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50/217)

Chapter 3 테오스의 능력

제론은 느긋하게 호텔로 향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베니뉴스 호텔에 묵었다.

사실 제론은 이곳을 의심하고 있었다. 이 호텔에서 일하는 자들은 일반적인 종업원과는 많이 달랐다. 태도도 달랐고, 실력도 달랐다.

일반적으로 호텔에서 무력을 갖춘 종업원을 쓰지는 않는다. 호텔에서 무력이 필요할 때는 자체적으로 키운 경비병을 쓴다. 아니면 용병과 계약을 해서 쓰거나 말이다.

베니뉴스 호텔에도 그런 경비병이 존재했다. 그러니 호텔 종업원의 무력은 전혀 다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래서 더 이곳에 방을 잡았다. 이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떤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물론 다른 곳에서도 얼마든지 살펴볼 수 있지만, 그래도 직접 몸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마티로는 어떤 마법을 썼는지 알아보는 것이 불가능했다. 직접적으로 마법진이 그려져 있지 않다면 말이다.

제론은 베니뉴스 호텔을 세세히 살피고 싶었다. 그랬기에 최상층 객실에 머물지 않았다. 최상층에는 정보 수집에 관한 마법진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난번에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머지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마법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쪽으로 느낌이 흘러갔다.

베니뉴스 호텔에 사용된 마법은 지극히 일반적인 것들뿐이었다, 호텔을 보호하기 위한 몇 가지 장치와 편의를 위한 마법뿐이었다.

'그렇다는 건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정보를 수집한다는 뜻인데, 그게 가능한가?'

정보 수집을 위해 곳곳에 사람이 숨어 있는 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마법을 쓰지 않고 정보를 모으려면 각 객실에 은밀히 사람이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니뉴스 호텔에는 전혀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저 종업원이 언제나 귀를 열고 다닌다는 점이 유일하게 제론이 알아낸 것이었다.

그래서 제론은 더 알고 싶었다. 대체 마법적 장치 없이 어떻게 정보를 모으는지 말이다. 아니,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잘못 짚었을 확률도 있었다.

어쨌든 확인해 보고 싶었다.

마법이 아니라면 마티를 이용해 충분히 찾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아직도 그걸 못 찾았다는 점이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만일 정말로 베니뉴스 호텔에 마법을 완전히 배제한 정보 수집 장치가 있다면 그걸 만든 자는 천재의 범주에 드는 사람일 것이다.

제론은 방 한가운데 앉아서 심장의 마나링을 가속시켰다. 맹렬히 회전하는 마나링이 주변 마나를 장악했다.

일단 호텔에 걸린 마법부터 확인할 생각이었다.

샤아아아아!

제론의 몸에서 부드럽게 마나가 흘러나왔다. 마치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마나가 인위적 마나의 흐름을 차근차근 장악했다.

호텔에 새겨진 모든 마법이 제론의 뇌리에서 철저하게 해체되었다. 제론은 단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혹시라도 건물의 구조를 통해 만든 마법진이 있을지도 몰라 더욱 세심히 살폈다.

물론 그런 고도의 마법진을 구현할 능력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기초적인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제론의 감각을 피해 갈 마법진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역시 없군."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하지만 정보 수집에 관한 마법진은 전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즉,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모았다는 뜻이다.

이제부터 그걸 확인해야만 한다. 물론 마티를 최대한 잘 이용할 생각이었다.

제론은 함부로 태블릿을 꺼내지 않았다. 이 방은 감시당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기에 겉으로 알 수 있는 일은 피해야만 했다.

'일단 나가야겠군.'

이 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쨌든 마법진을 확인한다는 목적은 달성했으니, 이젠 감시당할 필요가 없는 장소에서 마티를 이용해 차근차근 살필 생각이었다.

방에서 나간 제론은 곧장 호텔을 나섰다. 그리고 인적이 없는 곳으로 향했다. 모든 감각을 끌어 올려 혹시라도 미행하거나 감시하는 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론의 발걸음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빈민굴로 향했다.

빈민굴에 들어선 제론은 바인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바인에게 준 석판은 제론이 직접 만든 아티팩트였다.

제론은 마티와 태블릿의 기능을 적절히 이용해 석판을 만들었다. 그것에는 초고대의 마법 지식이 아낌없이 들어갔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제한이었다.

석판을 제대로 다루면 마티를 마음껏 조종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몇 가지는 철저히 차단시켰다.

당연히 제론에 관한 정보는 완벽하게 차단되었다. 마티는 제론 근처에도 올 수 없었다. 당연히 마티를 통해 제론을 살피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제론은 마음 놓고 빈민굴에 들어왔다. 그리고 가장 인적이 없는 곳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중앙 유적으로 이동했다.

태블릿을 가장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곳은 역시 유적뿐이었다.

제론은 태블릿을 조작해 수천 개의 마티를 베니뉴스 호텔로 이동시켰다.

"화면 하나로는 힘든데?"

제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적 로비 곳곳에 수많은 화면이 나타났다. 허공에 떠 있는 화면도 있었고, 벽에 붙은 화면도 있었다. 하나같이 커다랬다.

화면의 수는 백 개가 훨씬 넘었다. 제론은 태블릿을 조작해 로비에 가득한 화면에 각각 하나씩 영상을 보냈다.

하나의 화면이 육십사 개로 분할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분할된 각각의 화면 하나에 마티 하나가 할당되었다.

한꺼번에 수많은 화면을 동시에 확인하는 건 사실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했다. 당연히 제론도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각각의 마티를 일정한 공간을 할당해 규칙적으로 이동하게 하면 모든 화면을 돌아가면서 확인하는 게 가능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몇 개의 마티는 제론이 직접 조종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비밀 공간을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마티가 호텔 곳곳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화면으로 보냈다.

제론은 로비 한가운데에서 사방을 둘러보며 이상한 점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태블릿을 조작해 몇 개의 마티를 직접 움직였다. 당연히 그 화면은 태블릿에 떴다.

"음?"

한참 조사를 하던 제론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호텔 유리창 옆에 작은 실 하나가 보인 것이다.

물론 모든 유리창에 실이 달린 건 아니었다. 딱 하나뿐이었다. 그것도 살짝 삐져나온 것에 불과했다.

제론은 마티를 움직여 실 근처를 세심히 살폈다. 화면을 크게 확대해서 하나라도 놓치는 것이 없도록 했다.

"실이 유리창에 붙어 있어?"

실이 삐져나온 곳은 정작 유리창에서 살짝 떨어진 곳이었다. 만일 그것만 보고 넘어갔다면 절대 몰랐을 것이다.

유리창에 실 한 가닥이 붙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은밀히. 만일 제론도 신경을 써서 살피지 않았다면 결코 몰랐을 것이다. 그 정도로 티가 나지 않았다.

제론은 내친김에 나머지 모든 유리창도 조사했다. 마티가 있고, 확신이 있으니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모든 유리창에 실이 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창에 쓰인 유리의 재질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유리창에 마법을 걸어 놓은 건 아니었지만, 유리 자체를 마법적 처리를 통해 만들었다. 아주 특별한 효능을 가지고 말이다.

제론은 그것이 어떤 효능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베니뉴스 호텔의 유리창은 소리를 모은다. 그리고 실을 통해 소리를 어딘가로 보낸다.

"일단 호텔 안에 있는 건 절대 아니야."

누군지 정말로 치밀하게 만들어 놨다. 호텔에 의심스러운 공간을 만들지 않아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감시나 조사에 대비했다.

제론은 마티를 사방으로 퍼트렸다. 분명히 소리가 모이는 곳은 호텔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 추측은 사실로 드러났다.

베니뉴스 호텔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 바로 그곳이었다. 호텔에 거의 붙어 있는 3층 건물이었는데, 1층은 고급 액세서리나 보석을 파는 상점이었고, 2층과 3층은 생활공간이 있는 전형적인 상점주택이었다.

제론이 찾는 장소는 그 건물 지하에 있었다. 잘 감춰진 방이 지하에 있었고, 호텔의 유리창에서 나온 모든 실은 그 방과 이어져 있었다.

그리고 방에서는 열 명이나 되는 사람이 실 끝에 달려 있는 원통에 귀를 기울이며 정신없이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을 적고 있었다.

그걸 발견한 제론은 손가락을 튀겼다.

딱!

로비에 쫙 펼쳐져 있던 모든 화면이 싹 사라졌다. 제론은 태블릿을 조작해 열 개의 마티를 그곳에 남겼다. 앞으로 그들이 적는 모든 내용은 고스란히 마티를 통해 태블릿에 저장될 것이다.

"그나저나 저 유리와 실에 대해서 확실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어."

제론은 일단 태블릿을 통해 검색부터 했다. 웬만한 질문의 답은 태블릿이 가지고 있었다. 가끔 세상의 모든 지식이 다 들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검색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제대로 된 키워드로 찾아야 하는데, 유리나 실로는 찾을 수가 없었다.

한동안 태블릿을 들여다보며 조작하던 제론의 눈이 반짝 빛났다. 드디어 찾은 것이다.

"이름부터가 완전히 다르니 찾을 수가 없지."

제론은 수많은 검색을 시도한 끝에 네라와 레브마라는 이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찾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거의 쓰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마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쓸 일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유용한 물건이었다. 지금처럼 은밀히 정보를 수집하거나 할 때 너무나 효과적이지 않은가.

초고대에는 소리를 통해 정보를 모으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가지 않게 만드는 능력을 대부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론은 네라와 레브마에 대해 더 자세히 살폈다. 그것을 만드는 방법과 쓰임새에 관한 수많은 설명이 있었다. 역시 태블릿은 대단했다.

제론은 문득 베니뉴스 호텔의 주인은 어떻게 네라와 레브마의 존재를 알고 만들어 냈는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지.'

전혀 다른 물질로 비슷한 효과를 내는 것일 수도 있었다. 사실 그럴 확률이 높았다. 네라나 레브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초고대 문명을 모르면 절대 알 수 없는 물질이 필요했다.

포로스와 마찬가지로 테페룸을 가공해 만드는 물질이었기에 호텔 전체를 그런 물질로 뒤덮으려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뭔가 새로운 물질을 개발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호텔의 주인이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좀 알아봐야겠어.'

호텔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모은 정보가 어디로 가는지만 확인하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마티를 이용하면 아주 간단히 알아낼 수 있다.

"좋아. 여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제론은 왠지 뿌듯했다. 새로운 걸 알아냈다는 즐거움이 말도 못할 충족감을 주었다.

태블릿을 아공간에 넣은 제론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왕 이렇게 중앙 유적에 온 김에 수련을 할 생각이었다.

12층의 수련은 아직도 지지부진했다. 마티를 이용해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은 구슬을 잡아내는 건 어찌어찌할 수 있었는데, 그걸 막거나 피할 방법이 없었다.

검술을 극한까지 끌어 올리거나 아니면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검술을 극한까지 끌어 올려서 소드 마스터가 된다 하더라도 과연 그걸 모두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쨌든 가자."

제론은 곧장 12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테오스를 소환했다.

수련은 바로 시작되었다. 수백 개의 검은 구슬이 테오스로 쏟아졌다.

제론은 사방에 뜬 화면을 통해 그것들을 잡아냈다. 화면 하나에 수백 개의 구슬이 보였다. 심지어는 낮은 궤도로 날아 다리를 노리는 구슬도 있었는데, 그조차 몽땅 보였다.

후웅! 후웅! 후웅!

테오스가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구슬을 막아낼 수 없었다.

터더더더더더덩!

"크윽!"

바늘에 찔리는 듯한 통증이 온몸에 느껴졌다. 대체 어떻게 통증을 느끼게 만드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테오스가 아무리 뛰어나도 통각까지 연결할 리가 없는데 말이다.

'이래서는 답이 없어.'

제론은 내심 하루라도 빨리 소드 마스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면 이 정도로 당하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상념에 젖은 사이 또 한 차례 구슬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더 막기 어려웠다. 딴생각을 한 대가는 아주 컸다.

터더더더더덩!

"크으윽!"

제론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문득 마법에 생각이 미쳤다.

만일 마법을 쓸 수 있다면 이따위 구슬쯤 얼마든지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바람 마법만 펼쳐도 구슬을 싹 날려 버릴 수 있을 테니까.

구슬이 또 쏟아졌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려던 제론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심장의 마나링을 가속시켰다.

당연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마법을 쓰지도 못했다. 테오스의 조종석에서 마법을 쓴다는 건 불가능했다. 조종석에 마법이 떨어지면 라이더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에 막아 놓은 것이다.

터더더더덩!

"크윽!"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구슬을 맞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맞으니 통증이 좀 덜했다. 무리하게 검을 휘두르다 맞으면 자세가 안정적이지 않아 더 아픈 모양이었다.

제론은 그렇게 대충 자기 편한 대로 생각하고는 다시 마나링을 돌렸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오기가 생겼다. 이번에는 그냥 마법을 쓰지 않고 테오스가 쓴다는 생각으로 동화율에 신경을 썼다.

위이잉!

순간 기묘한 감각이 제론의 온몸을 덮쳤다.

"헉!"

마치 온몸을 마나가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제론은 깜짝 놀라 집중이 흐트러졌다. 그러자 마나도 사라졌다.

터더더더덩!

"크윽!"

통증이 훨씬 덜했다. 제론의 눈이 번득였다. 답은 검이 아니었다. 통증이 줄어든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안정감이 아니었다. 답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제론은 다시 마나링을 가속시켰다. 이번에는 조금 전 감각을 확실히 느끼려 애썼다.

위이잉!

심장의 마나링이 가속되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마나가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아니, 계속해서 마나가 쏟아졌다. 제론은 그것이 마나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놀랍게도 테오스의 조종석을 중심으로, 즉, 제론을 중심으로 거대한 마나링이 회전했다.

제론은 쏟아지는 검은 구슬을 화면으로 확인하며 손을 뻗었다.

제론과 동화된 테오스도 손을 뻗었다.

화아악!

빛나는 마법진이 테오스의 손바닥 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산산이 부서지며 마법이 발현되었다.

콰우우!

거대한 불꽃이 쏟아져 나갔다. 불꽃에 닿은 구슬은 여지없이 녹아 버렸다.

터더더덩!

앞의 구슬은 싹 녹였지만 등은 방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제론은 거의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통증을 느낄 정신도 겨를도 없었다.

"마법을 쓸 수 있다니!"

제론은 멍하니 손을 들여다봤다. 기간트로 마법을 쓰다니.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솔직히 가능성을 느끼고 시도하면서도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한데 이렇게 어마어마할 줄은 몰랐다.

제론은 마나링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건 테오스가 가진 마나링이었다. 물론 몇 개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마법을 펼쳐 낸 걸 보면 다섯 개 이상인 건 분명했다.

그러는 사이 다시 구슬이 쏟아졌다. 유적의 수련 시스템은 현재 제론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든 신경을 써 주지 않는다.

제론은 자연스럽게 테오스의 손을 들어 올렸다. 테오스의 마나링이 회전했다. 이번에는 집중해서 분명히 느꼈다. 제론과 마찬가지로 일곱 개의 마나링을 가졌다.

위이잉!

테오스는 양손을 옆으로 뻗었다. 두 개의 마법진이 각각의 손바닥 앞에 떠올랐다.

샤아아!

마법진이 부서지며 마법이 발현되었다.

콰우우!

두 개의 불꽃이 구슬을 휩쓸며 타올랐다. 하지만 모든 구슬을 완벽하게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터더덩!

제론은 실망하지 않았다. 이건 그저 연습일 뿐이었다. 제론이 펼칠 수 있는 마법은 그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구슬쯤이야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었다.

다시 구슬이 쏟아졌다. 제론은 이번에는 조금 전과 방법을 달리했다.

테오스의 발밑에 마법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이 부서지며 투명한 막이 테오스를 완벽하게 가뒀다. 실드였다.

터더더더더더덩!

제론의 예상대로 검은 구슬은 테오스의 실드를 전혀 뚫지 못했다. 모든 구슬을 완벽하게 막아 낸 것이다.

"끝인가?"

12층 수련의 목표가 끝났다고 여긴 순간, 다시 구슬이 쏟아졌다. 제론은 반사적으로 실드를 펼쳐 그것을 막아 냈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이번에는 다른 층과 달리 빠르게 끝낼 수 있다고 여겼는데, 그게 아니니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실망은 실망일 뿐, 투지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제론은 사방에 떠 있는 화면을 통해 다시 쏟아지는 구슬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 뒤로 수많은 마법이 펼쳐졌다. 제론은 질리지도 않고 마법을 쏟아 냈고, 그때마다 모든 구슬을 없앨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구슬을 부숴도 12층의 수련은 끝나지 않았다.

"대체 뭘 어쩌라는 거지?"

구슬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쏟아져도 몽땅 막아 낼 자신이 있었다. 한데 그러면 뭐 하는가. 수련이 끝날 생각을 않는데.

제론이 생각에 잠긴 사이 다시 구슬이 쏟아졌다. 테오스의 조종석에 앉아 사방에 펼쳐진 화면을 둘러보던 제론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이렇게 화면이 많을까?'

마치 모든 사각을 없애기 위한 화면 같았다. 정확히 조종석에 앉은 라이더가 한눈에 모든 걸 확인할 수 있도록 화면이 떠 있었다.

제론은 반사적으로 마법을 펼쳤다.

마법진이 떠오르며 수많은 푸른 색 구슬이 생겨났다. 테오스의 마나를 통해 만들어진 마력탄이었다.

슈슈슈슈슉!

마력탄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마력탄을 제어하는 것은 엄연히 제론이었다. 제론은 테오스의 마나를 이용해 마력탄을 조종했다.

마력탄이 각각 방향을 잡아 날아갔다. 그리고 절반 정도가 까만 구슬에 명중했다.

퍼버버버버벅!

마력탄과 충돌한 구슬은 그대로 소멸되었다.

"이거였군."

무려 12층 공략이 그렇게 쉬울 리 없었다. 고작 테오스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수련이 끝났다고 생각했다니.

12층의 진짜 수련 목표는 테오스를 이용해 마법의 컨트롤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일단 목표를 알아냈으니 그 뒤로는 별거 없다. 될 때까지 끊임없이 앞으로 나가가기만 하면 된다. 그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사방에서 구슬이 쏟아졌고, 제론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테오스가 만들어 낸 마법진이 수백 개의 마력탄을 날렸다.

검은 구슬과의 싸움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제론은 행정청에서 모든 처리가 끝난 것을 확인한 뒤, 빈민굴로 향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행정청의 일 처리가 더뎠다. 열흘이나 걸린 것이다.

그 열흘의 시간 동안 에어스트 백작령에 대한 정보가 레늄 왕국 유력 가문으로 흘러들어 갔다. 제론은 그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레늄 왕국의 유력 가문은 대부분 수도에 저택을 구입해 지내고 있었다. 정계 활동을 하려면 수도에 있는 편이 훨씬 편했다.

덕분에 제론도 편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모든 정보가 그저 태블릿 안에 잠들어 있다는 점이었다. 정보를 써먹으려면 그것을 확인해 필요한 부분을 추려 내야 하는데, 제론에게는 그것을 할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바인이었다. 제론은 상당히 오랫동안 바인을 관찰했다. 바인에게 관심을 가진 이후로 항상 마티를 붙여 뒀다.

그렇게 해서 결론을 내렸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다. 제론은 일단 바인을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빈민굴에 들어선 제론은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예전에 왔을 때와는 분명히 달랐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계속 걸었다.

제론은 바인에게로 향하는 내내 위화감의 정체를 파악하려 애썼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알아냈다.

곳곳에 서 있는 사람이 문제였다. 그들은 뭔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것을 알아챈 제론이 속으로 상당히 감탄했다.

'날 감시하는 건가?'

그냥 감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어딘가로 계속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제론은 당장 이들이 뭘 하는지 마티를 통해 확인해 보고 싶은 걸 꾹 눌러 참았다.

감시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상당히 뛰어났다. 아마 제론의 감각이 특별히 예민하지 않았다면 절대 그 부자연스러움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제론은 소드 마스터가 되기 직전이었다. 물론 그 앞에 놓인 벽이 워낙 높고 두꺼워 깨뜨릴 엄두도 못 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초고대 문명에서야 아직 익스퍼트지만 현실에서는 이미 소드 마스터였다. 아직 다른 소드 마스터를 본 적은 없지만 그들보다 월등히 강하면 강했지, 결코 떨어지지 않을 거라 자신했다.

그러니 실제로 바인이 구축해 놓은 빈민굴의 정보망은 거의 들킬 염려가 없었다. 고작 열흘 만에 이 정도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제론은 과연 바인이 어디까지 했을지 궁금했다. 보름 안에 빈민굴을 장악할 수 있다고 장담했는데, 지금 이 모습만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바인의 거처로 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테오스의 새로운 능력을 알아낸 것도 좋았고, 12층 공략의 열쇠를 발견했으니 금상첨화였다.

거기에 바인의 능력도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것 같으니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감시의 눈길은 바인의 거처로 가는 내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곳곳에 빈민들이 있었고, 그들의 눈에 제론의 일거수일투족이 담겼다.

제론은 바인의 거처에 도착했다. 한데 예전과 달리 거처를 지키는 자가 둘이나 있었다. 둘 다 힘깨나 쓸 것처럼 덩치가 있었고, 인상도 우락부락했다.

제론이 다가가자 두 사람이 앞을 막아섰다. 제론은 굳이 힘을 쓸 이유가 없기에 걸음을 멈췄다. 그러자 안에서 바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한 분이시다. 안으로 모셔라."

두 덩치가 그 말에 흠칫 놀라더니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몰라 뵈었습니다. 안으로 드십시오."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였다. 제론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 덩치를 한 번씩 쳐다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바인이 어디서 구했는지 낡은 탁자를 앞에 놓고 서 있었다. 그리고 제론이 들어서자마자 즉시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어서 오십시오."

"일은 잘 돼 가나?"

"아직 기한이 남은 걸로 압니다."

아직 5일이나 남았다. 하지만 오면서 분위기를 보니 거의 끝난 모양새였다.

"다 끝난 것 같던데?"

"아직 한 군데 남았습니다. 그들을 피해 없이 처리하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그게 5일인가?"

"그렇습니다."

제론이 흥미로운 눈으로 바인을 쳐다봤다. 바인은 긴장감 어린 눈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그는 제론이 어마어마한 힘을 가졌다는 걸 안다.

무력은 어떤지 확인하지 못했지만 자신에게 신비로운 아티팩트를 보여 준 것만으로도 그 힘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었다. 아마 허튼수작이라도 부리면 이따위 빈민굴쯤 단번에 날아가 버릴 것이다.

"단번에 끝낼 수 있는 방법은?"

"두목들만 모아서 처리하면 됩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하지만 무력이 필요합니다. 비록 빈민이지만 두목들의 힘은 상당합니다."

"어느 정도면 되나? 익스퍼트 기사를 기준으로 얘기해 봐."

익스퍼트라는 말에 바인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익스퍼트 기사 한 명만 와도 빈민굴을 완전히 뒤집어 버릴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를 해치우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빈민은 대부분 독한 구석이 있었다. 마음 독하게 먹고 갖은 비열한 수를 다 동원해 싸우면 기사를 죽이는 것도 가능했다.

바인은 잠깐 머릿속으로 계산한 뒤 말했다.

"세 명이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빈민굴 조직의 힘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뿐이었다.

"내가 하지."

"그럼 오늘 저녁에 그들을 모으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바인을 보며 제론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들을 꼭두각시 인형처럼 취급하는 듯하지 않은가.

"언제든 원하는 때에 그들을 모을 수 있는 건가?"

"시간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것 자체는 간단합니다."

제론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상대편 조직의 두목은 총 열 명입니다. 그리고 전 그들 각자의 취향과 욕망을 알고 있습니다."

"그걸 이용해 모은다고?"

"슬쩍슬쩍 정보를 흘려주면 됩니다. 아마 절대 거부할 수 없을 겁니다."

"대단하군."

제론은 감탄했다. 말은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일 정말로 바인이 그걸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능력자였다.

바인이 그런 제론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실 저를 만난 뒤에 빈민굴에 들르셨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론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건 바인이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바인에게 준 마티에는 제한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제가 가진 아티팩트로는 확인이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역으로 그것이 존재 자체를 말해 주기도 합니다."

제론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기에 한편으로는 놀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감탄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까지 알아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사실 단편적인 정보를 모으면 그것을 아우르는 큰 흐름을 볼 수 있습니다. 전 빈민굴을 샅샅이 살피면서 빈민굴 밖의 일도 조금씩 알아 가고 있습니다."

바인은 그렇게 말하며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상자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는 서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제론은 바인이 그 안에서 꺼낸 수십 장의 서류를 받아 확인했다. 그리고 혀를 내둘렀다.

모두 수도 곳곳의 정보를 정리해 놓은 것이었다. 그중 절반 정도는 아직 제론도 모르는 것들이었다. 물론 알고자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리하려면 제법 애를 써야만 한다.

"훌륭하군."

제론은 그것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심혈을 기울여 찾은 녀석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몰랐다. 제론의 시선이 바인에게로 향했다.

바인은 제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에 그저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처분을 기다렸다. 일단 던질 수 있는 건 다 던졌다.

사실 이렇게까지 자신의 능력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했다. 자신의 모든 걸 드러내서 상대의 신뢰를 얻기 위함이었다.

제론은 한참 동안이나 바인을 쳐다보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바인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기에 그가 만일 딴 맘을 먹었을 때, 얼마나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험을 안고서라도 바인을 놓치기 싫었다. 그만큼 바인은 뛰어난 구석이 있었다.

'일단 정보 하나만큼은 앞으로 절대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

어쩌면 굳이 제론이 요청하지 않아도 바인이 알아서 필요한 정보를 보내 줄지도 모른다.

"좋아. 일단 오늘 저녁에 그놈들이나 모아라. 일단 빈민굴부터 장악하자."

바인이 환하게 웃으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사실 모험이었다. 제론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누가 후환을 살려 두겠는가.

"감사합니다!"

제론은 그런 바인을 보며 피식 웃었다. 어쨌든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빈민굴을 장악한 열 개의 조직이 공중분해 되었다. 열 명의 두목은 목이 잘린 채, 각자의 조직으로 돌아갔다.

바인은 레늄 왕국의 수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빈민굴의 유일한 주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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