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 포어트의 저택 (1)
포어트의 저택은 제법 넓은 편이었다. 아무래도 수도 바깥에 지었으니 규모가 조금 커지는 게 당연했다.
제론은 저택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방에 머물렀다. 포어트는 성심을 다해 제론을 대접했다. 또한 포어트의 말을 들은 그의 아내도 정말로 고마워하며 정성을 다했다.
덕분에 제론은 편안하게 일을 볼 수 있었다.
제론이 란체 왕국 수도에 온 것은 수도 근방에 있는 유적을 방문하기 위함이었다.
그 유적은 란체 왕국이 보유한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큰 유적이었고, 유적에 새겨진 마법진이 워낙 많아서 수많은 마법사들이 방문하는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했다.
일단 그 유적에 방문해 초고대유적으로 가서 등록하는 것이 처음 이곳에 온 목적의 끝이었다. 한데 이제 목표가 하나 더 늘어나 버렸다.
이 저택의 비밀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신기하단 말이야."
저택이 신기한 게 아니라, 저택이 위치한 지역이 신기했다. 사실 처음에는 이 저택 지하에 초고대유적이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제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아무리 감각을 날카롭게 갈고 느낌을 찾아가려 해도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저택 한가운데에서 아네모스를 꺼내 팔찌에 넣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즉, 여기서 유적으로 갈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대체 이곳은 뭐란 말인가. 이곳은 웬만한 초고대유적 근방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흘렀다. 아마 근방 10여 채의 저택에 사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과 좀 다를 것이다.
과도한 에너지가 몸에 오랫동안 깃들기 때문에 그걸 제대로 된 마나호흡법을 통해 풀어 주지 않으면 움직임이 미묘하게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제론은 그렇다고 해서 포어트에게 마나호흡법을 알려 줄 생각은 없었다.
저걸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온전히 포어트의 몫이었다. 아마 포어트가 저걸 극복하면 단숨에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제론은 당장 비밀을 알아내기가 어려우니 일단 수도의 유적부터 접수한 다음 차근차근 확인하기로 했다.
오늘이 바로 수도 유적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제론은 주위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라면 제법 괜찮은 성을 지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이곳에 흐르는 에너지를 이용하면 에어스트 왕국에 있는 성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큰 규모의 성을 짓는 것이 가능할 듯했다.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흐른다는 뜻이었다. 물론 중앙 유적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다른 웬만한 유적에 비하면 굉장했다.
"여기에 비할 수 있는 유적이라면…… 하이쓰 산맥에 있는 유적 정도로군."
하이쓰 산맥의 유적은 어마어마한 아티팩트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도 복잡한 계산은 하이쓰 산맥의 아티팩트를 이용하고 있었다.
하이쓰 산맥의 아티팩트는 비단 하늘 높은 곳에 떠서 아래를 관찰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굉장히 복잡한 계산이 가능한 거대한 태블릿 같은 존재였다.
그걸 얻은 뒤로 태블릿의 성능이 월등히 높아졌다. 예전보다 속도도 훨씬 빨라졌다.
"뭐, 공장을 하나 만들어도 나쁘지 않겠군."
기간트 공장을 세워도 충분히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더 대규모의 공장도 얼마든지 소화가 가능할 듯했다.
제론의 머릿속에 몇 가지 계획이 차곡차곡 쌓였다. 물론 그걸 실행할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제론은 오후 내내 저택을 살폈다. 저택에 사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정도였다. 그들이 보기에는 마치 염탐꾼 같았을 것이다.
그렇게 의심을 눈초리를 모른 척하며 저택을 살피고 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밤이 되자 제론은 아무도 모르게 저택을 빠져나갔다.
제론이 하려는 일은 유적을 밤에 몰래 방문하는 것이었다. 굳이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저택을 나온 제론은 곧장 유적으로 향했다. 유적은 수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기에 근방에도 제법 큰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만 위치가 포어트의 저택의 정반대쪽인지라 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물론 제론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다. 제론은 인적이 없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훌쩍 날아서 유적 근처에 내려섰다.
"이 유적은 좀 그러네."
제론은 눈살을 찌푸렸다. 밤인데도 곳곳이 환했다. 술집마다 떠들썩한 소리가 흘러나올 정도로 사람이 미어터졌다.
유적이 어딘지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입구가 환한 빛으로 둘러싸여서 어디서건 잘 보였다.
이 시간에도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보아하니 다들 학자거나 마법사인 듯했다. 개중에는 엔지니어로 보이는 사람도 몇 끼어 있었다.
이렇게 유동인구가 많은 유적은 처음이었다. 제론은 일단 유적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관광지였기에 돈만 내면 누구든 들어갈 수 있었다.
통행료는 싸지도 비싸지도 않았다. 제론은 일단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지 안에 들어와 보니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입구부터 모든 벽과 바닥에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어찌나 빼곡한지 빈틈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이곳은 제론에게도 상당히 유용한 곳이었다. 제론은 마법진을 찬찬히 살피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곳곳에서 마법진을 베끼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워낙 복잡해서 그냥 베끼기만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온 신경을 집중해 베끼는 사람들이 입구부터 시작해 안쪽 깊은 곳까지 잔뜩 있었다.
"한밤중인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대단하군."
사람이 많긴 했지만 규모가 워낙 크니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입구에서 100미터쯤 들어가니 거미줄처럼 길이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군데군데 병사와 기사가 지키고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경계가 심하지 않았다.
유적에서 가져갈 만한 것이라고는 마법진뿐이었는데, 유적의 벽이 워낙 튼튼해서 마법진 자체를 뜯어 가는 건 불가능했다.
제론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벽을 만져 보았다. 돌벽이었는데 느낌이 왠지 묘했다. 그냥 보통 돌로 만들어진 벽은 아닌 듯했다.
'하긴 그러니 이걸 파손시키는 게 불가능하지.'
기간트를 이용하면 부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기간트 소환이 금지된 곳이었다. 유적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에 아공간 간섭 마법진이 깔려 있었다.
란체 왕국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적이었기에 취해진 조치였다. 이곳 마을도 거의 도시에 가까운 규모였기에 아공간 간섭 마법진을 설치할 만한 재정은 충분히 마련이 가능했다.
제론은 더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사람이 없는 이유는 아직 그 전에 있는 다른 마법진을 다 베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건, 그저 유적을 구경하는 목적인 사람과 유적에 새겨진 마법진을 베껴 가고 연구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구경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은 밤이 되면 다 돌아간다. 마법진에 욕심이 있는 사람만 밤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물론 마법진을 베끼는 사람도 일찍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다. 그 경우 그들은 새벽같이 나온다.
그래서 이곳 유적은 밤이건 낮이건, 혹은 새벽이건 관계없이 언제나 사람이 많았다.
제론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인적이 점점 없어지더니 이내 사람이 아예 안 보였다.
경계병도 없었다. 유적이 워낙 크고 복잡해서 모든 곳에 병사를 배치하는 건 불가능했다. 이 경우 유적에서 무슨 짓을 하는 것보다는 길을 잃지 않게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게 훨씬 중요했다. 유적은 그 정도로 크고 복잡했다.
"굉장한 유적이군."
사실 유적보다는 이곳을 싹싹 털어먹은 란체 왕국이 더 대단해 보였다. 아마 이 유적의 지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지도를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유적은 유물 수집가나 유적 사냥꾼들에게는 좋은 표적 중 하나였다.
유적이 워낙 크고 복잡했기에 혹시라도 란체 왕국에서 미처 못 보고 지나간 곳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졌다. 란체 왕국이 얼마나 철저히 쓸어 갔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몇 년을 뒤지고 다녔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얼마나 돌아다녔는지 지도까지 만들 정도였는데, 란체 왕국은 그 덕분에 유적 근방에 엄청난 유동인구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제론은 그런 제반 사항을 떠올리며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유적의 중앙으로 가야 하는데, 그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유적의 중앙으로부터 끊임없이 초고대유적에서 흘러나온 에너지가 느껴졌다.
유적 중앙에 도착한 제론은 주위를 둘러봤다. 인적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도 누군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새벽이 되면서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온 것이다. 물론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아네모스."
휘류루루루룽!
바람이 뭉치며 아네모스가 나타났다. 제론은 팔을 들어 아네모스를 팔찌에 넣었다.
화아악!
강렬한 빛과 함께 제론의 몸이 유적 아래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