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유적 15층 (3)
꽈앙!
탁자 하나가 박살이 나 버렸다. 그 탁자를 부순 장본인은 슈린 왕국의 왕세자인 파인트 폰 슈린이었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평소에 잘 쓰지 않던 말을 내뱉을 정도로 흥분한 파인트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수하를 노려봤다.
보고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파인트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게 된 사내는 그저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뭐라고 대꾸할 말이 없었다.
"약점이라니! 우리 라쿠스에 약점이 있다는 게 말이 돼?"
파인트는 길길이 날뛰었다. 그렇게 탁자며 집기를 잔뜩 부수고 나니 조금 흥분이 가라앉았다. 그제야 다시 보고서를 훑어본 파인트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화를 낸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라쿠스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고, 이 결함은 전쟁 중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했다. 아니,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해결책을 찾아야 돼! 엔지니어와 마법사를 몽땅 데려와라!"
파인트의 명령에 수하가 흠칫 놀랐다.
"라쿠스의 설계도를 공개하실 생각이십니까?"
"큭!"
파인트는 미처 그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낼 생각만 했다. 한데 그런 큰 문제가 있었다. 라쿠스의 설계도를 공개할 수는 없었다.
"젠장! 애초에 이걸 개발한 놈들을 족치는 수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애초에 라쿠스의 설계도를 구해 온 것은 깁스 남작이었다. 한데 이제 더 이상 깁스 남작을 만날 수가 없었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깁스 남작에 관한 일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슈린 가문에 속해 있는 동안 충분히 신뢰를 받았으며, 엄청난 공을 세웠다.
어쨌든 지금은 깁스 남작을 찾을 수 없으니, 그가 관여했던 이 라쿠스의 설계도에 대해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든 수소문을 하면 구할 수야 있겠지만, 그래선 너무 늦는다.
"소문을 막아."
"소문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소문이 안 났다고?"
"예. 더 안 좋습니다. 정보가 되어서 정보 조직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파인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차라리 소문이 나는 것보다 훨씬 안 좋다.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고, 헛소리로 몰아붙이기도 쉽다.
하지만 정보는 그렇지 않다. 정보 조직을 통해 움직인다는 건 약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보로 가공되어 돌아다닌다는 뜻이었다.
정보 조직을 이용할 만한 자들은 라쿠스의 약점을 모두 안다는 뜻이니 정말로 심각했다.
파인트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파인트는 올 것이 왔다는 심정으로 들어온 수하를 바라봤다.
"계약 파기인가?"
"그, 그렇습니다. 라쿠스 인도 계약을 맺은 가문들이 일제히 계약을 파기했습니다."
"위약금을 받으면 되니 그 문제는 됐다."
파인트는 최대한 담담히 말했다. 하지만 속은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이번 일이 파인트에게는 마지막 기회였다. 만일 이걸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면 왕세자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라쿠스에 약점이 있는 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후우. 어쩔 수 없군."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라쿠스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특별한 자들에게 설계도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를 뵙고 오겠다."
파인트는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버렸다.
밖으로 나가는 파인트의 등이 한없이 작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