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화 (60/217)

Chapter 2 테오스의 비밀

세나의 공방에서 나온 제론은 곧장 유적으로 이동했다. 개조한 실바를 타고나니 테오스가 떠올랐다. 테오스를 타고 한바탕 움직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제 진짜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아마 유적 13층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이다. 13층 클리어 선물이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유적에 들어간 제론은 바로 테오스를 소환했다. 소환과 동시에 탑승이 되는 테오스의 시스템은 역시 훌륭했다. 곧장 테오스와 동화해 어마어마한 힘의 물결을 온몸으로 느꼈다.

테오스가 아공간에 담긴 검을 소환했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휘둘렀다.

후웅! 후웅! 후웅!

테오스의 검이 연달아 바람을 갈랐다. 그리고 제론은 깜짝 놀랐다.

소드 마스터가 되면 테오스의 가동 시간이 엄청나게 늘어날 거라고만 생각했지, 테오스의 능력 자체가 달라질 거라고는 아예 생각도 못했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알 수 있었다. 테오스의 힘이 월등히 늘어났다는 것을 말이다.

'설마 소드 마스터가 되어야 진짜 능력을 끌어낼 수 있었던 건가?'

그럴 수도 있었다. 마치 테오스 자체가 익스퍼트에서 소드 마스터로 레벨이 올라간 느낌이었다.

제론은 갑자기 흥이 크게 올랐다. 테오스로 흘러가는 마나가 급격히 늘어났다.

우우우웅!

테오스의 검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마나가 검에 집중된 것이다.

꽈르릉!

검의 궤적을 따라 마나가 뿜어져 나갔다. 고도로 응축된 마나가 유적의 벽을 거세게 때렸다.

제론은 깜짝 놀라 검을 멈췄다. 처음 든 생각은 혹시 유적이 무너지는 건 아닌가였고, 다음으로 검에서 튀어 나간 마나가 떠올랐다.

"기간트로 이게 가능하다고?"

기간트는 어차피 마나 코어로 움직인다. 모든 움직임에 마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익스퍼트나 마스터가 검에 마나를 불어 넣는 것처럼 기간트에 그걸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만일 기간트의 검에 마나를 불어 넣을 수 있다면 누구도 당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상대의 검을 모조리 갈라 버릴 텐데 그걸 어찌 막겠는가.

익스퍼트에 오른 기사가 일반 기사를 상대하는 느낌일 것이다.

제론은 테오스를 아공간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테오스의 검기가 때린 유적 벽을 확인했다. 흠집 하나 나지 않았다. 뭘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정말로 대단한 유적이었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실망해야 하는 건지……."

엄청나게 늘어난 테오스의 힘으로도 유적에 흔적조차 낼 수 없었다. 유적이 단단한 걸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테오스가 좀 더 강력하지 못하다는 것에 실망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쨌든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테오스가 훨씬 강해졌다는 점이었다. 검에 마나를 담을 수 있다는 건, 또 그 마나를 외부로 날려 버릴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었다.

사실 테오스의 능력은 가공할 정도였다. 보통 기간트와는 완전히 달랐다. 기간트가 마법을 쓸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어쨌든 테오스를 타고 한바탕 검을 휘둘렀더니 기분이 좀 풀렸다. 이제는 유적 13층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단숨에 끝낼 거라고 자신했다.

곧장 유적 13층에 도착한 제론은 가만히 서서 검을 들고 있는 은빛 기사를 보며 눈을 빛냈다. 오늘에야 결판을 낼 수 있게 되었다.

제론은 아공간에서 자신의 검을 꺼냈다. 평소에는 평범한 롱소드를 들고 다니지만, 제론의 진짜 검은 유적에서 선물로 받은 특별한 검이었다.

검의 재질은 아직 제론도 알아내지 못했다. 태블릿을 잘 뒤지면 찾을 수 있겠지만 엄청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반드시 알아내야 할 게 아니라면 차라리 모른 채 있는 게 속 편했다.

제론은 은빛 기사를 향해 검을 겨눴다.

그 순간 은빛 기사가 달려들었다. 검을 겨누는 것이 13층 수련의 시작 신호였다.

쩌엉!

검과 검이 부딪치며 강렬한 기파를 만들어 냈다. 제론은 쩌릿쩌릿 저려 오는 팔에 힘을 꽉 주며 몸을 빙글 돌렸다.

자연스럽게 은빛 기사의 검을 옆으로 흘리며 회전력까지 가미한 검으로 목을 내리쳤다.

쉬잉!

은빛 기사가 그대로 몸을 굴리며 제론의 검을 피해 냈다. 그러면서 그 불안정한 자세로 검을 휘둘렀다. 너무나도 깨끗한 일격이 제론의 발목을 향해 날아갔다.

후웅!

제론은 살짝 점프해 그것을 피했다. 그러면서 점프한 상태로 바닥에 거의 눕다시피 한 은빛 기사의 가슴을 푹 찔렀다.

콰득!

애꿎은 바닥에 구멍이 뻥 뚫렸다. 은빛 기사가 몸을 한 바퀴 굴려 피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손으로 바닥을 밀어 뒤로 쭉 물러난 은빛 기사가 서둘러 자세를 잡았다.

제론은 즉시 달려들었다. 은빛 기사가 자세를 잡을 시간을 주기 싫었다. 하지만 은빛 기사는 안정감을 되찾으며 바로 검을 마주 휘둘렀다.

쩌저저저정!

검과 검이 부딪쳤다. 놀랍게도 소드 마스터가 된 제론의 검을 은빛 기사가 별 무리 없이 받아 냈다. 은빛 기사는 소드 마스터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제론의 검격도 은빛 기사의 검격도 제국 기초 검술의 단순한 초식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만큼 그 안에 담긴 위력은 엄청났다.

제론의 아랫배에 담긴 마나가 출렁거렸다. 그리고 일제히 사지백해로 퍼져 나갔다.

꽈아앙!

검과 검이 부딪쳤는데, 폭음이 울렸다. 마나와 마나가 충돌해 폭발한 것이다.

제론과 은빛 기사는 폭발의 충격을 해소하며 뒤로 쭉 물러났다. 하지만 물러나자마자 다시 부딪쳤다.

꽈아아아앙!

이번에는 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그 뒤로도 연달아 검이 부딪쳤고, 그때마다 폭발이 일어났다.

꽝! 꽝! 꽝! 꽝! 꽈아아앙!

바닥이 파이고 벽에 금이 쩍쩍 갔다. 물론 유적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파손되어도 로비에 갔다 오면 바로 원상태로 복구된다.

제론은 이를 악물었다. 은빛 기사의 실력은 가공했다. 소드 마스터가 되면 단숨에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그동안 제론의 실력에 맞춰서 상대해 준 것이다.

우우우웅!

제론의 검이 울음을 토해 냈다. 그리고 새하얀 빛이 검 끝에서 쭉 솟아났다.

은빛 기사의 검에서도 은색 빛무리가 솟아났다.

제론은 온몸의 마나를 다 쏟아붓는 느낌으로 검을 휘둘렀다. 마나의 흐름과 검에서 휘도는 마나의 흐름이 정확히 일치되었다.

온몸이 검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깜짝 놀랐다. 하지만 정신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물처럼 고요하게 평정을 유지하며 검에 집중했다.

부드럽게 호를 그린 검이 은빛 기사의 검을 때렸다.

꽈르릉!

굉음과 함께 은빛 기사의 검이 산산이 흩어졌다.

제론의 검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휘돌며 은빛 기사의 목을 쳤다.

서걱!

은빛 기사의 목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움직임이 멈췄다.

제론은 가만히 서서 들끓는 마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조금 전 그 느낌을 잊지 않으려 애썼다. 마치 검으로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던 그 감각이 생생히 온몸에 새겨졌다.

샤아아아.

허공에 떠오른 은빛 기사의 머리가 산산이 부서졌다. 어딘가에서 바람이 휙 불어왔다. 흩날리던 은가루가 그대로 제론을 덮쳤다.

머리를 잃은 채 서 있던 은빛 기사의 몸체가 환하게 빛났다. 눈이 멀어 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제론은 그 빛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빛이 서서히 다가왔다. 빛무리가 점점 강해지면서 작아졌다. 그리고 제론의 손 앞에 다가왔을 때는 크기가 롱소드 정도로 줄어들었다.

제론은 강하게 그것을 움켜쥐었다.

쩡!

제론의 다른 손에 들고 있던 검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그리고 그 가루가 허공을 한 바퀴 배회하고는 제론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빛무리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제론의 손에는 잘 벼려진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검으로부터 끊임없이 뭔가가 흘러들어 왔다. 그것은 분명히 잘 정제된 마나였다. 그 마나와 제론이 몸으로 흡수한 은가루가 만나 격렬히 반응했다.

"크윽!"

제론은 내장을 쥐어뜯는 듯한 고통에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그것을 참아 냈다.

제론이 흡수한 은가루는 마나의 결정이었다. 몸에 들어온 은가루가 녹으며 거대한 마나로 변해 해일처럼 제론을 집어삼켰다.

마나의 격랑에 빠진 제론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몸속을 휘돌던 마나가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대부분 아랫배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일부는 심장으로 향했다.

위이이잉!

거대한 마나가 심장의 마나링을 씻어 냈다. 그러면서 그곳에 안착을 했다.

제론은 마나링 하나가 더 생긴 걸 확인했다. 이제 마나링은 모두 8개가 되었다.

초고대 문명을 기준으로 해도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대단한 마법사가 된 것이다. 물론 아직 깨달음이 제대로 따라오지 않아 적응하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겠지만 말이다.

"후우우."

제론은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번쩍!

강렬한 안광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제론은 몸이 말할 수 없이 가뿐해진 걸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야 진짜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암석 지대에서 오른 것은 소드 마스터이되 소드 마스터가 아닌 경지였다. 마나의 흐름을 하나로 만들긴 했지만 정작 검과는 괴리감이 남은 상태였다.

지금 은빛 기사와 싸우면서 그 괴리감을 없앤 것이다.

제론은 손에 들린 은빛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세심히 그것을 살폈다.

정말로 마음에 쏙 드는 검이었다. 그리고 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검 자체에 항마력이 깃들어 있었다. 수준 이하의 마법은 그저 검에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해체되어 버릴 것이다.

검에 특별히 마법진이 새겨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저 순수한 검의 능력이었다. 역시 재질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테페룸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보다 훨씬 대단한 무언가였다.

제론은 손바닥을 펼쳐 봤다. 손바닥 한가운데에 작은 점이 있었다. 제론의 안력으로도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이 검을 얻으며 생겨난 아공간 마법진이었다. 검을 수납하는 공간인 것이다.

제론은 손바닥에 마나를 밀어 넣으며 검을 찔렀다.

슈욱!

아무런 느낌도 없이 검이 손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손바닥에서 아공간이 열리며 검을 받아들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입이 쩍 벌어지도록 놀랄 만한 광경이었다.

12층 클리어 선물은 바로 이 검과 아공간이었다. 그것을 이제야 받은 것이다. 이제 13층 선물을 받을 차례가 되었다.

제론이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바닥을 뚫고 올라온 낮은 기둥이 보였다. 항상 제론에게 선물을 전해 주는 기둥이었다. 제론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다가갔다.

"이게 뭐지?"

기둥 안에는 은빛 열쇠가 들어 있었다. 난데없이 열쇠라니. 대체 이걸 어디다 쓰는 걸까?

제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일단 열쇠를 꺼냈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마치 열쇠라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만든 것 같은 전형적인 열쇠였다.

이 열쇠 역시 조금 전 제론이 받은 검과 마찬가지로 어떤 기이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마법진 같은 건 전혀 없었는데, 열쇠로부터 특별한 느낌이 지속적으로 전해졌다.

제론은 한동안 열쇠를 살펴보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는 아공간에 넣었다. 어쨌든 클리어 선물이었다. 결국은 쓰임새를 알게 될 테니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제론은 바로 14층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만일 14층으로 갔다가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층이라면 곤란했다.

"일단 영지전을 승리로 이끌어야겠지."

이번 영지전은 에어스트 백작령에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에어스트 백작령은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만일 영지전에서 큰 피해를 입기라도 하면 승리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반드시 압도적으로 승리한 다음 영지를 안정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면 흐름을 가져올 수 있다.

아마 향후 에어스트 백작령을 건드리려는 영지는 없을 것이다. 슈린 공작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슈린 공작가를 떠올린 제론이 강렬하게 눈을 빛냈다. 그들은 조만간 대가를 치를 것이다. 예전 에어스트 백작령에 한 짓과, 제론의 아버지에게 한 짓, 그리고 제론에게 한 짓에 대한 모든 대가를 말이다.

제론은 마음을 굳게 다지며 로비로 올라갔다.

로비에 도착한 제론은 유적을 빠져나가지 않고 테오스를 소환했다. 꼭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테오스에 탄 제론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천천히 테오스를 움직이며 검을 뽑았다.

후우웅!

검을 휘두를 때마다 테오스의 힘이 짜릿짜릿하게 느껴졌다. 검에 담긴 마나가 세상 모든 걸 가를 듯 유적 로비를 가득 채웠다.

꽈과과과광!

유적의 모든 벽이 일제히 폭음을 토해 냈다. 테오스가 흘린 마나가 폭발하며 만들어 낸 광경이었다.

제론은 테오스를 멈춘 채 가만히 서서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테오스는 아주 특별한 기간트였다.

제론은 조금 전 진정한 소드 마스터가 되었다. 그러면서 실력이 한 단계 상승했다.

그리고 테오스도 똑같이 위력이 상승했다. 제론이 강해지면 테오스도 함께 강해지는 것이다. 제론의 상태에 따라 테오스의 상태도 변한다는 뜻이었다.

제론은 비로소 예전 테오스를 처음 얻었을 때, 왠지 모르게 파워가 떨어지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때는 제론의 실력이 아직 테오스를 몰기에 많이 모자랐던 것이다.

테오스는 정말로 큰 힘이었다. 테오스만 있다면 레늄 왕국에서 누가 덤벼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다.

100기의 기간트를 동시에 상대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것도 전혀 피해 없이 말이다. 테오스는 그 정도로 강해졌다.

제론은 주위를 둘러봤다. 유적 벽은 여전히 깨끗했다. 지난번보다 더 강해졌는데도 마찬가지로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쿵! 쿵! 쿵!

테오스가 천천히 걸어 유적 벽 앞에 섰다. 그리고 검을 들어 올렸다.

쩌엉!

테오스의 검이 벽을 후려쳤다. 멀쩡했다.

우우우웅!

검이 마나를 가득 머금었다.

꽈아아앙!

폭음이 일었다. 하지만 여전히 벽은 멀쩡했다. 돌가루 하나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견고했다.

제론은 테오스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벽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특이한 재질이었다. 분명히 뭔가 특별한 힘으로 보호되고 있을 것이다.

"강해지겠다."

강해지고 또 강해질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벽에 자신의 흔적을 뚜렷이 남기고 말 것이다.

제론은 그렇게 결심하며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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