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슈린 가문의 몰락 (1)
"이 사태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심각한 표정을 지은 귀족의 말에 슈린 국왕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지금은 짜증이나 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일단 무너진 성부터 복구하는 게 순서 같군."
"무너진 성을 복구하잔 말씀입니까? 그보다는 포로를 돌려받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단 인재가 너무 없습니다. 무너진 성을 복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귀족 확보가 되어야 모든 일이 원활하게 돌아갈 것입니다."
그 말을 시작으로 다른 귀족들조차 모두 반대 의견을 냈다. 슈린 국왕은 어금니를 악물었다.
사실 슈린 왕국은 아직 제대로 왕족에 대한 기강이 서 있지 않았다. 그나마 슈린 가문의 힘이 막강할 때는 다들 고개를 숙였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이번 학살 사태에 대한 책임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귀족들의 말투에 슈린 국왕의 어금니가 부서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불과 하루 전만 해도 이보다 훨씬 극존칭을 사용했다. 한데 이젠 보통 귀족이 공작을 대하듯 하고 있지 않은가.
"뭘 명확히 하자는 건가?"
"피해를 입은 가문에 제대로 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왕궁에 대한 불신이 팽배할 것입니다."
"끄응."
슈린 국왕은 지금 말을 꺼낸 귀족의 입을 뜯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분노를 표출할 때도 아니고, 그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왕국의 재정이 거기까지 감당하기엔 아직 힘드니 조금 시간을 두는 것이 좋겠네."
"왕국의 재정이 무슨 상관입니까? 그 일은 한 가문의 일인데 말입니다."
말인즉슨, 슈린 가문의 개인 재산으로 처리하라는 뜻이었다. 슈린 국왕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하지만 그 말도 틀리지 않기에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말을 꺼낸 귀족을 가만히 노려보기만 했다.
"후우, 그건 조금 더 시간을 두자고 말하지 않았나. 슈린 가문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 더 이상 말하지 말게."
그제야 말을 꺼낸 귀족이 한 발 물러났다. 슈린 가문에서 처리한다면 굳이 말을 길게 꺼낼 이유는 없었다. 사실 어차피 왕과 귀족 사이가 틀어져 버렸다.
'어쩌면 슈린 왕국은 이쯤에서 끝일지도 모르지.'
모두가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다. 슈린 왕국이 끝까지 살아남아 강국이 된다면 그들에게 떨어지는 권력과 금력이 어마어마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니 결코 쉽지 않을 듯했다. 대부분의 귀족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태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슈린 가문은 이번 일로 인해서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다. 사실 말이 왕궁이지 이 성도 슈린 영지의 성 아닌가. 성을 증축하려는 계획까지 짜 놨는데, 이대로라면 부수고 새로 지어야만 했다.
슈린 국왕은 침침해진 눈을 주무르며 손을 내저었다.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지. 너무 피곤하군. 내일 다시 얘기를 마무리하도록."
슈린 국왕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폐하!"
"안 됩니다! 사안이 급합니다!"
모든 귀족들이 일어나 외쳤지만 슈린 국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정말로 짜증이 났다. 자신의 편을 들어 주는 귀족이 어찌 하나도 없단 말인가.
슈린 국왕은 문득 등골이 서늘해졌다. 조금 전까지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는데, 생각해 보니 살아남은 귀족 중에 친국왕파는 한 명도 없었다.
즉, 슈린 가문에 충성하던 귀족이 모조리 죽은 것이다.
'어쩐지 이상하게 고립된 느낌이 들더니……!'
친국왕파가 모조리 사라졌으니, 남은 건 반국왕파와 중립파뿐이었다. 하지만 중립을 지키던 귀족들도 슈린 가문의 힘이 약화되면 반국왕파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설마 노린 건가?"
만일 노리고 한 짓이라면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이런 상황을 일부러 만들었다는 뜻 아닌가.
'하지만 대체 왜?'
그냥 다 죽여 버렸으면 끝 아닌가. 슈린 왕국의 주요 귀족이 몽땅 사라지면 왕국 자체가 분열하면서 사라져 버릴 텐데 말이다.
슈린 국왕은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때까지 계속 그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대체 그 붉은 실바는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가만, 붉은 실바라면 그놈인데……."
슈린 국왕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붉은 실바하면 딱 떠오르는 사람이 제론이었다. 한데 제론은 에어스트 왕국의 국왕 아닌가.
대체 어떤 국왕이 이런 위험한 습격에 직접 몸을 던진단 말인가.
그렇게 슈린 국왕이 고민에 잠겨 있을 때, 집무실 바닥이 시커멓게 물들더니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불쑥 솟아났다. 오랫동안 슈린 가문을 위해 일하는 미스트 드래곤의 수장이었다.
"왔느냐? 알아보라고 한 것은 어찌 되었느냐?"
"무사하십니다."
슈린 국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왕궁 습격으로 인해 왕족이 싹 죽어 버렸다. 이제 남은 왕족은 에어스트 왕국에 사로잡힌 파인트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스트 드래곤에게 명령을 내렸다. 파인트의 생사를 정확히 알아 오라고 말이다.
"살아남은 귀족도 많습니다. 분위기를 보니 조만간 몸값을 요구할 것 같습니다."
슈린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줘야지. 어쩔 수 없지. 자기 자식을 구하겠다는데 돈을 아끼지는 않을 테니까."
슈린 국왕은 다른 귀족들로부터 돈을 내게 만들 생각이었다. 일단 그 많은 귀족의 몸값을 왕궁에서 부담할 수는 없었다.
"조만간 에어스트 왕국에서 연락이 오겠군. 다른 소식은 없느냐?"
"없습니다."
사실 그 정도 정보만 해도 얻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에어스트 왕국에서의 활동은 어려운 점이 많았다. 정보를 수집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었다.
그 외의 다른 활동은 아예 시도할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사실 그동안 상당히 많은 명령을 받았다. 소문 유포나 암살 같은 명령이었는데,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었다.
"알았다. 가 봐라. 에어스트 왕국 쪽 상황을 잘 주시하도록."
"알겠습니다."
미스트 드래곤의 수장이 바닥으로 스며들듯 사라지자, 슈린 국왕은 몰려오는 피로를 떨치기 위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