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2/217)

Chapter 1 테페룸 광산 2 (2)

제론은 일단 그걸 모두 파악한 뒤, 외부로 흘러나간 테페룸의 회수 방안을 찾아봤다. 그런 방안이 유적 시스템 안에 있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이 유적은 테페룸을 액체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당연히 외부의 테페룸을 액체로 만들어 흡수하면 끝이었다.

다만, 그러려면 보관함을 몽땅 비워야만 했다. 외부로 흘러나간 테페룸의 양이 워낙 많아서 그걸 모두 흡수하려면 지금의 보관함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가만있자, 빈 창고가 어디 없나?"

액체 테페룸을 고체로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유적 시스템 안에 다 포함되어 있었다. 테페룸을 액체 상태로 뽑아내는 것도 가능했고, 고체로 굳혀 괴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제론은 일단 테페룸을 괴로 만들어 이동시키기로 했다. 시스템을 작동시키니 로비에 테페룸괴가 차곡차곡 쌓였다.

"가만, 일단 고장 난 부분부터 손을 봐야지."

망가진 자가 복구 시스템만 손보면 된다. 그러면 유적이 알아서 스스로를 고칠 것이다. 어렵지 않았다. 태블릿을 통해 고장 난 부분을 발견했다. 세월로 인한 마법진의 손상이었다.

제론은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걸로 그걸 고칠 수 있었다. 역시 태블릿은 초고대유적에서 얻은 아티팩트 중 최고였다.

자가 복구 시스템을 고치니 유적이 스스로 보관소의 이상을 복구해 나갔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테페룸괴는 로비에 차곡차곡 쌓였다. 다섯 보관소에 채워진 테페룸을 모두 괴로 바꾸면 로비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랐다.

"슬슬 움직여야겠군."

제론은 서둘러 로비로 갔다. 그리고 로비에 쌓인 테페룸괴를 아공간에 쓸어 담았다.

제론의 아공간도 엄청나게 넓었다. 기간트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공간이 30개나 있는 데다가 팔찌의 아공간까지 하면 이곳의 보관소 하나를 싹 담아도 남을 정도였다.

테페룸괴가 쌓이는 속도는 상당했다. 일단 액체 테페룸을 고체로 굳히기만 하면 되는 일인지라 작업 자체가 간단했기에 테페룸괴가 비처럼 쏟아지는 듯했다.

제론은 그걸 아공간에 담은 뒤 다른 유적으로 가서 로비에 쌓았다.

로비의 규모 자체는 대부분 비슷했기에 란체 왕국에 있는 거점 형식의 유적에 쌓아 놓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다섯 보관소를 싹 털어서 다른 유적의 로비에 쌓아 두었다.

보관소를 비운 제론은 유적의 다른 시스템을 이용해 누출된 테페룸을 다시 흡수했다. 양이 워낙 많아서 그걸 다 흡수하는 데에만도 시간이 제법 걸릴 듯했다.

제론은 일단 다섯 보관소에서 흘러나간 테페룸을 모두 흡수했다. 일단 유적 근방의 테페룸부터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그저 근처의 테페룸을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보관소를 무려 일곱 번이나 채웠다가 비워야만 했다.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워낙 오랫동안 시스템이 가동되었고, 그것이 유출로 이어졌으니 얼마나 많은 테페룸이 흘러나갔겠는가. 그걸 다 모으기만 해도 아마 전 대륙의 테페룸 소비량을 수십 년 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앞으로 제론이 하려는 일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말이다.

일단 주변의 테페룸을 모두 정리하는 데에만 꼬박 이틀이 걸렸다. 테페룸을 녹여서 다시 흡수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게다가 주변에 가장 많은 테페룸이 집중되어 있었다.

광산의 광맥은 주변에 모인 테페룸이 지질의 구조에 의해 어느 한쪽으로 흘러가며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른 네 군데 광맥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 외에도 무수한 광맥이 존재했다. 예전 철광맥을 만드는 유적의 상황과 비슷했다.

주변 테페룸을 모두 정리한 제론은 그다음으로 광맥을 형성한 테페룸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하지만 주변의 테페룸보다는 양이 적었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광맥을 지워 나갈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하루 이틀 안에 해결될 상황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일단 광산과 연결된 광맥은 그냥 두고, 나머지 광맥을 흡수했다. 그렇게 하다가 비밀 조직이 노리는 곳이 어디인지 확실히 알게 되면 그곳에 집중할 계획이었다.

거기까지 조치를 취하고 보관소에 남은 테페룸을 싹싹 긁어서 아공간에 담은 제론은 유적을 벗어났다. 물론 바로 위로 올라가지 않고 다른 유적을 통해서 이동했다.

밖으로 나온 제론은 폴타를 이용해 다시 광산 근처의 마을로 향했다. 의심을 받지 않게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다. 의심을 받을 만한 일말의 여지조차 남기기 싫었다.

마을로 들어선 제론은 일단 머무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지난 이틀 동안에도 수시로 마을에 등장해서 얼굴을 비추고 여관에서 잠을 잤기에 제론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론은 마을을 돌며 분위기를 살폈다. 마티로 살펴도 되지만 이렇게 실제로 피부로 느끼는 게 훨씬 와 닿았다.

마을의 분위기는 약간 어수선했다. 하지만 평소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블랙스피어 기사단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만일 정말로 테페룸 광산이 습격당했다면 큰 문제가 되었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 분위기만 살짝 흔들리고 말았을 것이다.

제론은 그 부분에 대해 조금 생각을 했다.

'일단 마법진 자체를 약간 망가뜨리는 게 낫겠군.'

제론의 머릿속에 석판의 마법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마법진을 이리저리 비틀고 재구성했다. 그러면서 가장 간단하게 마법진을 변화시켜 붉은빛을 내뿜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모든 마법진을 손볼 필요가 없었다. 하나면 손보면 끝이었다. 그것도 우연히 그렇게 된 것처럼 믿게 만들 수 있었다.

두 개의 선만 비틀면 된다.

"스키아."

제론은 스키아를 불러냈다. 그 일은 스키아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스키아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거점의 막사로 이동했다.

제론은 스키아를 다루면서 마을을 천천히 거닐었다. 마을의 분위기는 충분히 파악했다.

이제 이 마을에서 더 이상 얻을 게 없었다. 떠나는 일만 남았다. 일단 테페룸 광산을 얻는 것으로 란체 왕국에서의 일정은 모두 끝났다.

제론은 스키아를 통해 막사 안의 석판에 새겨진 마법진에 선을 그었다. 상당히 섬세한 작업이었다. 그냥 선을 찍 긋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마법진 자체를 망가뜨려야 하기 때문에 물리력보다는 마나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제론에게는 충분한 마나 컨트롤 능력이 있었다. 이번 일에는 마나량이나 물리력의 강도보다 컨트롤이 훨씬 중요했다.

스키아가 석판 아래로 스며들어 갔다. 스키아를 통해 작업을 하는 데에는 석판 위보다 아래쪽이 훨씬 편했다. 그래서 제론도 석판 아래쪽에 새겨진 마법진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샤아아아.

스키아를 중심으로 마나가 모여들었다. 이것이 스키아와 마티의 가장 결정적인 차이었다. 스키아는 주인의 능력에 따라서 이렇게 마나를 모아서 쓸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모든 일이 스키아와 제론의 링크가 얼마나 단단한가, 그리고 제론의 마나 컨트롤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에 달려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론의 마나 컨트롤 능력은 현존하는 그 어떤 마법사보다 뛰어났다. 그것이 설사 스키아를 통해서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마법진을 구성하는 선에 흐르는 마나가 조금씩 비틀렸다. 그렇게 마나가 엇나가는 방향을 따라 스키아가 석판을 조금씩 갈았다.

사각! 사각! 사각!

마나가 움직일 새로운 길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예전의 길이 정체되었다.

제론은 그 정체된 마나를 이용해 단번에 새로운 선 하나를 그었다.

쩡!

그 순간 마법진이 완전히 달라졌다.

스키아는 작업을 마치자마자 곧장 돌아가 버렸다. 그리고 달라진 마법진을 따라 마나가 한 바퀴 맴돌았다.

삐이이이이익!

모든 마법진이 일제히 날카로운 소리를 토해 냈다. 그리고 붉은빛을 뿜어냈다.

마법진의 오작동이 시작된 것이다.

다섯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블랙스피어 기사단이 바쁘게 움직였다. 광산이 습격당한 것이다.

물론 그 어이없는 사태는 금방 끝났다. 광산을 습격한 자가 있을 리 없었다. 마법진의 오작동이었으니까.

마법진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붉은빛을 뿜었고, 날카로운 소리를 토해 냈다.

결국 블랙스피어 기사단은 모든 마법 석판을 수거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들은 모두 크란 제국 마탑으로 보내졌다. 당연히 크란 제국 마탑에서는 그것들의 무상 수리를 약속했다.

그런 소동이 일어나는 사이 제론은 유유히 마을을 떠났다. 제론이 한 일이라고는 몇 군데 상단에 들른 게 전부였다. 하지만 누구도 제론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제론처럼 마을에 와서 상단에 들르는 외부인이 1년에 수십 명 정도 있었다. 제론도 자연스럽게 그들 중 하나로 여겨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