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6화 (137/217)

Chapter 6 광장의 분수대 (2)

그렇게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제론의 감각에 뭔가가 걸려들었다. 제론은 걸음을 멈췄다.

"뭐지?"

도시가 술렁이고 있었다. 아니, 도시 곳곳에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거야 당연하지만, 제론이 이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들로부터 풍기는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뭔가 목적을 가지고 움직였다. 각각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투기와 살기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건가?'

제론의 눈이 반짝였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이든 관계없었다. 중요한 건 제론에게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도시 곳곳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자들의 수는 수백 명에 달했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곳은 놀랍게도 광장이었다.

제론은 일단 몸을 그림자 속에 숨기고서 스키아를 통해 광장의 상황을 유심히 살폈다.

또한 감각을 최대한 활성화시켜 어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도시 전체가 제론의 뇌리에 조금씩 스며들어 오기 시작했다.

☆ ☆ ☆

제헨은 은밀히 움직이며 동료들을 돌아봤다. 그와 함께 움직이는 동료는 모두 124명이었다. 제헨까지 합하면 125명이나 되는 사람이 한꺼번에 도시를 질주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지금 제헨의 눈에 보이는 동료는 고작 8명뿐이었다. 나머지는 도시 곳곳에서 각자의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중이었다.

'시간을 맞추는 게 제일 중요해.'

제헨은 손목에 칭칭 감아 놓은 팔찌를 확인했다. 마치 긴 끈을 손목에 감은 듯했는데, 그건 분명히 금속이었다. 그리고 금속의 색은 두 가지였다.

한쪽 끝이 금색이었고, 나머지는 은색이었다. 그리고 금색이 점차 길어져 은색을 잡아먹고 있었다.

이것이 동료들과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준비한 특별한 아티팩트였다.

이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해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다. 그리고 최근의 작전에 상당한 도움이 되어 왔다. 투자금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팔찌의 색으로 판단하건대 아직 시간이 좀 있었다. 속도를 조금 늦출 필요가 있었다.

제헨은 슬쩍 팔을 들었다. 그의 신호를 받은 동료들이 속도를 늦췄다.

그들의 목표는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대였다. 그것은 제헨이 속한 조직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이자, 그들에게 악몽을 선사해 준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

타이밍을 맞춰 일부 동료는 광장 서쪽과 동쪽에 있는 경비대를 칠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분수대를 지키는 병사와 기사를 상대할 것이다.

제헨은 그들이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 사이 분수대를 부수는 것이 목표였다. 사실상 가장 중요한 임무를 띤 셈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움직이는 이유가 바로 그 분수대였으니 말이다.

제헨은 초조한 마음으로 손목을 확인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제헨의 눈이 번득였다. 드디어 시간이 된 것이다.

"가자."

제헨의 말에 그의 동료가 일제히 움직였다. 그들은 빠르게 광장으로 향했다.

그들이 광장에 들어서기 직전 다른 곳에서 움직이던 동료들이 서쪽과 동쪽의 건물을 덮쳤다.

꽈과과광!

작은 폭발형 아티팩트가 굉음과 함께 터지며 비명과 고함이 어우러졌다.

그리고 수십 명의 사내들이 광장으로 달려가 병사와 기사를 덮쳤다.

채채채채채챙!

"죽여!"

"크아악!"

"막아!"

광장이 일순간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그 순간 제헨이 동료들과 함께 곧장 분수대로 내달렸다.

제헨의 움직임은 거침이 없었다. 처음 하는 일도 아니었고, 가진 바 능력도 상당했다. 작전은 완벽했다. 이제 분수대만 터트리면 모든 게 끝난다.

서둘러야만 했다. 제헨이 빨리 끝내면 끝낼수록 동료들이 몸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테니까 말이다.

제헨이 품속에 있는 달걀만 한 구슬을 확인했다. 그것이 바로 강력한 화염과 바람을 일으켜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폭발형 아티팩트였다.

물론 그것 하나만으로 분수대를 부술 수는 없었다. 분수대는 엄청나게 단단했다. 각종 방어 마법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고, 만들어진 재질 자체가 특별했다.

하지만 그런 분수대에도 분명히 약점이 있었다. 제헨이 노리는 건 바로 그것이었다.

제헨과 그의 동료들은 격렬한 싸움터를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빈틈을 노리고 지나가는 그들을 아무도 막지 못했다. 아니, 지나가는 걸 눈치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만큼 격렬하고 흉험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제헨은 분수대에 도착해 일단 아래를 살폈다. 그리고 준비한 단검을 꺼내 분수대와 광장 바닥이 연결된 부분에 있는 돌을 파냈다.

카가각!

특수한 재질의 돌 하나가 뽑혀 나왔다. 제헨이 그 일을 하는 동안 나머지 8명의 동료 역시 분수대에 붙어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

워낙 훈련도 많이 하고 실전도 많이 겪어서 그런지 그들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했다. 분수대에 붙었다 싶은 순간 벌써 돌을 파내고 품에서 달걀만 한 구슬을 꺼냈다.

그들은 돌을 파낸 자리에 그 아티팩트를 쏙 넣었다. 그리고 파낸 돌을 다시 끼웠다. 당연히 아귀가 맞지 않았지만 그런 건 중요치 않았다. 품에서 병 하나를 꺼내 그 안에 든 우윳빛 액체를 그 위에 쏟았다.

액체는 끈끈했는데, 돌에 덧씌워지니 딱딱하게 굳었다. 당연히 단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제헨은 일을 마무리한 뒤 빠르게 분수대에서 멀어졌다. 그러면서 품에서 꺼낸 신호탄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피유우우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불꽃이 하늘로 쭉 올라갔다.

그러자 제헨의 동료들이 습격을 마무리하고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 뒤를 기사와 병사들이 쫓았지만 그들의 속도가 너무 빨라 거리가 점점 벌어졌다.

게다가 가는 길 중간중간 미리 만들어 둔 함정 때문에 간격이 벌어지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그렇게 제헨과 동료들이 한창 빠져나가고 있을 때, 분수대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습격자들을 쫓던 기사와 병사들이 당황한 눈으로 돌아봤다. 그들의 눈에 비친 광경은 커다란 분수대가 하늘 높이 솟구치는 모습이었다.

망연한 눈으로 그 광경을 쳐다보던 기사와 병사들은 분수대가 다시 땅으로 떨어지자, 정신을 차리고 광장으로 달려갔다.

꽈앙!

분수대가 광장 바닥에 처박히는 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기사와 병사들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광장에 도착한 그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광장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분수대는 곳곳이 그을리고 부서졌지만 그래도 비교적 멀쩡했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광장 바닥이 온통 뒤집어지고 부서져 있었다. 아마 다시 분수대를 설치하려면 엄청난 돈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 책임을 고스란히 지게 된 기사와 병사들의 눈이 암담함으로 물들어 갔다.

☆ ☆ ☆

제론은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내심 감탄했다. 분수대를 박살 낸 방법도 대단했고, 거기에 이르는 일련의 움직임이 상당했다.

웬만한 훈련과 실전을 겪지 않았다면 엄두도 낼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제론은 편하게 되었다. 아마 더 이상 분수대를 지킬 필요가 없을 테니 금세 인적이 사라질 것이다. 그때 들어가서 유적만 등록하면 된다.

아마 이 도시도 조만간 제론의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다.

병사와 기사들이 광장을 내버려 두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쨌든 도망친 작자들을 찾아야 했고, 죽은 자는 모아서 뒤를 캐 봐야 했다.

그렇게 광장이 버려졌을 때, 제론이 등장했다.

제론은 유유히 광장 한가운데, 분수대가 있던 자리에 서서 아네모스를 소환했다.

잠시 후, 환한 빛이 광장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빛을 본 몇몇 병사와 기사들이 우르르 달려왔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한동안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광장을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유적 로비에 선 제론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이거 유적에 들어올 때 꼭 빛이 나야 하는 건가? 그걸 없애는 방법은 없나?"

만일 그게 아니라면 훨씬 은밀하게 유적을 들락거릴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이목만 속이면 되니 대낮에 인파가 바글거릴 때에도 충분히 이동이 가능했다.

한데 워낙 강렬한 빛이 생겨나니 타인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인적이 전혀 없을 때만 이동해야 하니 너무나 불편했다.

예전부터 불만이었고, 방법을 찾아봤지만 아직까지 그걸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저 조심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론은 일단 최하층에 있는 통제실로 향했다. 이 유적은 거점일 게 거의 확실하지만 그래도 확인이 필요했다. 혹시라도 뭔가 쓸 만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통제실에 도착한 제론은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형적인 거점이었다. 유적에는 마티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긴, 그러니까 그놈들도 에너지를 모으는 분수대 정도만 설치한 거겠지."

제론은 마티를 유적 밖으로 모두 내보낸 다음 바로 유적에서 흘러나가는 에너지를 컨트롤했다. 첫 번째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아래쪽으로 쏘아 보냈다.

나중에 이 에너지를 쓸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방치할 것이다.

"에너지가 사라진 걸 모르고 분수대를 또 설치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후훗."

만일 그렇게 되면 그 비밀 조직은 헛돈과 쓸데없는 노력을 쓰게 된다. 그들이 시간과 비용을 낭비할수록 제론에게는 더 좋다.

"그나저나 이제 로스의 문제를 해결해야겠군."

제론은 품에 넣은 아티팩트를 만지작거렸다. 분수대가 부서졌으니 이건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그냥 버릴까 생각하던 제론의 뇌리에 뭔가가 번득 떠올랐다.

"한번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이야."

제론은 아티팩트를 다시 품에 넣은 후, 유적에서 나갔다. 아마 이 유적에 다시 올 일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 ☆ ☆

로스는 불안한 눈으로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도시 전체가 술렁이고 있었다. 가끔 밖에서 소란이 일 때마다 몸이 움찔 떨렸다.

그녀는 과연 자신이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어서 빨리 제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다. 로스는 좀처럼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밖의 소란도 가라앉았고, 도시는 다시 고요함에 빠져들었다.

"이제…… 이제 어쩌지?"

로스가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침실의 창문이 스르륵 열렸다. 비록 힘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감각만은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곳을 통해 제론이 들어오는 걸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오, 오셨군요."

다시 안 오는 줄 알았다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했다. 어쨌든 이렇게 왔으니 됐다. 이젠 더 이상 불안에 떨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금세 마음이 안정되었다.

제론은 로스의 반응에 약간 당황했다. 설마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얼마나 불안할지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일단 이걸 받아라."

제론은 우선 아티팩트부터 넘겼다. 처음 만들었던 것에서 살짝 개조를 한 아티팩트였다.

"이게 뭔가요?"

"네 탈출을 도와줄 도구."

"타, 탈출이요?"

로스는 탈출이라는 말 한마디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더 이상 이런 곳에 갇혀 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온몸이 떨려왔다.

"이, 이걸 어떻게 쓰는 건가요?"

"부수면 된다."

"부숴요?"

"일단 시기는 오늘이 아니라 내일이나 모레쯤으로 잡아야 한다. 분수대가 부서진 건 알고 있나?"

그 말에 로스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예? 분수대가 부서져요?"

분수대가 부서지다니. 만일 제론이 자신을 구해 주지 않았다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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