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 크란 제국으로 (4)
"아모르?"
역시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뛰어난 기간트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은 저택들이 모인 지역이었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저택의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해 뒀다.
아마 이곳의 저택들은 이 싸움이 끝나면 대부분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1왕자 측으로부터 받아 내야만 했다.
1왕자는 이번 습격에 실패하면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30기의 임베르를 조종하는 기사들도 마음가짐이 달랐다.
하지만 싸움은 마음가짐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아모르였다.
쿵쿵쿵!
아모르의 움직임은 그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빨랐다. 순식간에 가장 가까운 임베르와의 거리를 없애 버리고 달리는 힘을 이용해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콰우우! 꽈앙!
어깨가 박살 나며 주저앉은 임베르의 목에 아모르의 검이 꽂혔다.
콰득!
목이 너덜너덜해지며 임베르가 그대로 정지했다. 마나코어에 순간적으로 많은 부하가 걸리면서 기능이 멈춘 것이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다들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아모르의 활약은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오연하게 검을 들고 선 아모르가 주위를 슥 둘러봤다. 아모르의 눈에서 섬광이 번득였다.
☆ ☆ ☆
크란 제국 국경 인근에 위치한 교역 도시에 머물던 제론은 바인으로부터 받은 흥미로운 보고에 씨익 웃었다.
"아주 제대로 처리했군."
제론이 제법 신경을 쓴 일이었기에 관심도 상당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바인은 자신이 보유한 정보원을 움직여 포어트에게 1왕자의 움직임을 전했다. 그리고 포어트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지시를 내렸다.
제론의 부탁이라는 말 한마디에 포어트는 망설임 없이 허락했다. 포어트가 바인의 제안을 수락한 순간, 정보원은 기간트 장비를 내밀었다.
다른 기간트 장비와 달리 벨트와 몇 개의 팔찌로 이루어진 아주 가벼운 장비였다. 바로 그것이 에어스트 왕국에서 새로 개발한 기간트 아모르였다.
아모르의 출력은 무려 3.2에 달한다. 발굴형 기간트인 아우틈의 출력이 3.3이니 거의 그에 근접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성능은 그것을 뛰어넘었다.
아모르에는 초고대문명으로부터 비롯된 기술이 다수 쓰였다. 웬만한 엔지니어는 그걸 몽땅 분해해서 분석해도 절대 알아내지 못할 정도로 고도의 기술이었다.
기간트 장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발굴형 기간트라 하더라도 최소한 갑옷 정도 크기는 되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기간트를 담을 아공간을 쉽게 만들 수 없었다.
한데 아모르는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실제로 고대유적에서 발굴한 기간트보다 더 성능이 뛰어난 것이다.
제론이 포어트에게 준 것은 아모르의 시제품이었다. 아직 완벽하게 다듬어지지 않아서 조금 모자란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웬만한 양산형 기간트쯤은 몇 기가 한꺼번에 덤벼도 단숨에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다.
어쨌든 포어트는 아모르를 이용해 1왕자가 준비한 습격을 훌륭하게 막아 냈다.
물론 함께 있던 쉘터 대공의 호위 기사들도 제몫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어트의 공이 줄어드는 건 아니었다.
포어트는 쉘터 대공의 큰 신임을 얻을 수 있었고, 백작 위를 받아 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적당한 영지를 구해 줄 것을 약속받았다.
포어트의 영입으로 쉘터 대공은 단숨에 밀렸던 기세를 만회했다. 아니, 오히려 더 세력이 커졌다.
란체 왕국의 세력이 팽팽해지며 물밑으로 격렬한 암투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암투는 고스란히 바인의 눈과 귀에 포착되었다.
바인은 그걸 토대로 란체 왕국에 흐르는 암류를 찾아내는 중이었다. 또한 비밀 조직의 특별한 정보 전달 방법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파악해 나갔다.
물론 제론은 그에 대해서는 전혀 알 필요가 없었다. 그저 보고만 받고 원하는 걸 지시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니까 란체 왕국을 분열시키려는 놈들이 있단 말이지?"
그놈들이 누군지는 명확했다. 제론이 최종적으로 박살 내야 할 비밀 조직이었다.
어떻게 보면 제론이 포어트를 쉘터 대공에게 붙여 줌으로써 일이 그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게 만들었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제론의 노림수였다.
아마 그들은 세력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쉘터 대공에게 뭔가를 할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준비한 뭔가는 란체 왕국 내에 남아 있음이 분명했다.
그들이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남는 전력을 그냥 두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의 움직임을 파악하면 적의 정체를 약간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그때는 제론도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적이 란체 왕국을 벗어나면 마티로 추적하는 데에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아모르에 대한 관심도 엄청나게 늘었군."
바인의 보고서에는 새로운 기간트인 아모르에 관한 내용도 있었다.
애초에 포어트에게 아모르를 지급한 이유도 전 대륙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기간트가 등장했으니 각국의 정보부나 수뇌부가 바짝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바인은 조금씩 아모르의 제원을 퍼트리는 중이었다. 아모르의 출력은 자그마치 3.2에 달한다. 이는 크란 제국의 기간트를 훌쩍 능가하는 수치였다.
아무리 크란 제국이라 하더라도 발굴형 기간트보다 뛰어난 기간트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크란 제국이 만든 최고의 기간트는 켈룸으로 출력 2.3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양산형 기체가 가질 수 있는 출력의 한계였다. 켈룸에 들어가는 마나코어가 개발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 그 한계를 누구도 깨지 못했다.
한데 아모르가 그걸 완전히 깨 버린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발굴형 기간트인 베르나 에스타스보다 뛰어난 출력을 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일이었다.
현재 각국의 정보를 담당하는 자들은 그 정보를 어떻게든 알아내려고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출력을 획기적으로 늘렸는지에 대한 것과 아모르를 만든 왕국이 대체 정확히 어디인지, 또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정보는 완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제론은 바인의 보고서를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에어스트 왕국이 완전히 자리를 잡고 난 뒤부터는 그 어떤 왕국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슬슬 대체 텔레포트 게이트에 대한 일을 진행해도 되겠군."
초고대문명의 마법공학으로 만들 수 있는 텔레포트 게이트는 기존의 게이트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 원리에서부터 구조는 물론이고 능력까지 전혀 다른 게이트였다.
현재 새로운 텔레포트 게이트의 설치에 대한 연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 연구는 제론과 바이스가 공동으로 했다.
물론 연구의 근간이 되는 원리는 대부분 제론이 제공했다. 그래서 바이스는 새로운 마법 지식을 흡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대로 진행하면 에어스트 왕국이 안정기에 접어든 순간부터 텔레포트 게이트에 대한 일을 왕국 전역에서 동시에 진행할 수 있었다.
제론은 최종적으로 기존의 텔레포트 게이트를 다 폐쇄할 계획이었다.
제론은 텔레포트 게이트를 통해 크란 제국 마탑으로 가는 정보와 돈을 그냥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새롭게 설치될 게이트의 사용료는 상당히 낮게 책정할 계획이었다.
아마 결국은 다른 왕국에서도 제론의 게이트를 설치하게 될 것이다. 그 유용함은 굳이 겪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일단 모든 게 순조롭군. 남은 건 유적인데……."
제론은 전 대륙을 마티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게 안 된다. 듬성듬성 마티의 시야에서 벗어난 곳이 존재했다.
그 모든 부분을 싹 없애고 싶었다.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아직 찾아내지 못한 모든 유적을 찾아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크란 제국의 일을 먼저 해결할 때였다. 제론은 차분하게 바인이 조사하고 자신이 직접 발로 뛰어서 알아내 정리한 내용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크란 제국에 관한 정보는 정말로 별로 없었다. 그들의 생활상 몇 가지와 풍습 몇 가지, 그리고 고위 귀족의 이름이나 그들이 다스리는 영지 정도가 거의 다였다.
나머지는 그들의 역사와 개발한 기간트 등이었는데, 그나마도 밝혀진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크란 제국은 그 넓이에 비해 감춰진 게 지나치게 많았다.
"보면 볼수록 대단해."
이는 정보의 통제가 상상을 초월한다는 뜻이었다. 하긴, 전 대륙에 텔레포트 게이트를 설치하면서 정보를 빨아들이는 나라인데, 자국의 정보 보호에 얼마나 민감하겠는가.
"일단 알려진 유적은 세 군데뿐인가?"
바인의 조사에도 크란 제국의 유적은 외부에 공개된 3개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크란 제국은 유적의 위치도 비밀에 속했다.
심지어는 유적 근방에 사는 사람들조차 유적의 존재 유무를 모를 정도였다. 공개된 3개의 유적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나마 공개된 3개의 유적도 크란 제국이 초창기에 발견한 유적이었다. 당연히 관광지로 개발하지도 않았다.
제론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어쩌면 유적에 쉽게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알아볼 수 있는 건 다 알아봤다. 이젠 크란 제국으로 넘어가는 일만 남았다.
제론은 날이 어두워지자, 곧장 도시를 떠났다. 교역 도시에 있는 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지냈다.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았다. 특히 크란 제국으로 가는 길이니 더더욱 그랬다.
크란 제국 국경은 경비가 상당히 철저했다. 국경을 따라 수많은 초소가 있었고, 각 초소에는 10명의 병사와 1명의 기사가 상주했다.
더 놀라운 것은 초소에 상주하는 기사는 기간트를 보유한 라이더라는 점이었다.
초소의 간격을 생각하면 웬만한 전력으로 크란 제국을 침공했다간 각 초소에 있는 기간트만으로 박살 날 수도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크란 제국의 국경 경계망은 무려 세 겹이나 있었다. 각 초소가 엇갈리게 배치되어 세 겹의 경계망을 만든 것이다.
각 경계망은 서로 유기적으로 협조하기 때문에 몰래 국경을 넘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곳곳에 숨겨진 무수한 마법 함정까지 있기에 요행을 바라고 침입했다간 그대로 골로 가는 수밖에 없었다.
제론도 그 사실을 잘 알기에 크란 제국의 국경을 넘을 때는 살짝 긴장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경계망을 구축했다 하더라도 9개의 마나링을 완성한 것도 모자라 소드 마스터에 이른 제론을 막지는 못했다.
제론은 일단 움직이면 인간의 시야로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그것에 대비해 경계망이 세 겹으로 되어 있었지만, 제론은 그조차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고 은밀했다.
마법 함정도 제론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마법 함정 근처의 마나는 다른 곳과 달리 흐름이 뒤틀려 있었다. 마나의 흐름을 마치 눈으로 보듯 느꼈기에 마법 함정에 당하는 일은 실수로라도 벌어질 수 없었다.
제론은 모든 감각을 최대한으로 개방하고는 움직였다. 제론의 감각이 점점 확장됐다. 제론은 눈을 감고도 초소에 있는 병사와 기사의 시선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시선의 사각을 경로로 만들었다. 확실히 모든 시선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이 수십 가지나 나왔다.
그 수십 가지의 길은 계속해서 변화했다. 사라지기도 했고, 다른 길과 교차되고 합쳐지기도 했다.
제론은 그 길 중 하나를 택해 바람처럼 내달렸다. 감각을 개방한 채로 달렸기에 속도는 평소보다 약간 느려졌지만, 자신이 달리는 길이 언제 사라질지, 또 그 전에 어떻게 움직여야 새로운 사각으로 들어갈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제론은 순식간에 국경을 넘었다.
국경을 넘은 다음에도 방심하지 않았다. 그 뒤에는 국경의 경계만큼은 못하지만 그래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수많은 군부대가 있었다.
각 군부대의 경계 태세는 국경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다만 국경처럼 초소가 쭉 늘어선 것이 아니라, 길만 잘 선택하면 부대의 영역에서 벗어난 길을 통해 이동하는 게 가능했다.
제론은 국경을 방어하는 군부대까지 무사히 지나쳐 크란 제국의 첫 번째 도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