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20/217)

Chapter 8 2왕자

휴가에서 복귀한 제론은 밝은 표정으로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5층을 클리어하고 새로운 검술을 얻었으니 말이다.

"휴가는 잘 즐겼나?"

"예."

"2왕자님께서 또 오셨네."

사령관의 말에 제론이 눈을 빛냈다. 이 말을 굳이 자신에게 하는 건, 관계가 있다는 뜻이었다.

"자네를 계속 찾고 있네."

"절 말입니까?"

"유적에 관해서 할 말이 있다더군."

"어디 계십니까?"

"관사에 계시네. 마기어 백작과 함께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게."

사령관의 말에 제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기어 백작까지 대동했다면 대충 무슨 일인지 예상은 된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자, 제론은 군례를 취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제론은 곧장 관사로 향했다.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2왕자를 만난 뒤, 자신의 실바를 보러 갈 것이다. 과연 다 고쳤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실바를 떠올리며 걸음을 서두른 제론은 금방 관사에 도착했다. 관사 앞은 근위 기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제론을 보자마자 즉시 안으로 들어가 2왕자에게 보고를 했다.

그리고 제론을 관사 안으로 안내했다.

"오, 왔나? 이리로 와서 좀 앉게."

마기어 백작은 환한 표정으로 제론을 맞이했다. 제론은 먼저 2왕자에게 군례를 취한 뒤, 마기어 백작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좀 일찍 보고 싶었는데, 마침 휴가를 갔다고 하더군."

"작은 공을 세워 휴가를 포상으로 받았습니다."

"그렇군. 시간이 많지 않으니 본론부터 말하겠네."

마기어 백작은 그렇게 입을 연 뒤, 2왕자의 눈치를 한 번 살피고는 말을 이었다.

"체른산 유적 말인데…… 그걸 넘겨줄 수 있겠나?"

"예? 그게 가능합니까?"

"확신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시도할 만한 것들이 있네. 협조해 주겠나?"

제론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오래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체른산은 왕국 직할령이니 국왕 폐하의 허락이 먼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제론이 지적한 건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사항이었다. 마기어 백작은 그렇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2왕자는 그렇지 않았다.

"감히!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2왕자 전하입니다."

제론은 2왕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어차피 2왕자나 마기어 백작은 슈린 공작과 깊은 관계에 있다. 결국은 싸워야 할 상대였다.

"그런데도 그따위 소리를 한단 말이냐!"

제론은 대답하는 대신 마기어 백작을 쳐다봤다. 마기어 백작은 난감한 표정으로 땀을 뻘뻘 흘렸다.

사실 이렇게 강압적으로 나오면 안 된다. 유적을 얻으려면 제론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일단 유적을 얻어야 더 깊은 비밀을 파헤쳐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건 자네가 걱정할 거 없네. 일단 권한만 이양해 주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하지."

마기어 백작의 말에는 섣불리 이 일을 공론화시키지 말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었다.

제론은 더 버텨 봐야 좋은 꼴을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너무나 의아했다. 대체 유적의 권한을 어떻게 이양할 수 있단 말인가.

"시간 끌 거 없으니 당장 가 보는 게 어떤가?"

"그러죠."

제론의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모든 준비가 끝났다. 체른산까지 갈 마차가 문 앞에 섰고, 말을 탄 근위 기사들이 호위 대형으로 마차 주변에 포진했다.

2왕자가 먼저 마차에 오르자, 마기어 백작은 제론을 데리고 함께 마차에 탔다.

세 사람을 실은 마차는 곧장 체른산으로 달려갔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제론은 과연 마기어 백작이 어떤 방법으로 유적의 권한을 이양받으려 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만일 유적의 주인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면 앞으로 이 유적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일단 지하 유적에 가려면 이 유적의 끝에 가야만 한다. 한데 유적의 트랩이 작동하면 아예 안으로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자, 이리로 오게."

마기어 백작은 제론을 손짓해서 불렀다. 그들은 지금 유적의 중간쯤에 있었다. 마기어 백작은 손가락으로 벽을 가리켰다.

"이게 보이나?"

마기어 백작이 가리킨 곳에 고대 문자로 뭔가가 쓰여 있었다. 문양으로 교묘히 꾸며졌지만 분명히 몇 개의 단어였다.

"고대 문자로군요."

제론은 그것을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제론은 초고대 문명의 모든 문자를 알고 있다. 그것과 고대 문명의 문자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생각보다 금방 익힐 수 있었다.

고대 문자는 초고대 문명의 문자로부터 파생되어 만들어졌다. 어떤 식으로 생성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큰 영향을 받은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제론은 생각보다 고대 문자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권한, 교환.'

제론은 마기어 백작이 왜 확신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걸 단어만으로 짐작하면 권한을 교환하거나 전달하는 게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그건 마기어 백작의 착각이었다. 고대 문자는 단어 하나에 몇 가지 뜻이 동시에 담기기도 한다.

'실제로는 교환이 아니라 설정인데 말이야.'

권한을 설정해 준다는 뜻이다. 게다가 그 권한 설정이라는 것이 이 유적의 권한을 설정하는 게 아니었다. 유적을 지키는 가디언의 권한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즉, 여기서 유적의 주인이 권한을 설정하면 그 설정을 받은 자가 이 유적의 가디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제론은 그 사실을 친절히 알려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고대 문자에는 조예가 없어서 모르겠군요."

"권한을 교환한다는 뜻이라네."

"주인을 바꾼다는 의미로군요."

"잘 봤네."

마기어 백작은 그렇게 말한 후, 2왕자를 바라봤다.

"왕자님 이쪽으로 서시지요."

"여기에 서면 되나?"

2왕자는 당당하게 문양 앞에 섰다. 마기어 백작은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고, 또 공부를 했다. 수많은 유적 전문가의 조언까지 수집해서 이 일을 결정했다.

아직 이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지 못했다. 또한 제대로 된 연구를 하지 못했다. 그것을 찾기 위해서는 유적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는 걸 발견했다.

사실 제론의 도움을 지속적으로 얻어서 유적을 발굴하고 연구를 계속해도 된다. 하지만 마기어 백작도 또 2왕자도 제론을 이 일에 끌어들이기가 껄끄러웠다.

어쨌든 그들은 슈린 공작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었고, 제론은 슈린 공작에게 원한을 가졌으니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권한 이양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확실한 권한 이양법을 알아냈다.

"자네는 2왕자께 권한을 드리기만 하면 되네. 그 이후의 일은 내가 다 알아서 하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제론은 담담하게 물었다. 그 모습에 마기어 백작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의 유적을 강탈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이렇게 담담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묘했다.

"괜찮겠나?"

"뭘 말입니까?"

"어쨌든 이 유적의 주인은 자네 아닌가."

제론이 피식 웃었다.

"이미 발굴이 끝난 유적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기어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적에 대해 잘 모르면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보통 사람이 유적에 대해 갖는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좋네. 그럼 시작할 테니 내 말을 따라 하게. 카베르 체디쉬 큠."

제론은 속으로 내심 감탄했다. 마기어 백작은 권한을 설정하는 정확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분명히 유적 어딘가에서 찾아낸 주문이리라.

"카베르 체디쉬 큠."

제론은 망설임 없이 그 말을 따라했다. 이건 유적의 주인이 아니라면 전혀 소용이 없는 주문이었다.

벽에 새겨진 문양에서 눈 부신 빛이 일어났다. 그 빛에 마기어 백작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다.

2왕자는 자신의 몸을 휘감는 빛을 보며 내심 감탄했다. 역시 마기어 백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이 몸에 스며들수록 점점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이내 빛이 사라졌다.

"끝났습니다. 자네는 이제 돌아가게."

제론은 마기어 백작의 말에 곧장 군례를 취하고 유적을 나갔다. 밖으로 나온 제론의 입가에 비웃음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하여튼 슈린 공작과 관계된 놈들은 똑같이 탐욕스럽다니까.'

제론은 가벼운 걸음으로 돌아갔다.

☆ ☆ ☆

"백작. 이제 어떻게 하면 되나?"

2왕자는 크게 들떴다. 이 유적의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유적을 처음 발견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인이 된 제론을 보며 얼마나 짜증이 났던가.

하지만 이젠 그 짜증이 모두 즐거움으로 승화되었다. 이렇게 유적의 주인이 되었으니 말이다. 역시 이런 중요한 것에는 어울리는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었다.

"차근차근 주문을 파악해 나가셔야 합니다."

"주문?"

"유적을 움직이는 주문입니다. 트랩을 열 수도 있고, 해제할 수도 있으며,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비밀 공간을 여는 주문들이 있습니다."

비밀 공간이라는 말에 2왕자가 반색했다.

"어서 그 주문을 알려 주게. 한시라도 빨리 중요한 물건을 찾고 싶군."

"아직 전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차근차근 유적을 돌아보며 알아내야 하니 마음을 느긋하게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하하하. 하긴. 이런 대단한 유적이 그리 쉽게 마음을 열 리 없지. 내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주문만 알아오게. 하하하하."

"맡겨 주십시오."

2왕자는 고개 숙인 마기어 백작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일단 주문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여기 있을 필요가 없었다. 2왕자는 당분간 푹 쉬며 즐기기로 했다. 주문을 알아내고 난 다음 유적을 탈탈 털어 가면 된다.

'다음 대 국왕은 나다!'

2왕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유적을 나섰다.

관사로 돌아간 2왕자는 문득 제론이 떠올랐다.

"가만, 그놈을 그냥 둬도 되나?"

엄밀히 따지면 자신은 왕국 소유의 유적을 강탈했다. 어차피 조만간 국왕이 되어 모든 것의 주인이 되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국왕이 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몇 개 있는데, 그 산을 넘기도 전에 이런 일로 흔들려선 안 된다. 쓰기에 따라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유적 안으로 들어갈 때는 굳이 근위 기사들도 대동하지 않고 마기어 백작과 제론만 데리고 가지 않았던가.

한데 만일 제론으로부터 이 일이 새 나간다면 자칫 심각해질 수도 있었다.

"불안한 부분은 제거하면 그만이긴 한데……."

현재 제론은 군부의 관심이 집중된 인물이었다. 전황을 완전히 뒤집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제론이었다.

또한 체른산 방어군의 기간트 라이더들 대부분은 제론에게 목숨을 빚졌다. 적이 유적을 노리고 기습했을 때, 제론이 몸을 던져 막아 내지 않았다면 아마 크게 패배했을 것이다.

그뿐이랴, 유적도 제론이 발견했다. 이번 유적에서 발굴한 유물들은 그 가치가 상당히 뛰어났다. 이번에 발굴한 유적 중에도 당연히 기간트가 있었다. 그것도 발굴형 기간트 중 가장 뛰어나다는 히엠스였다.

여러모로 공이 집중된 상황이라, 함부로 건드리기가 껄끄러웠다. 더구나 군부에서는 아무리 왕자라도 조심해야만 한다.

군부와 귀족이 알력 다툼 중이니, 귀족 편에 서 있는 2왕자로서는 섣부른 행동을 하다가 대사를 그르칠 수도 있었다.

어쨌든 차기 국왕이 되려면 군부의 힘을 얻는 건 필수적인 요소였다.

2왕자가 현재 이곳에 머무는 이유도 유적 때문이긴 했지만 군부와 좀 더 밀착된 관계를 만들기 위한 목적도 컸다.

"흐음, 어쩐다……."

사실 이건 기회였다. 슈린 공작이 에어스트 가문을 얼마나 경계하는지 알기에 제론을 처리할 수 있다면 슈린 공작가로부터 좀 더 노골적인 도움을 받는 것이 가능해진다.

슈린 공작가가 제론을 더 어쩌지 못한 건 제론이 군부에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왕자라지만 유적 발굴이라는 목적이 없었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지는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아까 유적에서 해치워 버릴 걸 그랬나?"

2왕자는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었다. 최대한 자신이 했다는 증거를 남겨선 안 된다. 제론을 건드리는 문제는 절대 가볍게 여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나?"

2왕자는 팔짱을 낀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문득 얼굴이 환해졌다.

"여기서 처리하기 힘들면 밖으로 끌어내면 될 것 아닌가!"

제론은 큰 공을 세웠다. 영지까지 하사받을 정도의 공이었다. 그러니 왕실 무도회에 초청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겠는가.

"일단 여기서 왕궁까지 가려면 텔레포트 게이트가 있는 도시까지는 가야 하니까, 그 중간에 기습을 하면 되겠군."

제론 혼자 움직이지 않게 만들면 동선을 제어하기가 편하다. 2왕자는 적당한 인물을 떠올렸다. 기습해서 제거하면 좋을 사람과, 자신을 도와 제론을 제거하는 데 힘을 보태 줄 사람까지 하나하나 떠올렸다.

"어쨌든 지금 당장은 어렵겠군. 아직 전쟁이 한창이니까."

최소한 몇 달은 기다려야만 한다. 그리고 그 정도라면 2왕자도 충분히 제론의 입을 막을 수 있었다.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감시하면 되니 말이다.

"좋아. 이제야 진짜로 쉴 수 있겠군."

2왕자는 느긋하게 소파에 몸을 묻었다. 그리고 이내 잠들어 버렸다. 밤을 지새우며 화끈하게 놀려면 지금 미리 자 둬야만 했다.

☆ ☆ ☆

2왕자가 그런 계획을 세우는 동안 제론은 숙소에서 차분히 마나 호흡을 한 뒤, 황제 검술을 수련했다.

황제 검술은 정말로 어려웠다. 그리고 제대로 수련하기 위해서는 기초 검술과 기사 검술이 충분한 경지에 올라 있어야만 했다.

제론이 비록 유적을 클리어하며 기초 검술과 기사 검술을 상당한 수준까지 익히긴 했지만 아직 황제 검술에 도움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제론은 그래도 황제 검술에 매달렸다. 새로운 검술을 익히고 수련한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

또한 수련을 하면 할수록 황제 검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껴져 더더욱 빠져들었다.

황제 검술을 익히며 마나 호흡이 훨씬 자연스러워졌고, 효율이 높아졌다. 아마 황제 검술의 수준이 올라가면 마나 호흡도 새로운 경지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론의 숙소는 좁았다. 마나 호흡을 하기에는 넓었지만, 검술을 수련하기에는 공간이 많이 모자랐다. 하지만 검을 들지 않고 맨손으로 수련하면 어찌어찌 수련이 가능했다.

지금도 제론은 맨손으로 황제 검술을 수련하는 중이었다. 황제 검술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능숙하게 검술을 펼치기에는 아직 수준이 너무 낮았다.

후웅! 후웅!

그저 손으로 검을 쥔 시늉만 하고 휘두르는데도 거친 바람 소리가 울렸다. 숙소 안의 공기가 요동쳤다.

한 차례 검술을 펼친 제론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지만 너무나 상쾌했다. 마치 몸속을 한 번 씻어 낸 듯했다.

"이게 황제 검술의 힘이로군."

제론은 호흡을 가다듬은 뒤, 다시 한 번 검술을 펼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펼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많은 신경을 써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한 번 펼치고 나면 너무나 상쾌했다. 또한 힘이 넘쳐나는 듯했다.

제론은 끊임없이 검술을 펼치고 또 펼쳤다.

후웅! 후웅!

숙소에는 제론이 내는 바람 소리만 가득했다. 검술 수련은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되었다. 제론은 잠도 자지 않고 검을 수련했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제론은 이 검술에 더욱 깊이 빠져들 거라 예감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취감과 의욕이 용솟음쳤다.

쿵! 쿵! 쿵!

"준비!"

대결을 위해 기간트 2대가 서로를 마주 보고 섰다. 한 대는 크라테르였고, 다른 한 대는 실바였다. 보통이라면 말도 안 되는 대결이었다. 하지만 그 실바가 붉은색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시작!"

꽈앙!

시작 신호와 함께 크라테르가 강하게 발을 박차고 앞으로 나갔다. 비교적 거리가 가까웠기에 순식간에 붉은 실바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우웅!

거대한 검이 붉은 실바의 정수리를 향해 떨어졌다. 금방이라도 붉은 실바가 두 동강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붉은 실바는 대각선으로 한 발 걷는 지극히 간단한 움직임으로 검을 피해 냈다. 아울러 그 한 걸음으로 크라테르의 품에 파고들었다.

꽝!

붉은 실바가 어깨로 크라테르의 왼쪽 가슴을 들이받았다. 오른팔로 검을 휘두르는 와중에 왼쪽 가슴에 강한 충격을 받으니 몸이 돌아가며 균형을 잃었다.

꽈앙!

크라테르의 몸체가 빙글 돌더니 그대로 바닥에 뻗었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승부였다.

만일 실제로 사람 2명이 검을 들고 싸웠다면 결코 이렇게 간단히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간트 간의 싸움은 인간의 싸움과는 완전히 달랐다.

대결이 끝나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리 겪어 봐도 이 붉은 실바는 정말이지 사기였다. 아니, 붉은 실바를 탄 제론이 사기였다.

어떻게 기간트를 이렇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제론이 다루는 기간트는 마치 커다란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물론 실바라는 기체의 특성 때문에 관절의 한계가 있었다. 진짜 사람과는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론은 그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그 안에서 최대한 인간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는 기간트에 대한 상당한 센스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크라테르를 타고 덤벼도 제론이 모는 붉은 실바를 이길 수가 없었다. 제론의 실바가 보통 실바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만일 제론의 실바에 대한 자세한 사항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난리가 날 것이다. 붉은 실바 곳곳에 새겨진 마법진은 기존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마법진 자체를 바꿔 버린 것이다.

마법사들이 안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일이었다.

푸쉭!

붉은 실바의 해치가 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제론이 훌쩍 뛰어내렸다.

탁! 탁! 탁!

제론은 가볍게 붉은 실바의 허리와 무릎을 디디며 바닥에 내려섰다. 마치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동료 라이더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몇 번이나 겪었지만 적응이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질린 눈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정말 대단하군."

"대체 어떻게 실바로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건가?"

"듣기로 점프까지 했다면서?"

"한 번 보여 줄 수 있나?"

최근 제론은 점프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실바의 내구성 때문에 점프를 할 때마다 심각한 충격이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히지만 붉은 실바가 점프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다.

기간트로 점프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다만 그러려면 상당한 기술과 센스가 필요하고, 또 대단히 뛰어난 기체가 필요했다.

최소한 발굴형 기간트 중에서도 상급이라 인정받는 아우틈이나 히엠스는 되어야 시도라도 해 볼 수 있었다.

한데 고작 실바로 그걸 해냈으니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 소문만 접한 사람의 경우 그걸 그대로 믿는 경우는 많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여든 라이더 중 한 명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혹시 저 실바가 좀 특별한 거 아닌가?"

그 말에 모여서 구경하던 라이더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런 부탁하기 좀 그렇지만…… 내가 한번 타 보면 안 되겠나?"

그 말에 제론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다들 기대감 어린 눈으로 제론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다.

"어려울 것 없죠."

제론은 너무나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서브 라이더로 등록만 시켜 주면 되는 일이기에 과정이 복잡하지도 않았다.

가장 먼저 나선 라이더가 붉은 실바의 서브 라이더로 등록되었다.

제론은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해 보라고 말했다. 라이더들이 줄을 섰다. 그들은 분명히 붉은 실바에 뭔가 비밀이 있을 거라고 믿었다.

물론 제론은 이미 그에 대한 조치를 마무리했다. 처음 기간트를 개조할 때부터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었다. 그렇기에 기간트의 조종석에 락을 걸어 두었다.

제론의 기간트는 마나 코어부터 다른 기간트와 완전히 달랐다.

보통의 기간트는 마나 코어에 테페룸을 그냥 덩어리째로 넣는다. 하지만 제론은 테페룸을 액체로 만들어 주입했다. 마나 코어의 효율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제론이 실바를 개조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다른 실바와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달라진 점이 없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마나 코어의 설계를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액체 테페룸을 쓴 것만으로도 출력이 상당히 높아졌다.

원래의 실바는 출력이 고작 0.8에 불과하다. 하지만 제론의 붉은 실바는 출력이 1.2에 달한다. 테페룸을 액체로 바꾼 것만으로 거의 40퍼센트에 가까운 성능 향상을 가져왔다.

또한 관절도 더 유연했다. 물론 실바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실바의 부품을 그대로 사용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기간트 센스가 뛰어난 사람일수록 확연히 느낄 수 있는 차이였다.

마나 로드를 통해 이동하는 마나의 흐름도 완전히 달랐다. 마나 로드에 테페룸 가공 물질인 포로스를 썼으니 당연했다.

붉은 실바에 한 번 타 보면 누구나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사항을 한꺼번에 겪으면 아무리 센스가 없어도 확실한 차이가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제론은 락을 걸었다. 자신이 타지 않으면 자동으로 라이더에게 부담을 주는 락이었다.

지잉!

서브 라이더 등록이 끝나자마자 붉은 실바에 올라탄 라이더는 서둘러 해치를 닫았다. 어서 빨리 붉은 실바를 움직여 보고 싶었다. 그래서 대체 뭐가 다른지 알아보고 싶었다.

쿵! 쿵!

붉은 실바가 두 걸음 걸었다. 그리고 팔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푸쉭!

해치가 열렸다. 그리고 라이더가 훌쩍 뛰어내렸다.

다들 의아한 눈으로 그 광경을 쳐다봤다.

"왜 그러나?"

"무슨 문제라도 있나?"

다들 몰려와 물었지만 라이더는 살짝 눈살을 찌푸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일단 다들 한 번씩 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라이더의 말에 다음 차례가 된 사람이 서브 라이더로 등록했다. 그리고 붉은 실바에 올라탔다.

이번에도 조금 전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두 걸음 걷고 팔과 목을 조금씩 움직이다가 내렸다.

그 뒤로 나머지 라이더가 모두 붉은 실바에 탑승해 어떤지 확인했다.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다들 내리자마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실바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대체 이런 걸 타고 어떻게 점프를 하고 그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보여 줬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모든 라이더의 눈에 감탄이 어렸다. 그리고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다. 만일 제론이 실바가 아닌 다른 기체를 탄다면 과연 어떤 위력을 보여 줄까?

"오늘은 이쯤 마무리하는 게 나을 것 같군요."

제론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더 훈련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대체 얼마나 큰 재능의 차이가 존재한단 말인가.

'저 실바로 그런 움직임을 보여 줬다고? 점프를 해? 그건 불가능해!'

모두의 생각이 하나로 모아졌다. 그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라이더로서의 센스만으로 그게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자, 잠깐 기다리게!"

제론은 훈련장을 떠나려다가 그 말에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을 부른 라이더를 쳐다봤다.

"내 카타락타에 한 번 타 보게."

제론이 눈을 빛내자, 그 라이더가 말을 이었다.

"내 카타락타로 점프를 한 번 해 보게. 성공하면 깔끔하게 물러나겠네."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제론은 그들을 쭉 둘러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들은 아직도 붉은 실바에 대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직접 몰아 봤으면서도 말이다. 만일 제론이 카타락타에 타고 점프에 성공한다면 모든 의구심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남지.'

대부분의 라이더가 모인 자리에서 점프를 하면 이번에는 그 소문이 더욱 걷잡을 수 없이 퍼질 것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차라리 라이더로서의 센스나 재능을 보여 주는 편이 훨씬 나았다. 붉은 실바에 더 파고들면 훨씬 위험한 것들이 드러날 수도 있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습니다."

제론의 말에 라이더가 움찔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책임은 모두 내가 지지."

서브 라이더 등록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제론은 아련한 눈으로 해치가 열린 카타락타를 올려봤다. 생일 선물로 받았던 그의 기체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파도가 밀려오듯 추억이 흘러갔다.

"후욱."

제론은 숨을 내쉬어 상념을 털어 냈다.

탁! 탁! 탁!

실바를 탈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카타락타의 조종석에 올라탄 제론은 곧장 해치를 닫았다.

지잉!

카타락타가 가동을 시작했다.

보통은 생소한 기간트에 타면 적응 시간이 제법 필요하다. 하지만 제론에게는 그런 것이 전혀 필요치 않았다. 제론은 바로 발을 뗐다.

쿵쿵쿵!

그대로 달려 나가는 카타락타의 모습에 구경하던 모든 라이더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적응을 위한 아무런 시도도 없이 곧장 저렇게 달릴 줄은 몰랐다.

꽈앙!

다들 턱이 빠져라 입을 벌렸다. 카타락타의 육중한 몸이 굉음과 함께 허공에 붕 떴다. 거의 기간트의 머리를 뛰어넘을 정도로 높이 떠오른 카타락타가 다시 바닥에 내려왔다.

꽈앙!

쿵쿵쿵쿵!

바닥에 내려선 카타락타가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서서히 속도를 줄이더니 멈췄다.

푸쉭!

해치가 열리고 제론이 내려왔다. 제론은 라이더를 향해 걸어갔다.

"서브 라이더 등록을 해지해 주십시오."

"응? 아, 드, 등록. 알았네."

허둥지둥 등록을 해지한 라이더가 질린 눈으로 제론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제론의 한마디에 급격히 굳었다.

"점검을 해 보시는 게 좋을 겁니다. 상당한 충격이 가해졌으니 제법 손상이 클 테니까요."

제론은 그 말을 남기고 훈련장에서 나갔다.

다들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한 사람, 카타락타의 주인만 얼굴이 일그러졌을 뿐이었다.

2왕자는 마기어 백작과 함께 유적에 들어가는 일이 잦았다. 그렇기에 유적 입구는 근위 기사들이 철저히 통제하고 있었다.

사실 그 때문에 제론은 조금 짜증이 난 상태였다. 유적을 2왕자가 통제하는 바람에 중앙 유적에 다녀오기가 어려워졌다.

현재 제론은 중앙 유적 6층에서 수련 중이었다. 예상대로 중앙 유적 6층은 황제 검술을 위한 곳이었다.

황제 검술의 그 복잡한 흐름을 몸에 새기기 위한 곳이었는데,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마나 폭풍 속에서 버티는 아주 단순한 수련장이었다.

하지만 수련 방식이 단순하다고 해서 그걸 해결하는 것도 단순한 건 아니었다.

마나 폭풍을 견디는 방법은 단 하나, 황제 검술이었다.

황제 검술을 끊임없이 일정한 속도로 펼쳐야만 몸도, 몸속에 흐르는 마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펼치면 펼칠수록 마나의 흐름이 강해졌고, 안정을 찾아갔다.

그렇게 수련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을 때, 근위 기사가 유적 입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제론은 조바심이 났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6층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길이 막혔으니 말이다.

하지만 제론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그저 홀로 황제 검술을 끊임없이 연마하고 또 연마했다.

언제 다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른다. 벨룸 왕국이 끊임없이 밀리고 있긴 하지만, 그들이 이대로 허무하게 무너질 리 없었다. 분명히 뭔가 수를 낼 것이다.

그 전에 최대한 실력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제론은 어떻게든 다음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익스퍼트에 오르고자 했다. 제론의 기준으로 익스퍼트는 현재 세상의 기준으로 소드 마스터이다.

제론은 확신했다. 황제 검술을 익히다 보면, 또 기초 검술과 기사 검술을 꾸준히 다져가다 보면 조만간 익스퍼트가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중앙 유적에 가지 못하는 건 너무나 아쉬웠다.

'유적에 한 번 가 볼까?'

제론은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적의 상황을 본 뒤, 몰래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 또 몰래 빠져나오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생각은 길었지만 행동은 짧았다. 제론은 은밀한 그림자가 되어 숙소를 빠져나갔다. 제론을 감시하던 자가 있었지만, 그는 전혀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떤가? 좀 성과가 있나?"

2왕자의 물음에 마기어 백작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몇 가지 주문을 알아내긴 했지만, 어떤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을 못했습니다."

"확인이야 내가 하면 그만이지. 어떤 주문인가?"

마기어 백작은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한데 제가 나갈 때까지 기다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마기어 백작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만일 그 주문이 유적의 트랩을 활성화시키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하하. 뭘 그리 걱정하나. 유적의 주인인 내 옆에 있는데. 어서 주문이나 알려 주게."

마기어 백작은 꺼림칙했지만 어쩔 수 없이 주문 몇 개를 말해 주었다. 주문은 간단했다.

2왕자는 주문을 듣자마자 바로 시험했다.

"카슘!"

꽈르릉!

천장과 벽에서 일어난 거대한 벼락이 유적 입구를 향해 날아갔다.

꽈과광!

유적 입구 쪽에서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입구에 서 있던 근위 기사의 기간트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물론 2왕자는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벼락을 밖으로 쏟아 내는 주문인 모양이군."

2왕자는 흥분한 표정으로 다시 주문을 외웠다.

"카슘! 카슘! 카슘!"

꽈릉! 꽈릉! 꽈르릉!

연달아 3번의 벼락이 쏟아져 나갔다. 당연히 밖은 난리가 났다.

"으하하하! 이거 정말 멋지군!"

한동안 2왕자는 세상을 얻은 것 같은 기분에 취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음 주문을 읊었다. 지금 중요한 건 벼락을 쏟아 내는 게 아니라, 이곳의 비밀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2개의 주문을 더 확인했다. 하지만 뾰족한 성과가 없었다. 주문을 외우고도 무슨 주문인지 알 수 없었다.

결국 그날은 그걸로 끝이었다. 하지만 2왕자는 하늘 끝까지 올라간 기분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서 근위 기사들의 기간트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확인한 뒤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무려 3기의 크라테르가 꼴사납게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들은 다시 일어날 생각도 못했다.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벼락의 위력이 무시무시하군. 이 정도 마법을 완전히 얻기만 하면 무서울 게 없겠어. 안 그런가?"

"물론입니다."

마기어 백작도 기분 좋게 웃었다. 그의 뇌리도 기대감으로 터질 것만 같았다. 2왕자가 유적의 주인이 되었으니 결국 유적에 쓴 마법진도 얻게 될 거라 확신했다. 그걸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슬슬 배가 고프군. 어서 돌아가지."

"예, 왕자님.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마기어 백작은 희희낙락한 얼굴로 공손히 2왕자를 모시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그 뒤를 간신히 깨어난 3기의 크라테르가 천천히 따라갔다.

그렇게 모두가 사라진 유적 입구에 제론의 모습이 슬쩍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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