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4화 (115/217)

Chapter 10 포어트 (2)

"말 함부로 하지 마라. 난 조장이다."

"긴급 상황도 아닌데 조원의 말을 묵살하는 게 제대로 된 조장인가?"

"닥쳐라!"

"지금 이 상황을 상부에 그대로 보고하겠소."

조원이 끝까지 반발하자 조장이 성큼 조원에게 다가갔다. 조장이 되려면 다른 조원에 비해 뛰어난 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력이든 판단력이든, 아니면 배경이든 말이다.

지금 이들을 이끄는 조장의 경우는 배경이 뛰어났다. 그래서 조원들의 불만이 조금 쌓인 상태였다. 실력이 뛰어난 자신이 조장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사람이 셋이나 있었다.

그 세 명이 모두 나서서 조장 앞을 가로막았다.

"힘으로 나오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소."

그들의 형형한 눈빛에 조장이 움찔 놀랐다. 만일 평소라면 이런 상황까지 가지도 않았겠지만, 설사 간다 하더라도 이렇게 되면 조장이 한 발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평소와 상황이 많이 달랐다.

"지금 날 힘으로 어떻게 해 보겠다는 건가?"

조장의 말에서 억눌린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러자 조장 라인에 선 조원들이 우르르 조장 뒤로 이동했다.

순식간에 조사단이 두 패로 갈려 버렸다.

"정중하게 사과해라.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고 맹세해라."

조장의 말에 세 조원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을 따르는 조원도 제법 있었다. 패가 거의 정확히 둘로 갈린 건 지금의 조장이 뒤로 손을 많이 썼기 때문이었다.

"말이 너무 심하군. 우리가 뭘 잘못했지? 조장에게 의견을 내는 건 자유로운 것 아닌가? 긴급 상황도 아닌데 말이야."

"긴급 상황이다. 내가 긴급이라도 판단하면 긴급 상황이다. 내 말이 틀렸나?"

말은 맞다. 하지만 그건 누가 봐도 긴급이라고 인정할 만한 상황이라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조장의 역량이 워낙 뛰어나 조원들보다 훨씬 대단한 판단력을 가졌거나.

하지만 지금은 그 두 가지 모두 아니었다. 당연히 조원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틀렸소. 조장의 역량이 모자라니 우리의 의견을 더 잘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조원의 말이 조장의 역린을 건드렸다. 조장은 머리로 피가 쫘아악 몰리는 걸 느꼈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검을 뽑아 휘두르고 있었다.

약간 당황했지만 이내 내친걸음이라 여기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졌다. 검에 실린 힘이 더욱 강해졌다.

째앵!

조원이 당황하며 황급히 검을 뽑아 조장의 공격을 막았다.

"미쳤군!"

"그래! 미쳤다! 네놈이 어설픈 훈계 때문에 미쳤다! 네놈이 한 행동은 하극상이야!"

조장이 더욱 거칠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때부터는 조원도 더 이상 당황하지 않았기에 당하지도 않았다. 원래부터 검술 실력은 앞으로 나선 세 조원이 훨씬 뛰어났다.

"뭣들 해! 다 족쳐!"

조장이 외치자, 조장 뒤에서 당황하며 서 있던 조원들이 우르르 검을 뽑아 달려들었다. 당연히 상대편에 서 있던 조원들이 그냥 당하고 있을 리 없었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검광이 난무했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제론은 멀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혀를 찼다.

"쯧, 마나의 영향이 정말 상당하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마 저기에 사람이 더 들어가면 피해가 훨씬 커질 것이다. 하지만 제론은 도움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솔직히 이 왕국 자체가 마음에 안 들었다. 결투를 부추기고 도박을 장려해서 왕실의 재정원으로 삼는 자들이 마음에 들 리 있는가.

게다가 저들은 그 가장 아래에서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굳이 도와줘 봐야 란체 왕국 백성들만 더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었다.

제론은 검은 옷을 입은 조사단이 유적으로 더 많이 몰려오는 걸 확인하고는 몸을 돌렸다. 아마 싸움은 더 커질 것이다.

제론은 곧장 포어트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일단 여기서 며칠 더 묵어야 하기 때문에 떠나지 않았다는 걸 알릴 필요가 있었다.

벌써 유적에서 며칠이나 있었기 때문에 어쩌면 떠난 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제론이 저택에 나타나자, 마침 저택 앞에 나와 있던 포어트가 제론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대체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전 말씀도 없이 사라지셔서 그냥 떠나신 줄 알았습니다."

제론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떠나긴, 잠깐 볼일이 있었을 뿐이야."

"그, 그러시군요."

무슨 볼일인지는 차마 묻지 못했다. 포어트는 머뭇거리며 제론의 눈치만 살폈다.

"아, 지금 배가 상당히 고프군."

"바, 바로 식사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당당하게 밥까지 요구하는 제론의 모습에 포어트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어쨌든 은인이니 그 정도 대접이야 너무나 당연했다.

제론은 자신이 며칠이나 굶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갑자기 어마어마한 허기가 몰려와 정신이 아찔해졌다. 기분으로는 쇠라도 씹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포어트는 서둘러 제론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미리 지시를 받고 분주하게 움직인 요리사들 덕분에 테이블이 금세 음식으로 가득 찼다.

제론은 그 모든 음식을 남김없이 싹 먹어 치웠다. 꼭꼭 씹어서.

배가 부르니 좀 살 것 같았다. 밥을 먹으면서 마나를 열심히 돌렸더니 온몸 구석구석으로 영양분이 충분히 공급된 느낌이 들었다. 힘이 불끈 들어갔다.

밥을 모두 먹은 제론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포어트의 저택에 흐르는 에너지의 양이 많이 줄어들어 있었다.

제론이 유적을 등록하는 바람에 유적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밖으로 흘러넘치는 에너지의 양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물론 그래도 사람이 느끼기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포어트를 비롯해 이 저택에 사는 사람은 같은 증상을 겪게 된다는 뜻이었다.

방에 도착한 제론은 문을 닫고 침대에 앉았다. 일단 한숨 자는 게 나을 듯해서 자리에 누웠다. 생각해 보니 최근 며칠 동안 한숨도 못 잤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몸이 피곤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제론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생각의 대부분은 새로 얻은 유적과 포어트의 저택에 관계된 것이었다.

"음? 가만."

제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뭔가 번뜩 떠올랐다.

"란체 왕국에도 소드 마스터가 하나 있었지?"

현재 알려진 소드 마스터는 크란 제국에 두 명, 그리고 란체 왕국에 한 명이 있었다.

제론은 란체 왕국의 소드 마스터도 어쩌면 유적에서 에너지를 모으는 장치 근처에서 살다가 그걸 이겨 내고 소드 마스터가 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피곤하지도 않은데 궁금증부터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에너지가 모이는 장소가 어딘지는 다 알고 있었다. 무려 20군데나 되지만 폴타가 있으니 어디든 금방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보고도 아직 안 받았군."

바인에게 지시를 내린 지 벌써 며칠이 지났다. 유적에서 9번째 마나링을 만드는 내내 바인이 조사를 했을 테니 아마 분명히 테페룸 광산에 대한 모든 정보를 보고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태블릿을 통해 확인해 보니 벌써 이틀 전에 보고가 들어왔다.

제론은 가만히 위치를 가늠해 봤다. 수도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이었고, 방비도 삼엄했다. 수많은 기간트가 광산을 지키고 있었다. 물론 위치부터 시작해서 광산에 관계된 모든 일이 비밀이었다.

심지어 일하는 사람들조차 그곳이 테페룸 광산인지 몰랐다. 테페룸을 광물에서 뽑아내 괴로 만드는 일도 모든 것이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었고, 각자의 파트에서 일하는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일했다.

물론 가끔 눈치를 챈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렇게 눈치가 빠른 자들은 자신의 목숨이 달렸다는 걸 알고 더 철저히 비밀을 지켰다.

"뭐, 그래도 들어가는 게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군."

제론은 마티를 이용해 테페룸 광산을 샅샅이 살폈다. 인적이 없는 곳도 제법 많았고, 잘 살피면 외부에서 들어갈 만한 빈틈도 몇 군데 있었다.

"일단 인적 없는 곳으로 이동하는 게 낫겠군."

폴타를 이용하면 아주 간단히 그곳에 게이트를 열 수 있었다. 그렇게 이동하면 누구도 모르게 광산에 들어가는 게 가능했다.

테페룸 광산 근처에 유적이 있는 건 확실했지만, 그 유적이 광산 안에 있을지 아니면 떨어진 곳에 있을지는 가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제론은 좀 더 살펴보면서 계획을 철저히 세우기로 했다. 급할 건 없었다. 에어스트 왕국에도 주기적으로 다녀오고 있었고, 특별히 처리할 일도 없었다.

슈린 왕국은 차근차근 에어스트 왕국에 흡수되고 있었다. 기존 슈린 왕국의 귀족들은 대부분 몰락하거나 외국으로 쫓겨났고, 에어스트 왕국에서 인정한, 즉, 바인이 철저히 조사를 마친 인재들로 그 빈자리가 채워졌다.

거기에 제론이 나서거나 개입할 일은 거의 없었다. 그저 보고를 받고, 원하는 게 있으면 명령하면 끝이었다.

현재 에어스트 왕국은 지극히 평화로웠다. 그러니 제론이 좀 더 오랫동안 밖으로 나돈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제론은 마티로 테페룸 광산 내부를 찬찬히 살피고, 또 주변도 살폈다.

테페룸 광산은 5개의 커다란 마을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마을들을 이용해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고 인력을 수급하는 것이다.

그리고 광산의 위치 자체는 깊은 산속에 있었다. 그래서 크게 보면 큰 산 몇 개를 5개의 마을이 둘러싼 구조였다.

보통 그런 식이면 마을 사람들은 산을 통해 생활을 영위하기 마련인데 이 마을들은 산에 가까이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섯 마을은 모두 근처에서 농사를 짓고, 또 산 옆으로 흐르는 강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갔다. 하지만 가장 큰 수익원은 상업이었다.

다섯 마을은 각각 상단이 하나씩 있었는데, 마을 자체가 상단의 소유나 다름없었다.

참으로 특이한 구조였지만 그 다섯 상단이 모두 란체 왕국에서 운영한다는 걸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란체 왕국은 그 다섯 상단을 이용해 테페룸을 이송하고 외부로 팔았다.

그래서 상단이 있는 마을인데도 다섯 마을에는 외부인이 많지 않았다. 외부인이 들를 만한 이유가 별로 없는 것도 이유였고, 또 의도적으로 외부인을 막기도 했다.

하지만 외부인이 마을에 간다고 해서 이상한 시선을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최대한 조심할 뿐이었다.

제론은 일단 그 마을들부터 가 보기로 했다. 어쩌면 굳이 산에 들어가지 않고도 모든 일을 다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일단 오늘은 이 저택에 머물기로 했다. 어차피 밤이 되었으니 굳이 지금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내일 오후쯤 이동해도 충분했다.

제론은 태블릿을 통해 포어트의 저택 말고 란체 왕국의 다른 지역에 있는 에너지홀을 조사해 봤다.

20군데나 있었지만 어차피 마티를 이용하는 것이기에 조사 자체는 아주 간단했다.

"일단 이 호수는 빼고, 여기도 빼고, 여기도……."

에너지홀 중 10군데는 호수라든가 황무지 혹은 숲 같은 인적이 아예 없는 곳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0군데 중 5곳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길 한가운데에 있었다.

도로의 경우 인적이야 있겠지만 그걸로 지나다니는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가 어려웠다.

나머지 5군데가 아예 사람이 정착해서 사는 곳이었는데, 포어트의 저택처럼 10여 채의 저택이 모인 곳이 또 하나 있었고, 3곳에는 성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3개의 성 중 하나에 란체 왕국의 소드 마스터인 샤프트 폰 슈베르트가 살고 있었다.

"역시 그렇군."

샤프트는 에너지홀에서 유입된 엄청난 에너지를 몸으로 받아들인 다음 그걸 극복했음이 분명했다.

아마 본인은 자신이 어떻게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고 해서 에너지홀의 에너지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란체 왕국이 전통적으로 소드 마스터를 보유한 적이 많은 것은 검을 숭상하기 때문이 아니라, 에너지홀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소드 마스터가 자주 나오니 자연스럽게 검을 숭상하게 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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