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 파티의 끝에서
풍년 기원 파티도 6일째에 접어들었다. 사실 파티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소극적이던 사람들도 이젠 얼굴도 익히고 했으니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그중 가장 활발한 사람은 단연 2왕자였다.
2왕자는 필사적이었다. 아직 후계자가 완벽히 정해지지 않았지만 조만간 결정될 것이다.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지지자를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지난 5일 동안 안면을 익히고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면 오늘은 본격적으로 목적을 이룰 때였다.
'음?'
2왕자는 사람이 우글우글 모여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저 많은 사람을 자신이 끌어들일 수 있다면 단숨에 전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충만해진 2왕자는 즉시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주인공이 따로 있었다.
'저놈은!'
2왕자는 그들의 중심에 서 있는 사내를 보고는 발을 멈췄다. 그는 제론 폰 에어스트 백작이었다.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체른산 유적에서 몇 번이나 봤는데 말이다.
체른산 유적을 생각하면 아직도 속이 쓰렸다. 또한 갈망에 목이 말랐다.
아직도 유적의 숨겨진 유물을 찾지 못했다. 2왕자는 반드시 유물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그곳에 가서 유적을 살피고 또 살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이제는 거의 포기 단계였다. 유적에는 자신 외에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다. 2왕자가 아닌 사람을 함께 데려가면 어김없이 벼락이 떨어졌다.
결국 2왕자는 그곳을 혼자서 뒤져야 했다. 그 넓은 유적을 혼자 살핀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2왕자는 미련이 남아 유적을 찾고 또 찾았다.
'그것만 찾으면 다 끝날 텐데.'
2왕자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더 이상 거기에 미련을 둘 수는 없었다. 그보다는 1왕자를 이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다.
잠깐 회한에 잠겼던 2왕자의 시선이 다시 제론에게로 향했다.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제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론은 그저 눈빛 하나만으로 그들을 압도했다.
2왕자는 이를 악물었다. 저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은 제론이 아니라 자신이었다.
'좋아. 내가 얻어 주지. 굳이 저들을 얻을 필요가 없지. 저놈 하나만 얻으면 다 얻는 거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2왕자는 성큼성큼 걸어 제론에게 다가갔다.
제론 근처에 모인 귀족들이 2왕자를 발견하고는 저마다 인사를 건넸다. 몇몇은 담담했고, 또 몇 명은 표정이 굳었으며, 일부는 반가워했다.
"오랜만입니다, 2왕자 전하."
제론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정중함은 있었지만 너무나 당당했다. 주변 사람들이 묘한 눈으로 제론과 2왕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둘 사이에 미리 교분이 있었다는 사실에 다들 깜짝 놀랐다.
"유적은 잘 있는지 모르겠군요."
유적 얘기가 나오자 2왕자의 표정이 대번에 무너졌다. 아무리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잘 있으니 걱정할 거 없네."
2왕자는 그렇게 대답하며 제론을 바라봤다. 말을 하면서 생각해 보니 제론은 자신에게 유적을 빼앗겼다. 오히려 더 마음이 상한 건 제론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유적을 내게 바친 공은 아직 잊지 않고 있네."
"별말씀을."
제론은 빙긋 웃었다. 참으로 우습지 않은가. 고작 유적의 가디언이 된 것에 불과한데, 마치 유적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니 말이다. 물론 2왕자는 그걸 모르니 저러고 있는 거겠지만.
제론의 여유로운 미소에 2왕자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조금이라도 당황시키고 싶어서 던진 말이었는데,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니 또 짜증이 확 났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짜증을 내면 안 된다. 아직 목표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공을 치하할 겸, 제안을 하려고 왔네."
제론은 2왕자의 속이 빤히 보였지만 전혀 모른다는 듯 물었다.
"무슨 제안 말입니까?"
"내가 앞으로 자네 뒤를 봐주겠네."
노골적으로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는 소리였다. 아니, 그걸 확정했다고 통보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제론은 2왕자를 가만히 쳐다봤다. 2왕자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띤 채 제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가 어쩔 것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감사합니다."
제론의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제론이 2왕자 쪽 줄을 잡는 모습을 지켜봤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2왕자의 얼굴에 어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럼 그렇지. 내가 손을 내밀었는데 잡지 않을 리가 없잖아?'
크게 소리 내서 웃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2왕자는 입가가 길게 늘어나려고 하는 걸 억지로 참으며 제론에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제론이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이제 확정이 되었다. 2왕자는 그 순간, 이 사실을 과시하고 싶어졌다.
"그럼 내 사람이 된 기념으로 자네 영지의 곡물 유통권을 슈린 상단에 넘기게."
2왕자는 당연히 제론이 허락할 거라 여겼다. 자신의 사람이 되었으면 자신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슈린 상단은 슈린 공작가에서 운영하는 상단 중 가장 큰 상단이었다. 물론 최근에는 디아만트 상단에 밀려서 날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에어스트 백작령의 곡물 유통권을 쥐어 준다면 슈린 상단이 다시 한 번 디아만트 상단과 레늄 왕국 내의 이권을 걸고 싸워 볼 만한 여지가 생긴다.
슈린 공작가가 커지면 2왕자가 왕권을 잡을 확률이 높아진다. 2왕자는 기대감이 휘몰아치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제론의 답을 기다렸다.
"그건 곤란합니다."
제론의 거절에 2왕자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2왕자뿐 아니라 주변에 서 있던 다른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경악한 눈으로 제론과 2왕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제론은 시종일관 물처럼 담담한 얼굴로 조용히 서 있었다. 하지만 2왕자는 그렇지 않았다.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군. 지금이 그런 장난이나 칠 때라고 생각하나? 감히 내 앞에서?"
"전 농담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정말로 유통권을 못 넘기겠다는 말인가?"
"제가 왜 그들에게 유통권을 넘겨야 합니까? 어떤 조건도 내밀지 않은 상단에게 신경을 쓸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지 않습니다."
제론의 당당한 말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입을 쩍 벌렸다. 하지만 2왕자 쪽에 줄을 댄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들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
"방금 내가 뒤를 봐준다고 했을 때, 고마워하지 않았나!"
"그 점은 지금도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전하의 조건 없는 호의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2왕자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리고 얼굴이 시뻘게지다 못해 창백해졌다.
"네, 네, 네놈이 지금 날 놀리는 것이냐!"
결국 2왕자는 호통을 쳤다. 하지만 제론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전 그저 전하께서 뒤를 봐주시겠다는 말씀에 감사를 표한 것뿐입니다."
말은 맞다. 실제로 대화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안에 포함된 의미가 있지 않은가. 제론은 지금 그 보편적인 상식을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이러니 놀리는 게 아니면 뭐란 말인가.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제론의 말이 옳다. 그래서 2왕자는 함부로 날뛰지 못했다. 만일 정치에 익숙하지 않은 어설픈 애송이 귀족이라면, 또 그가 멍청하다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모로 봐도 제론은 그런 귀족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이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2왕자를 향해 제론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전하의 호의에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결국 2왕자는 폭발해 버렸다. 그 역시 검을 수련한 기사, 또한 기간트를 소유한 라이더이기도 했다. 2왕자가 그대로 몸을 날려 제론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한데 어찌 된 일인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잘 움직이지가 않았다. 2왕자는 당황했다.
하지만 더 당황스럽고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2왕자의 마음에서 일어나던 불같은 적개심이 서서히 사그라졌다.
'내가 너무 흥분했군.'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일 수도 있는 문제였다. 여기서 날뛰면 모양새가 더 우스워진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나니 왠지 지금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후우. 내가 너무 흥분했군."
2왕자는 심호흡을 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거 분위기가 말이 아니로군. 다들 미안하게 되었소."
2왕자의 사과에 다들 얼굴이 경직되었다. 왠지 2왕자가 완전히 달라 보였다.
귀족들이 멍하니 있자, 2왕자는 다시 제론을 바라봤다.
"명색이 왕자인데 한 입으로 두말할 수는 없지. 자네 뒤는 내가 확실히 봐주겠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날 찾아오게."
2왕자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런 2왕자의 모습을 다들 이채롭게 바라봤다. 다만 제론의 눈빛만은 의미심장했다.
'가디언이 된 것이 이런 식으로 작용하는군.'
2왕자는 체른산 유적에서 제론의 가디언이 되었다. 그것도 그 스스로의 의지로 말이다. 오늘 일은 그 결과였다. 2왕자는 제론에게 적대감을 가질 수 없었다. 고대 마법의 정수가 이뤄 낸 작용이었다.
모두의 눈빛을 뒤로하고 뚜벅뚜벅 걸어가던 2왕자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뭐지? 내가 미친 거 아닌가?'
자신이 왜 그딴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니. 그러다가 정말로 찾아오면 어쩌란 말인가.
절대로 제론의 뒤를 봐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수많은 귀족 앞에서 그렇게 공표해 버렸다. 만일 제론이 이 일을 알고 있는 귀족과 한 명이라도 함께 있는 상황에서 어떤 부탁을 해 오면 그걸 거절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건 너무나 위험했다. 2왕자는 슈린 공작가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슈린 공작가가 에어스트 백작가에 어떤 짓을 했는지도 알고 있었다.
'젠장. 슈린 공작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군.'
2왕자는 갑자기 짜증이 왈칵 치밀었다. 대체 왕자인 자신이 왜 공작의 눈치를 봐야 한단 말인가. 생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된 것이 모두 제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맹렬한 적개심이 들었다.
하지만 적개심은 일어나자마자 기세가 풀썩 꺾였다. 생각해 보니 제론에게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이게 왜 제론 때문이란 말인가. 애초에 에어스트 백작가에 그따위 짓을 한 슈린 공작가의 잘못이었다.
2왕자는 그 뒤로 제대로 파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어떤 생각을 하건 제론과 연결되었고, 화가 났다가 가라앉았다가를 반복했다.
하지만 어쨌든 결론은 지었다. 제론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로 한 것이다. 또한 슈린 공작가를 앞으로 유심히 살펴보기로 했다.
2왕자는 그걸 결정지은 뒤 파티가 열리고 있는 홀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왠지 더 이상 파티에 의미가 없어 보였다.
제론은 귀족들에 둘러싸여 2왕자가 나가는 모습을 힐끗 쳐다봤다. 나중에 2왕자의 표정이나 혼잣말을 반드시 확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가디언이 된 2왕자를 이용할 새로운 방법을 찾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일을 보니 잘하면 2왕자를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쨌든 제론 입장에서는 2왕자도 슈린 공작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슈린 공작가가 오로지 그들의 힘으로만 에어스트 백작가를 무너뜨릴 수 있었을 리 없다.
슈린 공작가를 도와준 자들이 분명히 있었다. 2왕자는 그중 하나였다. 또한 2왕자에게 항상 붙어 있는 마기어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제론은 그 둘을 결코 용서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다.
"에어스트 백작님, 아직도 곡물 유통권에 대해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누군가의 물음에 제론이 시선을 돌렸다. 2왕자는 나중에 살펴보면 된다. 지금은 이곳의 일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아직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군데로 한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귀족들이 눈을 빛냈다.
"하면 여러 상단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많은 상단에 기회를 드릴 생각입니다. 다만 비율은 좀 달라지겠지요."
몇몇 귀족이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과연 그렇게 비율을 나눌 정도의 양이 될까요? 제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상단이 둘만 붙어도 남아나는 곡물이 없을 것 같은데……."
"금년만 하고 끝낸다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조금만 더 멀리 보십시오. 우리 영지의 평원은 아직 모두 개발된 게 아닙니다. 고작 10퍼센트 정도 개발했을 뿐입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이미 에어스트 백작령에서 자라는 곡물을 확인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양이었다. 한데 그것이 10배로 늘어난다니. 그 정도라면 가히 왕국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의 양 아닌가.
제론은 놀란 얼굴의 귀족들을 쭉 둘러봤다. 사실 농지는 그보다 더 많이 있었다. 이제 곧 암석 지대를 개간할 것이다.
그곳을 제대로 개발할 수만 있다면 농지가 50퍼센트는 더 늘어난다. 하지만 지력이 많이 모자랄 것이다. 그래서 소출이 50퍼센트 늘어난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에어스트 백작령은 곡물로 우뚝 서는 영지가 될 것이다.
'그러면 힘이 필요하겠지.'
식량은 큰 무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지키기 위해 힘을 가져야만 한다. 제론은 인재에 목이 말랐다. 더 많은 인재가 필요했다. 또한 더 많은 병사가 필요했다.
'빈민 이전 작전을 서둘러야겠어.'
제론은 머릿속으로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며 귀족들의 질문에 일일이 대답해 주었다.
파티가 점점 무르익어 갔다.
7일간의 긴 파티가 끝을 맺었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얻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자가 훨씬 많았다.
제론은 성과를 얻은 사람 중 하나였다. 아니, 누구보다 큰 성과를 얻어 냈다. 총 열두 개의 상단과 계약을 맺었다. 일곱 개는 중립을 표방하는 상단이었고, 나머지 다섯 개는 슈린 공작가와 반대쪽에 줄을 댄 상단이었다.
가장 높은 비율을 얻어 낸 상단은 당연히 디아만트 상단이었다. 디아만트 상단을 책임지는 클레는 이를 이용해 대륙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디아만트 상단은 무려 40퍼센트의 비율을 얻어 냈다. 나머지 60퍼센트를 열한 개의 상단이 또 적절히 나눴으니, 그 차이가 정말 엄청났다.
이 계약은 향후 5년간 유효했다. 제론은 그 5년 동안 모든 곡물을 유통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상단을 만들 계획이었다.
파티는 끝났지만 왕궁에는 여전히 떠나지 않은 귀족이 많았다. 파티가 끝나도 며칠 정도 남아서 여흥을 즐기거나 파티의 피로를 충분히 풀고 떠나는 사람이 많았다.
당연히 제론은 그럴 시간이 없는 사람이었다. 제론의 뇌리에는 새로 만들 상단과 검술 수련으로 인해 다른 것이 들어갈 틈이 없었다.
둘 중 검술 쪽이 조금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제론은 조금만 더 하면 벽을 깰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잠시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파티가 열리는 7일 동안 밤을 제외한 아침과 낮에는 끊임없이 검을 휘둘렀다. 기초 검술을 수련하며 마나의 흐름과 검의 흐름을 일치시키려 애썼다.
제론은 지금 당장이라도 유적에 가고 싶었다. 가서 그곳의 충만한 마나를 받아들이며 검을 휘두르면 금방이라도 벽을 부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일단 왕궁에서 그냥 사라지는 건 문제가 있었다. 타고 온 마차를 타고 나가서 용병길드와의 계약을 마무리 지어야만 했다.
제론이 서둘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제론의 방을 방문한 사람이 있었다.
"벌써 가시는 거예요?"
클레였다. 클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제론이 이렇게 빨리 떠날 줄은 몰랐다.
"바빠서."
바쁘다는데 뭘 어쩌랴. 클레는 제론을 붙잡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제론은 그런 클레를 지나쳐 방을 나섰다.
"한 달 후에 영지로 찾아갈게요!"
클레가 외쳤다. 제론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다. 대체 클레가 왜 영지에 찾아온단 말인가.
의아한 표정을 지은 제론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 준 클레는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영지의 농지를 한번 확인해 보려고요. 일단 계약을 했으니 최대한 이익이 많이 남을 방법을 강구하는 게 순서거든요."
제론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시오."
그 말을 남긴 제론은 서둘러 왕궁을 떠나갔다. 클레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멀어지는 제론의 뒷모습과 왕궁을 나가는 그의 마차를 끝까지 바라봤다.
☆ ☆ ☆
파인트는 왕궁에 남은 귀족들을 한 번씩 쭉 만난 뒤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후우. 이거 지치는군."
"고생 많으셨습니다, 소영주님."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돌아가는 걸로 하지. 아무래도 여긴 좀이 쑤셔서 오래 있기 힘들어."
파인트가 인상을 쓰며 그렇게 말하자, 그의 수행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다들 분주히 움직였다.
파인트는 그 모습을 보며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파묻었다. 부드럽고 푹신하게 등을 받쳐 주는 느낌에 절로 눈이 감겼다.
그렇게 잠깐 눈을 감고 쉬던 파인트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수행원 하나를 불렀다.
"제론이 지금 뭐 하는지 알아와."
파인트의 말에 수행원은 즉시 대답했다. 파인트가 가진 제론에 대한 관심을 잘 알기에 미리 조사를 해 뒀던 것이다.
"영지로 돌아갔습니다."
"뭐? 돌아가? 언제?"
"파티가 끝나자마자 돌아갔습니다."
"그렇게 일찍? 그럼 다른 귀족은 아예 안 만나고 간 거야?"
"그렇습니다. 떠나기 전에 디아만트 후작가의 여식이 그쪽 방으로 잠깐 찾아갔다고 들었습니다."
"클레 폰 디아만트 말인가?"
파인트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사실 클레의 모습은 이번에 처음 봤다. 클레는 디아만트 상단의 일에 매달려 다른 사교 모임이나 파티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데 이번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왕궁 파티에 나온 것이다. 예전의 클레를 생각하면 상당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처음 본 클레의 외모는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저 정도라면 자신이 지속적으로 매파를 보내고 있는 세나 폰 벨루스에 비해서도 크게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클레는 세나가 가지지 못한 중요한 것을 소유했다. 바로 돈이었다. 벨루스 백작가도 상당한 재력가였지만, 디아만트 후작가에 비하면 달빛 아래 반딧불이었다.
디아만트 후작가는 레늄 왕국의 귀족이라기보다는 대륙의 귀족이었다. 디아만트 상단의 영향력은 대륙 곳곳에 퍼져 있었다. 심지어는 크란 제국에도 수많은 지부가 깔려 있어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파인트는 대번에 욕심이 일었다. 아름다운 세나도 좋지만 돈이 많은 클레가 훨씬 유용할 것이다. 향후 레늄 왕국을 꿀꺽 집어삼키기 위해서는 말이다.
"다다익선이긴 한데……."
둘 모두를 차지할 수 있다면 최고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다.
파인트는 입맛을 다셨다. 어쨌든 시도는 해 볼 만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제론부터 족치고 싶었다. 목을 잘라 버리고, 영지를 불태워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선 안 된다.
"일단 그놈의 저력을 완전히 파악해야 돼."
붉은 학살자가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었다. 그 대비를 하지 않으면 지난번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질 뿐이었다.
"거기 있나?"
파인트가 난데없이 천장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천장에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뚝 떨어졌다. 그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였는데, 어느새 파인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미스트 드래곤에서 좀 나서 줘야겠다."
"어느 정도 선까지 원하십니까?"
"그놈에 대한 모든 것을 원한다. 그놈을 파멸시킬 방법을 찾아야겠어."
"명을 이행하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그림자가 위로 휙 솟구쳤다. 그리고 천장으로 스며들었다.
파인트는 그제야 기분이 좀 나아졌다. 미스트 드래곤은 이쪽 방면으로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한다. 슈린 공작가를 지탱해 온 기둥 중 하나였다.
그들이 나섰으니 이제 제론에 대한 모든 걸 샅샅이 조사해서 가져올 것이다. 남은 건 그저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자, 그럼 돈 많은 계집을 낚을 준비를 해 볼까?"
클레는 대상단의 책임자였다. 그러니 그녀를 낚으려면 상단을 이용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적어도 파인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설픈 방법으로 엮으려 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수도 있었다. 클레는 디아만트 상단을 몇 년이나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나이는 어려도 경험이 많고 능력이 뛰어났다.
파인트는 일단 디아만트 상단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그들이 뭘 주로 취급하는지, 또 어떤 상품에 주력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뭘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세심히 확인했다.
파인트도 슈린 공작가에 속한 제법 큰 상단 하나를 소유하고 있으니 계획만 잘 세우면 얼마든지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가만, 철광석 쪽에 손을 대려고 하는군?"
파인트의 입가가 쭉 늘어났다. 철광석이라면 현재 그가 소유한 루바인 상단의 주력 품목이었다. 즉, 경험이나 능력 면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파인트는 벌떡 일어났다.
"서둘러라! 오늘 돌아간다!"
파인트의 외침에 수행원들이 다들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다. 원래 계획은 하루를 푹 쉬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묵을 준비가 거의 끝나 가는데, 난데없이 돌아가자고 하니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무슨 힘이 있으랴. 수행원들은 부랴부랴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파인트는 그들을 배려할 생각이 전혀 없기에 즉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지금은 이렇게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베어크 영지로 가야만 했다.
☆ ☆ ☆
베어크 영지는 거의 망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일거에 뒤집어 버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무려 다섯 개의 철광석 광산이 동시에 발견된 것이다.
근처에 산과 언덕이 많기로 유명한 영지이긴 했지만 그동안은 광산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점차 악화되는 재정에 허덕였는데, 갑자기 광산이 다섯 개나 발견되었으니 영지가 단번에 살아나 버렸다.
물론 광산 개발 자체를 베어크 영지에서 한 것이 아니었기에 떨어지는 건 적당한 지분이 전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재정에 뚫린 구멍을 꽉 메우고도 남아서 철철 넘쳐흘렀다.
철광석은 광물 가운데 최고 인기 품목 중 하나였다. 기간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막대한 양의 강철이 필요했다. 그러니 철광석은 항상 공급이 수요를 훨씬 웃돌았다.
베어크 영지는 각 광산으로부터 각각 5퍼센트씩의 지분을 받았다. 그저 영지에 속한 산을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해 주는 대가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광산에서 캔 철광석의 5퍼센트는 베어크 영지의 것이었다.
당연히 베어크의 영주는 그 지분을 철통같이 지킬 것이다. 또한 모든 힘을 다해 광산을 지키고 감시할 것이다.
만일 다른 상단이 여기 끼어든다면 그 외의 나머지 지분을 구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클레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고, 파인트가 파고들려고 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었다.
하지만 베어크 영지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은 그 두 사람이 아닌 제론이었다.
'확실히 정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니 편하긴 편하군.'
바인으로부터 긴급하게 정보를 받았기 때문에 즉시 이곳으로 왔다. 물론 특별히 대책을 세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든 빈틈이 있다면 파고들어 볼 생각이었다.
어쨌든 아무 시도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았다. 사실 최근 슈린 공작가에서 보유한 상단의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제론의 명령을 받은 바인이 적절히 견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에 여기서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다면 슈린 공작가를 한 번 크게 흔들 수 있을 것이다.
제론은 그 생각을 하며 베어크 영지 곳곳을 돌아다녔다. 베어크 영지에 대한 정보는 바인이 전해 준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조금 답답하긴 했다.
'근방에 유적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베어크 영지 근방에는 발견된 유적이 없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눈에 불을 켜고 유적을 찾아다니는지 잘 알기에 제론은 이곳에는 당연히 유적이 없을 거라고 믿었다.
베어크 영지는 주변에 다섯 개의 산이 있었는데, 그 다섯 개의 산에서 각각 하나씩의 철광석 광산이 발견되었다. 그 외의 나머지는 평지였다.
그리 넓은 영지가 아니었기에 산이 아니라면 유적이 있을 만한 곳도 없었다.
제론은 일단 영지 곳곳을 둘러봤다. 딱히 상업이 발달한 곳도 아니었다.
"광산이 아니었으면 조만간 망했겠군."
이런 영지는 운영이 정말로 어렵다. 농지가 많은 것도 아니고,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 산이 있으니 몬스터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고, 그러려면 최소한의 병력이 필요하다.
그런 식으로 나가는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이 없으면 적자가 쌓인다. 적자란 곧 빚이다. 그리고 빚이 한계를 넘어가면 영지를 파는 수밖에 없었다.
아마 베어크 영지의 영주와 가신들은 지금 죽다가 살아난 기분일 것이다.
영지가 그런 상황이니 제론도 별달리 할 만한 것이 없었다. 파인트가 루바인 상단을 이끌고 이곳으로 오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아마 그의 일을 방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제론은 영지 곳곳을 확인하고 다섯 개의 광산을 차례차례 방문했다. 최근 광산에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상단이 제법 많았기에 제론의 방문 역시 별다른 의심을 받지 않았다.
다섯 개의 광산은 모두 훌륭했다. 예상 매장량도 엄청났고, 채굴량도 보통 광산보다 훨씬 많았다. 이런 광산을 구입하려면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갈 것이다.
제론은 마지막 광산까지 확인한 다음 턱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광산의 가격을 대충 확인했는데,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1천만 골드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인건비와 시설비를 계산해야 하지만, 매장량과 채굴량을 따져 보면 거의 5천만 골드에 가까운 가치가 있었기에 그렇게 구입을 해도 손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만일 예상 매장량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치면 완전히 끝장이었다.
물론 이렇게 상단이 모여드는 걸 보면 이곳의 매장량은 알려진 것과 거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 정도 확인도 안 하고 유수의 상단이 우르르 몰려올 리 없었다.
'매장량을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제론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철광석의 매장량을 조절하다니. 신도 아니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생각에 잠긴 제론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갔다. 그렇게 1시간쯤 걸으니 어느새 영지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에 도착했다.
비교적 높은 건물이 길 양옆에 쭉 늘어서 있었고, 그 뒤로도 높고 낮은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골목이 보였고, 좌우로 지나가는 제법 널찍한 길도 눈에 들어왔다.
제론은 거기서 걸음을 멈춘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길 한가운데였다. 걷다가 갑자기 서 버린 제론을 향해 몇몇 사람이 불만을 토해 냈지만 제론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게 뭐지?'
제론은 지금 상당히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 기묘한 느낌은 점점 선명해졌다. 그리고 확신으로 변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영지의 번화가 한가운데였다.
그런데 제론이 선 자리에 유적이 있었다.
마치 유적이 제론을 끌어당긴 것 같았다. 발 닿는 대로 움직였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물론 제론을 부른 유적은 고대 유적이 아니라, 그 아래에 잠든 초고대 문명의 유적이었다.
잠든 유적이 설핏 깨서, 근처에 온 주인을 부른 것이다.
제론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주변을 확인하고는 길가로 가서 적당히 자리를 잡았다. 사람도 많이 다니고 마차도 많이 다니는 길이었다. 여기서 어떻게 유적을 찾아갈지 고민이 좀 필요했다.
일단 팔찌를 이용해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만 했다.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몇 가지 시도해 볼 수 있을 만한 것들이 있었다.
어쩌면 초고대 문명의 유적을 통해 고대 유적을 발굴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제론은 문득 떠오른 게 있어 주위를 둘러봤다. 유적의 위치는 정확히 광산이 발견된 다섯 산의 중심에 위치했다. 어쩌면 철광산 자체가 초고대 문명 유적의 영향을 받은 걸 수도 있었다. 물론 가능성은 희박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뭐든 시도해 보려면 인적이 없어야 한다. 제론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사람과 건물을 살피는 한편 시간이 가기를 기다렸다.
번화가라서 불편한 점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밤이 늦어도 사람이 사라지지 않아서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밤이 깊어 갔다. 그리고 새벽이 되었다. 점점 거리가 한산해지다가 결국 인적이 완전히 끊겼다.
제론은 그래도 주위를 충분히 살폈다. 건물에 있는 사람들이 창을 통해 밖을 확인하면 곤란했다. 물론 지나가다가 보는 건 상관없었다. 그 정도면 잘못 봤다고 여길 테니까.
제론은 거리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리고 팔찌에 아네모스를 넣었다.
화아악!
빛이 일었다. 그리고 그대로 유적으로 이동했다. 성공이었다.
제론이 사라지자, 몇몇 건물에서 창문이 열렸다. 방금 전 일어났던 빛 때문에 호기심이 일어 확인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한동안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다가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자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모두 사라진 거리에 적막이 감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