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 타히티 (3)
거기까지 하고 나니 이제 시간이 좀 생겼다. 슈린 왕국을 병합하는 문제는 더 이상 제론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그 모든 일은 자동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 남은 건 타히티뿐인가?"
타히티를 떠올리니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타히티를 얻어 기사로 부릴 생각을 하니 기대감으로 인한 희열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스히스도 실제 싸웠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힘과 능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니 타히티는 오죽하겠는가.
제론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유적 로비로 이동했다.
유적 로비에 도착한 제론은 곧장 15층으로 향했다.
이내 타히티가 나타났다. 타히티는 등장과 동시에 빛의 화살을 날렸다.
제론은 그것을 피하며 검을 뽑았다.
타히티와의 치열한 싸움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 싸움은 타히티를 무릎 꿇릴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 ☆ ☆
세 발의 화살이 동시에 날아왔다.
제론은 그것을 보며 눈을 빛냈다. 고작 이런 걸로는 쉽게 당하지 않는다. 제론의 검이 좌에서 우로 푸른 궤적을 그리며 움직였다.
콰아아!
길쭉한 초승달 모양의 빛이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 쏘아졌다.
콰과과광!
초승달이 화살 세 개를 동시에 휩쓸며 터트려 버렸다. 순수한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렇게 중간에서 요격하는 게 가능했다.
제론은 빠르게 자리를 떴다. 타히티와 대결하면서 한자리를 고수하는 건 바보짓이었다. 그게 아니면 미친 짓이거나.
벌써 유적 15층에 다시 내려온 지 한 달이 지났다. 밖은 이제 겨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제론은 그런 계절의 변화에 신경조차 못 쓰고 있었다. 타히티와의 싸움은 그런 여유를 가지지 못할 정도로 치열했다.
그 치열함 덕분에 제론의 실력은 큰 폭으로 향상되었다. 특히 원거리의 화살을 요격하기 위해 마나를 날려 보내는 기술이 엄청나게 늘었다.
이제 제론은 아주 적은 양의 마나로 훨씬 강력한 위력을 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런 마나를 외부로 발출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마나를 압축하고 또 압축해서 강력한 에너지를 밀집시킨 다음, 그걸 날리는 방식이었다. 모양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어서 타히티가 하는 모든 방식의 화살 공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그걸 넘어서 원거리로 타히티를 공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우우우웅!
제론의 검에 막대한 마나가 몰렸다. 보통 검이라면 완전히 박살이 났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양의 마나였다. 하지만 지금 제론이 쓰는 검은 그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버틸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났다.
검이 새하얗게 빛났다.
제론은 망설임 없이 타히티를 향해 검을 쭉 뻗었다. 그러자 새하얀 빛이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그것은 타히티가 쏘는 빛의 화살과 똑같았다.
콰우우우!
빛의 화살이 주변 공기를 일그러뜨리며 날아갔다. 그 화살이 타히티의 것과 다른 점이 있었다. 제론이 쏜 빛의 검은 날아가면서 주변의 마나를 탐욕스럽게 잡아먹었다.
그렇게 마나를 잡아먹으며 점점 덩치를 불려 갔고, 또 훨씬 강력해졌다. 당연히 빛도 점점 더 밝아졌다.
타히티는 그것을 보며 몸을 움직였다. 제론이 쏘아 보낸 빛의 검도 빨랐지만 타히티의 속도는 그보다 더 대단했다.
콰웅!
빛의 검이 타히티를 꿰뚫었다. 아니, 꿰뚫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빛의 검이 뚫고 지나간 건 타히티의 잔상일 뿐이었다.
타히티는 그곳에서 30미터쯤 떨어진 곳에 나타났다. 언제 준비를 했는지 활을 당긴 채였고, 거기에는 빛의 화살이 강렬한 존재감을 뿌리며 재워져 있었다.
순간, 그런 타히티의 앞으로 빛의 검 하나가 그대로 날아갔다. 이것은 타히티도 미처 피할 여유가 없었다. 타히티가 느끼기에는 마치 빛의 검이 그냥 코앞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
타히티가 다급히 활을 들어 올려 빛의 검을 막았다.
꽈아아아아앙!
타히티가 휘청거렸다. 폭발이 워낙 강해서 활로 막은 것만으로는 그 충격을 모두 해소할 수가 없었다. 뜨거운 마나 덩어리가 타히티의 몸에 쏟아졌다.
타히티의 몸이 흐릿해지더니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그 순간 타히티가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를 빛의 검이 지나갔다. 만일 이동하지 않았다면 직격당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동한 것만으로는 모든 위기를 해소할 수 없었다. 어느새 제론이 몸을 날려 타히티에게 달려든 것이다.
타히티는 또 이동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제론의 공격 타이밍이 너무 빨라서 이동하기 전에 활을 들어 막을 수밖에 없었다.
쩌어어엉!
제론의 일격은 엄청나게 강력했다. 그 정도 일격이 아니면 타히티에게 충격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모든 공격에 일일이 신경을 썼다.
타히티의 균형이 흔들렸다. 제론의 일격이 타히티에게 큰 충격을 줄 정도는 아니었지만 미묘하게 균형을 흔들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균형을 흔들어 준 것만으로도 타히티는 고속 이동을 쓰지 못했다.
쩌엉! 쩌엉! 쩌엉!
제론이 연달아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타히티는 그것을 막아 냈다. 제론은 허공에 붕 뜬 채로 검을 휘둘렀다. 마법이었다.
하지만 바닥에 발을 디디지 않으면 검격에 힘을 실을 수가 없기에 이중으로 마법을 썼다. 그래서 마치 허공에 다리를 콱 박아 놓고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타히티의 무기는 활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근접 전투가 벌어질 상황도 얼마든지 있기에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기가 있었다.
키이이이이잉!
타히티의 가슴에서 굉음이 울리며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을 본 제론은 긴장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벌써 몇 번이나 겪어 봤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처음 저걸 겪었을 때는 그 한 방에 죽을 뻔했다. 그대로 정신을 잃고 대결이 끝났다. 하지만 이제는 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콰웅! 콰웅! 콰웅! 콰웅!
가슴에서 새하얀 빛줄기 수십 발이 연달아 뿜어져 나왔다. 하나하나에 담긴 힘이 엄청났다. 처음 제론은 그 빛을 정면으로 맞고 정신을 잃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제론의 몸이 상하좌우로 조금씩 움직였다. 그렇게 움직일 때마다 제론의 발밑이나 좌우로 새하얀 빛줄기가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도 제론은 검격을 멈추지 않았다.
쩌엉! 쩌엉! 쩌엉!
타히티가 정신없이 활을 움직여 제론의 공격을 막았다. 가슴에서는 여전히 새하얀 빛줄기가 쏟아져 나가고 있었지만, 그건 제론에게 아무런 위협도 주지 못했다.
오히려 타히티가 그걸 발사하느라 제대로 제론의 검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꽈아앙!
처음으로 타히티의 활이 제론의 검격을 막지 못했다. 제론의 검이 타히티의 어깨를 때렸다. 어느새 제론의 검도 새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타히티는 어깨가 움푹 들어간 채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굽혔다. 제론은 그 틈을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검격을 날렸다.
콰우우!
제론의 검이 허무하게 바닥을 긁고 지나갔다. 타히티가 몸을 옆으로 굴린 것이다.
쉬아악!
어느새 타히티의 몸이 100미터나 멀어져 버렸다. 몸을 구르면서 다시 균형을 잡아 고속 이동을 쓴 것이다.
거리가 멀어진 이상 타히티는 다시 화살 공격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콰우우우!
타히티의 활에서 세 발의 화살이 또 날아갔다. 타히티는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연달아 화살을 계속해서 날렸다.
콰웅! 콰웅! 콰웅!
한 번에 세 발씩 수십 번에 걸쳐 화살을 날렸다. 마치 새하얀 폭발이라도 일어나는 듯했다. 타히티는 방향을 가리지 않고 마구 활을 쏴 댔다.
꽈앙! 꽈앙! 꽈아아아앙!
푸른 초승달이 무수히 쏟아져 나갔다. 제론이 날린 검격이었다. 그 초승달들이 타히티의 화살을 모조리 휩쓸며 폭발시켜 버렸다.
제론은 능숙하게 몸을 움직여 다시 타히티에게 접근했다. 이제 더 이상 타히티의 화살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또한 고속 이동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히티가 빠르게 움직이면 제론도 같은 속도로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한 번만 검격을 성공시키면 그때부터는 균형을 무너뜨리며 연속 공격을 할 수 있었다.
타히티는 그때마다 임기응변을 발휘해 미꾸라지처럼 도망쳤다. 하지만 아무런 피해 없이 도망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게 제론은 차근차근 타히티를 무너뜨렸다. 제론은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서두르다가 타히티에게 당한 적이 너무 많았다.
제론은 끝까지 평상심을 잃지 않고 타히티를 공략해 나갔다.
쩌엉! 쩌엉!
꽈과광! 꽈과과광!
타히티의 어깨가 움푹움푹 들어갔다. 더불어 가슴 부분의 강판도 완전히 찢어져 있었다. 내부 부품들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용케 부품이 망가지지는 않았다.
타히티의 내부는 강력한 마법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물론 그건 강판도 마찬가지였지만, 단번에 강판을 부수고 내부까지 뭉개려면 제론의 힘만으로는 어려웠다.
제론은 그 상태가 되어서도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검을 휘둘렀다.
꽈앙! 꽈앙! 꽈아아앙!
타히티의 배를 비롯해 허벅지와 팔뚝이 움푹움푹 들어갔다. 이제 타히티는 온몸에 성한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구석구석이 찌그러진 상태였다.
그렇게 되니 타히티의 움직임이 점차 둔해졌다. 구겨진 강판이 관절의 움직임을 방해해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그것은 고속 이동에 문제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타히티는 더 이상 고속 이동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고속 이동이 없는 타히티는 오히려 이스히스보다 훨씬 상대하기가 쉬웠다. 한데 이스히스를 상대할 때보다 제론의 실력이 훨씬 늘었으니 타히티가 제론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쩌저저저정!
타히티가 허물어지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제론은 그 틈을 이용해 타히티의 찢어진 가슴속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꽈과과과과광!
타히티의 몸 내부가 연이어 폭발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타히티의 움직임이 멎었다.
제론은 바닥에 내려서서 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후우우우욱! 드디어……!"
한 달이 넘는 시간을 투자한 끝에 드디어 타히티를 쓰러뜨렸다.
제론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타히티를 쳐다봤다. 타히티의 몸 곳곳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치 빛이 타히티의 몸을 부수며 뚫고 나오는 듯했다.
그리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제론은 다급히 마나를 끌어 올려 몸을 보호했다. 그리고 마법을 펼쳐 앞에 방어막을 겹겹이 쌓았다.
하지만 워낙 어마어마한 폭발이었는지라 모든 충격을 막을 수 없었다.
제론의 몸이 폭풍 속 가랑잎처럼 허공을 유영했다. 그리고 바닥에 처박혔다.
꽈앙!
바닥을 깊이 파고들었지만 제론의 정신은 멀쩡했다. 그 정도 충격으로는 이제 기절도 할 수 없었다.
제론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구멍에서 나왔다. 그리고 타히티가 폭발한 자리로 걸어갔다.
이스히스도 이런 식이었다. 아마 거기서 기둥이 솟아 나오리라.
위이이잉!
기둥이 솟아났다. 기둥 안에는 이스히스 때와 마찬가지로 작은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제론은 아공간에서 열쇠를 꺼내 상자의 열쇠 구멍에 넣고 돌렸다.
딸깍.
열쇠가 돌아가며 상자 내부에 있던 마법진이 정확히 맞물렸다.
화악!
상자 표면에 복잡한 문양이 나타나 빛났다. 마법진이었다.
철컥! 철컥! 철컥!
상자가 각 마법진의 문양에 따라 분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분리된 상자가 다시 조립되며 입체적인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화아아악!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점점 커졌다. 그 빛을 보며 제론은 이스히스를 얻던 때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빛이 자라 거대한 기간트가 되었다.
날렵한 몸에 거대한 활을 들고 있는 새까만 기간트, 타히티였다.
제론은 서둘러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타히티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댔다.
푸화학!
빛이 뿜어져 나오며 제론의 마나와 섞였다. 제론은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마나와 마나가 섞이는 특별한 느낌이 제론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느낌 속에서 제론은 잡힐 듯 말 듯 한 뭔가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찰나의 순간 사라져 버렸다.
제론이 다시 땅에 내려서서 타히티를 바라봤다. 제론의 눈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타히티가 제론을 향해 천천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쿠웅!
기사의 예를 취하는 타히티를 보며 제론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드디어 타히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