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1화 (112/217)

Chapter 9 포어트의 저택 (2)

여느 유적과 마찬가지로 제론은 일단 로비를 한 번 둘러보고는 곧장 가장 아래층으로 이동했다.

"어마어마한데?"

지금까지 겪은 유적 중 가장 깊은 곳은 체른산 유적으로, 총 29층에 달했다. 한데 이곳은 그보다 더 깊었다. 여기는 무려 101층짜리 유적이었다.

"대체 뭘 하는 곳이기에 이렇게 깊은 거지?"

그냥 층수만 많은 게 아니었다. 각 층의 높이도 엄청나게 높았다. 마지막 101층만 콜로니의 통제실이 있기에 조금 낮을 뿐, 나머지는 각 층이 웬만한 다른 유적의 3배가 넘을 정도로 높았다.

"이게 다 마티라고?"

제론은 깜짝 놀랐다. 100층부터 31층까지가 마티로 꽉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30층부터 21층까지가 폴타를 구동하는 아티팩트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20층의 유적은 상당히 특별했다. 그곳은 에너지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그 저택의 비밀이 이거였군."

포어트의 저택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근처에 그와 비슷한 장소가 더 있었다. 그곳은 포어트의 저택까지 합해서 모두 20군데나 되었다.

그곳은 특별한 장소였다.

태양에서 오는 빛과 열, 그리고 땅속에서 올라오는 지열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리고 사방의 마나가 빨려 들어오는 구멍 같은 장소이기도 했다.

1층부터 20층까지는 그런 곳에서 에너지를 모아 유적으로 전송시키는 장치와 전송된 에너지를 저장하는 아티팩트로 이루어졌다.

그런 장치가 필요한 이유는 간단했다. 이 유적에 있는 모든 마티와 폴타를 구동시키려면 그 정도 에너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마티의 수가 많은 만큼 당연히 정보 수집 범위도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이 정도면 란체 왕국 전역을 마티로 뒤덮고도 남겠군."

실제로 정보 수집 범위가 란체 왕국보다 훨씬 넓었다. 당연히 그 범위 안에 폴타를 이용해 이동 게이트를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제론은 그제야 란체 왕국의 다른 유적이 마티를 많이 보관하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 새로운 유적을 또 찾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란체 왕국은 마치 수도의 거대한 유적을 중심으로 군데군데 거점만 박아 놓은 느낌이 들었다.

"어쨌든 이렇게 되면 테페룸 광산을 찾아내는 일이 아주 간단해지겠군."

원래는 크란 제국의 테페룸 광산에 먼저 가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란체 왕국에 있는 테페룸 광산을 찾아가는 편이 빨랐다.

왕국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으니 테페룸 광산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비밀도 몽땅 캐낼 수 있었다.

뭔가 일이 확 풀려 버린 느낌이었다. 아마 마티를 이용하면 숨겨진 유적까지 몽땅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걸 하기에는 너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기에 굳이 애써서 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란체 왕국의 경우는 모든 장소에 마티를 보낼 수 있고, 어떤 곳이든 폴타를 이용해 이동할 수 있으니, 만일 유적에 특별한 기능이 없다면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이런 유적이 다른 왕국에도 있었으면 좋겠군."

만일 그렇게만 되어 준다면 정보에 관해서는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쨌든 이번 유적을 찾음으로 인해서 문두스의 정보력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게 되었다. 어쩌면 고대유적 정도는 바인이 알아서 찾아 줄지도 모른다. 물론 고대유적과 연결되지 않은 초고대유적은 찾을 방도가 없겠지만 말이다.

"그럼 테페룸 광산을 찾는 건 바인한테 맡겨 두고 난 슬슬 돌아가 볼까?"

제론은 태블릿을 통해 바인에게 새로운 명령을 전달했다. 아마 하루가 지나기 전에 란체 왕국 테페룸 광산의 위치가 제론에게 보고될 것이다.

일단 마티를 얻었으니 고대유적 내부의 상황을 확인하는 건 아주 간단했다.

제론은 유적 중앙에 아무도 없는 순간을 노려 위로 올라갔다. 밝은 빛무리와 함께 제론이 유적 중앙으로 이동되었다.

유적 중앙에 도착한 제론은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복잡한 마법진이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빛을 내뿜는 마법진이 섞여 있어서 마법진을 세세한 부분까지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제론은 그것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음? 여기가 중심이자 시작인 건가?'

이 유적의 마법진 자체가 여기서 시작된 걸로 보였다. 제론은 일단 마법진을 차근차근 분석해 보았다. 제론의 마법 실력이 엄청난 성장을 계속해 왔기에 그 정도 분석은 어렵지 않았다.

초고대문명의 마법은 고대문명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런 초고대문명의 마법 지식을 가진 제론이니 고대의 마법을 분석하는 게 어려울 리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수준 차이가 난다고 해도 분석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은 필요했다. 또 머리도 많이 써야만 했다.

제론의 두뇌가 팽팽 돌았다. 이 유적에 있는 마법진은 그동안 제론이 봐 왔던 고대문명의 마법진과는 많이 달랐다.

'거의 고대문명의 끝에 만들어진 마법진인 것 같군.'

제론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마법진을 차근차근 분석해 나갔다. 마법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하나를 잘못 분석하면 다음 마법진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래서 순서도 딱 맞춰서 분석해야만 했다. 군데군데 있는 발광 마법진만 따로 떨어져 있었는데, 그 마법진의 위치조차 처음부터 계산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제론은 마법진을 분석하며 점점 크게 놀랐다. 이 거대한 마법진이 통째로 하나였다. 제론은 태블릿을 꺼내 저장할 생각도 못 하고 마법진의 분석을 이어 나갔다.

모든 마법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이걸 완벽하게 분석한다면 모든 유적을 샅샅이 돌아다니게 되는 셈이었다.

물론 같은 장소를 수십 번 왕복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진이 이리저리 얽히고 꼬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론은 거의 홀린 듯이 마법진을 분석해 나갔다. 그 마법진에 대한 지식이 제론의 머릿속에 새겨지고 또 재구성되었다.

제론의 머리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자연스럽게 제론의 심장에서 마나가 흘러나와 머리로 스며들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제론의 머리가 식으며 김이 뿜어져 나왔다.

머리에서 펄펄 김이 나는 상태로 제론이 유적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 모든 마법진이 제론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채워졌다. 그리고 자동으로 초고대문명의 마법 지식에 의해 재구성되었다.

유적의 마법진은 조금 더 멋지고 세련되게 변해 갔다. 물론 제론의 머릿속에서 말이다.

제론은 밥도 먹지 않고서 유적을 끊임없이 배회했다. 입구에도 한 번 다녀왔다. 입구의 마법진은 대부분이 주 마법진과 관계없는 마법진 몇 개가 뒤섞여 있었기에 그저 한 번 스쳐 지나간 것만으로 끝이었다.

대신 유적의 중앙에는 수십 번을 들락거려야 했다. 정말 엄청나게 복잡하게 얽힌 마법진이었다.

제론은 무아지경에 빠져 마법진을 끝까지 파헤쳤다. 이런 식으로 마법진을 분석한 것은 제론이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이곳의 마법진을 확인한 자들의 경우에는 제론만큼 마법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마법진을 분석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얼추 유적의 마법진을 거의 다 분석할 수 있었다.

제론은 천장을 보면서 마법진을 계속 분석해 나갔다. 그렇게 고개를 든 채 거미줄처럼 복잡한 길을 따라 걸어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꿨다.

그대로 걸어가면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한데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제론이 벽을 뚫고 그냥 지나간 것이다.

마치 벽으로 스며들어 간 것 같았다. 그 순간 유적 전체의 마법진이 미약하게 빛났는데, 그걸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유적 곳곳에 밝혀진 발광 마법에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벽을 뚫고 들어간 제론은 여전히 마법진 분석에 여념이 없었다. 벽 안쪽에도 길이 나 있었고, 그 길 전체가 마법진으로 뒤덮여 있었다.

제론의 머릿속에 들어간 마법진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착착 맞춰져 갔다. 제론의 눈에서 강렬한 섬광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길의 끝에 도착했다. 벽으로 막혀 있었고, 그 벽에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이 이 모든 마법진의 마지막 한 조각이었다.

제론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유적의 마법진을 재구성해서 다시 입체적으로 만든 마법진이었다. 만일 그걸 현실에서 그리려면 웬만한 작은 성 정도의 크기가 될 것이다.

제론의 머릿속에서 마법진이 완성된 순간, 유적 전체의 마법진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화아아악!

유적에서 마법진을 베끼거나 연구하던, 혹은 구경을 하던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 이건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이곳의 마법진은 분석 자체가 거의 되지 않았다. 어떤 기능을 가진 마법진인지도 모르고, 또 무엇으로 마법진을 그렸는지도 몰랐다.

한데 그 마법진이 빛나고 있으니 다들 놀라는 게 당연했다.

제론은 벽의 끝에 서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는 연달아 폭죽이 치는 것처럼 수많은 마법 지식과 마법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걸 반복했다.

그리고 마법진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점점 더 강렬해지기 시작했다.

마법진이 빛나는 광경을 놀란 눈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이 한순간 눈을 가렸다.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너무 강해서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 빛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빛이 사라지자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손을 치웠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빛나던 마법진을 다시 바라봤다.

"헉!"

모두의 입에서 비슷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적 전체를 휘감고 있던 그 많은 마법진이 깡그리 사라져 버렸다.

"그럼 조금 전 그 빛이……."

그 강렬한 섬광은 마법진이 사라지면서 나타난 빛이었다. 어쩌면 마법진 자체가 빛으로 변할 것일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허탈한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봤다. 그 어디에도 마법진은 없었다. 아니, 유적 내부가 마치 사포로 갈아 낸 것처럼 매끈해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벽의 끝에 서 있는 제론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크윽."

제론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조금 전 유적의 벽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마법진이 사라지면서 나온 게 맞았다. 그리고 그 정확한 정체는 바로 마나였다.

이 유적의 마법진은 마나로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마나는 지금 제론이 서 있는 통로에 꽉 채워져 있었다.

바닥이 벗겨지며 지금까지 감춰져 있던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 마법진은 이곳으로 마나를 모으고, 통로에 서 있는 사람에게 그 마나를 집중시키는 마법진이었다.

그것은 이 유적을 온전히 얻은 사람을 위한 선물이었다.

제론은 자신의 심장으로 모여드는 막대한 양의 마나를 느끼며 정신을 집중했다. 제론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거대한 마법진이 남아 있었다.

심장에 모여든 마나를 이용해 그 거대한 마법진을 차근차근 만들어 갔다. 제론 앞 허공에 빛나는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마법진은 벽과 천장을 뚫고 계속해서 그려졌다. 비록 시간은 좀 걸렸지만 결국 작은 성 정도 크기의 입체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그 순간 제론이 눈을 번쩍 떴다.

꽈르르르릉!

마법진이 빛나며 마법이 발현되었다. 거대한 마법의 정체는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강렬한 섬광이었다. 제론은 섬광의 방향을 억지로 틀었다.

콰우우우우우!

작은 성 정도의 두께를 가진 섬광이 하늘로 쭉 올라갔다. 만일 이것이 수도를 직격했다면 수도가 최소한 절반은 날아갔을 것이다.

그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섬광이었다.

비록 섬광을 하늘로 올려 보냈지만 그 여파는 만만치 않았다.

우르르르르릉!

유적이 뒤흔들렸다. 유적 윗부분은 이미 섬광에 녹아서 형체도 없었다. 그리고 유적의 근간이 부서지며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가 되었다.

"도, 도망쳐!"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갔다. 유적은 크고 복잡했지만 어쨌든 다들 무사히 유적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꽈르르르릉!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내지 않고 유적이 무너졌다. 유적 안에 갇힌 사람은 오직 한 명 제론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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