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7화 (138/217)

Chapter 6 광장의 분수대 (3)

처음에는 놀랍고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제론이 말을 꺼낸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분수대가 부서졌으니 자신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걸 이용하자는 뜻이었다.

"그럼 이 아티팩트는……."

"대충 예상한 모양이군. 맞다. 강렬하고 난폭한 마나를 일시에 방출하는 아티팩트다. 미리 마나를 저장해 놨으니 그저 부수기만 하면 된다."

이 아티팩트를 바닥에 던져 부수면 완전히 가루가 되어 사라지면서 막대한 마나를 방출하게 된다. 그것은 로스의 죽음과 상당히 비슷할 것이다.

"대충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연해 봤는데, 아마 정말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넌 살점도 남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제론의 말에 로스는 가슴이 서늘해졌다. 말만으로도 섬뜩했다. 제론이 아니었다면 실제로 겪어야 할 상황 아닌가.

'태블릿의 시뮬레이션이니 확실하겠지.'

아마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죽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세심히 준비해야만 했다. 아무도 의심하지 못하게 말이다.

"시체는 내가 구해 뒀다. 그러니 넌 빠져나갈 일만 생각하면 된다."

로스는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반드시 이 감옥을 빠져나갈 거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말이다.

로스의 저택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구석진 방에 모여서 나름대로 쉬고 있었다.

"그 괴물이 슬슬 돌아올 시간이 되었지?"

"얼추 그쯤 되었지."

"하아, 이게 무슨 고생인지……."

"이게 다 그 괴물 같은 여자 때문이지, 뭐."

"근데 말조심하는 게 좋아. 얼마나 귀가 밝은지 알아?"

그 말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만일 그 여자가 들어왔는데 이런 말을 듣는다면 아마 갈기갈기 찢어질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좀 늦는 것 같네. 너무 일찍 숨었나?"

"내가 한번 나가 보고 올까?"

"위험할 텐데……."

"위험하긴, 얼른 도망치면 되지. 여차하면 저택 밖으로 나가도 되잖아. 그 괴물은 함부로 밖에 나갈 수 없으니까. 쫓아오기 힘들걸?"

"하긴."

다들 수긍하자, 처음 말을 꺼낸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택에서 힘쓰는 일을 도맡아 하는 일꾼이었기에 힘도 좋고 몸놀림도 재빨랐다.

사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심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 로스는 돌아오지 않았다. 언제쯤 돌아올지 확인하고자 할 뿐이었다.

밖으로 나온 사내가 일단 전물 밖으로 나갔다. 저택에는 아무도 없어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건물에서 나와 정원을 가로질러 정문으로 이동하며 담장 밖을 확인했지만 누군가가 다가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로스는 없었다.

사내는 문득 정원보다는 밖이 낫다고 생각했다. 혹시 로스를 정원에서 맞닥뜨리면 그야말로 난감한 상황이 된다. 도망가기도 여의치 않고 말이다.

하지만 저택 밖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로스는 굳이 자신을 쫓아오지도 않을 것이다. 로스에게는 저택에 빨리 돌아와야 할 이유가 있으니 말이다.

거기까지 생각한 사내는 과감하게 저택을 벗어났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혹시 저택에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내일 로스가 나간 사이에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저택에서 나와 거리를 걸었다. 도시가 왠지 어수선했다. 하지만 저택에서 나온 지 너무 오래되어 분위기를 잊었다고 여기고는 계속 걸었다.

그냥 걷기만 한 건 아니었다. 로스가 돌아오는지 열심히 확인했다. 하지만 로스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사람들이 잔뜩 모여 떠드는 것을 발견했다. 호기심이 일어 다가갔다가 그들이 큰 소리로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광장이 완전히 아작 났단 말이지?"

"그렇다니까! 분수대가 완전히 뽑혀서 광장 바닥을 뒹굴고 있더라니까?"

사내는 그제야 뭔가 일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뇌리에 적신호가 깜빡였다.

'돌아가야 돼!'

이럴 때가 아니었다. 돌아가야만 한다. 만일 분수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로스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 폭주할 가능성이 높았다.

만일 그렇게 되면 저택에 남은 일꾼들은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들은 일꾼이긴 했지만 로스처럼 중요한 인물의 곁에 두는데 조직이 아무나 데려다 놓을 리 없었다. 그들은 저택의 일꾼이었지만 최하급 조직원이기도 했다.

사내는 다급히 저택으로 달려갔다. 이 사실을 어서 동료에게 알려야만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로스는 도착하지 않았다. 사내는 서둘러 동료가 숨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동료들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큰일이야."

"큰일이라니?"

"광장이 부서졌어!"

다들 일제히 헉 소리를 냈다. 광장이 부서지다니, 대체 그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리고 그런 중요한 일이 벌어졌는데 왜 자신들에게 알리지도 않았단 말인가.

"그게 정말이야?"

"그래. 그러니 어서……."

사내는 어서 빠져나가자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한데 그 순간 어마어마한 마나의 압력이 저택을 뒤덮었다.

"허억!"

"왔다!"

"늦었어!"

이 난폭한 마나는 분명히 로스의 것이었다. 로스가 돌아온 것이다. 한데 마나의 흐름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

네 사람의 안색이 일제히 변했다. 로스가 폭주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분수대에서 마나를 보충하지 못했으니 폭주로 이어지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였다.

"어쩌지?"

"도망칠까?"

"그랬다간 더 빨리 죽을 거야."

다들 절망적인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에게 남은 희망은 이제 딱 하나였다.

"제발 폭주가 심해져서 터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러게. 그러면 살 수 있을 텐데."

그들은 저마다 손을 맞잡고 간절히 빌었다. 제발 로스의 마나가 폭주해서 터져 버리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라던 일이 벌어졌다.

꾸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렸다. 그리고 사방의 마나가 야생마처럼 날뛰었다. 그러더니 이내 폭풍이 되어 모든 걸 휩쓸었다.

"크어억!"

"아아악!"

네 사람이 비명을 지르며 서로를 꽉 부둥켜안았다. 금방이라도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저택이 당장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우웩!"

"쿠에엑!"

다들 피를 토했다. 마나가 워낙 난폭해서 몸을 휩쓴 것만으로도 내상을 입은 것이다.

부스스스.

돌가루와 먼지가 쏟아졌다.

우지끈!

나무로 된 벽이나 문짝이 부서졌다.

쩌저저적!

우르르릉!

그리고 돌기둥에 금이 쩍쩍 가더니 무너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고요히 가라앉았다.

네 사람은 멍하니 주위를 살피다가 이내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쳤다.

"살았다!"

"그 괴물이 터져 죽었어!"

네 사람은 기쁨에 떨며 함성을 지르느라 그 순간 저택에서 두 사람이 조용히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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