 만에 국경을 넘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였다. 하지만 제론이기에 가능했다. 제론은 낮에는 로스와 함께 걷고 밤에는 정령과 마법을 이용해 날아갈 계획이었다.

아마 내일 아침이면 국경에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를 로스와 함께 빠져나가려면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하루가 더 필요하고 말이다.

"상단에 가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뭐든 찾아보면 있겠지. 아니면 공부를 하는 것도 괜찮겠지."

공부라는 말에 로스가 눈을 크게 뜨고 제론을 바라봤다. 그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었다.

"유명한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공부를 하는 거지."

로스는 그 말에 마음이 혹했다.

제론은 로스가 상당히 뛰어난 머리를 가지고 있다는 걸 파악했기에 그 말을 던질 수 있었다. 사실 제론은 로스가 오랫동안 공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나중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괜찮고."

제론이 원하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인재를 지속적으로 키워 내기 위해서는 인재를 키울 교육자가 필요했다. 제론은 로스라면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로스는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하겠어요. 공부해서 아이들을 가르칠 거예요."

로스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원했다. 로스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고, 바로잡아 줄 어른도 없었다.

만일 공부를 열심히 해서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게 된다면 자신이 아이들을 바로잡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로스가 진짜 원하는 것이었다.

"좋아. 결정을 내렸으니 좀 더 열심히 가 볼까?"

제론의 말에 로스가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목표가 생긴 사람의 전진은 무서운 법이었다. 제론은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로스를 보며 빙긋 웃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국경을 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제론은 로스를 페쿠니아 상단 지부에 데려다 주고 상단주와 연락을 한 다음, 곧장 분수대 아래 유적으로 돌아갔다.

☆ ☆ ☆

두 개의 도시를 장악한 바인은 크란 제국에 대해 훨씬 폭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정보는 고스란히 제론에게 전해졌다.

제론은 광장과 분수대를 새로 만들기 시작하는 걸 확인한 다음 도시를 떠났다.

이제 새로운 도시를 찾아 떠날 때가 되었다. 그러면서 향후의 계획을 다시 한 번 점검했다.

"크란 제국이 넓긴 넓군."

크란 제국은 동에서 서로도 길었지만 남에서 북은 대륙을 관통할 정도였다. 정말로 거대했다. 남쪽에는 광활한 밀림이 펼쳐져 있었고, 북쪽에는 얼음으로 뒤덮인 지역이 있었다.

그 넓은 제국이 제대로 통제가 되는 건 텔레포트 게이트의 존재 덕분이었다. 크란 제국에는 모든 도시에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었다.

일단 도시까지만 가면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해 제국 어디든 갈 수 있으니 땅덩어리가 아무리 넓다 한들 충분히 통제가 가능했다.

게다가 크란 제국 내에서 텔레포트 게이트를 이용하는 비용은 거의 거저에 가까웠다. 외국에서 게이트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이용해 제국의 게이트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아무튼 제론은 그런 텔레포트 게이트의 혜택을 볼 수 없었기에 걸어서, 혹은 날아서 이동해야만 했다. 물론 제론은 그렇게 이동하는 게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조금 더 걸려 그것이 좀 아까울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이동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 충실했다.

제론은 거대한 농지에 접어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농지를 보고 있으니 대번에 에어스트 왕국이 떠올랐다. 문득 이 농지가 얼마나 큰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바인이 건네준 정보에 의하면 이곳이 크란 제국 최고의 곡창 지대였다.

제론은 하늘로 휙 날아올랐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농지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있었다. 기온이 후덥지근한 남쪽이었기에 계절에 상관없이 곡물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거의 구름 높이까지 올라간 다음 아래를 내려다본 제론은 감탄했다. 정말로 넓었다. 척 보기에도 에어스트 왕국의 농지보다 세 배는 되는 듯했다.

"완전히 축복받은 땅이로군."

땅이 어찌나 기름진지 알곡이 엄청나게 풍성했다. 물론 에어스트 왕국의 농지에서 자라는 곡물보다는 조금 못했다. 그곳의 땅은 아주 특별하다. 대륙 어디에 가도 그보다 좋은 농지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농지의 끝에 커다란 도시가 보였다. 농지에서 나는 곡물을 보관하는 도시인 듯 성벽 근처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창고가 잔뜩 세워져 있었다.

"다음 목표가 저기로군."

바인은 두 개의 도시를 장악한 다음 크란 제국 전도를 만들어서 보냈다. 아주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세밀한 지도였다.

아마 저 도시까지 장악하면 지도가 훨씬 세밀하고 정확해질 것이다.

정보에 관한 한 바인은 괴물이라는 표현으로도 모자랐다. 그냥 천재라고 하기에도 미안할 지경이었다. 정말로 어마어마했다.

고작 두 개의 도시를 장악한 것만으로 크란 제국의 지도를, 그것도 이렇게 정확하고 세밀한 지도를 만들어 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제론은 구름 위를 날아 도시로 향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그렇게 도시 안으로 들어가 높은 건물 옥상에 가볍게 내려섰다.

이 도시는 경계가 엄청나게 심했다. 첫 번째 도시와 비슷했다. 아니, 그보다 더 철저했다.

도시를 크게 둘러싼 성벽에 각각의 방향으로 문이 3개씩 있었고, 그곳에서 경비병들이 철저히 검문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곳에 있는 기사들은 기간트를 보유한 라이더였고 말이다.

도시 내에도 경비병이 곳곳에 돌아다니며 불시에 통행증을 검사하곤 했다.

첫 번째 도시보다 규모가 훨씬 큰 곳이었는데, 그 큰 규모를 모두 커버할 정도로 경비가 철저했다.

이건 비단 치안을 유지하기 위함만은 결코 아니었다. 제론은 이곳에 큰 유적이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유적의 에너지를 이용해 뭔가를 하는 중이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특이하군. 만일 여기도 진짜 유적이 있다면 도시마다 유적이 있는 셈이잖아.'

어쩌면 비밀 조직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을 수도 있었다. 크란 제국이 생길 무렵이나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조직일 확률이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유적이 있는 곳을 개발해 도시를 만들었을 것 아닌가.

물론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낮았다.

제론은 순간 텔레포트 게이트로 각 도시를 찍고 유적만 찾을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곧장 고개를 저었다.

'내 행적이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조심해야 돼.'

제론은 옥상에서 도시를 둘러보며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여기서도 제대로 된 숙박 시설에 묵기는 틀렸군.'

아마 빈민가에 가도 제대로 된 여관에서 머물지 못할 것이다. 경비병이 너무 많았다. 이 도시에서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유적이나 빨리 찾자.'

이런 도시에서 유적을 찾는 방법은 첫 번째 도시에서 한 방법이 일단 최선이었다. 그렇게 하려다가 문득 제론은 다른 방법도 있음을 깨달았다.

제론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굳이 돌아다니면서 지도를 그릴 이유가 없잖아?'

제론은 다시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 아래에서 혹시라도 누군가가 볼 수 있으니 몸을 감추는 마법을 걸었다.

빠르게 쭉쭉 올라가 구름이 있는 곳에 도착한 제론은 태블릿을 꺼냈다.

태블릿에는 별의별 기능이 다 있었다. 제론은 태블릿 화면을 보며 아래를 잘 겨냥했다. 그리고 태블릿의 기능 몇 가지를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태블릿 화면에 아래 도시의 모습이 나타났다. 제론은 태블릿을 잘 움직여 도시가 태블릿 화면 안에 다 들어오도록 맞췄다.

화아악!

태블릿에서 빛이 반짝였다. 그러자 태블릿 화면이 고정되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제론은 굳이 도시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농지를 벗어나니 작은 숲이 하나 나왔다. 제론은 그 숲으로 들어갔다.

워낙 도시에서 먼 곳이라 숲에는 인적이 전혀 없었다. 대신 맹수도 제법 있었다. 물론 제론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제론은 숲 속에 잠자리를 만들었다. 일단 큰 나무를 찾아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아공간 안에서 침낭을 꺼내 나뭇가지에 걸치도록 펼쳤다.

그렇게 훌륭한 잠자리를 만든 다음 대충 끼니를 때운 제론은 침낭에 들어가 태블릿을 꺼냈다.

시간이 많으니 여기서 모든 작업을 마칠 생각이었다.

태블릿에 도시의 모습을 띄운 제론은 그걸 조작해 크게 확대시켰다. 그러자 도시의 골목골목까지 상세히 보였다. 제론의 입가에 미소가 씨익 그려졌다.

이로써 전혀 도시에 들어가지 않고 유적이 있을 만한 장소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도시가 상당히 넓긴 했지만 유력한 자리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다.

제론이 찾은 후보지는 총 네 곳이었다. 각각 커다란 저택 형태였다. 사실 제론은 그중 하나를 거의 확신하듯 찍었다. 저택 내부의 형태가 첫 번째 도시와 놀랄 정도로 흡사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곳이 아닐 가능성도 있으니 나머지 후보지도 다 눈여겨보았다. 오늘 밤에 그곳을 모두 확인할 것이다.

제론은 밤이 되기 전까지 잠깐 눈을 붙이기로 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피로를 이런 식으로 조금씩 풀어 줘야 했다.

아직 갈 길이 멀었다. 급하지 않게 차근차근 나아갈 것이다. 제론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깜깜한 밤이 되었다. 제론은 잠자리를 정리한 다음 다시 날아서 도시로 향했다.

목표의 위치가 어디쯤인지는 확실히 숙지하고 있었기에 일단 도시에 도착하기만 하면 곧장 모든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역시 여기도 마찬가지로군.'

도시 외벽 곳곳이 빛나고 있었다. 여기도 첫 번째 도시처럼 온통 마법진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역시 여기도 유적의 에너지를 가져다 쓰는군.'

이 도시의 규모를 생각하면 마법진에 들어가는 마나의 양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한데 척 보기에 성벽뿐 아니라 성 내부의 큰 도로에도 마법진이 깔려 있었다.

그걸로 미루어 짐작하면 이 도시 아래에 잠든 유적도 상당히 클 것이다. 과연 이곳에 있는 유적에는 어떤 선물이 잠들어 있을지 기대되었다.

제론은 빠르게 몸을 날렸다. 성벽을 넘는 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이곳의 성벽에는 허공을 날아 넘어가는 자들에 대한 방비까지 되어 있었지만 그걸 무시할 정도로 높이 날아오르면 그만이었다.

제론의 몸이 허공으로 훌쩍 떠올랐다. 그리고 거의 구름에 닿을 정도로 높이 날아 성벽 안에 사뿐히 내려섰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크란 제국 성의 방비는 낮보다 밤에 훨씬 더 철저했다.

일단 성안으로 들어가니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는 경비병이 수도 없이 보였다. 저들의 눈을 피해서 밤에 뭔가 일을 벌인다는 건 보통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제론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제론은 소드 마스터만이 가질 수 있는 속도를 이용해 밤거리를 내달렸다.

어두운 옷을 입고 몸의 기척을 완전히 죽인 채 어마어마한 속도로 달리는 제론의 모습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는가.

제론은 경비병들을 스쳐 지나가며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가장 먼저 확인하려고 마음먹은 목표는 첫 번째 도시에서 유적이 있던 곳과 완전히 똑같은 구조를 가진 저택이었다. 제론은 십중팔구 그곳에 유적이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곳의 방비는 첫 번째 도시의 저택보다 훨씬 심했다. 벽에 새겨진 마법진도 훨씬 많았고, 안에서 풍기는 마나의 흐름도 심상치 않았다.

'여기도 유적에서 끌어낸 에너지를 쓰고 있군.'

이곳에 유적이 있을 확률이 더 높아졌다. 제론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저택에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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