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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99/217)

Chapter 5 습격 (2)

그렇게 죽일 사람을 다 죽인 제론은 당당하게 왕궁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공간에서 곧장 붉은 실바를 꺼냈다.

왕궁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기간트는 거대한 혼란을 몰고 왔다. 물론 워낙 어두운 밤이었기에 붉은 실바가 나타나자마자 발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론이 거기에 탄 다음 움직이기 시작하니, 바로 눈에 띄었다.

꽈앙!

붉은 실바의 주먹이 왕궁의 첨탑을 후려쳤다. 물리적 방어력을 높여 주는 마법진이 새겨진 벽이었는데도 사방으로 금이 쩍쩍 갔다.

그렇게 금이 가면서 마법진이 깨져 버렸다.

붉은 실바의 주먹이 같은 자리에 한 번 더 꽂혔다.

꽈앙!

꽈르릉!

첨탑 하나가 그대로 무너졌다. 첨탑의 중심이 되는 축을 부숴 버렸기 때문에 말 그대로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왕궁에 비상이 걸리고 난리가 났다.

"기간트다!"

"붉은 실바!"

붉은 실바는 엄청나게 유명했다. 예전에는 레늄 왕국의 귀족들이 앞다퉈 나서서 정보와 소문을 차단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럴 여력이 없어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소문이 퍼져 나갔다.

더구나 현재 전쟁을 벌이는 적국의 국왕이 타는 기간트가 붉은 실바이고, 별명이 붉은 학살자이니, 그걸 모를 수 없었다.

사방으로 병사들이 흩어졌다. 병사나 기사는 아무리 많아 봐야 기간트 싸움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간트를 보유한 기사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밤중이었다. 아무리 소란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사람이 갑자기 일어나 기간트를 소환해 싸울 수는 없었다. 나름대로 잠에서 깨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했다.

붉은 실바는 그러는 동안에도 착실히 주변의 건물을 부숴 나갔다.

꽈앙! 꽈앙! 꽈앙!

꽈르르릉!

"장미궁이 무너진다!"

"피해!"

곳곳의 건물이 무너졌다. 붉은 실바는 정확히 어딜 타격하면 건물이 무너지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주먹질 몇 번 하지도 않았는데 건물이고 탑이고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기간트는 뭐 하고 있는 거야!"

"폐하는! 페하는 안전하신가!"

"대체 아공간 감지 마법진은 왜 작동을 안 한 거야! 적 기간트가 어떻게 왕궁까지 들어올 수 있어!"

엄청난 혼란이 왕궁을 강타했다. 그들의 느끼는 당혹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슈린 영지는 기간트 공격에 대한 대비가 상당히 잘된 영지였다. 또한 성의 방어도 만만치 않았다.

한데 그 모든 방어망을 뚫고 왕궁에 기간트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혼란스럽겠는가.

붉은 실바가 첨탑을 비롯한 작은 궁을 각각 3개씩 부쉈을 때, 멀찍이서 기간트가 불쑥불쑥 나타났다. 이제야 왕궁에 거주하는 기간트 라이더가 준비를 끝내고 나타난 것이다.

제론은 기간트가 불쑥 나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쪽을 향해 달려갔다.

10기가 넘는 기간트가 곳곳에서 나타났는데, 비교적 가까이 뭉쳐 있었기에 갑자기 붉은 실바가 달려가니 다들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쿵쿵쿵쿵쿵!

붉은 실바의 속도는 경악할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거리를 없애 버린 붉은 실바가 바닥을 박찼다.

꽈앙!

허공에 높이 떠오른 붉은 실바가 미처 라이더를 받아들이지 못한 기간트 3기를 동시에 발로 차며 내려섰다.

꽈과광!

기간트 3기가 바닥을 뒹굴었다. 당연히 라이더는 그 옆에 서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붉은 실바가 착지하며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콰드득!

라이더 3명이 붉은 실바의 등과 다리에 깔려 그대로 절명했다.

그렇게 기간트 3기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킨 붉은 실바는 몸을 일으키며 바로 앞에 서 있는 기간트를 어깨로 받아 버렸다.

꽈앙!

기간트의 해치가 뜯어졌다. 그리고 기간트는 뒤로 쭉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꽈르릉!

벽 일부가 무너지며 기간트를 덮어 버렸다. 그 기간트에는 라이더가 막 조종석에 들어간 상태였는데, 어깨로 받히는 바람에 짓눌려 터져 버렸다.

그렇게 4기의 기간트를 없애는 사이 나머지 라이더가 죽을 각오를 하고서 기간트에 탑승해 무사히 해치를 닫았다.

키이이이이잉!

6기의 기간트가 눈을 빛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20기의 기간트가 불쑥불쑥 나타났다. 나머지 라이더가 준비를 끝내고 나온 것이다.

아무리 제론이라도 이번에는 그쪽으로 달려갈 수 없었다. 6기의 기간트가 포위를 한 상태였다. 그들을 제치고 달려가려면 못 할 건 없었지만 그렇게 해 봐야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

아차 하는 순간 26기나 되는 기간트에 둘러싸일 수 있기에 차라리 지금 눈앞에 있는 6기의 기간트부터 제압하는 것이 나았다.

붉은 실바가 검을 뽑았다. 제론은 기묘한 일체감을 느끼며 검을 한 차례 휘둘렀다.

부우웅!

검이 일으킨 바람이 바닥을 확 긁으며 깊은 고랑을 만들었다. 엄청난 광경이었지만 그걸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붉은 실바가 땅을 박차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검을 내리그었다.

꽈앙!

검격이 어찌나 빠르고 갑작스러웠는지 앞에 서 있던 기간트는 그것을 미처 막지 못하고 그대로 어깨를 허용했다.

콰드드득!

어깨를 내리친 검이 그대로 몸통을 가르며 비스듬하게 아래로 몸을 갈라 버렸다.

완전히 잘라 내지는 못했지만 조종석과 마나코어는 그 일격에 완전히 박살이 나 버렸다.

그 어마어마한 광경에 다들 경악해서 몸이 굳어 버렸다. 세상에 어떻게 단 일격에 기간트를 갈라 버릴 수 있단 말인가.

붉은 실바가 발을 들어 기간트를 휙 밀었다. 기간트가 쓰러지며 검이 뽑혔다. 그와 동시에 붉은 실바가 몸을 돌리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철컹!

옆에 있던 기간트의 목이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붉은 실바가 빙글 회전함과 동시에 목 잘린 기간트에게 한 발 다가갔다. 그리고 발차기를 했다.

꽈앙!

가슴이 움푹 파이며 기간트가 휙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쿠당탕!

순식간에 2기의 기간트를 처리한 붉은 실바가 다음 먹잇감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은 기간트의 수는 4기. 하지만 6기가 포위했어도 어쩌지 못한 붉은 실바를 그들이 당해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쩡! 쩡! 쩡! 꽈앙!

붉은 실바의 검이 4기의 기간트를 몰아쳤다. 슈린 성에 남은 기간트는 하나를 제외하고는 전부 크라테르였다. 크라테르가 아닌 하나는 베르였다.

당연히 붉은 실바를 상대하는 4기의 기간트도 크라테르였다. 붉은 실바는 베르의 마나코어를 가져다 개조한 기간트였다. 세나가 아니었다면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베르의 마나코어를 가져온 것도 모자라, 그 마나코어의 테페룸을 특별한 방법을 통해 가공해 출력은 물론이고 성능을 크게 개선한 기간트였다.

베르의 출력이 2.8이었고, 붉은 실바의 출력은 3.0에 가까웠다. 더구나 모든 부분이 개선되어 실제로 비교하면 에스타스보다도 뛰어났다.

그런 기간트를 탄 제론을 어떻게 크라테르 4기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냥 실바를 탄 제론이라 하더라도 막기 어려울 텐데 말이다.

꽈과광!

몇 번 검을 휘두르는가 싶더니 금세 4기의 크라테르가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사이 남은 20기의 기간트가 몰려들었다. 가장 먼저 달려든 것은 베르였다. 물론 붉은 실바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콰우우!

베르의 검이 붉은 실바의 가슴을 향해 날아왔다. 돌진하는 힘을 이용해 검을 내지른 것이다. 기간트의 무게를 이용해 흔히 쓰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진짜 사람이라면 절대 이런 식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빈틈이 많아지지 때문이다.

붉은 실바가 가볍게 옆으로 몸을 비틀며 허리를 살짝 뒤로 꺾었다. 인간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붉은 실바의 몸이 있던 자리에 베르의 검이 거칠게 지나갔다.

꽈득!

붉은 실바의 손이 베르의 팔뚝을 꽉 쥐었다. 그리고 검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팔을 휙 당겼다. 그러면서 뒤로 한 걸음 움직여 균형을 잡았다.

꽈과과광!

베르가 꼴사납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손에 쥐었던 검은 놓쳐서 멀리 떨어져 버렸다. 균형을 잃으며 자신의 힘을 이기지 못해 나동그라진 것이다.

크라테르와 베르의 차이만큼 다른 기간트와 베르의 거리가 벌어져 있었다. 덕분에 붉은 실바는 다른 기간트를 신경 쓰지 않고 벽에 처박힌 베르에게 달려갔다.

쿵쿵쿵쿵! 꽈앙!

빠르게 달려가다가 바닥을 박찬 붉은 실바가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대로 온 체중을 담아 쓰러진 베르의 가슴을 두 발로 찍어 뭉갰다.

베르가 한 차례 몸을 덜컥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가슴에 받은 충격 중 상당 부분이 라이더에게 전달되어 조종석에서 정신을 잃은 것이다.

베르의 훌륭한 충격 흡수 시스템 덕분에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당분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물론 붉은 실바는 후환을 남겨 두지 않았다.

콰득!

붉은 실바의 검이 순식간에 베르의 가슴을 꿰뚫었다.

베르를 처리한 붉은 실바가 몸을 돌렸다. 19기의 크라테르는 아직도 달려오고 있었다. 붉은 실바는 그들을 가만히 서서 기다리지 않고 마주 달려갔다.

쿵쿵쿵쿵쿵!

이렇게 서로 마주 달리는 상황은 제론이 무수히 많이 겪은 일 중 하나였다. 항상 선봉에서 달렸으니 매 전투마다 겪어 왔다.

그리고 이런 경우 점프가 가능한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더구나 제론은 점프를 한 상황에서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했기에 웬만해선 막기가 어려웠다.

달리며 허공에 떠올라 발차기로 가슴을 때리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가만히 서서 검을 올려치는 방식으로 대응을 해도 보통 허공에서 검을 옆으로 쳐 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균형을 잃어 오히려 피해가 커졌다.

하지만 그나마도 제론을 여러 번 겪어 대응책을 세운 뒤 엄청난 훈련을 쌓아야 가능한 방법이었다. 보통 처음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누구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쿵쿵쿵쿵! 꽈앙!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코앞에서 키보다 높게 점프를 해 버리니, 크라테르의 라이더 입장에서는 붉은 실바가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기간트의 한계와 맞물려 훨씬 더 큰 효과를 만들어 냈다.

붉은 실바는 달리는 속도까지 감안해 마주 달려오는 크라테르들의 중간쯤에 착지가 가능하도록 점프를 했다.

꽈과과과광!

5기의 크라테르가 나동그라졌다. 그러면서 주변 동료와 부딪쳐 서로 뒤엉켰다.

발로 상대를 찬 힘을 이용해 가볍게 바닥에 착지한 붉은 실바는 아주 차분하게 쓰러진 크라테르들의 가슴을 검으로 푹푹 찍었다.

콰득! 콰득! 콰득! 콰득!

순식간에 4기의 기간트가 늘어졌다. 그러는 사이 다른 기간트들이 허우적거리며 황급히 일어났다. 물론 붉은 실바는 그걸 그대로 두고 보지 않았다.

쿵쿵쿵!

콰득! 콰득! 콰득!

제대로 몸을 가누기 전에 달려들어서 검으로 찌르니 속절없이 또 당했다.

그렇게 3기의 기간트가 추가로 무너졌다.

붉은 실바는 간신히 균형을 잡아 막 자세를 갖춘 5기의 기간트를 향해 몸을 날렸다.

쿵쿵쿵쿵!

붉은 실바가 달려들자 다들 당황했는데, 그중 4기가 간신히 반응했다. 물론 붉은 실바는 반응하지 못한 나머지 기간트의 가슴을 검으로 꿰뚫어 버렸다.

콰득!

그렇게 총 8기의 기간트가 쓰러졌다. 이제 남은 기간트는 고작 11기에 불과했다. 처음 30기였던 걸 생각하면 너무나 처참한 결과였다.

쿵쿵쿵.

11기의 기간트는 달리던 속도를 급격히 줄이려 애썼지만 바로 멈출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참 떨어진 곳에서 간신히 멈춰 방향을 바꿨다.

붉은 실바는 그들을 가만히 보다가 유유히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쿵쿵쿵쿵쿵!

다들 당황했다. 이렇게 분탕질을 친 적을 못 잡으면 대체 그게 무슨 망신인가. 그것도 적은 하나뿐이었다. 게다가 실바 아닌가.

"잡아라!"

쿵쿵쿵쿵쿵!

11기의 크라테르가 서둘러 붉은 실바를 뒤쫓았다. 하지마 붉은 실바는 크라테르보다 훨씬 빨랐다.

꽈아앙!

붉은 실바가 바닥을 박차고 점프를 했다. 어마어마한 점프력이었다. 그렇게 단숨에 성벽을 넘었다.

성벽은 기간트의 키보다 높았다. 그걸 단숨에 넘은 것이다. 당연히 쫓아가던 크라테르들은 그게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조건 붉은 실바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일단 성벽을 부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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