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1화 (82/217)

Chapter 4 낚시

제론이 나타난 곳은 빈민가 깊은 곳이었다. 인적이 전혀 없었지만 제론은 이동과 동시에 몸을 날려 빠르게 자리를 피했다.

혹시 어떤 눈이 숨어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조심하는 게 상책이었다.

소드 마스터에 이른 제론의 움직임을 이렇게 어두운 밤에, 그것도 빛 한 점 없는 빈민가에서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론은 빠른 속도로 빈민가를 벗어났다. 그러면서 마법을 준비했다.

8개의 마나링을 이용해서 쓸 수 있는 마법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그중에는 당연히 모습을 감추는 마법도 있었다. 제론은 마나링을 가속시켜 마법진을 만들어 냈다.

샤아아아!

마법진이 부서지며 제론의 몸에 흡수되었다. 그러자 제론의 몸이 마치 허공에서 녹아내리는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제론은 모습을 감춘 뒤에도 빠르게 움직였다. 당연히 기척을 완전히 감췄다. 게다가 이동하면서 공기의 흐름까지 신경을 썼다. 아마 누군가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다.

목적지는 호텔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곳이었다. 빈민가를 벗어난 제론은 우범 지대를 단숨에 관통했다. 그리고 호텔 근처의 건물로 스며들었다.

어찌나 빠르고 은밀한지 굳이 모습을 감추지 않았더라도 전혀 발견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건물로 스며든 제론은 미리 파악한 대로 지하로 내려갔다. 3층 건물이었는데, 예전 레늄 왕국의 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상점과 주택이 결합된 곳이었다.

대외적으로는 지하가 없는 건물이었다. 워낙 교묘하게 숨겨져 있어서 지하실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제론은 즉시 입구를 찾아냈다. 제론은 지하실 입구에 특별한 장치가 설치되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누군가 문을 열거나 드나들면 내부와 외부로 그 사실을 알려 주는 장치였다.

만일 마법적 처리가 된 거라면 단숨에 무력화시켰겠지만, 이것은 마법이 완전히 배제된 순수한 기술력으로만 만들어진 장치였다.

제론은 문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론의 손에서 흘러 나간 마나가 문 구석구석으로 스며들었다.

콰득! 콰득! 콰드드득!

내부의 기계가 완전히 뭉개졌다. 워낙 단숨에 모든 장치가 부서졌기 때문에 신호 알림 체계가 완벽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도 일부 신호가 지하로 전달되었고, 또 일부는 외부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일단 충분했다. 제론은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제론의 눈에 긴 복도가 보였다. 이 복도 끝에 진짜 목적지가 있었다. 또한 이 복도 자체가 침입자를 위해 준비된 함정이기도 했다.

제론은 최대한의 속도로 복도를 주파했다.

콰과과과광!

충격파가 발생하며 복도의 모든 함정을 박살 내 버렸다. 제론이 워낙 빨리 움직였기에 함정 발동 시간이 제론을 미처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함정이 발동되었을 때는 이미 충격파가 그 뒤를 이어 함정 자체를 부숴 버렸다.

복도를 완전히 지난 제론의 눈에 널찍한 방이 나타났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10명의 사내가 보였다. 물론 제론의 몸은 마법으로 가려져 있었기에 그들이 본 것은 정확히 제론이 오며 박살 난 함정의 잔해였지만 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지금까지 정리한 정보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제론은 그 정보가 다른 곳으로 가는 걸 원치 않았다.

스아악!

어느새 나타난 제론의 검이 가로로 길게 그어졌다.

촤촤촤촤악!

10개의 목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피분수가 사방으로 뿌려졌다.

제론의 몸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시 움직였다. 제론은 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정보 뭉치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잡아냈다.

어느새 뒤로 빠진 제론의 손에서 거대한 마법진이 나타났다.

샤아아아!

화르륵!

불길이 쭉 쏟아져 나갔다. 엄청나게 뜨거운 불이었다. 그 불은 방 안의 모든 것을 날름날름 삼켜 버렸다.

불길이 퍼지는 속도가 가히 엄청났다. 제론은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털끝 하나 타지 않은 상태로 여유롭게 서 있었다.

주위를 슥 둘러본 제론은 나름 감탄했다. 사내들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 보고를 하는 모양이군. 아님 그보다 더 짧거나."

정보를 남겨 둘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주 모든 정보를 수거해 간다는 뜻이었다. 정보에 굉장히 신경을 쓰는 조직임을 알 수 있었다.

밖이 소란스러웠다. 외부로 빠져나간 신호가 동료를 불러온 모양이었다.

제론의 입가에 섬뜩한 미소가 걸렸다. 생각해 보니 굳이 도망갈 이유가 없었다. 저들이 자신을 어쩌겠는가. 기간트를 쓸 수도 없는 상황에서 진짜 소드 마스터를 상대로 말이다.

제론은 손에 든 서류를 아공간에 넣은 후 검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았다. 새하얀 광채가 주변에 휙휙 날아갔다.

퍼버버벅!

천장 일부가 날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몸에 구멍이 뻥뻥 뚫린 사람들이 쏟아졌다.

몰래 다가와 천장의 비밀 통로를 통해 제론을 덮치려던 자들이었다. 제론이 그걸 미리 알아차리고 먼저 공격한 것이다.

천장에 통로가 생겼다. 그곳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다들 놀란 눈으로 제론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으로 몸을 감춘 제론의 모습이 보일 리 없었다.

그리고 제론은 당연하게도 그들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제론이 천장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아아악!

길쭉한 마나의 실이 천장을 통해 바깥을 한바탕 휩쓸었다.

촤촤촤촤촤악!

그곳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동강 나며 피를 뿌렸다.

치이이익!

방 안으로 쏟아진 피가 즉시 증발했다. 그 정도로 열기가 엄청났다.

제론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리고 복도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복도의 장치는 몽땅 부서졌기 때문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물론 부서지지 않았더라도 위험하지는 않았겠지만 말이다.

복도를 통해 밖으로 나가자, 제론을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건물 자체가 대로와 우범 지대에 걸쳐서 있었기 때문에 양쪽에서 온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제론은 그들을 가만히 확인하다가 고개를 한 번 저었다. 적만 오지 않았다. 소란이 너무 크게 일어서 구경만 하려고 온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들까지 몽땅 죽일 수는 없었다. 제론은 확실한 적만 죽이고 싶었다.

'일단 찾아온 놈들은 하나도 안 놓친다.'

제론의 손에서 마법진이 만들어졌다. 그걸 본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에게는 허공에 갑자기 마법진이 떠오른 걸로 보였다.

파아아앙!

마법진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빛의 파편을 뿌려 댔다.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의 몸에 파편이 하나씩 박혔다. 워낙 빨랐기에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했다.

다들 기겁을 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제론은 피식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끝까지 남은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적일 확률이 높은데, 아무도 남지 않았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들을 처리할 시간이야 넘친다. 어차피 이곳에는 다시 오면 그만이었다.

"유적 하나 있으면 좋겠군."

또 유적이 아쉬워졌다. 유적이 있다면 언제든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제론은 문득 근처 유적에 대한 정보를 좀 확인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혹시 아는가. 허름한 유적이라도 하나 있을지 말이다.

원하던 목표를 달성한 제론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아무도 모르게 방으로 돌아가는 것 역시 어렵지 않았다. 제론에게는 공간 이동 마법진이 있었다.

다만 마법진 설치 장면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는데, 제론은 그것을 아주 간단히 해결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빈집을 이용했다. 집이 비었는지 아닌지는 기감을 통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제론은 은밀하게 호텔 근처의 집으로 스며들었다. 그 집에 오랫동안 비었는지, 아니면 잠깐 비었는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 집에는 지하실이 있었고, 제론은 곧장 지하실로 갔다. 그곳이라면 혹시 중간에 누군가 집에 오더라도 바로 들킬 위험이 없었다.

제론은 시약을 꺼내 정교하게 마법진을 그렸다. 그래도 몇 번 해 봤다고 익숙해져서 처음 그렸던 것보다는 좀 더 빨리 그릴 수 있었다.

마법진을 완성할 때까지도 집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제론은 씨익 웃으며 마법진으로 들어갔다.

이내 마법진이 온통 빛으로 휩싸였다. 그리고 빛과 함께 모든 것이 사라졌다.

제론은 호텔 방에 도착해서 커튼에 걸린 마법을 다시 확인했다. 마법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또한 그 마법을 간섭하는 어떤 것도 없었다.

어쩌면 제론을 감시하는 쪽은 지금 크게 당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커튼은 특수한 처리가 되어 있었다. 안에서 보면 그냥 보통 커튼이지만, 멀리서 특별한 도구를 통하면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제론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조용히 감각을 사방으로 퍼트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별다른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안이 보이지 않으니 분주하게 움직일 줄 알았는데, 막상 그러지 않으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신경을 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아니면 아까 그놈을 너무 믿었거나.'

나베 공작가는 확실히 제론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나베 공작가의 뒤에 도사린 세력도 제론을 주시할 것이다.

오늘 온 놈은 그들이 보냈다. 보아하니 지금까지 실패를 모르던 자였다. 그러니 믿는 게 당연하다. 만일 제론이 오늘 죽는다고 확신했다면 굳이 괜한 감시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이거 너무 안일한데? 지금까지 보여 준 것들에 비해서 지나칠 정도로 허술해.'

제론은 경각심을 가졌다. 어쩌면 저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닐 가능성도 있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그쪽으로 보고가 들어갔을 것이다. 제론은 슬슬 자신이 미끼로 심어 둔 자들의 동태를 살필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그걸 하려면 태블릿을 꺼내서 확인해야 하는데, 왠지 이곳에서 하기에는 꺼림칙했다. 제론은 적당한 장소를 찾아봤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마음 놓고 태블릿을 통해 미끼를 확인할 수 있는 곳 말이다.

그걸 확인하면 저들이 진짜 안일한 상태인지, 아니면 뭔가 제론이 생각지 못한 다른 것이 있는지도 알아볼 수 있었다.

제론은 호텔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몰래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미행이 따라붙겠지만 차라리 대놓고 쫓아오면 얼마든지 대처가 가능했다.

'싹 처리해도 그만이고.'

저들과는 양립할 생각이 없으니 최대한 강하게 나갈 생각이었다. 어쩌면 암중 세력은 자신이 제론 폰 에어스트라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약간의 변장을 통해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게 바꾸긴 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호텔을 나선 제론은 느긋하게 걸어갔다. 물론 감각은 최대한 활성화시켰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마법의 힘까지 동원했다.

특별한 감지 마법을 통해 감각의 범위를 극대화했다. 제론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을 몽땅 확인하면서 걸어갔다. 그래서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었다.

'호오, 이것 봐라?'

사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느껴졌다. 그들의 행동으로 느껴지는 감정은 당황이었다. 다들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나타날 줄 몰랐다는 뜻인가?'

이로써 하나는 확실해졌다. 저들이 호텔방 안을 다른 방법을 통해 감시한 건 아니었다. 오늘 일을 벌인 그 사내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중 제론이 아까 박아 놓은 마법의 기운을 가진 자들도 상당히 많았다. 굳이 찾아다니며 분류해 처리하는 번거로움을 없앨 수 있게 되었다.

제론은 빈민가 쪽으로 향했다. 누군가를 처리하는 데 그보다 좋은 장소는 거의 없었다. 그곳이 아니라면 다들 도시 밖으로 유인해서 해치워야 하는데, 그건 더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렸다.

'50명도 넘는군. 상당한데?'

이들은 아마 정보원이라기보다는 누군가를 처리하기 위한 암살자나 타격대에 더 가까울 것이다. 물론 감시를 위한 정보원 역할도 동시에 할 수 있는 자들임이 분명했다.

즉, 상당히 뛰어난 재원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자들을 50명이나 동원했다는 건 그 조직의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단적으로 말해 주는 일면이었다.

그들에게는 제론 말고도 감시해야 할 대상이 잔뜩 있을 것이고, 또 처리해야 할 일도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한데 제론 하나를 위해 50명이 넘는 인원을 동원했다는 건, 그들을 제외하고도 충분히 여력이 남는다는 의미 아닌가.

제론이 빈민가로 접어들었다. 그들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제론을 감시했다. 슬슬 감시 자체가 일정한 패턴을 띠게 되었다. 순간적인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다.

제론이 노리던 때가 바로 지금이었다.

마법의 힘을 제거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가까이 접근했다. 제론은 즉시 마법을 풀어 버렸다. 순식간에 정신적 여유가 찾아왔다. 이제 저들을 감시하면서도 지극히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제론이 갑자기 속도를 높이며 골목으로 쑥 들어가 버리자 뒤쫓던 자들이 당황했다. 딱 마음을 놓은 그 순간에 당해 버린 것이다.

다들 다급히 움직였다. 워낙 다급해 움직임이 딱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몇 명이 유기적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길을 잘못 들었다.

그리고 제론은 그들을 놓치지 않았다.

제론은 순식간에 담장 몇 개를 넘었다. 제론의 목표는 약간 동떨어진 자들이었다.

쫓아가던 자들이 골목에 들어섰지만 그들은 제론의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 순간 3명의 사내가 힘없이 쓰러졌다. 제론의 일격에 내장이 박살 나며 즉사한 것이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제론은 다시 은밀히 움직였다. 적의 기척은 하나도 남김없이 체크한 상태였다. 가장 멀리 떨어진 자가 다음 목표였다.

콰득!

제론의 손이 사내의 목을 비틀었다. 이번에도 즉사였다. 그렇게 또 하나를 처리한 제론이 이번에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골목을 지나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렇게 훤히 보이는 곳에 나타났는데 제론을 발견하지 못할 리 없었다. 다들 섬뜩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이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

다들 다급히 제론을 쫓아 움직였다. 워낙 당황스러웠고, 또 갑작스러웠기에 이번에도 유기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건 쉽지 않았다.

몇 명이 전체적인 움직임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제론이 사라졌다.

제론은 그들을 농락하듯 시간을 끌며 하나하나 처리했다. 결코 무리하지 않았다. 또한 결코 서두르지도 않았다.

제론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쫓는 사람들만 고려하지 않았다. 분명히 먼 곳에서 여기를 지켜보는 감시의 눈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모두 보여 주지 않았다. 그저 조금 빠르고 강하다는 인식만 심어 주었다.

제론이 자신을 쫓아온 자들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움직임이 서로 어긋나는 바람에 습격할 기회가 많아졌다.

제론은 그들을 모두 처리한 다음 적당한 자리를 찾았다. 확실히 빈민가라서 그런지 빈집이 많았다. 그중 적당한 장소 몇 군데를 본 다음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면 된다.

모습을 감추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쓸 생각이었다. 제론은 아무도 없는 집으로 일단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지하실이 있는 집은 아니었지만 사방이 꽉 막힌 방은 있었다. 제론은 일단 그곳으로 가서 손을 펼쳤다.

지이잉!

손바닥 앞에서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산산이 부서지며 제론의 몸에 흡수되었다. 제론의 모습이 서서히 엷어졌다. 그리고 이내 사라져 버렸다.

모습을 감추는 투명화 마법을 쓴 것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마법이었고, 유지하는 건 더 힘들었지만, 현재 제론의 능력으로는 얼마든지 펼치는 게 가능했다.

최근 제론은 9번째 마나링에 대한 단초를 얻은 상태였다. 이번에 암시장에 와서 각종 유물과 아티팩트를 살펴본 성과였다.

몸을 투명하게 만든 제론이 방에서 나갔다. 일부러 집에 들어올 때 문을 활짝 열어 놨기 때문에 그곳으로 그냥 빠져나가도 전혀 의심 살 일이 없었다. 아마 제론을 감시하던 자들은 아직도 제론이 이 집에 있다고 믿을 것이다.

제론은 몸을 감춘 채로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신경을 집중했다. 혹시 이 근처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멀리서 감시하던 자가 의문을 가지고 다가올 수도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그를 처리해야만 했다. 그리고 멀리서 자신을 감시한 방법도 알아내고 말이다.

아무튼 제론이 그곳을 완전히 벗어날 때까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제론은 유유히 빠져나와 처음부터 봐 뒀던 집으로 들어갔다.

제법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이 분명했다. 집안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또한 밀폐된 방도 있었다. 그야말로 제론이 딱 원하던 장소였다.

제론은 그곳으로 들어갔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극도로 조심해서 움직였고, 문도 아주 살짝만 열고 들어갔다.

그렇게 자리를 잡은 제론은 본격적으로 태블릿을 꺼내 미끼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흥미로운 낚시가 말이다.

☆ ☆ ☆

제론에게 풀려난 다섯 사내는 곧장 가이츠 남작에게로 갔다.

그리고 실패에 대한 보고를 했다. 당연히 가이츠 남작은 노발대발했다. 하지만 그들은 굳이 거기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더 중요한 만남이 남아 있었다.

아베티스 영지의 외곽에 허름한 선술집이 그들의 목표였다. 선술집에 들어간 다섯 사내는 긴장한 얼굴로 안으로 깊이 들어갔다.

술집 가장 깊숙한 곳에 작은 문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지키는 덩치 큰 사내가 있었지만 그들의 얼굴을 미리 알고 있는 듯 제지하지 않고 들여보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간 사내들은 긴장한 눈으로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복도 끝에는 또 작은 문이 있었는데, 그 문 앞에 선 다섯 사내는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다.

끼이익.

이내 문을 열고 들어간 다섯 사내는 순간 강렬한 안광을 마주하고는 숨이 멎을 것처럼 놀랐다.

"헙!"

"거기 앉아라."

안에는 단단한 체구의 중년인이 책상에 앉아 있었는데, 그의 안광이 다섯 사람을 쫙 훑고 지나갔다. 그들은 그 눈빛만으로도 벌벌 떨었다.

"실패했다면서?"

중년인의 말에 사내들이 그대로 굳었다. 제대로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멍청하게 실패만 하고 그냥 온 건 아니겠지?"

다섯 사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입도 뻥끗 못 했다. 그저 덜덜 떨기만 했다.

중년인의 안색이 변했다.

"정말 실패만 하고 달랑 목숨만 건져서 왔나?"

다섯 사내가 머뭇거리다가 억지로 입을 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중년인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죄송할 거 없다. 그냥 죽으면 되니까."

다섯 사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중년인의 눈빛이 강렬해지면 강렬해질수록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공포에 온몸이 잠식당했다.

"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다섯이 동시에 외쳤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기회? 무슨 기회?"

"다시 가서 싹싹 털어 오겠습니다."

"싹싹 털어 와? 그놈이 어디 있는 줄 알고?"

"아벤드로 간 게 확실합니다."

중년인이 피식 웃었다. 그도 이미 정보를 들어서 알고 있었다. 제대로 짐작하나 슬쩍 떠본 것뿐이었다.

"아벤드에 가면 그놈을 찾을 수는 있나?"

"찾을 수 있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다섯 사내가 과도한 자신감을 보였다. 당연했다. 그들은 아벤드에 독자적인 정보망을 구축해 뒀다. 물론 대단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사람 정도는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은 확신했다. 제론이 허름한 여관에 묵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화려한 호텔을 위주로 조사하면 금방 답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그놈을 찾으면 뭘 털어 올 셈인데?"

"모든 걸 싹 털어 오겠습니다. 그놈이 뭘 하려는 건지, 뭘 하는지. 또 뭘 했는지. 몽땅 털어 오겠습니다."

중년인이 눈을 빛냈다. 그러자 다섯 사내가 입을 꾹 다물고 덜덜 떨었다.

"그놈이 누군지 먼저 알아내라. 정체를 알면 다루기가 쉬워지거든."

루이네와 함께 온 사람이 에어스트 백작이라는 사실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다. 제론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하이쓰 산맥에서 만났던 루이네와 기사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다.

중년인은 자신했다. 만일 상대의 정체만 확실히 파악하면 그를 파멸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을 수 있다고 말이다.

"시간은 열흘이면 충분하겠지?"

"마, 맡겨 주십시오."

그렇게 대답하며 물러나는 다섯 사내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고작 열흘이라니. 아벤드에는 텔레포트 게이트가 없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아벤드까지 가는 데에만 해도 사흘이 넘게 걸린다.

한데 그 안에 정체를 알아내라니. 시간이 빠듯해도 너무 빠듯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중년인은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보다 더 두려운 존재였다.

다섯 사내가 밖으로 나가자 강렬하게 빛나던 중년인의 안광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리고 피곤한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몇 번이나 쓸었다.

"부하 하나 만날 때마다 이 짓을 하려니 피곤해 죽겠군."

중년인이 쓰는 것은 고대의 비술 중 하나였다. 중년인이 속한 조직에서 상위 계층에 오르면 익힐 수 있는 비술이기도 했다.

물론 그 비술을 쓰기 위해선 사전 준비가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그 준비의 대부분이 비술에 당하는 사람에게 들어간다. 특별한 시술을 통해 공포심을 마음대로 자극할 수 있게 만드는 비술이었다.

중년인의 부하들은 모두 비술에 관련된 시술을 받았다. 그래서 그들은 조직의 상급자에게 절대복종한다. 안 그러면 죽음보다 두려운 공포가 온몸을 잠식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대체 그놈의 정체가 뭐지?"

중년인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턱을 쓰다듬었다. 난데없이 이상한 놈이 하나 등장해서 일을 망치고 있었다. 이 영지는 최대한 빨리 나베 공작가에 넘어가야 한다.

그래야 조직의 일이 수월해진다. 만일 그게 안 되면 조직의 요직에 앉는 건 포기해야만 한다. 그가 속한 조직에는 인재가 너무 많아서 위로 올라가는 경쟁이 치열하기 그지없었다.

어쩌면 아벤드에 있는 조직의 정보망이 벌써 그를 처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보여 준 능력을 고려해 보면 그리 쉽게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직접 얼굴을 보면 인상착의로 대충 누군지 찍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중년인은 사람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래서 전 대륙의 유력자는 몽땅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만일 실제로 그 사람을 한 번 보기만 하면 단번에 누군지 알아볼 자신이 있었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그가 이곳 아베티스 영지에 나타났을 때 확인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말이다.

"그때 자리를 비우는 것이 아니었는데."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이 그렇게 급박하게 진행될 줄은 몰랐다. 가이츠 남작을 너무 믿었던 대가이기도 했다.

중년인은 고민에 잠긴 얼굴로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작은 마법진 하나가 바닥을 타고 흘러와 그의 몸에 스며드는 광경을 말이다.

마법진은 은은하게 빛났다가 산산이 부서지며 중년인의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중년인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 ☆ ☆

제론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조금 전 정말로 어려운 마법 하나를 성공시켰다.

가까이 있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마법이었지만 이렇게 원거리에서 그걸 성공시키려면 보통 능력과 집중력으로는 불가능했다.

솔직히 제론도 단번에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한데 성공해 버렸다.

이번 마법의 성공으로 9번째 마나링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다섯 사내 중 하나를 선택해 그의 몸에 설치된 모든 마법을 싹 옮기는 마법이었는데, 그걸 원격으로 해낸 것이다.

사실 8개의 마나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마법이었는데, 다섯 사내의 몸에 설치한 마법에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 뒀기에 가능했다.

어쨌든 마법이 성공한 덕분에 앞으로 아베티스 영지에 있는 적의 상당히 중요한 인물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또 뭘 보는지, 누굴 만나는지 전부 말이다.

제론은 잠시 쉬면서 마나를 안정시켰다. 그리고 체력을 회복했다. 다음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았다.

잠깐 시간을 가진 제론은 다시 태블릿을 통해 다음 정보를 확인했다. 오늘 자신을 죽이려고 왔다가 돌아간 사내를 살펴볼 차례였다.

☆ ☆ ☆

"실패? 네가?"

아벤드의 정보를 총괄하는 지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섀도우소드가 실패할 줄은 몰랐다.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만해도 가볍게 생각했다. 한데 일이 참으로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목표가 펠젠과 접촉했다. 둘은 마치 서로 잘 아는 사이 같았다. 그래서 좀 더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 한데 목표가 기간트를 팔아 돈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칫 그 돈이 아베티스 영지로 흘러가면 상황이 악화되기에 결단을 내렸다. 섀도우소드를 동원해 단숨에 일을 정리해 버리기로 한 것이다.

한데 실패라니, 섀도우소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그 어떤 어려운 임무도 척척 해냈다. 한데 실패한 것이다.

새삼 상대에게 경각심이 들었다.

대체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더니 허락도 구하지 않고 누군가가 문을 열었다.

쾅!

부서질 듯 문이 흔들리며 열렸다. 그리고 사내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큰일 났습니다!"

지부장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들어온 사내를 노려봤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하지만 수하의 이어지는 말에 그의 안색도 창백해지고 말았다.

"지하 정보 수집처가 무너졌습니다!"

"뭣이!"

지부장이 벌떡 일어났다. 지하 정보 수집처는 각 도시의 유명 호텔 근처에 만들어 정보를 모으는 곳이었다. 그곳을 만드는 데 들어간 돈을 생각하면 이렇게 무너져선 결코 안 되는 장소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누군가 침입해서 정보원을 싹 죽였습니다!"

"경비병은! 경비병은 뭘 하고 있었단 말이냐!"

"그들까지 모두 당했습니다!"

지부장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만일 그렇다면 이건 누군가가 계획적으로 습격을 했다는 뜻이다. 조직의 정체를 아는 누군가가 말이다.

'설마 조직 내의 경쟁자들은 아니겠지?'

조직 내에선 각 도시의 정보를 총괄하는 지부장들의 위로 올라가기 위한 권력 다툼이 엄청났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는 경우는 없었다.

조직이 건재해야 위로 올라간 자리에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다들 그걸 알기에 서로 알력 다툼은 해도 무력을 쓰지는 않았다.

한데 누군가 그 균형을 깨 버렸다면,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선 안 된다. 균형을 깬 사람을 내버려 두면 그 사람만 계속 승승장구할 테니까 말이다.

"끄응."

지부장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골치가 지끈거렸다.

"감시하던 놈은 어쩌고 있느냐?"

"방금 호텔을 나섰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쫓아. 보통 놈이 아니니까 조심하고 인원을 잔뜩 보강해."

"알겠습니다."

"명심해. 그냥 감시만 해. 제대로 싸울 놈들은 따로 보내 줄 테니까."

거기까지 말한 지부장이 섀도우소드를 바라봤다.

"명예 회복의 기회를 주지. 해 보겠느냐?"

"맡겨 주십시오."

섀도우소드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하고 말 것이다. 혼자 나서는 게 아니니 자신 있었다.

동료들이 다 죽어 나가도 상관없었다. 그들이 난리를 치면 반드시 빈틈 하나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 빈틈 하나면 된다.

'무조건 죽인다.'

섀도우소드가 주먹을 꽉 쥐며 밖으로 나갔다.

지부장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수하에게 내리던 명령을 마무리했다.

"타격대를 모아. 전부 섀도우소드를 지원하라고 전해. 타격대가 목표에 접근하면 적당히 정보원은 뒤로 빼. 잘못하다간 구멍이 커진다."

"예.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수하가 밖으로 나가자, 지부장이 자리에 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지부장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인상을 썼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정도로 철저히 당한 건 의문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조직 내에 있는 놈이 날 물 먹이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떤 놈이지?"

자신을 견제하는 건 용서해도 정보 수집처를 무너뜨린 건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걸 다시 구축하려면 엄청난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어떤 식으로 무너졌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호텔 쪽도 정비가 필요할지 모른다.

만일 호텔까지 손봐야 한다면 훨씬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 많은 돈과 시간, 그리고 인력을 써야 하니 얼마나 많은 질책을 받겠는가. 어쩌면 지부장 자리에서 밀려날 수도 있었다.

"누군지 잡히기만 해라. 아주 갈아 마셔 줄 테니까. 으드득."

지부장은 이를 갈고 눈을 감았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아무래도 조금 눈을 붙여 둬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지부장이 눈을 감고 피로를 풀고 있을 때, 마법진 하나가 바닥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그리고 그대로 지부장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산산이 부서진 마법진이 지부장의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

☆ ☆ ☆

제론은 태블릿을 끄고 아공간에 넣었다. 이제 볼 건 다 봤다. 제대로 마법진을 심었다. 이대로 몇 번만 더 하면 적의 심층부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미있군."

이번에는 훨씬 수월하게 마법진을 심을 수 있었다.

마나 컨트롤이 늘어난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가까워서 힘이 좀 덜 들었다.

어쨌든 이번에 확인한 덕분에 자신을 노리고 적 조직의 타격대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섀도우소드가 그들과 함께 틈을 노린다는 것도 알아냈다.

몰랐어도 당하지 않겠지만 이렇게 알았으니 더 당할 일이 없었다.

"그럼 슬슬 모습을 드러내 볼까? 아무래도 여기서 다 처리하는 게 낫겠지?"

그 정도로 하면 아벤드에 적이 구축한 정보망이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티만 있으면 아벤드도 장악할 수 있었을 텐데 좀 아쉽긴 하군."

제론은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정말로 유적이 없는지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생각한 건 즉시 실행에 옮기는 게 낫다. 제론은 곧장 바인에게 연락해 아벤드 근처에 유적이 있는지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현재 바인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게 커진 상태였다.

제론은 레늄 왕국 내에서 얻은 유적을 토대로 엄청난 정보망을 구축했다. 마티를 이용한 정보망이었기에 정확하고 안전했다.

그걸 몽땅 바인에게 넘겼다. 당연히 제약은 걸었지만 그쯤이야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거대한 정보망을 한꺼번에 얻은 덕분에 바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인은 제론의 명령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얻은 능력을 토대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제론은 바인에게 연락한 뒤, 빈집을 나섰다.

빈민가는 지금 온통 들썩이고 있었다. 적 조직에서 나온 자들이 빈민가를 들쑤시며 제론을 찾아다니는 중이었다.

그러니 제론이 나오니 대번에 그들에게 보고가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제론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제론은 느긋하게 걸었다. 이제 급할 것이 전혀 없었다. 오는 족족 쳐 죽이고 빈틈을 봐서 빠져나가면 된다.

사실 완전히 무너뜨려 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 명목이라도 유지해야 이곳 지부장이 더 상위의 조직원을 만나기라도 할 것 아닌가.

'마법진을 좀 손봐야겠군. 그냥 옮기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새끼를 낳는 것처럼 새로운 마법진을 만들어 붙이는 방식으로 가는 게 낫겠어.'

제론은 머릿속으로 새로운 마법과 마법진을 구상하며 걸음을 옮겼다.

"저기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고, 수많은 사내들이 달려왔다. 하나같이 손에 흉험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제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달려드는 사내들을 맞이했다. 일단 손을 뻗어 가장 가까이 있는 자의 검을 단숨에 빼앗았다.

검을 빼앗긴 자도 어떻게 뺏겼는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절묘하고 빠른 움직임이었다.

제론은 적의 검을 빼앗아 가볍게 휘둘렀다.

촤아아악!

다가오던 자들이 일제히 두 동강 나서 쓰러졌다.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고였다.

제론은 거의 기계적으로 검을 휘둘렀고, 그런 검에 적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러면서도 제론은 머릿속으로 새로운 마법진을 구상했다. 실로 놀라운 능력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적에서 수련을 해 온 제론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몇 번 검을 휘두르니 남은 사람이 몇 없었다. 제론은 구멍이 뻥 뚫린 포위망을 통해 쑥 몸을 뺐다.

굳이 도망가려 애쓸 필요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검 몇 번 휘두르고 나면 포위망에 구멍이 뚫리고, 거길 통해 빠져나가면 웬만해선 제론을 막지 못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적에게 두려움을 안겨 주었다.

그렇게 마법진을 구상하며 몇 번의 포위망을 빠져나갔을 때, 제론의 뇌리에 경고등이 깜빡였다. 미리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일부러 펼쳐 놓은 감각의 범위 안에 섀도우소드가 들어온 것이다.

제론은 망설임 없이 검을 던졌다.

슉! 퍽!

섀도우소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심장에 틀어박힌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경악에 찬 시선으로 제론을 바라보다가 절명했다.

섀도우소드는 몸에 새겨진 마법진을 지부장에게 전해 준 걸로 모든 소임을 다했다. 제론은 더 이상 그를 살려 둘 필요가 없었다.

섀도우소드까지 처리한 제론은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 어차피 호텔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이제부터는 드러내 놓고 움직일 것이다.

제론은 빈민가와 우범 지대의 경계에 있는 펠젠의 건물로 향했다.

향후 싸움은 정체불명의 조직과 펠젠이 알아서 할 것이다. 제론은 펠젠에게 약간 힘을 실어 주기로 했다. 아마 아벤드의 밤이 상당히 시끄러워질 것이다.

'여기서 딱 바인이 나서면 끝내주는 결과가 나올 텐데.'

아쉽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굳이 아벤드를 장악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아직 남은 유적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걸 하나하나 장악할 때마다 정보망이 늘어난다.

바인은 그걸 관리하고 다루는 것만으로도 아마 죽어날 것이다.

어느새 펠젠의 건물에 도착한 제론은 건물 안으로 훌쩍 들어가 버렸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적의 타격대를 반 이상 없애 버렸다. 아마 그걸 다시 키우려면 상당한 돈과 시간이 들어갈 것이다.

모든 것은 제론의 의도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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