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17/217)

Chapter 10 포어트 (4)

"후우우욱."

포어트는 숨을 길게 내뱉으며 눈을 떴다. 정신이 돌아오고 가장 먼저 느낀 건 지독한 악취였다.

"크윽!"

포어트는 코를 막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옷이 새까맸다. 몸에서 나온 구정물 같은 땀이 온통 배서 빨아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얼른 가서 씻고 옷부터 갈아입지?"

제론의 말에 포어트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저택 밖으로 뛰어나갔다. 너무 더러워서 차마 집에서 씻을 수가 없었다.

포어트는 집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샘으로 가서 옷을 훌훌 벗고 몸을 깨끗이 씻었다.

몸을 씻고 나니 옷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샘에서 집까지는 제법 멀었다. 거기까지 벌거벗고 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시커먼 옷을 다시 입기도 싫었다. 옷에서 나는 악취가 너무 지독했다.

"일단 옷부터 태웠어야지."

포어트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봤다. 그곳에는 어느새 제론이 깨끗한 옷을 한 벌 들고 서 있었다.

제론은 포어트에게 옷을 내밀었다. 온몸이 젖어 있었지만 그건 문제될 게 없었다.

"마나를 온몸으로 뿜어내 봐."

제론의 말에 포어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눈을 감고 이미지를 세웠다. 처음에는 어떻게 할지 몰라 눈살을 찌푸리고 인상을 쓰고 난리를 피웠지만 이내 방법을 찾아냈다.

슈아악!

온몸의 물기가 마나에 밀려 싹 날아가 버렸다. 포어트는 깜짝 놀라 눈을 뜨고 자신의 몸을 살폈다. 물기가 거의 모두 사라져 버렸다. 자신이 해 놓고도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닌데, 빨리 입는 게 어때?"

제론의 말에 포어트가 머쓱한 표정으로 서둘러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사이에 제론은 더러운 옷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작은 마법진 하나가 생겼다가 흩어지며 불꽃이 일어났다.

화르륵!

포어트의 옷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렸다. 물론 포어트는 옷을 입느라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그저 매캐한 냄새 때문에 깜짝 놀라 옷이 타고 있는 광경을 쳐다봤을 뿐이었다.

그것 역시 신기한 광경이었지만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포어트에게 지금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자신의 몸이었다.

"따라와라."

제론은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어딘가로 향했다. 포어트는 얌전히 그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샘 근처에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조금 깊이 들어가니 널찍한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 한가운데에 선 제론은 포어트를 보며 검을 휙 던졌다. 포어트는 얼결에 그 검을 잡았다. 손에 착 달라붙는 것이 마치 자신의 검처럼 느껴졌다.

"굉장한 명검이로군요."

"중요한 건 검이 아니라 실력이지. 뭔가 달라진 거 느끼지 못하겠어?"

포어트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라졌습니다."

온몸에서 힘이 넘쳐흘렀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얻었다.

"검 한번 휘둘러 봐."

제론의 말에 포어트가 진지한 자세로 검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포어트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검술을 펼쳤다. 처음에는 느렸지만 차츰 속도를 높여 나중에는 검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휘둘렀다.

검술을 모두 펼친 포어트는 가만히 서서 지그시 눈을 감았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런 날을 얼마나 고대했던가.

"감상에 젖는 것도 좋지만 소드 마스터가 되었으면 마나를 써먹어 봐야지."

그 말에 포어트가 눈을 번쩍 떴다. 소드 마스터라니! 정말로 이것이 소드 마스터란 말인가.

생각해 보면 그럴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몸이 가볍고 힘이 넘쳐흐르니 말이다. 게다가 감각도 완전히 달라졌다.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듯했다.

"이게…… 이게 소드 마스터로군요."

포어트는 자신의 몸을 거칠게 질주하는 마나를 느끼며 그것에 의념을 집중했다. 마나는 거칠었지만 포어트의 말을 제법 잘 들었다.

우우웅!

포어트의 검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포어트는 그 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샤아악!

푸른 섬광이 검에서 떨어져 나갔다.

꽈앙!

나무 한 그루가 박살 났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이게 바로 소드 마스터의 힘이었다.

"어쨌든 축하해."

제론은 그렇게 말하며 박수를 짝짝 쳤다.

포어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제론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제론에 대해서 너무 몰랐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충성을 맹세할 수는 없었다. 포어트에게는 은인도 중요하지만 가족이나 나라도 중요했다.

어차피 제론도 포어트에게 대단한 걸 원하지 않았다. 그의 충성을 받아서 뭐하겠는가. 어차피 포어트보다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가 수백 명에 달한다.

기본적으로 에어스트 왕국의 기사들은 소드 마스터였다. 물론 제론의 기준으로는 익스퍼트였고 말이다. 게다가 그들은 강력한 검술인 라이트닝 소드를 익혀서 동급의 수준을 가진 상대와 싸우면 압도할 수 있었다.

에어스트 왕국의 최하급 기사와 비교해도 포어트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심한 격차가 났다. 마나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 차이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포어트는 이제 막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아마 10년 정도는 더 수련하고 실전 경험을 쌓아야 에어스트 왕국의 최하급 기사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라이트닝 소드의 힘이었다.

"그거면 됐다. 어차피 나도 사람 됨됨이를 보고 한 일이야. 만일 악한 자였다면 이런 도움을 주지도 않았을 거다."

제론의 말에 포어트는 더욱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억지로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좋은 기사가 되어라. 그리고 당분간은 소드 마스터가 된 사실을 비밀로 했으면 좋겠군. 밝히는 건 내가 떠난 다음에 해라."

"알겠습니다."

포어트는 웬만하면 제론의 말을 다 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체를 알게 되면 나중에라도 은혜를 반드시 갚겠다고 다짐했다.

"내 정체가 궁금하겠지? 그건 떠나기 전에 알려 주지."

제론은 그렇게 말하고 빙긋 웃었다. 포어트는 그 미소를 바라보며 미안함에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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