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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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 테페룸 광산 (2)

이미 이 여관에는 특별한 정보 수집 장치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바인에게 그에 관한 모든 지식을 전해 줬기에 제론이 어느 여관에 머물든 그 여관에 대한 모든 것을 싹 보고했다.

제론이 태블릿을 꺼내 가장 먼저 한 일은 바인의 보고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매일 들어오는 일상적인 보고였는데, 에어스트 왕국의 상황이라든가, 주변의 정세에 관한 보고가 주를 이뤘다. 그리고 제론이 특별히 지시한 정보를 찾아 보고를 하기도 했다.

한데 오늘은 조금 특별했다.

"란체 왕국 암류에 관한 보고서?"

일상적인 보고는 평소의 절반도 채 안 될 정도로 적었다. 한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새로운 보고서가 엄청난 분량으로 도착했다.

"이게 뭐지?"

일상적인 보고의 양이 줄어든 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슬슬 보고할 게 없어질 때가 되었다.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말이다.

한데 란체 왕국 암류에 대한 보고라니, 제론은 갑자기 흥미가 동했다.

"어디 읽어 볼까?"

상당히 길었지만 워낙 조리 있고, 재미있게 써 놨기에, 또한 내용 자체가 상당히 흥미로웠기에 제론은 정신없이 거기에 빠져들었다.

보고서를 모두 읽은 제론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서성였다.

"블랙스피어 기사단이 란체 왕실의 기사단이 아니라고?"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블랙스피어 기사단이 란체 왕궁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설 기사단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왕실 기사단으로 위장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란체 왕실의 3왕자가 은밀히 끌어들인 외부의 세력이었다.

워낙 교묘히 빈틈을 파고들었기에 자연스럽게 왕실 기사단처럼 인식이 되어 버리긴 했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다.

문제는 그 사실을 왕궁에 출입하는 상당수 귀족들이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도 그에 대해 전혀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바인도 알아내지 못한 걸 보면 정말 보통 놈들이 아닌데 말이야."

블랙스피어 기사단을 누가 보냈는지 바인도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그들을 데려온 3왕자조차 그들의 정체를 명확히 알지 못했다.

바인은 그들에게서 예전 슈린 가문이나 나베 가문의 배후 세력과 비슷한 냄새를 맡았다고 했는데, 확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제론은 묘한 확신이 들었다. 이건 감이었다. 그들은 분명히 같은 놈들이었다.

"한데 그런 놈들이 이곳 테페룸 광산을 장악하고 있다 이거지?"

테페룸 광산을 둘러싼 다섯 마을의 관리를 블랙스피어 기사단이 맡고 있다는 건 이미 테페룸 광산조차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는 뜻이었다.

"란체 왕국도 썩을 대로 썩었군."

대부분의 귀족이 이런 상황을 알면서 눈감고 있다는 뜻이었다. 아무리 검을 숭상하고 왕국에 충성하면 뭐하는가. 상층부가 이렇게 썩어 문드러져 있는데.

"란체 왕국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겠어."

그리고 블랙스피어 기사단이 이 테페룸 광산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더 확실히 알아내야만 했다. 제론은 그들이 잘되는 꼴을 두고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완전히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주지. 숨어 있으면 끌어내면 그만이지. 아마 굉장히 당황스러울 거다."

제론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빛냈다. 그걸 위해서 최대한 빨리 이곳 테페룸 광산의 초고대유적을 찾아내야만 했다.

제론은 바인과 긴밀히 연락을 하며 테페룸 광산의 상황을 면밀히 확인했다. 그리고 블랙스피어 기사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뭔가 중요한 꼬투리 하나만 잡히면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은데 그게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정말 평범했다.

블랙스피어 기사단은 테페룸 광산을 감시했고, 이송의 경계를 책임졌다. 그리고 그것을 상단에 넘기는 일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거기에 마을의 경비까지 맡았다.

그게 전부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은 완전히 란체 왕국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론은 그럴 리가 없다고 믿었다. 그들이 왜 란체 왕국 좋은 일을 해 주겠는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전쟁까지 일으키는 놈들인데 말이다.

분명히 뭔가가 있었다.

제론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마을을 거닐었다. 블랙스피어 기사단은 마을에서 종종 볼 수 있었다. 워낙 많았기 때문에 가끔은 마을 사람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대체 이놈들 꿍꿍이가 뭐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건 테페룸을 빼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일 그랬다면 바인이 그걸 캐치해 내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렇다면 이 마을의 상단이 배후 세력의 하부 조직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 부분은 바인이 아직 조사 중이었다. 하지만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그게 아닌 쪽으로 가닥이 잡혀 가고 있었다.

한창 골똘히 생각하며 걸어가던 제론은 문득 묘한 느낌이 들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그 묘한 느낌이 풍기는 쪽을 쳐다봤다.

블랙스피어 기사단 몇 명이 모여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뭐지? 이 기묘한 느낌은?'

이건 분명히 마나로부터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한데 정확히 뭔지 파악이 어려웠다.

'아티팩트로군.'

한참을 확인하고서야 그것이 아티팩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흐름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만큼 굉장한 수준의 아티팩트였다.

마나의 흐름 자체가 거의 외부로 표출되지 않는 아티팩트였다. 그걸 이렇게 애써 비집고 들어가야 파악이 가능할 정도로 잘 감춰져 있었다.

일단 하나를 발견하고 나니 나머지는 좀 더 쉬웠다. 모든 블랙스피어 기사단이 그 아티팩트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같은 아티팩트임이 분명했다. 흘러나오는 마나의 흐름이 똑같았다.

'대체 무슨 아티팩트지?'

마나링이 9개가 된 이후로는 웬만한 아티팩트는 단숨에 분석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그걸 이용해 이제 슬슬 마법 물품 사업을 시작할 계획도 세우고 있었다.

한데 그런 제론의 능력으로도 블랙스피어 기사단이 가진 아티팩트의 능력을 대번에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아티팩트를 눈앞에 놓고 확인을 해 봐야겠는데?'

어렵지 않았다. 블랙스피어 기사단 하나를 잡아다가 아티팩트만 빼앗고 놔주면 된다. 미리 준비해서 비슷한 아티팩트를 하나 만들어서 바꿔치기하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짧았다. 블랙스피어 기사단은 혼자 다니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제론은 혼자 있는 기사에게 은밀히 접근해 마법을 펼쳤다.

털썩.

기사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제론은 기사의 품을 뒤져 아티팩트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느낌이 오는 곳을 뒤졌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설마!'

제론은 그 부분의 옷을 들춰 봤다. 그리고 혀를 내둘렀다. 아티팩트를 몸에 심어 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은 자신의 몸에 아티팩트가 있는지도 모를 수 있었다.

제론은 아티팩트가 있는 옆구리 살을 쭉 갈랐다. 그리고 그 안에서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구슬을 찾아냈다. 그것이 바로 제론이 찾던 아티팩트였다.

제론은 구슬을 빼고는 기사의 상처에 손을 갖다 댔다.

샤아아아!

마법진 하나가 나타나 가루로 흩어지며 상처에 스며들었다. 그러자 상처가 놀라운 속도로 아물었다. 제론은 상처를 완벽하게 치료한 다음 기사의 옷을 다시 원래대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자마자 손가락을 튀겼다.

딱!

그걸 신호로 잠들었던 기사가 깨어났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원래 가던 길로 갔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제론은 아티팩트를 들고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것을 면밀히 살치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복잡한 구조의 마법진이 구슬 안에 입체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구슬의 내부를 깎고 조각해 마법진을 구성했다. 정말로 굉장한 아티팩트였다.

이런 걸 저 많은 기사의 몸에 심었다니 정말로 놀라웠다.

제론은 태블릿을 꺼내 구슬의 구조를 안으로 복사해 넣었다. 그리고 분석을 시작했다.

분석을 하면 할수록 제론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 이놈들이 하려는 일이 뭔지 이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테페룸 광산을 없애려고 하는군."

이 아티팩트는 테페룸 광산을 없애기 위한 장치였다. 하나만으로는 효과가 거의 없겠지만 수백 개가 동시에 오랫동안 작동하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대체 이런 걸 어떻게 만든 거지?"

이건 테페룸에 대해 재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는 한, 절대 만들 수 없는 아티팩트였다. 물론 테페룸에 대해 알고 있는 수준이 초고대문명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저 테페룸이 어떤 물질인지만 알아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물론 결코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테페룸을 분해하는 아티팩트를 만들다니. 완전히 미친놈들이로군."

블랙스피어 기사단은 지속적으로 테페룸 광산을 출입한다. 이 아티팩트를 몸에 지니고 말이다.

아티팩트의 마법은 근처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먼 거리에 영향을 미친다.

마법의 구현 자체가 일정 거리 이상에서 되도록 정해져 있었다. 또한 바위나 흙을 통과하면서 성능이 증폭되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광맥에 존재하는 테페룸을 지속적으로 분해하기 위한 아티팩트인 것이다.

하루나 이틀 만에 성과를 얻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수년 이상을 투자해 결과를 만들어 내겠다는 계획인 것이다.

제론은 이들이 뭘 원하는지 이제 알 수 있었다. 란체 왕국에 더 이상 테페룸 광산이 존재하지 않게 만들려는 것이다.

"3왕자가 수상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제론의 예상은 배후 세력이 3왕자를 란체 왕국의 국왕으로 만들려 하는 것 같았다. 아마 3왕자는 크란 제국으로부터 테페룸을 수입할 수 있는 인맥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새로운 테페룸 광맥을 발견했다거나."

어떤 경우든 가능성이 충분했다. 제론은 씨익 웃었다. 일단 자신이 알아낸 이상, 저들은 절대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계획을 완전히 박살 내 버릴 테니까 말이다.

제론의 입가에 깃든 미소가 점점 더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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