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1화 (92/217)

Chapter 2 신형 기간트 (1)

제론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예상보다 효과가 훨씬 컸다. 슈린 왕국은 과감하게 라쿠스의 설계도를 공개했다. 하지만 그 약점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결국 해결을 하긴 하겠지. 한…… 3년쯤 걸리려나?"

설계의 근본적인 부분에 실수가 연달아 몇 번이나 들어갔고, 중간에도 이상하게 꼬여 있기에 그걸 다 바로잡고 약점을 제거하려면 3년도 잘 쳐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을 벌지 못할 테니까.

"일단 슈린 쪽부터 차근차근 정리하자."

슈린 왕국은 전쟁을 서두를 것이다. 라쿠스 문제가 제대로 터지기 전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했으니까.

그리고 제론도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아직 에어스트 왕국은 약소국이었다. 이제 막 개국한 작은 나라일 뿐이었다.

그런 왕국이 침략 전쟁을 벌이는 건 자칫 외부의 수많은 시선과 관심을 끌어올 수 있었다. 수많은 견제를 겪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방어전을 통해 적을 섬멸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에어스트 왕국은 그저 지키기 위해 발악한다는 이미지가 심어진다.

물론 그 이미지를 제대로 심기 위해선 바인이 상당히 애써야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번 전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야만 한다. 그래야 향후 하려는 모든 일에 탄력이 붙는다.

제론은 문득 유적 15층에 있는 기간트 타히티가 떠올랐다. 만일 타히티를 이길 수 있다면 새로운 기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타히티가 한편이 된다면 엄청나게 든든할 것이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고 민첩한 기간트는 굉장한 장점을 발휘한다.

"그런 녀석들로 군단을 이룰 수 있다면 아마 더 이상 두려울 게 없겠지."

뭐가 두렵겠는가. 빛의 화살을 수십 발씩 쏴 대고, 싸움으로 적을 압도할 텐데 말이다.

현 시대의 기간트로는 그들을 결코 막아 낼 수 없을 것이다. 설사 수천 대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해도 말이다.

대충 몇 기의 기사를 얻을 수 있을지는 예상이 가능했다. 제론의 허리띠에 남은 아공간의 수를 보면 된다. 제론의 허리띠에는 테오스를 넣는 공간 외에 총 30개의 빈 아공간이 있었다.

그중 하나에는 이스히스가 들어가 있으니 이제 남은 건 29개뿐이었다. 아마 유적을 클리어하다 보면 그 모든 아공간을 기간트로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왠지 다시 유적에 몰두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기간트를 모두 얻으면 더 이상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기간트가 약하다는 게 좀 문제이긴 한데……."

소드 마스터가 되어도 상대가 어려울 정도이니 강한 건 맞다. 하지만 초고대에는 제론 정도의 소드 마스터가 발에 차일 정도로 많았다.

그들이 여럿이서 달려들면 이스히스 같은 기간트는 금세 해체되고 말 것이다. 이스히스는 일대일 대결에 좀 더 특화된 느낌이었다. 소드 마스터가 둘만 달려들어도 당장 상대가 어려워질 게 확실했다.

그건 제론에게 상당한 위화감을 안겨 주었다.

테오스는 엄청나게 강력했다. 제론이 생각하기에 소드 마스터가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은 초고대문명의 기간트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했다.

한데 이스히스는 대체 왜 그렇게 약하게 만들었을까? 더구나 이곳 중앙 유적의 기간트 아닌가. 그렇다면 보통의 기간트보다 훨씬 강력해야 하지 않을까?

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제론은 문득 초고대문명의 일반적인 기간트는 어떨까 궁금해졌다. 꼭 한번 겪어 보고 싶었다.

일단 세나가 지금 한창 설계하는 기간트에 초고대문명의 기술이 상당 부분 들어가긴 하지만, 초고대문명의 기간트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뭐, 결국 기회가 있겠지."

중앙 유적을 클리어하다 보면 분명히 초고대문명의 기간트를 구경할 날이 올 것이다. 그것도 직접 몸으로 겪으면서 말이다.

제론은 그렇게 확신했다.

"자, 그럼 슬슬 전쟁을 부추겨 볼까?"

전쟁이 빨리 터질수록 좋았다. 적이 준비할 시간은 모자랄 테니까. 반면 에어스트 왕국은 충분히 준비가 돼 있었다.

베테랑 라이더로만 구성된 기간트 부대가 있었고, 그 뒤를 받쳐 줄 기간트 300기가 언제든 달려 나갈 수 있게 대기 중이었다.

또한 대부분의 훈련을 마치고 실전만 눈앞에 둔 기간트도 200기나 있었다.

또한 그 뒤를 받쳐 줄 라이더도 차근차근 양성 중이었다. 조만간 1000기의 기간트를 가지게 될 날도 머지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세나가 설계하는 기간트였다. 현재 양산형 기간트 중 가장 강하다는 켈룸보다 훨씬 강력한 기간트가 될 것이다.

에어스트 왕국의 모든 기간트를 그걸로 대체하면 근방에서는 누구도 도발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수천 기의 발굴형 기간트를 가져오지 않는 한 말이다.

"생각난 김에 세나나 보러 가야겠군."

물론 지금은 아니다. 내일 날이 밝으면 바로 가 볼 생각이었다. 일단 당장 할 일은 바인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전쟁을 부추겨야 하니 말이다.

"여, 영주님……."

세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제론을 바라봤다. 제론이 이렇게 갑자기 찾아올 줄 몰랐기에 기쁘면서도 당황스러웠다.

"아침부터 찾아와서 좀 놀랐나?"

"아, 아뇨! 그렇지 않아요! 이, 이쪽으로 앉으세요!"

세나는 제론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녀는 제론을 만나는 장소가 이런 공방이 아닌, 좀 더 분위기 있는 곳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제론은 허둥지둥하는 세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이렇게 보고 있으니 상당히 귀여웠다.

'그러고 보니 슬슬 결혼을 생각해야 하나?'

그동안 결혼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워낙 바쁘고 치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슬슬 결혼을 고려할 시기가 되었다.

독립해서 왕이 되었으니 안정감을 위해서라도 결혼이 반드시 필요했다. 외부에 보이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고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침묵이 이어졌다.

그 침묵 속에서 세나는 안절부절못했다. 오늘은 뭔가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그래서 가슴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제론이 생각을 정리하고 정신을 차리면서부터였다.

"참, 새 기간트의 설계는 어떻게 되어 가고 있지?"

"예? 기, 기간트요?"

세나의 표정에 진한 아쉬움이 깃들었다. 하지만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그 아쉬움을 걷어 내 버리고는 공방 한쪽으로 걸어갔다.

세나의 공방 곳곳에는 아공간으로 이루어진 수납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당연히 세나 외에는 아무도 열지 못했다. 그 안에 든 물건을 꺼낼 수 있는 건 오로지 세나뿐이었다.

세나는 아공간 수납장에서 설계도 뭉치를 꺼냈다. 책으로 엮으면 족히 몇 권은 나올 듯했다. 예전 제론에게 보여 준 이후로 얼마나 연구를 하고 개량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제론은 설계도를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저 설계도를 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걸 여기서 하기에는 좀 난감했다.

"가서 확인해 보고 금방 돌아올게."

제론의 말에 세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자마자 볼일만 보고 간다니 아쉽기 그지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모두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세나는 제론이 사라지자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래도 되나 몰라……."

왠지 야속했다.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거였다. 이해와 감정은 항상 같이 움직이지만은 않는다. 지금이 그랬다.

아무래도 이 기분으로는 일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세나는 공방에서 나가 자신의 침실로 향했다. 그동안 취하지 못했던 휴식을 몰아서 할 생각이었다.

세나는 침대에 누워 한동안 뒤척이다가 이내 잠들어 버렸다.

그렇게 시간이 쭉쭉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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