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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유적 15층 (1)
제론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침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더 이상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았다.
'이스히스를 얻다니! 그것도 기사로!'
솔직히 냉정하게 따지면 이스히스는 그리 대단치 않다. 물론 현재 나온 수많은 양산형 기간트에 비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그게 전부였다.
초고대문명의 기간트라는 점을 생각하면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하지만 이스히스에는 묘한 기대감과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제론이 직접 싸워 봤기에 알 수 있는 점이었다.
어쨌든 제론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만큼 이스히스를 얻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이스히스는 스스로 생각해서 움직인다. 제론의 명령을 얼마나 잘 이해할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그건 일단 시험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내일은 이스히스에 대해 좀 더 알아야겠어.'
이스히스에 대한 정보는 태블릿에도 없었다. 그 정보를 얻으려면 유적 안에서 찾아야 할 듯했다.
아예 정보가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아마 유적 어딘가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제론은 그것을 찾으면서 이스히스와 함께 전투하는 훈련을 할 계획이었다.
제론은 억지로 마음을 다스리며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았다. 이럴 때 굳이 잘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태블릿을 꺼냈다.
태블릿을 이리저리 조작하던 제론은 마법진을 심어 놓은 놈들을 추적했다.
"정말 특이한 놈들이야."
이들의 정보 조직은 거의 점조직에 가까웠다. 상부와 거의 접촉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령을 받는 방식이 특이해서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다들 정보 전달 방식이 달라서 제론도 계속 살펴보다가 딱 하나를 발견했을 뿐이었다.
특별한 장소에 지령을 가져다 놓으면 그걸 찾아서 이행하는데, 아무리 제론이라도 그걸 가지고 위치를 추적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렇게 열심히 마법진을 심었는데, 목표를 이루는 데에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저들이 어떤 정보를 주고받는지, 또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실을 알아냈다.
제론은 그렇게 알아낸 사실을 모두 바인에게 전달해 주었다. 아무리 쓸데없어 보이는 것들이라도 일단 바인의 손에 들어가면 상당히 괜찮은 정보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 부분을 그렇게 정리한 제론은 바인이 보고한 유적에 관한 정보를 확인했다.
사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도 있었다. 대륙 전역에 퍼져 있는 유적을 찾아, 그것들을 중앙 유적에 연결시키면 굉장한 힘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상태에서 더 이상 세력을 확장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이 안에 갇혀서 살 생각이 아니라면 사방으로 길을 열어 두어야만 했다.
"일단 레늄 왕국 안에 있는 건 몽땅 끝났군."
레늄 왕국에는 더 이상 남은 유적이 없었다. 어쩌면 아직 찾지 못한 유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다른 유적을 먼저 찾고, 그 다음에 시간이 많아지면 차근차근 찾는 편이 나았다.
"그럼 다음은…… 헥서 왕국을 훑어볼까?"
헥서 왕국에서 찾은 유적도 있고 하니, 그곳을 본격적으로 훑은 다음, 다른 왕국으로 넘어가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바인이 준 정보에 의하면 헥서 왕국에 존재하는 유적의 수는 모두 17개였다. 또한 유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도는 장소가 4군데 있었다.
확실히 바인은 대단했다. 헥서 왕국뿐 아니라, 다른 왕국의 유적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보내 주었다.
"좋아. 그럼 큰 그림을 그려 볼까?"
제론은 하이쓰 산맥의 유적에 있는 아티팩트를 이용하기로 했다.
태블릿을 통해 그 아티팩트를 제어할 수 있었다. 현재 아티팩트가 떠 있는 높이를 조절하면 훨씬 넓은 지역을 비출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세밀함을 버려야 하지만 지금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큰 그림을 그릴 생각이었으니까.
제론은 아티팩트를 조작해 더 위로 보냈다. 물론 한계는 있었다. 하지만 대륙 전체를 조망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순식간에 대륙 전도가 태블릿에 그려졌다.
제론은 또 태블릿을 조작해서 유적의 위치를 콕콕 찍었다. 대륙 전도에 유적 위치가 쫙 등록되었다.
제론은 그것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 외에 새로운 유적을 찾을 수도 있을 듯했다.
유적의 위치는 확실히 뭔가 규칙성이 있었다. 만일 다른 왕국의 유적까지 몽땅 찾아내고 나면 그 특별한 규칙을 알아내 미처 찾아내지 못한 유적을 발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가만, 그러고 보니 테페룸 광산이 어디쯤 있지?"
제론은 테페룸 광산 근처에 초고대문명의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만일 그 예상이 맞는다면, 테페룸을 얻을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
테페룸 광산의 위치는 어디나 극비로 취급한다. 그렇기에 테페룸이 나는 나라는 알아도 광산의 위치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일단 크란 제국과 란체 왕국에는 확실히 테페룸 광산이 있었다. 그 외에는 또 어느 왕국에 광산이 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또 있었다. 크란 제국이나 란체 왕국을 통하지 않고 나도는 테페룸의 양이 상당했다. 아마 한두 나라가 아닐 것이다.
그곳들을 알아내서 다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려면 더 많은 유적을 연결시켜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마티를 확보하고, 바인에게 훨씬 많은 정보를 전해 주어야 한다.
아마 바인은 그렇게 해 주면 테페룸 광산의 위치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내 예상대로라면 대륙의 테페룸을 내가 장악할 수도 있어.'
제론은 왠지 모를 묘한 확신이 들었다. 만일 대륙의 테페룸을 혼자서 장악할 수 있게 된다면 대륙을 들었다 놓을 수도 있었다.
대충 유적과 테페룸에 대해서는 그 정도로 정리를 마친 제론은 이제 본격적으로 레늄 왕국의 정보를 살폈다.
이제 레늄 왕국은 4개로 나뉘었다. 제론이 독립하며 에어스트 왕국이 생기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레늄 왕국에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가져왔다. 딴생각을 하는 영주들이 생겨난 것이다. 에어스트 백작령도 하는데 자신이 못 할 게 뭐냐는 식으로 생각하는 영주들이 나타났다.
물론 대놓고 그것을 표현하거나 움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물밑으로는 무수한 말과 행동이 오갔다. 혼자가 힘들면 손을 잡아서라도 하고자 했다.
그러니 정국은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제론은 그 모든 상황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있었다.
"그럼 슬슬 풀어 놓을까?"
슈린 공작가에서 양산을 시작한 기간트 라쿠스는 지난 내전에서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또한 이제 내전이 끝났으니 슬슬 외부로 판매를 모색하고 있었다.
딱 이 시기에 라쿠스의 약점을 풀어 놓으면 치명적인 일격이 될 것이다.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하기 전에 풀어야 한다. 그래야 훨씬 피해를 가중시킬 수 있었다. 슈린 가문은 지금 내전을 치른 이후라 자금이 바짝 말라 있었다.
그걸 회복시키기 위해 라쿠스를 이용할 건 자명했다. 그걸 막아 버려야만 했다.
"그럼 당장 시작해야겠군."
제론이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저 바인에게 지시만 내리면 끝이다. 아마 최선의 방법을 찾아내 이행할 것이다.
제론은 태블릿을 조작해 바인에게 지시를 내렸다. 연락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태블릿을 통해 지시 사항을 전달하면 바인이 가진 아티팩트에 그것이 고스란히 나타나게 되어 있었다.
바인은 그것을 그 어떤 것보다 먼저 처리할 것이다.
제론은 이제 슈린 가문과의 악연을 끝낼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복수에 미쳐서 모든 걸 내던지지 않으려 그동안 엄청나게 애써 왔다.
그래서 힘을 얻었음에도 참았다. 미래를 향한 발판이 제대로 마련되었을 때 복수를 마무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발판이 마련되었으니 모든 걸 끝낼 때가 되었다.
제론은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난 유적에 더 집중해야겠군.'
전쟁 준비 역시 지시만 내리면 된다. 모든 일을 처리해 줄 뛰어난 가신들이 있으니 그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제론은 그동안 자신의 힘과 능력을 더 키우는 편이 나았다.
제론은 다시 잠을 청했다. 이번에는 순식간에 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스히스를 얻은 흥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그날 꿈에서 이스히스를 다시 만났다. 물론 치열하게 싸웠다. 죽을 때까지. 하지만 그래도 꿈꾸는 내내 행복하고 즐거웠다,
☆ ☆ ☆
제론의 명령은 에어스트 왕국을 강타했다. 난데없이 전쟁 준비라니.
하지만 수뇌부는 다들 그것을 그냥 수긍했다. 슈린 가문과 에어스트 가문의 악연을 알고 있기에 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 안 벌어지더라도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그렇게 왕국 전체를 한 번 흔들어 놓은 제론은 유적으로 향했다.
이제 15층으로 가 볼 생각이었다. 전쟁이 나기 전에 유적에서 최대한 많은 힘을 얻어야만 했다.
유적 15층은 14층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다만 몸을 숨길 만한 곳이 많다는 점이 달랐다. 거대한 구조물이나 나무가 곳곳에 있었다. 기간트도 그곳에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이다.
제론은 차분히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면서 전투가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그렸다.
순간, 강렬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제론은 고개를 돌려 존재감이 생겨난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 어느새 거대한 기간트 하나가 서 있었다.
이스히스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이스히스는 하얀색이었는데, 지금 나타난 기간트는 새까맸다.
날렵한 체형을 가진 기간트였는데, 한 손에는 거대한 활을 들고 있었다.
"저건 이름이 뭐지?"
―타히티.
제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타히티를 쳐다봤다. 이름에 딱 어울리는 기간트였다. 또한 이번 층의 클리어 조건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맨몸으로 이기면 된다. 단순한 조건이지만 너무나 어려운 조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론은 자신감에 넘쳤다. 어쨌든 이스히스도 이겼다. 한데 형태가 다르다고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제론이 잠시 살펴보는 사이 타히티가 활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시위를 당겼다.
쉬이이이이이!
새하얀 빛이 길게 늘어나며 시위에 걸렸다. 순수한 에너지로 이루어진 화살이었다. 화살에 담긴 힘은 엄청났다. 그걸 느낄 수 있기에 제론은 깜짝 놀라 몸을 날렸다.
쌔애애액!
빛의 화살이 빠르게 날아갔다. 어찌나 빠른지 제론이 막 자리를 뜬 순간 그 자리에 그대로 꽂혔다.
꽈아아아앙!
어마어마한 폭발이 일어났다. 화살이 떨어진 자리를 중심으로 마나의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제론은 살짝 당황했다. 설마 이렇게 위력이 강할 줄은 몰랐다. 막대한 힘이 느껴지긴 했는데, 거기에 폭발력이 가해지니 상상을 초월했다.
제론은 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뽑았다. 방금 전의 폭발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그걸 해소하려면 검을 뽑아야만 했다.
검과 함께 쏟아진 마나의 결정이 몸을 순식간에 회복시켰다. 제론은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타히티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