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권 - 119화 (120/217)

10권

Chapter 1 테페룸 광산 2 (1)

제론은 바쁘게 움직였다.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이 근처에 있을 것이 분명한 초고대유적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없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래도 적의 야욕을 부술 수는 있었다. 블랙스피어 기사단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몸에서 아티팩트를 제거하면 된다.

하지만 그건 최하책이었다. 적에게 지나친 경각심을 심어 주게 된다. 아직 적의 정확한 정체도 모르는데 일을 크게 벌이는 건 곤란했다.

최선은 테페룸 제조에 관한 아티팩트나 시설이 있는 유적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사실 제론은 유적의 테페룸 제조 시스템이 테페룸 광산에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판단했다. 예전 철광석을 제조하던 유적처럼 말이다.

제론은 마을에 머물면서 어떤 사람들이 오가는지 잘 관찰했다. 물론 마티를 이용했다. 마티와 태블릿을 잘 이용하면 다섯 마을은 물론이고 광산까지 감시하는 게 가능했다.

그러면서 3왕자를 철저히 감시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물론 제론도 마티를 이용해 주기적으로 3왕자 주변을 감시했다.

혹시라도 바인이 잡아내지 못한 걸 알아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하는 일이었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그렇게 하면서 제론은 마을 곳곳은 물론이고 테페룸 광산을 광범위하게 돌아다니며 초고대유적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처음 제론이 예상했던 대로 테페룸 때문에 에너지의 흐름을 파악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닷새를 투자한 끝에 제론은 희미한 에너지 흐름을 잡아냈다. 근방에 분명히 초고대유적이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 위치까지는 알아낼 수 없었다. 에너지의 흐름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바람에 어느 방향에서 오는 건지도 알지 못했다.

제론은 다섯 마을을 집중적으로 돌아다녔다. 시간을 들여 경험한 바에 따르면 테페룸 광산에 다가갈수록 에너지 흐름을 느끼기 어려웠다.

차라리 산에서 멀어지는 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서 제론은 다섯 마을을 크게 돌기로 결정했다.

집중하며 산을 크게 돌면 에너지의 흐름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요즘에는 테페룸의 방해에도 익숙해져서 간간이 에너지의 흐름을 잡아낼 수 있었다. 마을을 한 바퀴 돌면 확실히 유적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제론은 차분히, 또 은밀히 다섯 마을을 경유하며 산을 크게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 ☆ ☆

란체 왕실의 3왕자는 테라스에 앉아 느긋하게 차를 즐겼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각에 티타임을 즐겼다. 이건 그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는 그만의 시간이었다.

"후룩."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마신 3왕자는 찻잔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딸깍.

그 소리가 신호라도 되는 양,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종이 문을 열고 다가와 찻잔을 치웠다.

3왕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집무실로 들어갔다. 테라스에서의 티타임은 반드시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필요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슬슬 준비가 끝나 가는 모양이군."

조금 전 찻잔 바닥에 깨알같이 적힌 암호문을 해석하면 분명히 그런 뜻이었다.

3왕자의 티타임은 보고를 받는 시간이었다. 정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괴 조직이었지만 3왕자는 그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그들은 3왕자에게 이 나라를 갖다 바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을 예뻐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굉장해. 설마 우리나라에 또 다른 테페룸 광산이 존재할 줄이야."

광산이 더 존재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걸 발견한 비밀 조직의 저력은 더욱 대단했다.

하지만 좀 더 파고들어 가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현재의 테페룸 광산을 발견한 것도 그들의 힘이었으니까.

그들은 란체 왕국에 테페룸 광산을 찾아 주었다. 그리고 그 수수료를 지금까지 받아 가고 있었다. 아주 비밀스럽게. 그 사실은 란체 왕국의 국왕을 비롯한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당연히 3왕자에게는 그 비밀을 열람할 권한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비밀 조직은 테페룸 광산의 운영권을 현재의 왕실에서 3왕자로 넘기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막대한 테페룸이 증발해 버리겠지만 그건 그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은 다 좋은데, 너무 조심성이 지나치단 말이야. 연락책이 누군지도 알 수가 없으니, 원……."

만일 그들이 몇 가지 결과를 보여 주지 않았다면 아예 믿지도 않았을 것이다. 얼굴도 정체도 모르는 놈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그들은 꾸준히 성과를 보여 주었다. 천덕꾸러기에 불과했던 3왕자를 이제 란체 왕국 차기 왕권에 가장 가까운 세 사람 중 하나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만일 이번 테페룸 광산 건이 완벽하게 마무리된다면 더 이상 3왕자를 위협하는 세력은 없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란체 왕국 최고의 수입원은 바로 테페룸 광산이었다. 테페룸 광산에서 나오는 돈이 무려 란체 왕국 1년 예산의 7할이었다.

그러니 테페룸 광산을 손에 쥐고 있다는 건 란체 왕국의 경제력을 쥐고 있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3왕자의 눈이 진한 야망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야망으로 물든 3왕자를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또 이러는군."

바인은 눈살을 찌푸리며 3왕자의 티타임을 녹화한 영상을 반복해서 돌려 보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바인의 방 사방에 걸린 화면에서는 수백 수천 개의 장면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바인은 그 모든 화면을 순식간에 뇌리에 받아들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받아들이는 것만 아니라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그걸 정리하고 분류하는 작업까지 동시에 이뤄졌다.

반쯤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작업이었다. 바인은 마치 뇌를 수십 개로 나눈 것처럼 여러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었다.

그런 바인조차도 적 세력의 정보 전달 방식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사실 몇 가지 특이한 사항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비밀을 풀어낼 수 없었다.

저들은 마치 마티의 존재를 알고 미리 대비하는 것처럼 정보 전달 체계를 만들었다. 엄청나게 조심스러웠고,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비밀스러웠다.

"어쨌든 찻잔에 쓰인 암호문 덕분에 저들의 목표는 완전히 알아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야."

바인은 빠르게 정보를 정리했다. 제론으로부터 저들이 특별한 아티팩트를 이용해 광산의 테페룸을 증발시키려 한다는 걸 들었기에 더 광범위하면서도 세부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 보고를 하기 전에 예상 광맥을 찾아볼까?"

그저 저들의 목표나 3왕자의 야망에 대한 보고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바인은 저들이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새로운 테페룸 광맥을 찾아내고 싶었다.

바인의 눈동자가 정신없이 움직였다. 란체 왕국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론의 말에 따르면 기존 광산에서 그리 멀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바인은 그걸 토대로 새로운 테페룸 광산이 될 만한 장소를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 ☆ ☆

제론은 마을을 하나하나 들르면서 차분히 에너지의 흐름을 파악해 나갔다. 가닥가닥 끊어져 있었지만 에너지는 비교적 일관된 흐름을 보여 주었다.

문제는 그 흐름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흐름 자체가 이리저리 비틀려 있었다. 제론은 그 원인을 테페룸에서 찾았다.

테페룸은 사실 특수한 물질에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가 압축되어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적어도 제론이 파악하기에는 그랬다.

고도로 압축된 마나는 그 자체로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였다. 그런 에너지 덩어리가 곳곳에 있으니 초고대유적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에너지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하지만 제론은 다섯 마을을 일곱 번이나 크게 도는 집중력과 끈기를 보이며 그 흐름의 구성을 어느 정도 파악해 냈다.

그걸 토대로 초고대유적의 위치를 대충이나마 알아냈다. 물론 너무 광범위해서 아직 확실히 유적을 등록하는 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마지막 단계만 남겨 놓았을 때, 바인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다. 그 보고를 급히 확인한 제론이 피식 웃었다.

"역시 3왕자한테 따로 꿍꿍이가 있었군. 그나저나 그렇게 해서 비밀 조직에는 무슨 이득이 있지?"

물론 3왕자를 국왕으로 만들면 란체 왕국에 은밀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정도 능력이 있다면 그냥 테페룸 광산 자체를 꿀꺽 삼켜도 된다.

"외부에 드러나지 않기 위해서 그런 건가?"

충분히 일리 있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한 점은 많이 남아 있었다.

"3왕자를 더 확실히 옭아맬 방법이 있는 건가?"

만일 그렇다면 조금 말이 된다. 3왕자를 완벽하게 옭아매서 그들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리면 어마어마한 이득을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어쨌든 제론은 그들의 계획이 순조롭게 끝나도록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제론은 나머지 보고를 차근차근 살펴봤다.

"새 테페룸 광산의 예상 위치?"

제론의 눈이 번득였다. 바인이 보고한 장소는 하나가 아니었다. 모두 네 군데나 되었다. 그중 하나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위치는 제론에게 다른 의미로 큰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테페룸 광산의 위치보다 훨씬 중요했다.

제론은 그 위치와 자신이 마을을 몇 바퀴나 돌며 알아낸 에너지의 흐름을 대입시켰다.

태블릿을 통해 나타난 지도에 에너지의 흐름을 손가락으로 슥슥 그렸다.

"역시!"

에너지의 흐름이 광산 후보지를 향해 휘어지고 있었다. 각각의 광산 후보지가 초고대유적의 에너지 흐름을 왜곡시킨 것이다.

제론은 그걸 분석해서 아주 간단히 초고대유적의 위치를 확정할 수 있었다. 물론 정확한 분석을 한 것은 태블릿이었다.

"좋아. 일단 여기부터 가자."

현재 제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초고대유적을 찾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유적이 테페룸 광산과 과연 관계가 있느냐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제론은 곧장 움직였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제론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나돌아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마을을 벗어난 제론은 산으로 향했다. 마을에서 산으로 가는 길에는 블랙스피어 기사단이 잔뜩 포진해 있었지만 그들의 눈을 피해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예상 위치에 도착했을 때였다.

'많군.'

그곳은 블랙스피어 기사단의 거점 중 하나였다. 블랙스피어 기사단은 마을에서 산으로 가는 길과 산기슭에 몇 군데 거점을 만들어 활동했다.

그 거점 중 하나가 초고대유적의 예상 위치였다.

그곳에는 천막으로 만든 막사가 잔뜩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검은 옷의 사내들이 막사 주위를 돌아다녔다.

제론이 가고자 하는 곳은 딱 그 중앙이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모두의 시선을 받을 만한 장소였다. 한데 유적으로 내려가려면 빛에 휩싸인다.

그런 장면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자신과 유적에 대해 일말의 의심이라도 갖게 하는 것이 싫었다.

제론은 멀리서 기사단의 거점을 살피며 기회를 살폈다. 일단 저들을 어딘가로 싹 유인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태블릿을 꺼낸 제론은 마티를 이용해 거점이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자세히 살폈다.

블랙스피어 기사단이 이곳에서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테페룸 광산의 경계였다.

모든 운영 방식이 그걸 중심으로 이뤄졌다.

막사를 하나하나 살피던 제론은 눈을 빛냈다. 저들을 유인할 방법이 생겼다.

한가운데에 있는 막사 안에 마법진이 새겨진 석판이 있었다. 비상이 걸렸을 때, 신호를 보내는 마법진이었다.

마법진을 분석하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석판에 겉으로 드러난 마법진의 그림만으로도 어떤 마법진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석판의 마법진은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석판 아래나 속에 연결된 마법진이 또 있었다.

워낙 단순한 형태로 연결시켰기에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 마법진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떤 마법진이 연결되었는지는 이렇게 마티를 통해 보는 것만으로는 파악이 불가능했다.

물론 제론에게는 그걸 알아볼 방법이 또 있었다.

"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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