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4화 (125/217)

Chapter 2 크란 제국으로 (3)

쉘터 대공은 한 가지 은밀한 정보를 듣고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마차 안에 앉은 쉘터 대공은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현재 그의 상황은 별로 좋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왕위에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다. 현재의 국왕은 그의 형님이었다. 나이 차가 제법 많이 나긴 하지만, 우애가 상당했다. 그것은 지금도 변함없었다.

문제는 형님이 아니라 형님의 자식들, 즉 왕자들이었다. 그중 1왕자가 쉘터 대공에게 가지는 경쟁심과 악의는 상상을 초월했다.

1왕자의 경우는 쉘터 대공과 연배가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고작 10년이었다. 국왕이 워낙 일찍 본 자식이기도 했고, 국왕과 쉘터 대공과의 나이 차가 많기도 했다.

그렇기에 1왕자는 철이 든 순간부터 쉘터 대공을 의식했다. 국왕이 항시 쉘터 대공에 대한 얘기를 했기에 점점 더 반감이 커졌다. 비교 당하는 입장에서 기분 좋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법이었다.

결국 쉘터 대공은 1왕자로부터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때부터 상황 자체가 비탈길의 눈처럼 굴러가며 커져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차기 왕권을 노리는 가장 유력한 인사가 되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형님인 국왕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국왕의 병세가 깊어진 것에는 자신과 1왕자의 대립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냥 가만히 죽어 줄 수는 없었다. 살아남아 왕위에 오르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또 란체 왕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었다.

"대공 전하, 거의 도착했습니다."

쉘터 대공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상념에서 벗어났다.

"벌써 그렇게 되었는가?"

"수도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그래, 그랬다고 했지?"

쉘터 대공의 수행원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한데…… 정말로 이런 궁벽한 곳에 소드 마스터가 있겠습니까? 증명만 하면 당장이라도 작위를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글쎄, 가능성이 아무리 낮아도 확인해서 나쁠 건 없겠지. 혹시라도 그 정보가 진짜인데 손 놓고 있다가 1왕자에게 빼앗기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겠나?"

"그야 그렇습니다만……."

수행원은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사실 그가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이곳은 수도에서 벗어난 곳이었다.

만일 1왕자가 이 사실을 알고 습격이라도 하면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수도 내라면 어떻게든 막을 방법을 만들겠지만, 여기서는 기간트를 동원할 수 있었다.

일단 기간트가 등장하면 모든 게 끝이었다. 도망이고 뭐고 없이 그냥 밟혀 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행원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리고 한껏 긴장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공을 지킬 방법을 궁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마차에는 수행원 외에도 호위 기사 한 명이 타고 있었고. 그 외에 8명의 호위 기사가 마차를 호위하며 함께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 모두 기간트를 보유한 라이더였다. 검술 실력도 뛰어나고, 라이더로서의 실력도 대단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마음먹고 습격을 하면 버틸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적에게도 눈과 귀가 있다. 아마 호위가 어느 정도인지는 이미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수행원이 걱정스런 눈으로 마차 밖을 살폈다. 아직은 아무런 기미도 안 보이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왠지 불길한 예감이 계속 뒤통수를 간질였다.

그렇게 불안에 떠는 사이 마차가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수행원이 먼저 마차에서 내려 주위를 살폈다.

"저 저택이로군."

저택의 규모는 제법 괜찮았다. 일개 기사가 가진 저택치고는 상당히 훌륭하다 할 수 있었다. 물론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기에 저런 저택을 짓는 게 가능했겠지만 말이다.

이곳 저택촌은 수도의 귀족들에게 그저 그런 기사들이 모여 사는 곳 정도로 인식이 되어 있었다. 기사들이 저택을 짓고 마을을 이뤄 모여 사는 특이한 곳이니 관심이 생기는 건 당연했다.

물론 그 관심이 지속되려면 기사들의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 점에서 이곳 기사촌은 완전히 실패한 케이스라 할 수 있었다.

어쨌든 수행원은 수많은 저택 중 한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안에 기별을 넣었다.

쉘터 대공이 직접 찾아왔다는 말에 저택에서 잠깐 소동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내 저택의 주인인 포어트가 황급히 달려 나왔다. 포어트는 수행원을 지나 마차로 다가가 어느새 마차에서 내린 쉘터 대공에게 정중히 기사의 예를 취했다.

"대공 전하를 뵙습니다."

포어트의 인사에 쉘터 대공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유심히 살폈다. 솔직히 그냥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상대가 소드 마스터인지 아닌지 말이다.

쉘터 대공은 고개를 돌려 옆의 호위 기사를 바라봤다. 호위 기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익스퍼트는 아닙니다."

익스퍼트는 마나가 온몸을 꽉 채운 것도 모자라 밖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경지였다. 당연히 마나에 조금만 민감해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포어트의 몸에서는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은 포어트가 아직 익스퍼트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거나, 아니면 소드 마스터라는 뜻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마나를 감추는 특별한 방법을 알고 있거나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쉘터 대공은 다시 포어트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물었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대는 소드 마스터인가?"

포어트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가장 놀란 사람은 수행원이었다. 그는 이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즈, 증거를 댈 수 있겠소?"

순간 포어트의 몸에서 마나의 불길이 일어났다. 그것은 그대로 쉘터 대공의 호위 기사들을 덮쳤다.

"크윽!"

9명의 호위 기사가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파도처럼 덮치는 마나의 해일을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

그들의 눈에 어린 경악이 더욱 깊어졌다.

"증거가 되었습니까?"

포어트가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수행원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쉘터 대공은 눈을 빛내며 한 발 앞으로 다가갔다.

"충분히 증거가 되었네. 이제 제안을 하겠네."

쉘터 대공은 한참이나 뜸을 들인 다음에 입을 열었다.

"내게 오게."

포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살짝 조아렸다.

"대공 전하의 검이 되겠습니다."

쉘터 대공은 격정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소드 마스터를 영입했다. 이젠 정말로 해볼 만했다. 아마 1왕자 측으로 간 귀족들도 상당수가 흔들릴 것이다.

'일단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겠군.'

쉘터 대공은 고개를 조아린 포어트를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새로운 소드 마스터의 탄생을 대대적으로 알려야만 했다. 그리고 그를 계속해서 띄워 줘야만 했다. 다른 소드 마스터인 샤프트와 대면시키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아마 서로가 알아보고 알아서 얘깃거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 물론 그 일은 란체 왕국 곳곳을 뒤흔들 테고 말이다.

란체 왕국에서 소드 마스터가 가지는 의미는 다른 왕국에서보다 훨씬 더 컸다.

'기간트를 구입해야겠어.'

쉘터 대공의 머릿속으로 몇 개의 기간트 모델이 지나갔다. 명색이 소드 마스터다. 결코 평범한 기간트를 내줄 수는 없었다.

"자, 일어나지. 지금 나와 함께 갔으면 하는데, 괜찮겠나?"

쉘터 대공은 과연 포어트에게 어떤 작위를 내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는 대공이기에 그의 권한으로 충분히 높은 작위를 내릴 수 있었다.

작위뿐 아니라 영지도 문제였다. 당장 포어트에게 내릴 영지가 없었다. 물론 그건 조만간 생길 것이다. 1왕자 측과 치열하게 싸우다 보면 빈 영지가 잔뜩 나오기 마련일 테니 말이다.

포어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쉘터 대공 앞에 당당하게 섰다. 그리고 몸을 돌려 한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대공 전하께서는 몸을 피하셔야 할 듯합니다."

"음? 그게 무슨 말인가?"

"누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가온다고?"

쉘터 대공은 멍청하지 않다. 포어트가 말하는 바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마차에 오르시지요."

쉘터 대공의 마차는 특수하게 제작된 것이었다. 기간트가 밟는 정도의 하중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쉘터 대공은 서둘러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마차에 난 창을 통해 밖을 살폈다. 기간트가 워낙 크기 때문에 마차의 창문이 작은 경우 마차 안에 있는 사람을 해칠 방법이 많지 않았다.

마차에 탄 쉘터 대공은 포어트를 보다가 아직 그에게 기간트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다.

"자네도 어서 마차에 타게!"

쉘터 대공이 다급히 말했다.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맨몸으로 기간트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했다. 자칫 귀중한 재원을 잃으면 이 얼마나 손해인가. 아니, 만일 지금 포어트가 죽으면 쉘터 대공은 결코 1왕자를 앞지를 수 없을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대공 전하. 저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무모한 짓 하지 말고 어서 마차에 오르게!"

쉘터 대공의 외침과 동시에 사방에서 기간트가 불쑥불쑥 솟아났다.

쉘터 대공의 눈이 암담함으로 물들었다. 무려 30기의 기간트가 나타났다. 그가 데려온 9명의 호위 기사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30기의 기간트를 상대로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적도 고르고 골라서 인원을 선발했을 것이다. 최소한 쉘터 대공의 호위 기사와 비교해 실력이 뒤떨어지지 않는 자들로 구성되었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적이 탄 기간트의 기종도 문제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전원 임베르를 타고 있었다.

쉘터 대공의 호위 기사들도 서둘러 기간트를 꺼냈다. 그들의 기종 역시 모두 임베르였다. 이젠 결코 수적 우위를 이겨 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끝장이로군."

쉘터 대공의 표정에 체념이 어렸다. 설마 1왕자가 이렇게 대담하게 습격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임베르를 30기나 동원했다는 건, 이 습격이 자신의 소행이라는 것이 드러날 가능성까지 감안했다는 뜻이었다.

만일 여기서 습격이 실패한다면 1왕자 측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쉘터 대공이 1왕자와 이들이 얽혔다는 증거를 찾아내야겠지만 말이다.

"생각보다 적이 많군요. 조금 위험할지도 모르니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한 분은 어서 달려가서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포어트는 너무나도 차분하게 말했다. 다들 얼떨떨한 눈으로 그런 포어트를 바라봤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포어트 앞에 기간트 하나가 불쑥 솟아난 것이다. 포어트는 단숨에 기간트에 올라탔다. 과연 소드 마스터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정도로 멋지고 깔끔한 동작이었다.

키이이이이잉!

포어트의 기간트가 굉음을 토해 냈다. 그를 중심으로 강렬한 마나의 폭풍이 한차례 몰아쳤다.

"저, 저게 대체 무슨 기종인가?"

쉘터 대공이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옆에 앉은 수행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도 처음 보는 기체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신형 기간트인 모양입니다."

"발굴형이겠지?"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발굴형 기간트라니……."

쉘터 대공은 기대감 어린 눈으로 포어트의 기간트를 바라봤다.

포어트가 탄 기간트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문양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바탕은 흰색이었지만 두 문양이 이리저리 꼬여 있어서 흰색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정말로 특이한 디자인이었다.

"이 기간트는 아모르라고 합니다. 전하."

포어트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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