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9화 (130/217)

Chapter 4 두 번째 도시 (1)

깁스 남작은 보고서를 살피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임팩트 스피어 제작소의 에너지가 사라져?"

임팩트 스피어는 조직에서 상당히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일단 임팩트 스피어 제작소는 고대유적을 개조해서 만든 곳이었다. 즉, 고대유적을 움직이던 힘을 이용해 창을 제작했다는 뜻이었다.

고대에는 신비로운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잘 발달되어 있었다. 그 시스템을 이용해 임팩트 스피어를 제작했다.

한데 에너지원이 갑자기 사라지다니. 무려 수천 년을 이어져 오던 에너지원이 왜 갑자기 사라진단 말인가.

"아직 목표량을 절반밖에 채우지 못했는데…… 이거 난감하군."

더 정밀한 조사가 필요했다. 그리고 정말로 에너지원이 사라졌다면 대책 마련이 시급했다. 임팩트 스피어는 대계를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했다.

"짜증이 나는군."

갑자기 에너지원이 사라지는 바람에 거의 완성 단계에 있던 임팩트 스피어에 쌓았던 에너지가 줄줄줄 빠져나가 버렸다.

그래서 계획이 더욱 늦춰졌다. 임팩트 스피어가 완성된다고 해서 대계를 시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른 준비가 끝날 때까지 임팩트 스피어를 준비하는 게 불가능해져 버렸으니 짜증이 나는 게 당연했다.

깁스 남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가 쌓인 책장으로 가서 몇 개의 책자를 꺼내 살폈다.

일단 임팩트 스피어 제작소를 새로 지어야만 했다. 물론 예전처럼 완전히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었다. 기존의 건물을 철거해서 가져다가 세우면 된다.

문제는 제작소를 세울 장소였다. 아무 데나 세울 수 있는 건물이 아니었다.

깁스 남작이 지금 찾는 것이 바로 그 장소였다. 크란 제국의 모든 유적은 깁스 남작의 비밀 조직이 장악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모든 유적이 특별한 목적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로운 장소를 정하려면 기존에 있던 건물을 없애야만 했다.

깁스 남작은 책자를 쭉 훑으며 현재 가장 필요 없는 유적을 찾아봤다.

"이건 안 되고, 이것도 곤란하고…… 아! 이거면 되겠군."

깁스 남작은 책자 중간쯤에 있는 유적을 손으로 짚었다.

유적의 에너지를 이용해 아티팩트를 만들어 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만드는 아티팩트는 마법등이었다. 최근 페쿠니아 상단에서 내놓는 휴대용 마법등 때문에 판매량이 대폭 떨어져 버렸기에 굳이 이곳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도 마법등을 만드는 족족 재고가 쌓이고 있었기에 생산을 중단하고, 필요하면 직접 제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편이 나았다.

"그나저나 아무래도 이상하군. 면밀히 조사해 볼 필요가 있겠어."

깁스 남작은 결정을 내리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유적의 에너지원에 수명이 있다는 얘기는 처음 들어 봤다. 무려 수천 년이나 이어져 온 유적이었다.

한데 이제 와서 갑자기 에너지가 고갈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설마 다른 유적도 차례대로 에너지가 고갈되는 건 아니겠지?'

깁스 남작은 문득 든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만일 그렇게 되면 대계에 정말로 큰 차질이 생긴다. 물론 유적의 에너지원이 없다 하더라도 대계를 이루지 못할 이유는 없지만, 그럴 경우 피해가 커진다.

깁스 남작의 비밀 조직은 최소한의 피해로 대계에 성공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 깁스 남작에게 떨어지는 것이 많았다.

그렇기에 깁스 남작은 대계를 이루기 위한 준비에 상당히 공을 들여 왔다. 한데 이런 일이 생기니 불안해진 것이다.

깁스 남작은 애써 불안감을 지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지. 그곳들이 어떤 곳인데."

하지만 아무리 고개를 저어도 한번 찾아온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 ☆ ☆

제론은 유적에서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마티로 유적 위를 충분히 관찰했고, 마법진이 가동을 멈추며 창에서 에너지가 쭉쭉 빠져나가는 것도 확인했다.

제론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무시무시한 무기가 악인의 손에 들어간다면 참담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어쨌든 제론은 유적의 마티를 이용해 주변을 충분히 살필 수 있었고, 그것은 바인도 마찬가지였다.

바인은 도시에서 광범위한 정보를 받아들여 분류하고 분석했다. 그리고 중요한 결론을 도출할 때마다 그것을 제론에게 보냈다.

그래서 제론은 아주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이 도시의 경비병은 대부분 사병이었다.

도시의 주인인 영주보다 훨씬 많은 병사를 가진 귀족이 5명이나 있었고, 그들의 병사가 영주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도시를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유적 위에 세워진 건물은 영주의 것이 아니라 그 다섯 귀족의 공동소유였다.

바인은 그 다섯 귀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비밀 조직의 끈이 이어져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제론은 차분히 상황을 살폈다. 제론이 주로 확인하는 곳은 당연히 유적 위에 세워진 건물이었다.

"음?"

갑자기 건물 주위가 부산스러워지더니 수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병사는 아니었다. 복장이나 하는 행동을 보면 무력이 아닌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 같았다.

마법사도 많았고, 일꾼도 많았다. 물론 일꾼은 병사와 기사들이 철저히 감시했다.

그들은 건물에 달라붙더니 차근차근 건물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부수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해체였다. 벽을 조심스럽게 뜯어내고, 바닥도 신중하게 벗겨 냈다. 혹시라도 마법진이 손상될까 봐 엄청나게 조심스러웠다.

'건물을 다른 곳으로 이전하려는 건가?'

확실히 이런 건물은 새로 만드는 것보다 옮기는 게 훨씬 싸게 먹힐지도 모른다. 시간도 덜 걸리고 말이다.

건물을 모두 해체해서 옮기는 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그것도 사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세 개의 건물을 바닥까지 고스란히 뜯어서 옮겼으니 말이다.

그렇게 건물이 사라지고 나니 더 이상 이곳을 지키는 병사도 없었다. 그냥 버려진 것이다.

제론은 마티와 바인의 보고를 통해 이 넓은 땅을 영주가 다시 구입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섯 귀족은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고 비싼 값에 저택을 팔았다.

막대한 금액이었지만 영주에게도 사실 이득이었다. 저택이 있던 땅은 엄청나게 넓었다. 이곳에 뭘 조성하든 결과적으로 영주에게 굉장한 이득을 안겨 줄 테니까.

아무튼 인적과 마법진이 사라져 버려 제론이 밖으로 나가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나중에 이곳에 무엇이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원래 있던 건물만큼 경계가 심하거나 마법진으로 도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제론은 더 기다리지 않았다. 앞으로 이 도시에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 더 미련을 가질 필요도 없었다. 제론은 유적에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즉시 도시를 벗어났다.

도시의 경계가 예전보다 훨씬 줄어들어서 빠져나가는 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특이하게도 성벽에 도배되다시피 한 수많은 마법진 중 절반 이상이 기능을 정지해 버렸다. 그걸 확인한 제론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성벽의 마법진도 초고대유적에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 돌린 것이다. 그것이 사라졌으니 에너지 공급이 사라진 마법진이 힘을 잃는 게 당연했다.

아마 앞으로도 그 마법진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에너지원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론은 언제든 그 마법진을 다시 돌릴 수 있었다. 유적의 에너지 흐름을 다시 놓아 버리면 즉시 그렇게 될 것이다.

아무튼 제론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도시를 벗어났다. 그리고 가까운 다른 도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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