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2화 (103/217)

Chapter 6 슈린 가문의 몰락 (3)

"병사의 포섭이 끝났다고?"

"그렇습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수고했군. 프로인트는 뭘 하고 있지?"

"집에서 소일하면서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그쪽으로 보내. 병사를 완전히 우리 왕국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시켜."

"프로인트를 말입니까?"

엔트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 끌어들이는 데에는 프로인트보다 뛰어난 사람이 없었다.

프로인트는 분명히 그들을 에어스트 왕국의 진정한 백성으로 만들 것이다. 그것도 짧은 시간 안에 말이다.

"앞으로 그런 문제는 전부 프로인트에게 맡겨. 적당한 자리를 하나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제론의 말에 엔트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적당한 자리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마 에어스트 왕국은 향후 늘어나는 영토를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인트로 인해서 말이다.

"인원 지원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해 줘. 투자한 이상으로 돌려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제론의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엔트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긴장감을 조금 끌어 올렸다.

"귀족에 대한 협상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일단 그쪽에서 남작에 대한 몸값을 1만 5천 골드로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3만 골드를 질러 놓은 상황입니다."

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3만 골드를 받을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절충되어 2만 골드 정도만 받아도 충분했다.

물론 배상금은 따로 받아 낼 작정이었다. 아마 이번 협상이 끝나고 나면 슈린 왕국은 탈탈 털려서 당분간 손가락만 빨아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살아남은 기간트 라이더는 몇이나 있나?"

"일단 157명이 살아남았는데, 그중 64명이 남작 이상의 귀족입니다."

"그럼 93명이 기사로군. 그들의 몸값은 어떻게 책정되었나?"

"슈린 왕국 쪽에서 언급이 없기에 일괄 5천 골드로 불렀습니다. 그쪽에서 수락했습니다."

"잘됐군. 책정이 끝나면 시간 끌지 말고 바로 보내 버리도록."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어차피 기사의 경우는 에어스트 왕국으로 회유하기도 쉽지 않았다. 굳이 회유할 필요 없이 현재 보유한 사람들 중에서 라이더를 모집해 훈련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지금도 상당히 많은 수의 예비 라이더가 피나는 훈련을 받고 있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라이더의 숫자로는 그 어떤 왕국에도 뒤지지 않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많은 귀족을 사로잡았기에 몸값만 해도 엄청날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포로 중에는 파인트가 있었다.

"파인트는 어쩌고 있지?"

"거의 움직이지도 않고 있습니다."

"몸값은 얼마로 책정했나?"

"일단 100만 골드로 책정했습니다. 하지만 다 받을 수 있을지는……."

"적당히 조절해서 넘겨. 어차피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파인트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가문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똑똑히 지켜봐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제론은 모든 보고가 끝나자 손을 내저었다. 엔트가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갔다. 제론은 홀로 집무실에 남아 생각에 잠겼다.

이제 슈린 가문에 대한 복수가 끝나 간다. 얼마 남지 않았다. 남은 건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아마 슈린 왕국은 알아서 분열할 것이다.

☆ ☆ ☆

슈린 국왕은 힘없이 앉아 있었다. 솔직히 만사가 다 귀찮았다.

"폐하. 귀족들이 돌아왔습니다."

체크 남작의 말에 슈린 국왕이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그렇군. 가 봐야겠지?"

"그, 그야……."

체크 남작은 당황했다. 당연히 가 봐야 한다. 전쟁에 나섰다가 포로가 되어 고생하다가 돌아온 귀족들을 맞이하지 않으면 대체 어쩌잔 말인가.

"그래. 그래야겠지. 가 보지."

슈린 국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앞장서서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귀족들은 각자의 가문 사람들과 반가이 해후하고 있었다. 일부 귀족은 레늄 왕국 출신이었기에 레늄 왕국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그들의 몸값은 그쪽에서 냈다.

슈린 국왕은 거의 파티 분위기나 다름없는 광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전쟁에 지고 돌아와서 저리 당당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화가 났다.

게다가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아직도 전쟁 배상금 문제가 남아 있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은 슈린 국왕 앞으로 파인트가 다가왔다. 죽을죄라도 지은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걸 보니 화가 더 치밀었다.

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무사하니 됐다. 들어가라."

"예."

파인트는 간신히 대답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할 말이 없었다.

축 처진 어깨로 걸어가는 파인트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슈린 국왕이 나직이 혀를 찼다. 한심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은 핏줄이 파인트뿐이었으니까.

"체크 남작."

"예. 폐하."

"전쟁 배상금이 얼마라고?"

"아직 협의 중입니다. 일단 에어스트 왕국에서는 3억 골드를 요구했습니다."

슈린 국왕이 헛웃음을 지었다.

"허, 어이가 없군. 3억 골드?"

"물론 반대했습니다. 계속 협의 중이니 결국 합리적인 선에서 배상금이 결정될 것입니다."

"레늄 왕국은 어쩌고 있나?"

"적극적으로 협상에 응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

어차피 배상금은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

그리고 레늄 왕국은 슈린 왕국에 절대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슈린 왕국이 지원해 준 200기의 기간트 때문이었다. 물론 슈린 왕국이 지원했다기보다는 슈린 국왕이 개인적으로 지원한 거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4천만 골드 선에서 해결해 보게."

"예?"

체크 남작의 눈이 커다래졌다. 4천만 골드라니. 그건 배상금을 너무 후려친 가격이었다. 상대가 3억 골드를 요구했다면 최소한 1억 골드까지는 생각을 해야만 한다.

솔직히 체크 남작이 생각하기에도 에어스트 왕국은 충분히 3억 골드를 요구할 만했다. 막말로 에어스트 왕국이 그냥 힘으로 밀고 들어와도 슈린 왕국은 변변한 대항을 할 수도 없었다.

"1억 골드까지 가격이 올라가면 10년에 걸쳐 나눠 내는 방향으로 결정하게."

"알겠습니다."

그 정도면 어떻게든 해 볼 만했다. 체크 남작은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해후의 기쁨을 나누는 귀족들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봤다.

☆ ☆ ☆

"네이드 후작령에 인접한 5개 영지가 에어스트 왕국에 넘어갔습니다."

회의실에 침통함이 감돌았다. 전쟁은 끝났다. 배상금도 물기로 했다. 한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네이드 후작령에 인접한 영지가 비록 큰 영지는 아니었지만 이건 상징적인 문제였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에어스트 왕국에 투항했다.

"영주의 압송을 요청해야합니다."

"과연 그 요청을 에어스트 왕국이 받아들일 것 같나?"

"일단 요청은 해야 합니다."

귀족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슈린 국왕의 말에 조금이라도 편들어 주거나 찬성을 하는 귀족은 아무도 없었다. 슈린 국왕은 점점 지쳐 갔다.

"다른 영주들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귀족이 말했다. 슈린 국왕은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의 눈에 슈린 왕국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한 발 떨어져서 보니 각 귀족들 간에도 알력 다툼이 장난 아니었다. 마구 분열 중이었다.

슈린 국왕이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그 옆에서 회의를 지켜보던 파인트도 고개를 푹 숙인 채 차마 들지 못했다.

☆ ☆ ☆

슈린 왕국이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을 때, 레늄 왕국도 상당한 위기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슈린 왕국에 도움을 요청한 일은 어찌 되었느냐?"

레늄 국왕의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슈린 왕국이 여기서 더 뭘 도와줄 수 있겠는가.

"적은, 적은 어디까지 내려왔느냐!"

"국경을 넘어 곧장 수도로 진격 중이라고 합니다."

레늄 국왕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실 고작 200기의 기간트로 미테 왕국의 진격을 막는 건 불가능했다. 미테 왕국은 무려 500기의 기간트를 동원해 레늄 왕국을 도모했다.

국경에서 미테 왕국을 견제하던 200기의 기간트는 큰 피해를 입기 전에 후퇴해 버렸다. 아니, 도망쳐 버렸다. 원래 이런 상황이 오면 바로 도망치도록 미리 훈련을 받아 왔다.

그들은 슈린 왕국에서 지원해 준 기간트였지만, 실제로는 슈린 왕국의 배후에서 건네준 기간트였다. 당연히 슈린 왕국이나 레늄 왕국의 안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슈린 왕국와 레늄 왕국이 끝났다고 판단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공작을 벌이는 의미가 없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충분했다. 당분간 이곳은 분열로 인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걸로 그들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되었다.

그러니 레늄 왕국은 완전히 무주공산이나 다름없었다. 미테 왕국의 기간트들이 마치 자신의 왕국을 활보하는 것처럼 당당하게 밀고 내려왔다.

"결국 에어스트 왕국 때문에 무너지는구나."

만일 에어스트 왕국과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속이 쓰리다 못해 아팠다.

하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는 법이었다.

결과적으로 레늄 왕국은 끝까지 버텨 냈다. 남아 있는 여력을 박박 긁어서 악착같이 대항한 것이다.

미테 왕국도 굳이 무리를 할 생각까진 없었기에 처음 목표로 한 것들을 얻고는 한 발 물러났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레늄 왕국은 거의 무너진 거나 다름없었다. 일단 전쟁이 끝나자마자 내정에 온 힘을 기울이긴 했지만 다시 일어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슈린 왕국은 안에서부터 스스로 무너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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