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7/217)

Chapter 10 미스트 드래곤

슈린 상단이 발칵 뒤집혔다. 그뿐 아니었다. 슈린 공작가도 뒤집혔다. 순간적으로 자금에 큰 공백이 생겨 버렸다.

루바인 상단이 정리되었고, 그 와중에 입은 막대한 손해가 나머지 상단에 고스란히 전가되었다. 그뿐 아니라 하일렌 상단도 정리되었다.

그 두 상단이 정리되면서 슈린 상단이 크게 위축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포션 제조에 차질을 빚었다.

다른 때 같으면 자연스럽게 처리했겠지만, 이번에는 시기가 너무 안 좋았다. 슈린 상단은 당장 휘청거렸다. 하지만 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슈린 상단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손실을 최소로 잘라 냈고, 상단 내부를 정리했다. 그러면서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방어적으로 운영하며 내실을 다졌다.

슈린 상단이 기다리는 것은 딱 하나였다.

새로 설계해 한창 제조 중인 기간트, 라쿠스. 출력이 1.9에 이르며, 새로운 기법이 잔뜩 들어간 차세대 기간트였다.

물론 크란 제국의 기간트보다야 못하다. 하지만 벨룸 왕국의 기간트인 몰레스보다 뛰어나다는 점이 중요했다.

아마 만든 다음 제대로 테스트를 통과해 인정만 받으면 슈린 공작가의 위상은 단숨에 달라질 것이다.

지금까지 입은 모든 손실을 단번에 메우고도 남았다. 그때부터 새로운 슈린 공작가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참을 수 있었다. 슈린 상단을 책임지는 하쓰 남작도, 또 슈린 공작도. 그리고 파인트도.

일단 라쿠스만 제대로 나오면 슈린 공작가의 오랜 꿈, 왕위 찬탈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공국 선포라도 말이다. 그들에게는 그 정도 힘이 있었다. 라쿠스만 성공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카프만은 슈린 공작가가 위축된 틈을 잘 파고들었다. 모든 것은 바인의 정보가 있기 때문이었다. 카프만의 페쿠니아 상단은 그 힘을 업고 급격히 성장했다.

☆ ☆ ☆

"일단은 여기까지가 한계로군."

제론은 살짝 아쉬웠지만, 그래도 충분한 성과를 얻었기에 더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이번 일로 상단도 만들었고, 돈도 벌었다. 그리고 그 돈을 이용해 영지도 한층 더 발전시킬 수 있게 되었다. 이쯤에서 만족하는 것이 안전했다.

에어스트 백작령은 급격히 발전하는 중이었다. 레늄 왕국은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상당히 많이 치유되었기에 난민도 점차 줄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남은 난민은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에어스트 백작령으로 몰려들었다.

그로 인해 모자란 인구를 조금이나마 보충할 수 있었다.

현재 에어스트 백작령은 심각한 인구난을 겪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부족했다. 농사를 지을 땅은 넘쳐나는데, 그 땅을 쓸 사람이 없었다.

일단 금년 목표가 모든 농지를 다 이용할 정도로 사람을 모으는 것인데, 과연 그것이 이뤄질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바이스는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하지만 제론은 오히려 느긋했다.

광산을 팔면서 디아만트 상단과 은밀히 거래를 했다. 사실 거래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그들의 도움을 받는 일이었다.

물론 제론은 할 만큼 했다. 제론이 아니었다면 디아만트 상단은 어마어마한 손해를 봤을 것이다. 물론 그 모든 일을 제론이 만들어 낸 것이긴 했지만 말이다.

디아만트 상단은 수도나 다른 영지에 있는 빈민을 이동시켜 주기로 했다. 물론 수도나 영지에서 외부로 나가는 건 제론이 알아서 처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외부로 빠져나간 빈민을 상단에 합류시켜 에어스트 백작령으로 날라 주기로 한 것이다.

사실 제론이 마음대로 빼낼 수 있는 건 수도의 빈민뿐이었다. 수도의 빈민은 폴타를 이용해 얼마든지 외부로 빼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계약을 한 것은 나중에 또 폴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제 영지 일도 제론이 손댈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나아갈 방향을 정했으니 그대로 하면 된다. 이제부터는 실무의 영역이었다.

제론이 할 일은 바이스가 은밀히 부탁하면 테오스를 움직여 원하는 것을 이뤄 주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여유를 얻은 제론은 대부분의 시간을 검술에 쏟았다.

오늘도 유적 13층에서 은빛 기사와 대련을 했다. 물론 어려웠다. 은빛 기사를 완벽히 제압하려면 기초 검술을 완벽히 지배해야만 했다.

하루의 절반은 은빛 기사와 대련하고, 나머지는 지하 수련장에서 검을 휘둘렀다. 제론은 그렇게 검에 푹 빠져들었다.

영지의 업무는 중요한 것만 확인했다. 하루의 대부분을 지하 수련장에서 보내는 셈이었다.

하지만 가끔 영지를 순찰했다. 그것도 아무도 대동하지 않은 무방비 상태로 말이다.

제론이 그러는데도 신경을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워낙 강한 사람이기에 걱정 자체가 의미 없었다. 바이스나 세나, 그리고 카이트는 이미 제론이 소드 마스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제론이 일부러 알려 준 것이다. 물론 알려 주지 않아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론이 얼마나 강한지 오랫동안 겪어 왔으니까.

어쨌든 제론은 가끔 홀로 영지 순찰을 하는데,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오늘은 암석 지대를 둘러보기로 했다. 이제 슬슬 암석 지대를 정리하고 길을 닦은 다음 한창 공사 중인 항구와 연결시켜야 한다.

항구 쪽에는 이미 사람들이 잔뜩 파견되어 있었다. 당연히 기간트도 함께 파견되었다. 기간트를 이용해 암석 지대의 돌을 날라 항구를 건설하는 것이다.

제론이 오늘 코스를 암석 지대로 잡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 전부터 상당히 신경 쓰이는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은밀한 시선이었는데, 사람이 많은 곳을 다닐 때는 확인하기가 어려웠기에 일부러 인적이 없는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보통 영주는 마차나 말을 타고 이동한다. 하지만 제론은 두 발로 걷고 뛰어서 이동했다. 그게 훨씬 간편하고 빨랐다.

암석 지대까지는 사실 쉬지 않고 마차를 달려 며칠을 가야만 할 정도로 멀었다. 하지만 제론은 고작 몇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암석 지대로 이동하면서 제론은 문득 기간트를 이용하면 훨씬 이동이 빠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기간트가 훨씬 빠르다. 오히려 마차보다 더 빠르다. 기간트는 달릴 수도 있었다.

"기간트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따로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어차피 실바는 남아돌았다. 워낙 많이 쓸어 담았기에 다 수리하면 오십 기도 넘을 것이다.

그 실바를 이용해 곳곳에 배치해 놓고 기간트가 끌 수 있는 거대한 수레를 만들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실바를 이용해 달리는 것은 수습 라이더에게 기간트 기초 수련의 한 방편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다.

"이거 제법 괜찮은 생각인데? 한번 추진해 봐야겠어."

만일 그게 가능해진다면, 영지 내에서는 사람이나 물자를 이동하는 것이 엄청나게 빠르고 편해진다. 폴타를 이용해 게이트를 만드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일단 지금은 폴타도 없는 상황이고, 그것은 외부인에게 함부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쉽게 가져다 쓸 수 없었다,

기간트 로드에 대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조금씩 구체화하며 걸음을 빨리한 제론은 어느새 암석 지대에 도착했다.

웬만한 기간트보다 훨씬 큰 바위가 곳곳에 보였다. 너무나 거대해 지켜보는 사람을 압도할 지경이었다.

암석 지대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그곳의 돌을 석재로 다듬어서 팔면 상당한 돈이 될 것이다. 물론 제론은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이제 없었다.

돈을 벌 다른 수단이 많이 생겼다. 사실 암석 지대라면 그럴듯한 광산이라도 하나 있어야 정상 아닌가. 하지만 이곳은 거대한 돌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뿐 아니라 암석 지대에만 서식하는 몬스터인 스톤에그가 있었다.

스톤에그는 평소에는 바위 모양으로 위장해 있다가 움직이는 물체가 다가오면 돌거인으로 변해 달려드는 몬스터였다.

온전히 돌로 이루어져 있는 몬스터였는데, 특이하게도 돌을 먹고 사는 몬스터였다. 그렇기에 암석 지대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그들로부터 피해를 받을 일이 없었다.

스톤에그 때문에 암석 지대를 지날 때는 반드시 기간트를 동원해야만 한다. 현재 항구 건설에 한창인 사람들도 기간트와 함께 암석 지대를 통과했다.

물론 그 와중에 열 마리가 넘는 스톤에그를 만났다. 당연히 기간트가 박살 냈고 말이다. 스톤에그는 인간에게는 무서운 괴물이지만, 기간트 입장에서는 떼로 몰려들지만 않으면 별것 아니었다.

그러니 이렇게 제론처럼 혼자 암석 지대에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건 그냥 자살하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암석 지대에 들어선 제론은 여전히 시선이 따라붙는 걸 느끼고는 걸음을 멈췄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론은 스톤에그를 구분할 방법이 있었다.

제론이 익힌 마나 호흡법을 이용하면 간단했다. 스톤에그가 가진 마나는 보통 바위와는 완전히 달랐다. 제론은 그걸 구분할 수 있었다.

암석 지대 입구에도 스톤에그가 하나 있었다.

제론은 스톤에그의 감지 범위를 명확히 인지했기에 딱 그 경계에 서 있었다. 거길 넘어가면 당장 스톤에그가 돌거인으로 변해 달려들 것이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거지?"

제론이 돌아서서 말했다. 제론의 시선이 향한 곳이 살짝 일렁이더니 검은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졌다. 온통 검은색으로 도배된 사람이었다. 검은 옷에 검은 복면까지 쓰고 있었는데, 눈빛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혼자서 다 뒤집어쓰려고? 나머지도 싹 나오지?"

사내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더니 검은 그림자가 뚝뚝 떨어졌다. 같은 복장의 사내가 열 명이나 늘어섰다.

"날 왜 자꾸 쫓아오는 거지?"

제론은 그들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마나를 통해 열 명 모두가 익스퍼트임을 확인했다.

"그것도 익스퍼트나 되는 자들이 말이야."

열 명의 사내는 미스트 드래곤 소속이었다. 파인트의 명령을 받아 제론의 뒤를 캐고 있었다. 또, 기회를 봐서 암살을 시도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한데 그동안은 빈틈이 없었다. 제론이 너무나 단조로운 생활을 했기에 약점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오늘 이렇게 기회가 온 것이다.

암석 지대 근처에는 인적이 없었다. 암석 지대의 몬스터 스톤에그 때문이었다.

여기서 제론을 죽이면 뒤처리도 간단하다. 암석 지대로 들어가 스톤에그 한 마리만 깨우면 된다. 그러면 그가 알아서 시체를 짓이겨 줄 것이다.

"익스퍼트 열 명이라……."

제론이 씨익 웃었다. 최근 수련하는 기초 검술의 실전 상대로 좀 손색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스톤에그까지 더하면 그럭저럭 연습이 될 것 같았다.

어떤 수련이든 가끔 이렇게 실전을 경험해 주는 것이 좋다. 그래야 발전이 빠르다.

"자, 슬슬 덤비지?"

제론이 검을 뽑았다. 허리춤에 항상 롱소드 한 자루를 매달고 다니는데 썩 좋은 검은 아니었다. 제론의 진짜 검은 팔찌의 아공간에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건 좀 더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났을 때나 쓸 것이다.

미스트 드래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러자 제론이 온몸으로 강하게 기운을 내뿜으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콰드드드드득!

거대한 돌거인이 깨어났다. 제론이 원하던 대로 된 것이다. 열 명의 암살자는 갑자기 깨어난 돌거인에 크게 당황했다. 하지만 움직임을 멈추지는 않았다.

슈슈슈슉!

암살자들이 던진 비수가 제론을 향해 날아갔다. 제론은 롱소드를 휘둘러 그것을 쳐 냈다.

채채채채챙!

그사이 돌거인이 성큼 걸어 제론에게 다가가 그대로 주먹을 내리꽂았다.

꽈앙!

돌가루가 비산했다. 제론은 옆으로 두 걸음 움직여 돌거인의 주먹을 피해 냈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카각!

돌거인의 팔목이 날아가 버렸다. 하지만 돌거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손을 만들어 냈다.

꽈드득!

제론은 그대로 암살자 중 한 명에게 몸을 날렸다. 암살자들이 다시 비수를 던졌다.

쉭쉭쉭쉭!

쿵! 쿵!

돌거인이 쫓아왔다. 제론은 교묘한 움직임으로 돌거인의 주먹을 피하면서 암살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사악!

그동안 수련으로 몸에 새긴 완벽한 일격이었다. 암살자의 목이 소리 없이 허공에 떠올랐다.

나머지 암살자가 일제히 비수를 던지고 달려들었다.

쉭쉭쉭쉭쉭!

제론은 롱소드를 휘둘러 비수를 쳐 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기초 검술에 입각해 검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다.

슈캉! 슈캉! 슈캉!

롱소드에 닿은 비수가 그대로 잘라졌다. 수십 개의 비수가 그렇게 조각나서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그렇게 비수를 막아 내는 사이 돌거인이 제론의 뒤로 다가갔다. 이렇게 돌거인이 제론만 공격하는 것은 제론의 몸에서 뿜어내는 기운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었다.

돌거인은 지금 미스트 드래곤의 암살자는 아예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물론 암살자가 돌거인에게 다가가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돌거인은 제론을 그대로 차 버리려 했다.

후웅!

거대한 발이 제론의 등을 향해 날아갔다.

제론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카각!

돌거인의 다리가 종아리 부분에서 싹둑 잘려 나갔다.

쿠궁!

잘린 다리가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자리에 있던 암살자들이 다급히 몸을 날려 그것을 피해 냈다.

쿠웅!

돌거인이 균형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사이 제론이 흩어지는 암살자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꽈득!

제론이 발을 디디자, 바닥이 움푹 들어갔다. 그리고 흙이 비산하며 제론의 몸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기초 검술을 달리기에 응용한 것이다.

사악! 사악! 사악!

마침 뭉쳐 있던 세 암살자의 목이 그대로 날아갔다.

제론의 움직임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대로 방향을 바꿔 또 몸을 날렸다.

꽈득!

바닥이 움푹 들어갔고, 제론의 몸이 어느새 암살자 둘의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사악! 사악!

피 분수가 솟구쳤다. 제론은 몸에 피를 한 방울도 안 묻힌 채 또 몸을 날렸다.

꽈득! 사악!

제론의 몸이 번쩍할 때마다 목 하나가 날아갔다. 그렇게 숨 몇 번 쉴 정도의 시간에 열 명의 암살자를 모두 처리했다.

마지막으로 제론은 어느새 다리를 다시 만들어 달려오고 있는 돌거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카각! 카각! 카각!

암살자와 함께 덤비면 모를까 돌거인 하나로는 결코 제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돌거인이 수십 조각으로 갈라졌다.

제론은 마지막으로 돌거인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꽈앙!

머리가 산산조각 났다. 그리고 돌거인을 구성하던 마나가 흩어졌다.

후두두둑!

돌거인이 그대로 무너졌다. 사실 스톤에그는 마나 이상 현상 중 하나였다. 마나가 특이하게 뭉치면서 만들어 낸 몬스터였다.

마나가 흩어지니 당연히 돌거인도 보통 바위로 돌아갔다.

제론은 눈살을 찌푸리며 죽은 암살자들을 쳐다봤다. 왠지 느낌이 낯익었다. 이놈들을 누가 보냈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뻔하지."

당연히 파인트일 것이다. 광산 일로 제론 때문에 입지가 바닥까지 무너졌으니 말이다. 아마 지금쯤 이를 갈고 있을 것이다. 암살자를 보내는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 실력을 가진 암살자라면 제법 비쌀 텐데 말이야."

그 점이 좀 이상했다. 파인트는 지금 엄청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데 무려 익스퍼트에 이른 암살자를 열 명이나 보냈다.

말이 익스퍼트지 암살자가 익스퍼트인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익스퍼트에 오르려면 고급 검술을 오랫동안 갈고닦아야만 한다. 한데 암살자가 그런 수련을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제론은 생각의 방향을 조금 달리했다. 이들이 슈린 공작가가 전략적으로 키운 암살자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오래전 일이라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예전 아카데미에 있을 때, 자신을 감시하던 자들이었다.

'왜 낯익은가 했더니 그자들과 분위기가 비슷해.'

어쨌든 제론은 이들 덕분에 제대로 된 실전 훈련을 했다. 이 정도 긴박감 넘치는 실전을 겪으려면 전쟁터에나 나가 봐야 할 것이다.

제론은 암석 지대 앞에서 검을 휘둘렀다. 조금 전 싸움에서 느꼈던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함이었다.

쉬익! 쉬익!

기초 검술이 제론의 롱소드에서 강렬한 기운을 담고 뻗어 나왔다. 제론은 돌거인의 다리를 잘라 내던 감각을 되살리려 애썼다.

제론의 기억에 딱 그때의 검격만 모든 것이 일치했다. 그 감각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아른거렸다.

쉬익! 쉬익!

제론은 끊임없이 검을 휘두르며 세상 모든 일을 잊고 점점 검에 깊이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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