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1/217)

Chapter 6 수도로

벨루스 백작이 돌아갔다. 백작이 있으나 없으나 영지는 달라진 게 전혀 없었다. 다만 세나가 조금 달라졌을 뿐이었다.

세나는 그 뒤로 조금 더 적극적으로 제론에게 다가갔다. 물론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꿈은 새로운 기간트를 설계하고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젤레 영지로 오면서 그 꿈에 한발 다가간 거나 다름없었다. 백 기가 넘는 기간트를 오로지 혼자서 수리하는 경험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기종을 총망라했으니 더더욱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이 모이고 모여 실력이 되고, 또 그 실력을 갈고 닦아 새로운 기간트를 설계할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기간트의 설계에는 반드시 마법사가 필요했다. 그것도 능력이 지극히 뛰어난 마법사가 말이다.

세나는 일반적인 엔지니어와 다르게 마법에도 제법 조예가 깊었다. 원래 마법사 지망생이었다가 엔지니어로 바꿨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수많은 기간트를 수리하고 분해 조립을 반복하면서 그녀의 실력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더구나 최근에는 발굴형 기간트인 베르를 수리하고 있었다. 그것을 계기로 그녀는 또 한 번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세나가 성장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끊임없이 발전했다. 그리고 영지 역시 계속해서 자라나고 있었다.

☆ ☆ ☆

제론은 벨루스 백작이 돌아간 뒤 약간의 시간을 들여 영지의 전반적인 행정을 체크했다. 그리고 다시 수도로 향했다.

수도로 가기 위해서는 텔레포트 게이트를 두 번 이용해야만 한다. 제론은 일단 가장 가까운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는 영지로 향했다.

이번에 수도로 가는 목적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인재를 구하기 위함이었다. 젤레 영지에는 인재가 너무 모자랐다. 인구는 늘릴 수 있어도 인재를 늘리는 건 쉽지 않았다.

일단 제대로 교육받은 행정가만 몇 명 구해도 영지 일이 훨씬 편해질 것이다.

무력에 관한 것은 카이트에게 모든 걸 일임했다. 그가 알아서 할 것이다. 지금도 카이트는 라이더를 영입하거나 교육시키는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두 번째 목표는 영지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젤레 영지는 상당히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이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엄밀히 따지면 젤레 영지가 아니라 에어스트 백작령이 되어야만 한다.

영지 명을 바꾸는 건 그냥 영주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수도에 있는 왕궁으로 가서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

이번에 수도로 인재를 구하러 가면서 제론은 그 일까지 마무리하기로 했다.

마지막 목적은 수도 인근에 있는 유적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 유적에도 과연 초고대 문명 유적이 숨겨져 있는지 확인하고 그렇다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등록시킬 계획이었다.

수도 인근에 정보 수집 아티팩트를 깔아 놓을 수 있다면 정말로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렇게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수도로 출발한 제론은 최대한 빠르게 이동했기에, 떠난 당일 도착할 수 있었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한 번 이용하면 그날은 쉬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제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연달아 두 번의 텔레포트를 통해 수도에 도착한 제론은 바로 근처 호텔로 향했다.

수도에는 아카데미 때문에 제법 오랫동안 머물렀기에 익숙했다. 물론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달라진 점이 약간 있긴 했지만 별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제론은 수도 안을 걸으며 허리띠의 버클을 쓰다듬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수도에는 중요한 곳에 아공간 금지 아티팩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수도로 들어가는 성문과 성벽, 그리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둘러싼 담장과 문에 설치된 아티팩트가 가장 강력하고 확실했다.

어떤 이유로든 기간트가 수도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만일 아공간을 가지고 성문을 통과하려 하거나, 텔레포트 게이트에 나타나면 당장 경계 신호가 울리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제론의 아공간 아티팩트는 전혀 걸리지 않았다. 현재 제론이 가진 아공간은 두 개였다. 하나는 팔찌에 새겨진 아공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버클에 새겨진 아공간이었다.

한데 그 두 아공간 모두 수도의 아공간 방어 시스템에서 완전히 자유로웠다. 마치 아공간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수도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호텔은 텔레포트 게이트 바로 옆에 있었다. 텔레포트를 이용하는 부유한 고객을 확보하려면 성문 근처보다는 텔레포트 게이트 근처가 훨씬 유리했다.

보통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영지를 가진 귀족이 수도에 오는 경우 호위기사만 해도 열 명 이상을 데려온다. 한데 제론은 혼자서 호텔로 들어갔으니, 그다지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호텔에는 수많은 직원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쪼르르 제론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베니뉴스 호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종업원의 정중한 인사에 제론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주고는 말했다.

"제일 좋은 방으로."

"예?"

종업원은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는 사색이 되어 연신 허리를 꾸벅꾸벅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됐다. 안내나 하도록."

제론의 말에 종업원은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인 뒤, 즉시 제론을 안내했다.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호텔에서 가장 좋은 방은 모두 최상층에 모여 있었다. 호텔의 최상층에는 단 세 개의 방밖에 없었다. 다른 층에 각각 삼십 개의 방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난 공간을 할애한 것이다.

제론은 그중 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보통은 호위 기사와 시종을 잔뜩 데려온 고위 귀족이 머무는 방이었다. 하지만 제론은 혼자서 그 큰 방을 차지했다.

은화 하나를 팁으로 던져 준 제론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종업원의 인사를 받으며 문을 닫았다.

제론은 수도에 있는 동안 번잡스러운 상황이 벌어지는 걸 원치 않았다.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이야 있지만 아직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호텔 최상층의 방을 얻었다. 최상층은 각각 따로 관리되기 때문에 다른 손님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대신 웬만한 귀족은 하룻밤을 지낼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비쌌다.

제론은 일단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수도에서의 볼일을 볼 계획이었다.

가만히 누워 마나 호흡을 통해 흐트러진 몸을 추스르던 제론은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요즘은 자면서도 아주 자연스럽게 마나 호흡을 통해 마나를 받아들였다. 규칙적인 숨소리와 함께 천천히 마나가 흘러갔다.

☆ ☆ ☆

깁스 남작은 거대한 저택의 은밀한 곳에 앉아 보고서 몇 장을 느긋하게 읽고 있었다.

거의 웬만한 영지 기사단의 연무장 정도 되는 넓이의 방이었는데, 방 안 가득히 책과 서류가 쌓여 있었다.

이곳은 깁스 남작이 뭔가 일을 구상할 때 쓰는 장소였다. 또한 정보를 보관하는 곳이기도 했다.

"흐음. 이거 그냥 내버려 두면 곤란하겠는데?"

깁스 남작이 읽는 보고서는 젤레 영지에 관한 최신 정보였다. 자신이 운영하는 정보길드 그림자의 눈이 최대한 자세히 조사한 내용이었다.

깁스 남작은 일단 젤레 영지의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거대한 성이 한가운데 있고, 그 주위로 드넓은 땅이 펼쳐져 있었다.

"이 땅이 몽땅 개간되었다 이거지?"

이곳에 대해서는 깁스 남작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에어스트 백작가를 함정에 빠트리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깁스 남작이었다.

슈린 공작은 깁스 남작이 은밀히 개입해서 모든 일을 주도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깁스 남작에게는 슈린 공작조차도 그저 야망을 위해 이용하는 대상일 뿐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군."

당시 유적 근방의 땅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히 조사했다. 혹시라도 농지로 바뀔 가능성이 있다면 나중에 골치 아플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조사해도 그 땅은 황무지였다. 사막이 되지 않은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 어떤 작물도 자라날 수 없는 땅이었다.

한데 그 땅을 개간해 농작물을 심었고, 그 싹이 돋아나 자라고 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깁스 남작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단호히 관심을 끊었다. 사실 좀 더 지켜봤어야만 했다.

제론이 포상으로 얻은 영지에 대한 조사는 완벽히 했다. 그랬기에 신경을 안 써도 되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만일 그 모든 황무지를 농토로 바꿨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야."

깁스 남작의 눈이 번득였다.

대륙 전체를 뒤져 봐도 그 정도 넓이의 농지는 찾기 어려웠다. 만일 그 모든 황무지를 이용해 곡물을 재배한다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자고로 식량은 최고의 무기 아닌가.

"탐나는 영지로군."

아직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보고서대로라면 앞으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

"성을 짓거나 수로와 저수지를 만든 공사를 보면 기간트를 동원한 게 확실한데……."

깁스 남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기간트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이건 좀 심했다. 믿기 어려웠지만 사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림자의 눈은 깁스 남작이 가장 신임하는 조직 중 하나였다.

깁스 남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해가 안 가는군. 기간트를 이용해서 수로를 만들어? 그런데 땅을 개간했다고?"

기간트는 그 무게 때문에 농지 작업에 쓰기가 어렵다. 기간트가 한 번 밟고 지나가기만 해도 땅이 꾹꾹 다져져서 농사가 어려워진다.

한데 정황을 보면 기간트를 동원한 게 분명했다. 깁스 남작은 제론이 대체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 궁금했다.

총 7장으로 이루어진 보고서를 모두 읽은 뒤, 의자에 등을 기대고 지그시 눈을 감은 깁스 남작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 순간, 천장이 은은하게 빛났다. 천장에 새겨진 마법진이 작동한 것이다. 깁스 남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가락을 튀겼다.

딱!

그러자 마법진이 더욱 환하게 빛났다.

화악!

빛이 사라지자, 깁스 남작 앞에 서류가 쌓여 있었다. 새로운 정보가 도착한 것이다. 남작은 서둘러 서류를 확인했다.

서류의 가장 앞에 명확하고 복잡한 기준으로 분류 코드를 삽입해 놓았기에 정리는 아주 간단했다. 코드와 날짜를 기준으로 자리에 꽂아 놓기만 하면 된다.

원래는 이 방을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당연히 깁스 남작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깁스 남작이 방에 있는 경우는 직접 정리를 하곤 했다. 정보를 정리하면서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깁스 남작은 가장 위에 놓인 보고서를 보고는 눈을 빛냈다. 이래서 직접 정리하는 걸 그만둘 수가 없는 것이다.

"수도에 도착했다고?"

보고서에는 제론의 최근 행적이 정리되어 있었다. 벨루스 백작이 젤레 영지를 방문했으며 그 이후 제론이 수도로 왔다는 내용이었다.

보고서에는 제론이 수도의 베니뉴스 호텔 최상층에 머문다는 것까지 적혀 있었다.

"베니뉴스 호텔이라……."

깁스 남작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베니뉴스 호텔은 수도 최고의 호텔이었다. 그리고 깁스 남작의 숨겨진 재산 중 하나이기도 했다.

깁스 남작은 베니뉴스 호텔을 통해 얻는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고위 귀족의 정보를 얻기가 용이했다.

베니뉴스 호텔은 구조적으로 각 방의 소리가 한 군데로 흘러가게 되어 있었다. 처음 호텔을 만들 때부터 그렇게 설계했다.

그것을 통해 그 안에서 귀족 간에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혹은 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대부분 파악하는 게 가능했다.

또한 깁스 남작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일 수도 있었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냥 확 죽여 버려?"

깁스 남작이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눈을 빛냈다.

"아니지. 그냥 죽이면 재미가 없지. 이런 일은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해야 돼."

젤레 영지를 좀 더 효과적으로 공략하려면 다양한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깁스 남작은 보고서를 처음부터 다시 확인했다. 하나라도 놓친 게 없는지 찬찬히 훑었다.

"가만, 이거 봐라?"

깁스 남작은 제론의 가족 관계를 확인했다. 직계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또한 대외적으로 알려진 가족은 전무했다. 하지만 그림자의 눈이 가진 정보력은 엄청났다.

"친척이 있었군?"

깁스 남작의 입가가 길게 늘어났다. 회심의 미소였다.

아마 본인도 모를 것이다. 자신이 누구의 친척이고 누구와 관계가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절대 그냥 내칠 수는 없을 것이다.

"좋아. 일단 이걸로 결정해야겠군. 서둘러야겠어. 언제까지 수도에 머물지 모르니까."

깁스 남작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흩날리던 몇 장의 보고서가 바닥에 떨어졌다.

☆ ☆ ☆

제론이 일정 중 가장 먼저 한 것은 영지 이름을 바꾸는 것이었다. 행정적인 절차였기에 시간이 제법 필요했다. 그걸 알기에 우선적으로 처리했다.

일단 신청을 했고, 그것이 마무리될 때까지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수도에 머물러야 했다.

제론은 행정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나머지 일을 처리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유적 방문이었다.

"곤란하군."

수도 근방의 유적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크지는 않은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즉, 뛰어난 관광지라는 뜻이었다.

아침부터 사람이 바글거렸다. 방문객만 많은 것이 아니었다. 경비병의 수도 엄청났다.

유적 내의 장식이나 그림이 훼손되는 걸 막기 위해 배치한 병력이었다.

당연히 유적을 공개하지 않는 시간의 경계도 철저했다.

그렇다 보니 제론이 유적 아래에 초고대 문명의 유적이 있는지 확인할 기회가 없었다. 지켜보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정령을 불러 팔찌에 넣을 수는 없었다.

그때 흘러나오는 빛 때문에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초고대 문명의 유적은 제론에게 있어서 결코 남에게 공개할 수 없는 최고의 비밀이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말해 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들킬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진행시킬 수가 없었다.

일단 아래로 내려갈 수만 있으면 된다. 그 뒤로는 굳이 고대 유적을 통하지 않고도 텔레포트를 이용해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함부로 왔다 갔다 할 수 없지 않은가.

수도의 유적은 아무래도 정보 수집 외의 용도로는 쓸 수 없을 듯했다. 물론 그래도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수도는 텔레포트 게이트가 잘되어 있기에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오갈 수 있었으니까.

제론은 매일 유적에 방문했다. 아침에 유적 문을 열 때 가서 기회를 보고, 또 문을 닫기 전에 한 번 더 방문해서 기회를 살폈다.

밤에 와 보기도 했다. 하지만 제론의 실력으로도 몰래 유적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만일 마법적 트랩을 설치해 유적을 보호했다면 얼마든지 들락거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적의 보호는 철저히 인력으로만 이루어졌다.

제론은 그렇게 유적에서 빈틈을 살피는 한편 낮에는 인재를 찾기 위해 아카데미 근처의 술집과 찻집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은밀히 정보길드를 찾아다녔다.

레늄 왕국의 수도에는 수많은 정보길드가 운집해 있었다. 규모가 큰 곳도 있었고 작은 곳도 존재했는데, 제론은 일단 작은 곳을 위주로 방문했다.

큰 길드의 경우 특정 세력에 속한 경우가 많았다. 작은 길드 역시 그런 곳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큰 곳에 비하면 훨씬 적었다.

제론은 최대한 큰 세력과 얽히지 않으려 애썼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작은 부분 하나라도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열흘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제론은 살짝 굳은 얼굴로 천천히 식사를 했다. 열흘이나 시간을 낭비했다. 아니, 낮에는 다른 일을 했으니 시간을 버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효율이 떨어진다. 정보 수집 아티팩트인 마티를 쓸 수 있으면 훨씬 빠르게 인재를 선별하고 조건을 맞출 수 있다.

만일 초기에 유적을 찾았다면 지금쯤 제대로 된 인재를 최소 다섯 명쯤 구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강행 돌파하기로.

제론은 상관없는 사람을 굳이 상하게 하면서까지 일을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은밀히 처리하기에는 유적이 너무 작았다. 사람이 열 명만 있어도 아무것도 못할 지경인데, 유적 어느 자리에서건 최소 열 명의 경비병이 보였다.

그래서 밤에 강행 돌파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복면을 쓰고 최대한 알아보지 못하게 옷차림도 신경 써서 바꾼 다음, 은밀히 유적에 접근해 병사들을 몽땅 쓰러뜨리고 유적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사실 아직 유적 아래에 초고대 문명의 유적이 감춰져 있는지 확인을 못했다. 만일 그렇게 들어갔는데 초고대 문명의 유적이 없다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난입해서 병사를 쓰러뜨리는 순간 비상이 걸릴 것이고 왕궁에서 파견한 기사와 병사가 잔뜩 몰려올 텐데, 만일 유적이 없으면 그들과 싸우며 다시 나와 도망가야만 한다.

그래서 결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제 결정을 내렸으니 뒤를 돌아볼 필요가 없었다.

제론은 천천히 식사를 마무리한 뒤 방에서 나갔다.

낮에는 평소에 하던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 동선이 달라지면 나중에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다.

밖으로 나온 제론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정보길드에 들러서 정보 몇 가지를 확인한 뒤, 찻집으로 향했다.

가볍게 차를 마시며 주변에 흘러 다니는 대화를 들으며 정보를 모으는 것이 낮에 주로 제론이 하는 일이었다.

수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찻집에 자리를 잡은 제론은 귀를 크게 열고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

그때, 제론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제론은 갑자기 다가와 인사를 하는 사내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운글릭 폰 슈돌츠입니다."

상대가 이름을 밝히면 자신도 소개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다가와 느닷없이 인사를 하는 경우는 예외였다.

제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쳐다보기만 하자, 운글릭은 쓴웃음을 지었다.

"제론 폰 에어스트 백작님 아니십니까?"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경각심이 크게 일어났다. 제론은 날카로운 눈으로 운글릭을 자세히 살폈다.

"경계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백작님께서는 잘 모르시겠지만, 먼 친척입니다."

"친척?"

제론은 운글릭을 다시 한 번 살폈다.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제론보다도 어린 게 분명했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이었다.

"돌아가신 백작님께 사촌이 한 명 있는데 혹시 아십니까?"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당시 남작이었던 그의 장례식에 제론도 참석했으니까.

"그분께는 자식이 없었던 걸로 아는데?"

그래서 당시 그 재산이 대부분 에어스트 가문으로 돌아왔다. 물론 대단치는 않았다. 그 의미는 그저 더 이상 친척이 없다는 것에 불과했다.

"남작님이 아니라 남작 부인께 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제론이 무심하게 운글릭을 쳐다봤다. 그런 식으로 따져 나가면 세상에 관계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대체 어디까지 가나 싶어서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그분의 아들이 접니다."

운글릭은 제론의 허락을 얻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처음 운글릭이 말했던 것처럼 멀긴 멀었지만 그래도 친척은 친척이었다.

물론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있었지만, 제론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쨌든 귀족이다. 당연히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인재에 목마른 시점이었으니 이런 친척의 손을 빌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 날 알고 찾아왔느냐 하는 거지.'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솔직히 의심스러웠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운글릭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부끄러움이 반쯤 섞여 있었다.

"우연히 에어스트 백작령이 생긴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제론은 그 말로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수도에서 적당히 식객으로 머물 만한 귀족 가문을 찾다가 에어스트 백작령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이다.

당시 이름 변경에 대한 정보가 자잘한 정보 조직으로 몽땅 흘러간 것을 확인하고는 꽤 놀랐었다. 그러니 운글릭이 그 정보를 얻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하나도 없었다.

'운글릭 폰 슈돌츠라…….'

기억을 더듬어 보니 슈돌츠 가문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아버지의 사촌은 몰라도, 그 사촌의, 그것도 부인의 방계까지 신경을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난 왜 찾았지?"

제론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운글릭은 당황한 얼굴로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무리 얼굴이 뻔뻔해도 에어스트 백작령이 다시 살아났으니 한 자리 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잠시 당황하던 운글릭은 이를 악물었다.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지.'

벌써 빚이 수백 골드나 쌓여 있었다. 가문이 몰락한 뒤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방탕하게 살았으니 빚이 늘어나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운글릭은 얼마 전 사채업자로부터 한 달 내로 빚을 갚으라는 최후통첩을 받았다. 빚을 갚지 못하면 암시장에 팔아 버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말이다.

"아, 아무 자리나 괜찮으니 좀 도와주십시오!"

운글릭이 얼굴이 붉어진 채로 소리치듯 말했다. 자리를 달라고 말하지 않고 도와 달라고 한 이유는 빚을 갚으려면 거금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건넨 말이었다.

"뭘 잘하지?"

제론이 날카로운 눈으로 물었다. 아무리 친척이라지만 쓸모가 없는 사람을 영지로 들여서 돈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

운글릭은 긴장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 켄트 아카데미 행정학부를 졸업했습니다."

제론이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켄트 아카데미를 졸업했다면 어느 정도 능력은 확인한 셈이었다. 켄트 아카데미는 제대로 실력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졸업이 결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검술도 조금 합니다."

켄트 아카데미를 나왔으면 당연하다. 기본 과목에 검술과 마법 이론, 기간트 이론이 있으니까.

"좋아. 당분간 수도에 일이 있어서 기다려야 하는데, 지낼 곳은 있나?"

운글릭이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호텔에 묵었지만 빌린 돈이 똑 떨어져서 어젯밤 나왔다.

"그럼 베니뉴스 호텔에 묵도록."

제론은 그 말을 끝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운글릭을 호텔로 데려가 방을 하나 마련해 주고 나머지 일을 처리할 생각이었다.

유적을 강행 돌파하는데 운글릭을 데려갈 수는 없지 않은가.

운글릭은 제론이 갑자기 일어나자 다급히 그를 불렀다.

"배, 백작님!"

제론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그러자 운글릭이 살짝 비굴한 표정으로 몸을 낮추며 말했다.

"저…… 도, 돈을 조금만 가불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제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가불이라니. 그 단어 하나만으로 운글릭의 상황이 훤히 보였다.

"빚이 있나?"

"예. 생활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지?"

운글릭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분위기를 보니 당장 돈을 줄 것만 같았다.

"1천 골드입니다!"

제론의 표정이 대번에 싸늘해졌다. 1천 골드라니. 그냥 생활비로 썼다고 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컸다.

물론 제론에게는 막대한 돈이 있다. 1천 골드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 줄 수 있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운글릭의 행태가 마음에 안 들었다.

"일단 호텔에 가 있어라."

제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운글릭의 표정이 순간 크게 일그러졌다.

'젠장. 일이 잘 풀리나 했더니.'

그래도 한 달 안에만 돈을 받으면 된다. 사실 빚은 500골드 정도였다. 나머지 500골드는 혹시나 필요할지 몰라 붙인 금액이었다.

'혹시 완전히 개털인 영지 아냐?'

그건 아닐 것이다. 자신에게 제론의 정보를 알려 준 사람이 분명히 제법 부유한 영지라고 했다. 게다가 향후 발전 가능성이 어마어마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그런 영지의 영주가 될 수도 있다 이거지?'

운글릭의 얼굴에 탐욕의 빛이 가득 퍼져 나갔다. 그는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제론을 놓치면 안 된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영지보다 돈이 더 급했다.

밤이 되자, 제론은 조용히 방을 나섰다. 운글릭에게는 2층에 방을 따로 잡아 주었다. 하지만 아직 그를 영지로 데려가겠다고 결정한 건 아니었다.

제론은 운글릭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뭔가가 꺼림칙했다.

'정보길드에 의뢰하기가 좀 그렇군.'

정보길드를 이용해 정보를 얻는 것도 좋지만, 의뢰 자체가 정보로 변해 길드 사이를 돌아다닌다. 나중에 그것이 운글릭의 귀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 그건 제외해야만 한다.

그렇게 되면 방법은 딱 하나가 남는다. 무조건 마티를 찾아내야만 한다.

제론은 부디 수도 옆에 있는 유적에 감춰진 초고대 문명의 유적이 있기를 기원하며 빠르게 이동했다.

일단 제론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정보길드 몇 군데가 모인 곳이었다. 수도의 빈민굴 중 하나였는데, 밤에 자주 이용했기에 길을 헤매지는 않았다.

제론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인적이 없는 곳을 찾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행적이 어떤 식으로든 노출되어선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빈민굴만큼 적당한 장소가 없었다.

빈민굴은 다닥다닥 붙은 허름한 집에서부터 그저 기둥에 거적만 덮은 집 같지도 않은 집이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중 상당수가 비어 있었다. 물론 비어 있다고 해서 아무나 그곳에 자리를 잡을 수는 없었다. 빈민굴에도 패거리가 나뉘어 있었고, 그들끼리 세력 다툼을 했다.

하지만 그건 빈민에게나 해당되는 일이었고, 제론은 그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제론은 빈민굴에 들어가자마자 빠르게 이동했다. 청각을 활성화하니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누군가 자신을 미행한 것이다. 감각이 예민하기에 어느 정도 범위 안에서 따라오면 금방 알아차렸겠지만, 이들은 조심성이 상당했다.

제론은 슈린 공작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예상하고 항상 준비를 해 왔다. 한데 역시 미행이 있었다.

"푸르투나."

제론은 정령을 소환했다. 푸르투나는 제론의 등을 가볍게 밀었다. 달리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빈민굴의 골목은 마치 미로와 같다. 이곳에서 오래 살던 사람이 아니면 길을 제대로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제론은 골목을 이리저리 휘돌며 미행을 따돌렸다.

아무리 미행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푸르투나의 힘까지 이용해 달리는 제론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제론은 아주 손쉽게 미행에서 벗어났고, 그와 동시에 빈민굴 깊은 곳, 인적이 전혀 없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밤이 깊었고, 달도 없었다. 사위가 어둠에 잠겨 있었고, 작은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제론은 재빨리 아공간 안에서 옷을 꺼냈다. 새까만 옷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복면까지 쓰니 어둠과 거의 동화되어 버렸다.

제론은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 검은 옷을 입고 밤하늘을 타고 움직이니 아예 눈에 띄지도 않았다.

만일 마법을 이용했다면 수도의 마탑에 들켰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론은 마법을 이용한 게 아니라 정령을 썼다. 당연히 들킬 리가 없었다.

제론은 빠르게 유적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제론을 미행하던 자들은 빈민굴 곳곳으로 흩어져 제론을 찾았다. 물론 날이 샐 때까지 그들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뛰어다니기만 했다.

유적에 도착한 제론은 최대한 은밀하게 움직였다. 경비병이 워낙 많고, 기사까지 있어서 끝까지 모습을 들키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효과는 있었다.

제론은 유적 안으로 스며들었다. 밖은 어두웠지만 유적 내부는 밝았다. 유적 곳곳에 빛을 내는 아티팩트가 박혀 있었다. 고대 유물이었다.

밝은 곳에서 제론의 검은 모습은 너무 눈에 띄었다. 당연히 경비병의 눈에 확 들어왔다. 제론이 몸을 날려 가장 먼저 발견한 경비병을 제압했지만, 경비병의 수는 열 명이 넘었다.

삐이이이익!

경비병 중 하나가 입에 물고 있던 비상용 피리를 힘껏 불었다.

사방에서 경비병과 기사가 몰려왔다. 하지만 제론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들을 몽땅 제압하고 기절시킬 작정이었다.

쉬이익!

제론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어찌나 빨랐는지 경비병의 눈에는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다시 나타난 제론은 경비병이 가장 많이 모인 곳에 서 있었다.

퍼버버버벅!

순식간에 다섯 명의 경비병이 급소를 맞고 기절했다. 제론의 주먹에는 마나가 맺혀 있었는데, 급소를 타고 몸으로 흘러들어 가 상대를 기절시켰다.

이것은 황제 검술을 응용한 비법 중 하나였다.

제론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 같았다. 푸르투나를 타고 움직이니 당연했다.

제론이 사라졌다가 나타날 때마다 경비병이 몇 명씩 쓰러졌다. 기사도 예외는 없었다. 기사나 병사나 똑같았다. 제론이 근처에 나타나기만 하면 예외 없이 기절했다.

유적 안에 있는 모든 병사와 기사가 쓰러지는 데에는 불과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제론은 더 늦기 전에 유적 끝에 섰다. 유적이 워낙 작았기에 그렇게 서도 입구가 훤히 보였다. 아직 지원군은 도착하지 않았다.

손을 들어 올린 제론의 의지에 따라 주변에서 맴돌고 있던 푸르투나가 팔찌에 스며들었다. 어쨌든 정령은 스위치 역할을 한다. 푸르투나이건 아네모스이건 상관이 없었다.

화아악!

강렬한 빛이 일어났다. 그리고 제론은 아래로 쑥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도 초고대 문명의 유적이 존재하는 것이다.

'역시 예상대로야.'

제론은 유적 로비 한가운데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체른산 유적과 비슷했다. 이곳 역시 생각한 대로 정보 수집을 위한 장소임이 분명했다.

―마스터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콜로니의 통제실은 7층에 있습니다.

제론은 눈을 빛냈다. 체른산 유적은 로비를 제외하고 5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데 이곳은 7층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역시 이번에도 제론은 유적의 마스터로 인정받았다. 예상대로 중앙 유적의 주인이 되면 자동으로 모든 유적을 소유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렇게 활성화를 시켜야 하지만 말이다.

제론은 일단 통제실로 향했다.

통제실은 체른산 유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른산 유적과 다른 점은 정보 수집 아티팩트인 마티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아티팩트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제론은 서둘러 태블릿을 꺼냈다. 이곳의 정보와 아티팩트를 이용하려면 일단 태블릿에 등록을 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언제 어디에서건 이곳의 정보는 물론이고 아티팩트까지 다룰 수 있었다.

"폴타?"

새로운 아티팩트의 이름이었다. 폴타는 딱 두 개가 있었고, 다른 유적에 없는 두 개의 층에 각각 하나씩 위치했다.

폴타의 크기가 거대한 게 아니었다. 각 층에는 폴타를 구동하기 위한 장치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즉, 방 자체가 온통 입체 마법진으로 채워져 있었다.

제론은 일단 폴타로 검색을 했다. 그리고 이내 경악했다.

"게이트를 만들 수 있다니!"

두 개의 폴타는 각각 서로 통하는 게이트를 만드는 아티팩트였다. 물론 범위가 정해져 있었다. 이곳 유적이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만 게이트를 만드는 게 가능했다.

마티를 이용해 주변 정보를 확인하고, 그 장소에 폴타를 보내 게이트를 만드는 것이다.

폴타 역시 마티와 마찬가지로 작고 투명했다.

제론은 머릿속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 다시 밖으로 나가는 걸 걱정했는데,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폴타를 이용하면 언제든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으니 말이다.

제론은 차근차근 통제실에서 유적을 살폈다. 이곳 역시 체른산 유적과 마찬가지로 수련할 수 있는 장소와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럼 정보 수집을 시작해 볼까?"

제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유적 내의 마티를 활성화시켰다. 수만 개의 마티가 유적 밖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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