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 포어트 (3)
'굳이 호흡법을 알려 주지 않아도 소드 마스터 비슷하게 만들 수는 있는데…….'
제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포어트를 소드 마스터로 만든다고 자신에게 무슨 득이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딱히 손해날 것도 없지.'
소드 마스터가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도 제론이나 에어스트 왕국에 손해날 건 없었다. 아니,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란체 왕국은 크란 제국과 인접해 있다. 크란 제국을 견제하는 효과가 생길 것이다.
제론은 일단 포어트를 소드 마스터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물론 비밀을 지키도록 맹세를 시킬 작정이었다. 포어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맹세를 지키는 타입이었다. 설사 자신이나 가족의 목숨이 위험해진다고 해도 말이다.
제론은 그렇게 결심하고 잠을 청했다. 일단 푹 쉬고 싶었다. 피곤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튿날, 제론은 포어트 일가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 본래 손님으로 왔으면 식사를 함께하는 것이 서로의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 법이었다.
하지만 제론은 딱히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포어트도 마찬가지였다.
신경 쓰는 것은 포어트의 다른 가족들밖에 없었다. 다른 가족이라고 해 봐야 아내와 아들뿐이었지만 말이다.
제론은 문득 포어트의 아내를 쳐다봤다. 포어트가 결투를 할 때, 상대방이 떠들던 말이 떠올랐다.
당시 그는 포어트의 아내와 정을 통한 것처럼 말했다. 한데 막상 확인하니 외간 남자와 불륜을 저지를 만한 여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나를 보면 그 사람의 기질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소드 마스터가 되면 그게 더 많이 보인다. 제론이 보기에 포어트의 아내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제론은 식사를 하며 포어트의 아들도 살펴봤다. 나쁘지 않았다. 기질이 괜찮았다. 배신할 사람들로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기질만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바인에게 지시하면 포어트를 더 깊이 분석할 수 있겠지만 제론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솔직히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포어트가 나중에 어떤 행동을 하든 말이다.
식사를 마친 제론은 포어트를 보며 말했다.
"잠깐 나 좀 볼까?"
포어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제론을 따라 나섰다.
제론은 저택 뒤쪽에 있는 공터로 향했다. 인적도 없고, 다른 저택에서 볼 염려도 없는 으슥한 곳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포어트의 물음에 제론이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네 검술,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그 말에 포어트가 인상을 찌푸렸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검에 대해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건 참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은인이라고 해도 말이다.
"말씀이 좀 심하시군요."
제론은 포어트의 반응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그리고 이리저리 휘둘러 봤다.
"이런 식이었나?"
제론이 휘두르는 검을 본 포어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제론이 펼치고 있는 것은 분명히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검술이었다. 물론 군데군데 틀린 부분도 있지만 요체는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포어트는 혼란에 휩싸였다. 가문의 검술을 아는 건 이제 포어트와 그의 아들뿐이었다. 오래전 가문에서 떨어져 나간 자들의 후예도 같은 검술을 익힐 수 있었지만, 그럴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했다.
"결투를 지켜봤으니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지."
사실은 고작 결투를 지켜봤다고 펼칠 수 있는 검술이 아니었다. 당연히 제론은 태블릿의 힘을 이용했다. 대결 자체를 녹화해서 몇 번이고 틀어 보며 검술의 형을 따 냈다.
그리고 태블릿의 계산 능력을 이용해 검술 자체를 정립했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았고, 썩 그럴듯했기에 제론은 그 검술을 익혔다.
모든 검술의 근본을 관통하는 건 제국 기초 검술이었다. 그걸 완벽하게 익힌 사람은 다른 검술을 익히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론은 고작 하루 만에 포어트가 익힌 검술의 요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데 느끼는 게 고작 그것뿐이야? 같은 검술을 익혔다는 것 말고는 없어?"
제론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휘둘렀다. 마치 검이 수십 개로 늘어난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제론의 검은 빠르고 강력했다.
포어트는 제론이 검을 펼치는 광경을 보다가 표정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같은 검술인데 자신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자신이 펼칠 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내가 저 정도로 익혔다면 그 미친놈과의 결투에서 밀릴 일도 없었겠지.'
포어트의 표정이 심각해지자, 제론은 검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어때? 이제 좀 달라 보이나?"
"그렇습니다."
포어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한참 동안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대체 제게 뭘 원하시는 겁니까?"
제론이 씨익 웃었다.
"내가 원하는 건 없지. 오히려 그 반대 아닌가?"
포어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 검술을 다듬어 주실 생각이라면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제가 가진 단점쯤이야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검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않은 건 정말 어쩔 수 없었다. 검을 휘두르다 보면 미묘하게 자세나 관절이 틀어지는데, 그건 포어트의 힘으로 조절이 불가능했다.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포어트가 눈을 크게 뜨고 제론을 바라봤다.
"특별한 문제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럼 설마 문제를 고칠 수도 있습니까?"
"일단 질문에 대한 답부터 생각해 봐. 문제가 뭐라고 생각해?"
"체질입니다."
포어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체질 말고는 답이 없었다. 그러니 아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는 것 아니겠는가.
제론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체질 문제가 아니라 마나 문제였지만 크게 따지면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마나도 어쨌든 몸에 존재하는 것이니 체질이라고 할 수도 있었으니까.
"같은 체질을 가진 사람이 또 있다는 건 알고 있나?"
"물론입니다. 이 근처에서 여럿 봤습니다."
포어트가 쓴웃음을 지었다. 말을 하고 보니 왠지 이곳이 저주받은 저택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혹시 그건 알고 있나? 샤프트 폰 슈베르트도 같은 체질이라는 거 말이야."
포어트가 경악했다. 그리고 고개를 저으며 제론을 불신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 왕국이 자랑하는 소드 마스터입니다. 그런 분이 이런 저주받은 체질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저주 받은 체질? 누가 그래?"
"이렇게 검을 익히기 어려운데 이게 저주받은 것이 아니면……."
포어트는 뒷말을 흐렸다. 왠지 그 말을 끝까지 하면 정말로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에게는 아직도 꿈이 있었다. 이 저주받은 체질을 이겨 내고 한 발 더 나아갈 거라는 꿈이 말이다.
"어려우니까 소드 마스터가 되었지. 의심스러우면 직접 본인에게 물어봐도 좋아."
그 말에 포어트가 피식 웃었다. 소드 마스터인 샤프트가 뭐 아쉬울 게 있다고 자신과 만나 대화를 나누겠는가.
"왜? 못 만날 것 같아?"
"당연하지 않습니까."
"같은 소드 마스터가 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지. 아니, 궁금해서 오히려 그쪽에서 찾아올지도 모르겠군."
"하하하. 빈말이라도 기분은 좋군요."
포어트는 웃어넘겼다. 그래도 얘기를 하다 보니 기분이 좀 풀렸다.
"빈말? 하긴,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보통이긴 하지. 그럼 만일 소드 마스터가 되면 어떻게 할 건데?"
포어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제론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 결국 반드시 소드 마스터가 될 것입니다. 그게 제 꿈이고 삶의 목표입니다. 그러니 그걸 가지고 뭘 어떻게 하고 말고 할 일은 없습니다."
"내 말은 오늘 말이야. 오늘 소드 마스터가 된다면 어떻게 할 건데?"
포어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농담이 지나치시군요. 아무리 은인이지만 이런 식이면 저도 참기 어렵습니다."
제론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
"뭐가 문제지? 만일 되면 어쩌겠냐고 물은 것뿐인데. 어차피 안 될 거라면 뭐가 두렵지? 충성 맹세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제론의 말에 포어트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충성 맹세는 장난으로 언급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성한 의식입니다."
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면 됐다. 이제 더 대가를 제시할 필요가 없었다.
"좋아. 그럼 그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소드 마스터에 대해 얘기해 보지."
"정말 끈질기시군요."
"이리 와서 돌아서 봐. 등을 좀 만져 보고 싶군."
포어트는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 무의미한 대화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제론은 포어트의 등 한가운데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지그시 눈을 감고 몸 내부를 살폈다. 제론의 손바닥에서 가느다란 마나가 흘러나가 등을 뚫고 들어갔다.
마나가 몸 곳곳에 막혀서 정체되어 있었다. 이러니 제대로 검술을 못 펼칠 수밖에 없었다. 몸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마나 자체는 엄청나게 많았다. 일반적인 익스퍼트와는 차원이 다른 양이었다. 몸 곳곳에 마나가 정체되며 그 자리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쌓인 것이다.
마나가 정체된 것은 그 원인을 없애 주면 뚫린다. 포어트의 경우에는 마나로드의 손상이 원인이었다. 아마 소드 마스터인 샤프트는 좀 달랐을 것이다. 마나로드가 손상되었다면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제론은 손상된 마나로드를 고쳐 주었다. 제론이 그저 소드 마스터이기만 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제론은 소드 마스터이면서 동시에 9개의 마나링을 가진 엄청난 마법사이기도 했다.
제론의 손바닥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우우우웅!
마법진이 산산이 부서지며 빛가루가 되어 포어트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 빛가루는 포어트의 부서진 마나로드를 복구시켰다.
그저 마나로드가 복구된다고 마나 정체가 풀리는 건 아니었다. 이제 기본적인 작업이 남아 있었다. 마나를 몸에 흐르게 만들어야만 했다.
그걸 위해서는 그동안 마나로드에 쌓인 불순물을 없애야만 했다.
마나로드 복구보다는 어려웠지만 그것도 제론에게는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제론은 아주 간단히 마나로드에 쌓인 불순물에 구멍을 뚫었다.
콰아아아!
뚫린 구멍으로 마나가 물밀듯이 밀려갔다. 제론은 손바닥에서 뽑아 보낸 가느다란 실 같은 마나로 포어트의 마나로드에 길을 냈다.
불순물이 없는 곳도 많았지만 막힌 부분이 다 중요한 곳이라 포어트가 검술을 펼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제론은 그 모든 과정을 일사천리로 해낸 뒤 등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한 발 떨어져서 포어트를 지켜봤다. 지금 포어트는 아주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럴 때 괜히 누군가 건드리면 곤란했다.
포어트는 몸속에서 거칠게 흐르는 마나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이내 그 흐름의 편안함과 시원함에 몸과 마음을 맡겨 버렸다.
그것은 다분히 본능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극히 옳은 선택이기도 했다.
툭! 투둑! 투두둑!
포어트는 속에서 뭔가가 계속 터지는 느낌에 몸을 움찔 움찔 떨었다. 한데 그때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시원해졌다.
막혔던 뭔가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당연했다. 정말로 막혔던 마나로드가 뻥 뚫리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