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6화 (127/217)

Chapter 3 크란 제국 (1)

"여긴 대체 뭐지?"

제론은 도시를 앞에 두고 눈살을 찌푸렸다.

도시의 방비가 상상 이상이었다. 일반적인 도시의 경우 출입을 관리하긴 해도 대강대강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한데 이곳은 너무나 철저하게 출입 관리를 했다.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가 12개나 있었다. 동서남북에 각각 3개의 입구가 있었는데, 각각의 입구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아무래도 국경 근처에 있는 교역 도시이기 때문에 유동 인구가 많은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일일이 검문한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각 문마다 수많은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고, 기사도 몇 명 보였다.

"라이더?"

제론은 혀를 내둘렀다. 기사들은 전부 기간트를 보유한 라이더였다. 다들 기간트 장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장비를 통해 유추하면 임베르가 분명했다.

경비대의 기사들조차 임베르를 타는 곳이 바로 크란 제국이었다. 대체 얼마나 많은 기간트를 보유하고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쨌든 상황이 저러니 결국은 성벽을 타고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제론은 멀리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기고 마나의 흐름을 파악했다.

'마법으로 아주 떡칠을 해 놓았군.'

제론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성벽은 물론이고 성문에도 마법이 몇 겹이나 중첩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도로에도 마법이 가미되었다.

이런 도시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우리 에어스트 왕국의 수도도 저런 식으로 만들면 좋겠군.'

에어스트 왕국의 수도는 아직도 한창 건설 중이었다. 잠깐 시간을 내서 돌아가 도로에 마법진을 추가한다고 공사가 더 늦어지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공사 기간이 단축될 것이다. 도로의 효용 가치가 높아질 테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마법 수준이 상당한데?'

정확히 말하면 상당한 정도가 아니라 차원을 달리했다. 현재의 마법 지식으로는 절대 구현이 불가능한 마법들이 성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 마법을 만나려면 고대유적에 가야만 한다. 즉, 크란 제국의 도시에 설치된 마법은 고대마법이었다.

'고대마법을 개발해서 상용화할 정도로 발전을 시켰는데, 외부로는 조금도 유출시키지 않았다는 뜻이로군.'

제론은 그제야 크란 제국이 왜 이렇게 정보를 심하게 통제하는지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마법 지식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크란 제국에 저런 마법 지식과 기술이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 기간트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고, 가장 뛰어난 기간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제론은 오늘 밤 성벽을 타고 넘기로 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서 더 자세히 확인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크란 제국에는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많은 뭔가가 감춰져 있음이 분명했다.

밤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벽을 타고 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성벽에는 마찰을 없애는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성벽에 뭔가를 박아 넣지 않고 맨손으로 타고 오르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곳곳에 발광 마법진이 있어서 성벽이 전체적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그러니 한밤중에 담을 넘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지금까지는 성벽을 넘어서 도시 안으로 침투하려고 시도하는 자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계는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제론은 그것을 보며 크게 감탄했다. 그 빈틈없는 모습이 크란 제국의 모습 같아서 마음이 조금 답답해졌다.

앞으로 제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를 들쑤셔야 하는데, 이렇게 빈틈이 없고 깐깐하니 얼마나 고단하겠는가. 그걸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제론은 성벽 위를 돌아다니는 병사의 위치를 확인하고는 빠르게 성벽에 접근했다. 성벽에서 흘러나오는 빛에 노출될 수도 있었지만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밤이었다. 빠르게 이동하면 고작 성벽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으로는 결코 제론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었다. 더구나 빛과 대비되는 어둠은 더욱 짙었기에 몸을 숨기기 좋았다.

성벽에 바짝 붙은 제론은 그대로 점프했다. 어마어마한 점프력이었다. 그리고 빨랐다. 제론은 그 한 번의 점프로 성벽에 올라설 수 있었다.

성벽의 높이는 20미터쯤 되었다. 소드 마스터인 제론이 그걸 단번에 오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익스퍼트일 때도 기간트에 훌쩍 뛰어 탑승하던 사람 아닌가.

성벽에 오른 제론은 곧장 도시 안으로 뛰어내렸다. 이미 감각을 활짝 연 상태였기에 아래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통행증 같은 게 필요하면 낭패인데.'

미처 그 부분은 확인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그냥 도망치면 된다. 그렇게 편히 생각한 제론은 서둘러 도시 안으로 스며들었다.

제론이 도시에 들어간 사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제론은 신중하게 행동했다. 아직 크란 제국에 대해서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았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한밤중인데도 환한 불빛이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에 수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번잡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문을 연 술집도 많았다.

거의 벗다시피 한 여자들이 길거리에 늘어선 골목도 곳곳에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내들이 그 골목을 지나며 여자들의 손에 이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제론은 그 모든 광경을 유심히 살피며 거리를 걸어갔다.

'일단 통행증이 따로 필요한 건 아닌 모양이군.'

도시 입구에서 통행증 검사를 하지만 일단 검사에 통과하면 도시 안에서는 상당히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가끔 보이는 경비병들이 눈을 번득이며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멈춰 서 통행증 검사를 하곤 했다. 그걸 보면 아무리 간담이 강한 사람이라도 철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시의 방비 상황을 보면 그저 형식적으로 해도 될 것 같은데 경비병들 중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제론은 그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대체 뭐가 저들을 이렇게 빈틈없게 만들었을까.

'이곳이 국경 근처의 도시라서 그럴지도 모르지.'

일단은 그렇게 판단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론은 일단 거리를 걸으며 머물 곳을 찾았다.

제론이 이 도시에 들어온 이유는 딱 하나였다. 이 도시에 유적이 있었다.

크란 제국에서 유적 발굴 사실이 알려진 세 개의 유적 중 하나가 국경 도시에 있었다. 당연히 공개되지 않았고, 관광지로 개발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 도시 어딘가에 유적이 있다는 것만 알지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 혹은 발굴이 끝났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다.

당연히 제론도 당장은 유적이 어디 있는지 몰랐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찾아봐야만 했다. 도시는 상당히 넓었다. 그러니 유적을 찾으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저곳이 일단 좋겠군.'

제론은 적당한 규모의 여관을 찾아냈다. 너무 좋은 호텔에 머물면 오히려 신분이 들통 날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너무 허름한 곳에 묵어도 의심을 살 수 있었다. 그런 곳에 묵으려면 옷차림을 바꿔야만 한다.

제론은 일단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눈살을 찌푸렸다. 여관에 묵기 위해선 통행증이 필요했다. 여관 데스크에서 병사 하나가 투숙객의 통행증을 확인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냥 나가면 당장 의심을 살 것이다. 다행히 이 여관은 식당과 주점도 겸했다. 제론은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금세 종업원이 달려와 주문을 받았다. 제론은 능숙하게 주문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양을 순식간에 훑었기 때문에 상당히 자연스러웠다.

맥주를 곁들인 식사를 하면서 제론은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방비가 철저한 도시에서 일을 진행하는 게 결코 쉬울 것 같지 않았다.

'뭔가 획기적인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는데?'

제론은 문득 궁금해졌다. 과연 크란 제국의 모든 도시가 이렇게 방비가 철저한지 말이다.

이대로라면 이 도시 안에서는 방을 잡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물론 그쯤이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겠지만, 방비가 너무 심하면 유적을 찾는 일도 어려워질 게 뻔했다.

'일단 이 도시에 있는 유적을 찾으면 어찌어찌 방도가 생길 것도 같은데…….'

일단 유적에는 마티가 있다. 마티를 이용하면 이 도시의 정보를 알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또한 그걸 토대로 다른 도시의 상황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유적을 찾는 것이 문제였다. 도시가 너무 넓었다. 게다가 곳곳에 경비병이 어찌나 많은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쉽지 않았다.

경비병들은 수시로 사람들의 통행증을 요구했다. 지금까지는 잘 피해 다녔지만 언제까지 의심을 사지 않고 도시를 돌아다닐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제론은 식사를 마무리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움직이는 게 답이었다. 일단은 최대한 조심하면서 유적을 찾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국경에서 가까운 도시라 그런가? 경비병이 정말로 많네.'

제론은 밖에 나오자마자 우르르 지나가는 경비병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일단 그들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어딜 가나 경비병이 보였다. 그들의 눈을 피해 다니는 건 참으로 피곤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제론은 용케 그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도시 곳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유적 비슷한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도시에서 특별히 경계가 심하거나,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 있는 건 아니었다. 길만 잘 찾으면 도시의 어느 곳이든 다 갈 수 있었다. 한데도 유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이 도시에 유적이 있긴 있는 건가?'

나중에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곳에 유적이 존재한다는 정보는 바인이 전해 준 것이었다. 바인이 준 정보 중에 지금까지 틀린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도시를 돌아다녀도 유적을 찾아낼 수 없으니 점점 답답해졌다.

제론은 인적이 없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태블릿을 꺼냈다. 일단 태블릿에 도시 지도를 띄웠다. 제론이 직접 눈으로 확인한 곳의 지도가 자동으로 태블릿에 그려졌다.

이는 태블릿이 가진 기능 중 하나였다. 물론 태블릿만으로는 안 되고 거기에 연동되는 특수한 아티팩트가 필요했다.

그 아티팩트는 기본 물품을 지급할 때 받은 팔찌의 아공간 안에 있었다. 제론은 그동안 그걸 전혀 쓰지 않았는데, 이번에 아주 톡톡히 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제론은 이곳에 있는 유적을 반드시 찾고 싶었다. 그래야 향후 크란 제국에서의 활동이 편해진다.

일이 있을 때마다 제국 밖에 있는 유적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곳의 유적을 찾으면 만일의 사태에 몸을 피할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제론은 태블릿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새 도시의 지도가 거의 절반 이상 완성되었다. 고작 하루 만에 낸 성과치고는 상당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앞으로는 가 보지 않은 장소 위주로 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래야 가장 의심나는 부분의 정보를 얻을 테니 말이다.

제론은 태블릿의 지도를 토대로 다시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지도가 완성되어 갔다.

최종적으로 제론이 지도를 완성하는 데에 꼬박 이틀이 걸렸다. 제론은 완벽한 지도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걸 토대로 유적이 있을 거라고 의심되는 부분을 추려 냈다.

도시의 동쪽 중심부에 거대한 저택이 있었다. 워낙 거대해서 완성된 지도를 보면 그 부분이 텅 비어 있을 정도였다.

도시 안에 그런 곳이 모두 세 군데나 되었다. 제론은 그곳들을 중점적으로 살피기로 했다. 아마 그중 하나가 분명히 유적일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유적 찾기는 또 미궁에 빠지게 된다. 제론은 부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길 기원하며 가장 의심스러운 장소로 향했다.

'크긴 크군.'

벽을 따라 거의 뛰다시피 해서 저택을 한 바퀴 도는 데 몇 시간이 걸릴 정로도 거대했다. 제론은 굳이 저택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스키아."

그림자 속에서 스키아가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저택 안으로 스며들어 갔다.

스키아는 거침없이 저택을 휘젓고 다녔다. 당연히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고, 속도도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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