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 (133/217)

Chapter 5 로스의 비밀 (1)

로스는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탁자를 마주하고 앉은 제론의 시선을 피하려 애썼다.

상당히 넓고 화려한 응접실이었는데, 차를 가져다주는 사람조차 없어서 탁자 위가 텅 비어 있었다.

"얘기해 봐."

제론의 말에 로스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 분수대 보셨죠?"

로스는 그렇게 말문을 열고는 제론을 바라봤다. 그리고 제론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말을 이었다.

"거기에서 힘을 얻었어요."

"힘을 얻어?"

로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상당히 망설이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자들은 그걸 실험이라고 했어요."

"실험? 힘을 얻는 실험인가?"

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보고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소드 마스터라……."

제론의 표정이 굳었다. 로스가 말한 자들은 소드 마스터에 대한 기준이 현재와 달랐다. 제론과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솔직히 말하면 전 싫었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죠."

힘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연약한 여자에 불과했으니 그들에게 반항조차 못 했을 것이다.

"전 이 저택을 벗어나선 안 돼요."

제론이 로스를 쳐다봤다. 저택을 벗어나선 안 되는데 분수대에는 왜 갔단 말인가.

"하루에 한 번씩 분수대에 가야만 해요. 딱 그 시간만이 제 유일한 낙이었죠."

"하루에 한 번 분수대에 가야만 한다고?"

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그러면 몸이 터져서 죽을 거래요."

"몸이 터져 죽어?"

제론의 머릿속이 맹렬히 돌아갔다.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는 걸 보면 정말일 확률이 높았다. 아니면 로스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거나.

"그 사람들이 그랬어요. 그리고 저도 느낄 수 있어요. 하루에 한 번 분수대로 가지 않으면 전 죽어요."

제론이 로스의 몸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폈다. 그녀의 몸에 흐르는 거친 마나를 차근차근 파악해 봤다. 하지만 별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로스는 제론이 자신을 살피든 말든 자조적인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아. 당연히 그렇겠죠. 제게 힘을 준 것이 그 분수대니까요."

그 말에 제론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분수대가 힘을 줬다고?"

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처음에는 정말로 아팠지만, 그래도 힘을 얻었을 때는 좋았어요. 몸이 날아갈 것 같았거든요. 누구든 다 이길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당시의 일이 떠올랐는지 로스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그 미소는 이내 자조로 바뀌었다.

"이젠 다 틀렸지만요."

"저택에서 나갈 수 없다는 건 널 감시하는 자들이 있다는 뜻인가?"

로스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 이 저택을 떠나면 죽어요. 여긴 제 힘이 터지지 않게 억제해 주는 마법이 걸려 있거든요."

"마법?"

제론의 눈이 살짝 커졌다. 마법이라니, 말도 안 된다. 만일 이 저택에 마법이 걸려 있었다면 자신이 몰랐을 리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마나의 흐름을 파악하는 감각 하나만은 전 대륙의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초고대문명에 가더라도 그것만은 최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니 만일 마법진이라도 있었다면 이 저택에 들어온 순간 바로 느꼈어야만 했다. 하지만 제론은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었다.

제론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감각에 집중했다. 예리하게 날이 선 감각이 저택을 샅샅이 훑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마법의 흔적은 없었다.

"정말로 마법이 걸려 있다고?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그들이 말했으니까요. 절 강제로 실험에 참가시켰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거짓을 말한 적이 없어요."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말만 믿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날 여기로 데려온 거지?"

"궁금해서요."

"궁금해?"

"저 말고 다른 실험체를 본 건 처음이거든요. 이 도시에는 저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제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로스는 한껏 움츠러든 채로 그런 제론을 바라봤다.

"네 몸을 좀 살펴봐도 될까?"

"예? 모, 몸을요?"

로스는 조금 당황했다. 설마 제론이 그런 요구를 할 줄은 몰랐다. 사실 그녀는 상당히 아름다웠다. 그러니 남자들의 관심을 수없이 받아 왔다.

하루에 한 번씩 분수대에 가는데 눈에 띄지 않을 리 없지 않은가. 가는 시각이 일정치 않았기에 하루 종일 그녀만 기다리던 남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수작을 부리다가 로스에게 처참하게 당한 뒤로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일을 몇 번이나 겪었기에 남자가 자신을 보며 어떤 관심을 갖는지, 또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한데 제론이 그걸 요구했다. 그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수십 번이나 바뀌었다.

다른 남자의 경우는 힘으로 물리쳤다. 하지만 제론을 힘으로 물리칠 자신이 없었다. 제론은 자신보다 압도적으로 강했다.

힘으로 덤비면 꼼짝없이 당할 것이다. 아까도 그저 눈빛 한 번에 몸이 굳어서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지 않았던가.

"하아, 그래도 신사적이시네요. 그렇게 동의도 구하시고."

로스가 그렇게 비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결할 용기는 더 없었다. 차라리 눈 한 번 질끈 감고 참는 편이 나았다. 하지만 나중에 이에 대한 복수는 반드시 할 것이다.

"알았어요. 마음대로 하세요."

로스는 그렇게 말하며 제론을 똑바로 노려봤다. 그녀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절대 제론의 얼굴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제론은 그런 그녀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왜 이런 반응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잡스러운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제론은 마음을 다잡고서 로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제론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로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끝까지 눈을 뜰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말았다. 두려웠다.

'아플까?'

로스가 그런 생각을 떠올릴 때, 제론이 그녀의 양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흠칫 놀라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로스는 다음에 벌어질 일을 두려워하며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제론이 움직이지 않자 결국 슬그머니 눈을 떴다.

제론은 로스의 양 손목을 잡은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뭔가 집중했는지 로스가 눈을 뜨고 자신을 요모조모 살피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물론 로스가 뭔가 행동을 취했다면 제론은 대번에 반응했을 것이다. 로스가 약간의 살기나 투기만 보여도 단숨에 제압했을 것이다.

하지만 로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제론은 계속해서 로스의 몸을 살피는 데 집중했다.

로스는 그제야 자신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굴이 붉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제론의 얼굴을 차근차근 뜯어봤다.

로스의 눈이 이슬처럼 반짝였다.

제론은 수십 가닥의 마나를 실처럼 뽑아 로스의 손목을 통해 몸으로 밀어 넣었다. 제론의 마나가 몸 곳곳을 누비며 로스의 마나와 몸 상태를 조금씩 파악해 나갔다.

'난폭해.'

로스의 마나는 말할 수 없이 난폭했다. 그리고 거칠었다. 조금만 자극을 해도 급격히 날뛰었다. 안정감이 전혀 없었다.

로스가 왜 몸이 터질 거라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 그저 보기만 했을 때는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직접 마나를 흘려 확인하니 이젠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서야 간신히 로스의 온몸을 마나로 장악할 수 있었다. 지금 로스의 몸 내부에는 제론이 실처럼 뽑은 마나 수백 가닥이 흩어져 있었다.

그 모든 마나의 실을 통해 제론에게 로스의 몸에 관한 정보가 끊임없이 흘러들어 왔다.

'마나의 그릇으로 온몸의 장기를 다 이용했군.'

몸의 장기는 각각 고유한 성질의 마나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훈련에 따라 각 장기에 속한 마나의 양을 늘리는 것도 가능했다.

한데 로스는 모든 장기에 강제로 마나를 꽉꽉 채워 넣었다. 거의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채웠기에 조금만 흔들려도 마나가 급격히 날뛰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겠지.'

아마 그렇게 포화 상태가 되도록 마나를 밀어 넣지 않았다면 폭주로 이어졌을 것이다.

로스가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각 장기가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나와 강제로 밀어 넣은 마나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외부에서 주입한 마나를 각 장기의 마나와 성질을 일치시키거나, 아니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대한 양의 마나를 통해 원래의 마나를 억누르는 것이었다.

로스는 두 번째 방법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매일 분수대로 가서 하루 동안 소모된 마나를 보충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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