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5/217)

Chapter 11 완공

젤레 영지를 중심으로 긴장감이 높아졌다. 다른 영지는 3년간 젤레 영지에 영지전을 신청할 수 없지만 젤레 영지가 타 영지에 전쟁을 거는 건 가능했다.

주변의 세 영지는 언제 젤레 영지가 움직일지 몰라 노심초사했다. 그들은 은밀히 벨루스 백작가에 도움을 요청했다.

벨루스 백작가는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만일 영지전이 벌어지면 그들에게 기간트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벨루스 백작은 마틴의 보고를 받고 젤레 영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젤레 영지가 아니라 젤레 영지에서 나타났다는 새로운 기간트에 관심을 가졌다.

새로운 기간트에 관한 정보는 철사자 기사단이 모두 무사히 빠져나오면서 확실하게 알려졌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기간트가 과연 정말로 젤레 영지의 것인지였다.

벨루스 백작은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 은밀히 애쓰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물밑 움직임은 활발했지만, 정작 젤레 영지 자체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가고 겨울이 왔다.

☆ ☆ ☆

"눈이라…… 바이스가 많이 힘들겠군."

제론은 고개를 든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투명한 유적 천장을 통해 밖이 그대로 보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직 파낸 유적의 위를 덮을 정도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성채의 모양은 제법 많이 완성되었다. 이대로라면 겨울이 끝나기 전에 완공이 가능했다.

제론은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 내고는 다시 한 번 유적 로비를 살폈다.

요즘은 매일 이렇게 하는 것이 일과였다. 로비를 한 번 살펴본 다음, 하루 종일 유적 11층을 공략했다.

이젠 아무리 많은 오우거가 덤벼들어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테오스의 기동 시간이었다.

기동 시간이 모자라서 오우거 웨이브의 끝을 볼 수가 없었다. 제론의 느낌에 30분만 더 버티면 될 것 같은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건 오로지 마나의 양으로만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기동 시간이 꼭 마나의 양에만 비례하는 건 아니었다. 마나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도 상당히 중요했다.

하지만 제론의 생각에 마나의 효율은 거의 한계에 달한 듯했다. 이제는 마나량을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매일 11층 공략에 열을 올리는 것이기도 했다. 11층을 공략하다 보면 마나가 바닥나는데, 그러면 자동으로 로비까지 튕겨난다.

마나가 딱 바닥난 상태에서 마나 호흡을 하면 마나가 더 많이 쌓이곤 했다. 마나가 바닥난 상태에서 더 무리를 하면 마나 역류가 일어나겠지만 그렇지 않고 이렇게 딱 멈추면 상당히 득이 된다.

제론은 오늘도 심호흡을 하고는 11층 공략을 위해 몸을 던졌다.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흘러갔다. 겨울도 슬슬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즈음 성이 완공되었다.

바이스는 완공된 성을 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기본 틀이야 제론이 제공했지만, 세부적인 설계는 모두 자신이 했다.

직접 설계하고 직접 감독해 지은 성이 완성되었으니 얼마나 감회가 남다르겠는가.

바이스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렇게 심장이 뛰는 이유는 비단 성이 완공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성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봐 더 걱정이었다. 만일 그게 안 된다면 여섯 달이 넘는 시간을 완전히 낭비한 거나 다름없었다.

시간만 낭비한 게 아니라 돈까지 낭비한 것이다. 성을 짓는 데 들어간 돈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그 돈을 다시 뽑아내려면 성이 제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 주변 땅을 옥토로 바꿔 놔야만 했다.

바이스가 그렇게 성을 바라보고 있을 때, 제론과 세나, 그리고 카이트가 그곳에 도착했다. 아직 젤레 영지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사람은 그들 넷뿐이었다.

제론은 인재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특히 행정에 뛰어난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앞으로 영지 규모가 커지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전에 사람을 구해 그런 일을 미연에 방지해야만 했다.

"잘 지었군."

제론의 중얼거림에 바이스는 갑자기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제론이 인정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불안감은 남아 있었다.

"과연 제대로 작동할지 장담을 못하겠습니다."

바이스의 말에 제론이 씨익 웃었다.

"괜찮아. 제대로 작동할 거다. 만일 안 되면 되도록 방법을 강구하면 돼."

제론은 만일 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을 자신이 있었다. 성을 손볼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자, 그럼 역사적인 완공식을 시작해 볼까?"

참여 인원은 단 네 명뿐이었지만 정말로 역사적인 완공식이었다. 이런 형태나 방식의 성은 지금까지 없었으니까. 이 성이 최초가 된다.

제론은 성을 쳐다보다가 심장을 빙글빙글 맴도는 일곱 개의 마나링을 가속시켰다.

제론의 발밑에 마법진이 하나 나타났다가 바닥으로 스며들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론은 성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1차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방금 펼친 마법이 바로 성의 마법진을 활성화시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성의 마법진이 모두 사용할 준비가 되었고,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이 지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론이 바이스를 쳐다보자, 바이스가 긴장한 눈으로 마나 스틱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최대한 진지하게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샤아아아아아!

푸르게 빛나는 커다란 마법진이 허공에 나타났다. 바이스는 모든 의념을 집중해 그 마법진의 중앙을 마나 스틱으로 강하게 때렸다.

쩡!

마법진이 산산이 부서지며 푸른 빛 가루가 성채로 쏟아져 나갔다.

성이 순간적으로 푸르게 빛났다. 그 빛은 한 번 번쩍이고는 사라졌다.

바이스의 얼굴에 희열이 떠올랐다.

"으하하하하! 됐다! 성공이야!"

바이스는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그 모습을 다들 흐뭇한 미소로 지켜봤다. 6개월이 넘는 고생이 드디어 빛을 발한 것이다.

"한데 정말로 이제부터 이 황무지가 달라질까?"

"그건 조금만 기다리면 알게 될 거야."

그 말에 다들 제론을 바라봤다. 제론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봄이잖아. 이제부터 씨를 뿌려야지. 금년 가을은 아마 볼만할 거야."

확신 어린 제론의 말에 나머지 세 사람의 가슴이 거세게 뛰었다.

젤레 영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 ☆ ☆

봄이 오자, 젤레 영지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일단 영주성 이전 작업이 시작되었다. 거리가 제법 멀었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동안 공사를 했던 인부들 중, 돌아갈 필요가 없는 부랑아나 난민들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던져 주었다. 바로 농사였다.

황무지를 갈아엎는 건 며칠 만에 끝냈다. 제론이 나서서 밤마다 테오스를 움직인 것이다.

일꾼이 할 일은 그렇게 갈아엎어 만들어진 땅에 씨를 파종하고 그것을 길러 내는 것이었다.

다들 기뻐하며 그 일을 받아들였다. 거의 농노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젤레 영지에서 그들을 핍박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일을 시작했다.

일꾼 중 일부는 따로 빼서 건물을 짓는 일에 동원되었다. 성만 달랑 있었으니 다른 건물이 필요했다. 집도 필요했고, 시장도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또 모자랐다. 하지만 제론은 걱정하지 않았다. 사람은 차츰 늘어날 것이다. 아직도 레늄 왕국의 난민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그들을 받아들여 써먹으면 된다.

그렇게 영지가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 제론은 바이스와 세나, 그리고 카이트를 불렀다.

영주의 집무실에 들어서는 세 사람의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새로 지은 성이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편의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깨끗하고 편리했다.

"다들 거기 앉지."

제론의 말에 세 사람이 탁자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제론은 그들을 가만히 보다가 물었다.

"요즘 하는 일은 어때?"

제론의 물음에 가장 먼저 세나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어제부로 작업이 다 끝났어요!"

제론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 많았다. 당분간은 일이 없으니 쉬어도 좋아."

제론의 말에 세나가 정말로 기뻐했다. 하지만 사실 그녀가 할 일은 다 끝나지 않았다. 제론이 가진 유적 창고에 아직도 200기에 가까운 기간트가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얼굴의 웃음기가 싹 사라질 것이다.

제론이 이번에는 바이스를 쳐다봤다. 바이스는 본격적으로 도시를 완성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예전에 대충 지었던 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다시 집을 짓고 있습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람도 많이 필요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성의 공사를 하던 사람들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간단하게 집을 지어 주었는데, 그것은 임시로 지은 것이라 결국 허물어야만 했다.

처음부터 그럴 작정으로 지은 집이었다. 바이스는 그걸 모두 허물고 새로 지었다. 거기서부터 도시 건설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너무 모자랐다. 농사를 짓는 데 대부분의 인원이 빠져나갔기에 공사를 할 사람이 턱없이 모자랐다.

"차츰 나아질 것이다."

제론은 그렇게 말하고 카이트를 쳐다봤다. 사실 카이트의 보고를 가장 기대하고 있었다.

"라이더가 될 자질을 가진 아이들을 뽑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군."

당장 써먹을 전력이 필요했다. 제론은 그런 기대를 안고 카이트를 쳐다봤다.

카이트는 그런 제론의 기대에 부응했다. 씨익 웃고는 보고를 이어 갔다.

"새로운 라이더 열 명을 영입하기로 했습니다."

"열 명이나?"

제론의 눈이 커졌다. 두세 명 구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열 명이라니 대체 어디서 그런 인재를 구했단 말인가.

"다들 영주님도 아는 사람입니다."

제론은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군부 출신 라이더가 온다는 뜻이었다.

와 주면 고맙긴 하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군부에서 꿈이 있었을 텐데 그걸 다 팽개치고 여기까지 달려온다니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목숨을 여벌로 열 개가 넘게 받은 놈들이라서 그런지 아주 좋아하더군요."

카이트의 말에 제론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물론 미안한 감정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거기까지 보고를 다 들은 제론은 잠시 뜸을 들였다. 세 사람은 대체 제론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궁금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제론은 세 사람을 슥 둘러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쟁이다."

세 사람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설마 전쟁 얘기가 나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우리를 건드렸던 세 영지를 친다."

싸한 긴장감이 영주의 집무실을 거세게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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