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세 영지
제론은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2시간을 할애해 마티가 수집한 정보를 훑었다.
최근 유적 12층 공략을 시작한 이후 두뇌가 활성화되어 동시에 여러 정보를 수집해 처리하는 능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혼자서 하는 건 한계가 있었다. 2시간은 너무 짧았다.
제론이 원하는 정보는 슈린 공작가의 약점과, 수도나 혹은 체른산 근방에 있을지도 모르는 인재였다. 물론 포섭이 가능한 인재를 선별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변 세 영지를 살폈다. 그들이 혹시라도 딴마음을 먹거나, 아니면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그들에게 접근할지도 모르기에 잠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그 모든 걸 혼자 하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오늘 아침에도 제론은 태블릿에 열여섯 개의 화면을 동시에 띄우고 눈이 팽팽 돌아갈 정도로 힘겹게 정보를 확인하고 있었다.
"후우. 쉽지 않군."
제론이 눈을 빛내며 태블릿을 아공간에 넣었다.
오늘도 인재 쪽은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리고 슈린 공작가의 약점도 좀 더 세밀히 살피지 않으면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세 영지 쪽은 변화가 있었다.
"그놈들 대체 뭐지?"
오늘따라 정보 조직의 필요성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우리 전력은 좀 어때?"
카이트는 갑자기 자신을 불러서 묻는 제론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불과 며칠 전에 그에 관한 대화를 나눴다. 한데 굳이 이렇게 따로 불러서 또 물어보니 당황스러웠다.
"며칠 전에 보고드린 대로입니다."
제론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영지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예?"
카이트가 황당한 눈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난데없이 영지전이라니. 그럼 주변 영지를 지금 병합하겠다는 뜻 아닌가.
"영주님, 아무래도 조금 생각하셔야 할 문제 같습니다."
제론이 아무 말 하지 않고 보기만 하자, 카이트가 말을 이었다.
"굳이 지금 영지전을 벌여서 영지를 키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제론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전쟁은 내가 거는 게 아니야."
"예? 하지만 이 영지는……."
3년 동안 전쟁을 걸지 못하는 영지였다. 만일 영지전을 선포한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권력을 가진 자라 하더라도 정면에서 국왕령을 거스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가 한 가지 간과한 게 있었어."
"간과하다니요?"
"영지 이름을 바꿨지."
"예? 고작 이름을 바꿨다고 그게 가능해진단 말입니까? 국왕령을 너무 우습게 여기는 처사입니다."
제론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관련 서류를 충분히 확인해 봤지. 가능성이 있어."
"하지만 가능성만으로 전쟁 준비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쟁 준비는 그저 마음가짐만으로는 안 된다. 진짜 제대로 하려면 충분히 사전에 준비를 해야만 한다.
기간트만 나선다면 모르겠지만 보통 전쟁에는 병사의 역할도 상당했다.
물자도 준비해야 하고, 훈련 방식도 바꿔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 돈이 들어간다.
"주변 세 영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제론의 말에 카이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지만 주변 영지가 아무리 힘을 모아도 에어스트 백작령의 상대가 안 된다. 보유한 기간트의 수와 질이 너무 달랐다.
"누군가 뒤에서 지원을 하는 모양이야. 기간트의 수가 제법 많아."
"얼마나 됩니까?"
"오십 기쯤 되는 것 같아. 하지만 문제는 병사의 수야. 원래의 영지병까지 합하면 오천 명은 되는 것 같아."
카이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렇게나 많습니까? 대체 어떻게……."
"돈 좀 쏟아부은 모양이야. 확실하게 이기고 싶은 거겠지. 어때? 가능하겠어?"
카이트는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겁니다."
기간트야 어떻게든 막아 낸다고 해도 병사를 제대로 막지 못하면 영지가 피폐해진다. 그래서야 전쟁에서 이겨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제론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설마 슈린 공작가가 그런 빈틈을 발견해 치고 들어올 줄은 몰랐다. 명백한 실책이었다.
'그래도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지.'
당장 슈린 공작가와 붙지 않는 한, 분명히 상황을 타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얼마나 피해를 줄이느냐였다.
사실 피해를 완전히 없앨 방책은 있었다. 상대가 기간트 오십 기를 준비했다고 하지만 오십 기를 전부 베르 같은 발굴형 기간트로 맞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 전부 크라테르로 맞추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마 대부분이 실바일 것이다. 개중 일부는 카타락타고, 고작 몇 기의 크라테르를 내세울 것이 틀림없었다.
그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다. 백작령이나 후작령의 전쟁도 아니고 고작 변방의 남작령이 일으킨 병력치고는 지나칠 정도였다.
어쨌든 그 정도라면 테오스가 나서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피해가 전혀 없이 말이다.
전쟁이 에어스트 백작령 한가운데서 벌어진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오십 기의 기간트쯤은 그것도 수준이 낮은 하급 기간트 정도는 얼마든지 이길 수 있었다.
기간트가 하급이면 보통 라이더도 베테랑이 아닌 경우가 많았다. 그것까지 감안하면 어렵지 않게 승리를 차지할 수 있다.
그리고 제론이 혼자 기간트를 막는 동안 라이트닝 기사단이 병사를 막으면 된다.
아무리 오천 명이나 되는 병력이라도 무려 스물여덟 기의 기간트가 나선다면 아무런 피해 없이 물리치는 게 가능했다. 더구나 에어스트 백작령에도 병사가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치안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긴다 하더라도 테오스가 드러나 버린다. 벨루스 백작이 끼어들었을 때, 테오스를 노출시키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
아마 이번에는 그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영지가 완전히 파헤쳐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테오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이겨야 한다. 어쩌면 적의 목적은 영지전에서 승리하는 게 아니라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최대한 피해 없이 막아 내야 한다. 기간트는 라이트닝 기사단에 맡기지. 세나와 상의해서 좀 더 성능이 좋은 기체로 교환하도록 해. 남는 게 있을지 모르겠지만."
카이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그가 쓰는 기간트는 무려 아우틈이었다. 아우틈을 쓰는 기사단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게다가 기사는 모두 크라테르를 쓴다.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일인데 더 좋은 기체로 바꾸라니 대체 어디에서 그 많은 기간트가 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카이트가 놀라건 말건 제론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손을 내저어 그를 내보내고는 바이스를 불렀다.
카이트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영주의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바이스가 들어왔다.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바이스의 표정도 심상치 않았다.
"영주님, 쉽지 않은 전쟁입니다."
"나도 알아."
"영주님께서 숨겨 두신 그 기간트, 이번에 쓰시면 안 되겠습니까?"
바이스나 세나는 제론이 특별한 기간트를 쓰고 있다는 것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또한 그 기간트가 엄청난 도움을 준다는 사실도 말이다.
제론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전쟁은 촉이 좋지 않았다. 테오스를 쓰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기간트는 카이트 경이 어떻게든 할 거야. 훈련시키는 견습까지 동원하면 압도할 수도 있어."
"그건 그렇습니다만, 병사가 문제입니다. 오천 명이나 된다면서요?"
제론이 눈을 빛내며 바이스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이번 전쟁에 마법을 한번 제대로 써 보는 게 어때?"
"예? 마법 말입니까?"
제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다수의 적을 막는 가장 훌륭한 전술은 마법에 있는 것 같지 않아?"
"그야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적의 규모가 어지간할 때의 일입니다. 오천 명이나 되는 병사가 넓게 포진하면 아무리 마법이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스는 심각해졌다. 이곳에서 마법사는 자신 혼자뿐이다. 혼자서 그들을 몽땅 상대하라는 말인데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게다가 범위가 넓은 공격 마법은 한 번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엄청나게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공격 마법을 거의 난사해야 할 텐데 그런 건 아예 불가능했다.
"마법으로 공격하자는 게 아니야. 함정을 만들자는 거지. 어때? 생각 있어?"
바이스는 제론의 마지막 한 마디에 이번 일이 어쩌면 자신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길게 생각하지 않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제론이 씨익 웃었다.
"탁월한 선택이야. 아마 후회하지 않을 거야."
바이스도 따라 웃었다.
"영주님을 따르면 자다가도 빵이 떨어진다는 사실, 평생 명심하고 살 겁니다."
두 사람의 미소가 점점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