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화 (17/217)

Chapter 5 위험한 작전

유적 발굴은 트랩이 해제된 지 이틀 만에 완벽하게 끝났다. 물론 트랩을 뜯어내거나 유적 자체를 해체하는 건 전혀 하지 못했다.

유적에 충격을 가하면 내부에 감춰진 트랩이 발동했기에 그 부분은 상당히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거기에 대해 아쉬워하는 건 마기어 백작을 비롯한 마법사들뿐이었다.

그리고 기간트 설계도는 결국 나오지 않았다.

2왕자는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결국 기간트 설계도를 구하지 못했으니 이번 일에 대한 성과가 대폭 줄어들어 버렸다.

물론 유물을 발굴한 것만으로도 제법 성과를 얻긴 했다. 기간트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작 이 정도 유물을 위해 왕자가 직접 움직였다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2왕자의 분위기가 안 좋으니 함께 있는 사람들도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괜한 불똥이 튀면 곤란했다.

그렇게 사령관실에는 계속 침묵이 감돌았다. 2왕자와 함께 있던 마기어 백작과 사령관은 2왕자의 눈치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길고 긴 침묵을 깬 것은 사령관이었다.

"저……."

"뭔가?"

2왕자의 말투에는 여전히 짜증이 어려 있었고,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사령관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저 유적을 이용해 함정을 파는 건 어떻습니까?"

"함정?"

2왕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사령관을 노려봤다. 고작 그 말을 하려고 이렇게 폼을 잡았다니, 너무나 괘씸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사령관의 말에 2왕자는 더 이상 짜증을 낼 수 없었다.

"이곳 체른산을 벨룸 왕국에 넘겨주는 겁니다. 유적에서 가장 중요한 걸 찾지 못했다는 정보와 함께 말입니다."

2왕자의 눈에 흥미가 감돌았다.

"그래서?"

"벨룸 왕국이 이쪽으로 전력을 집중할 때, 우리는 미리 이곳을 비우고 벨룸 왕국의 중요한 거점을 치는 겁니다. 예를 들면 골트산 같은 곳을 말입니다. 텅 빈 유적과 그곳을 맞바꾸는 겁니다."

"호오."

2왕자의 안색이 급격히 밝아졌다. 골트산은 아주 중요한 거점이었다. 게다가 그 산에는 막대한 매장량을 자랑하는 금광이 있었다.

쓸모없는 유적과 금광을 바꿀 수 있다면 기간트 설계도를 얻어 내는 만큼은 안 되더라도 충분히 어필할 만한 공을 세우는 셈이 된다.

꼭 그곳이 아니라도 된다. 벨룸 왕국이 이곳에 전력을 집중시키면 반드시 어딘가에 빈틈이 드러나게 된다. 그곳을 제대로 찌르기만 해도 막대한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좀 모자라지 않겠나?"

"그래서 제가 미리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함정을 준비하자고 말입니다."

"어떤 함정을 말하는 건가? 유적을 이용하자는 말인가? 하지만 유적의 트랩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누군가 미리 안에 들어가 있으면 됩니다."

"미리 들어간다고?"

2왕자뿐 아니라 함께 얘기를 듣던 마기어 백작의 눈도 휘둥그레졌다.

미리 들어가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최대한 많은 병력이 들어오길 기다렸다가 유적에 큰 충격을 주면 된다. 유적의 모든 트랩이 단번에 발동시킬 수 있도록 미리 준비만 하면 적들을 몰살시킬 수 있었다.

아마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유적이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수뇌부도 안으로 들어갈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안에 숨어 있던 사람은 어찌 되는가. 함께 트랩의 먹이가 되거나, 아니면 살아남더라도 적진 한가운데 내팽개쳐지게 된다. 대체 누가 그런 일에 나서서 스스로를 희생하겠는가.

2왕자와 마기어 백작의 마음을 알아차린 사령관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지원자가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그러니 모든 일을 제게 맡겨 주십시오."

사령관의 말에 2왕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구경만 하고 달콤한 과실을 따 먹을 수 있는 상황이니 마다할 필요가 없었다.

"좋아. 자네의 능력을 한번 보겠네. 총사령관 쪽은 내가 알아서 하지."

"부탁드립니다."

사령관은 그렇게 말했지만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총사령관에게 자신이 직접 보고하지 않으면 모든 공을 가로채일 수도 있었다.

'하여간 그놈도 보통이 아니야. 그 공은 절대 잊지 않고 보고하도록 하지.'

사령관은 제론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이번 작전은 모두 제론의 머리에서 나왔다. 사령관은 그것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누가 생각해도 훌륭한 작전이었다. 정보가 사전에 새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벨룸 왕국은 이곳 체른산 유적을 노리고 있었다. 사전에 정보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즉, 그들은 다시 이곳을 노릴 것이다. 물론 확인은 한 번 하겠지만 말이다.

이제부터는 정보전이다. 정보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이 작전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이 작전의 핵심은 유적의 트랩을 가동시킬 제론이었지만 말이다.

쿵! 쿵! 쿵! 쿵!

수백 기의 기간트가 일제히 진군했다. 벨룸 왕국이 전력을 집중해 체른산으로 진격한 것이다.

벨룸 왕국은 체른산을 차지하기 위해 피해를 감수했다. 몇몇 요지의 방어를 소홀히 하면서까지 체른산을 차지하기 위해 나섰다.

그 진군을 높은 곳에서 바라보고 있는 총사령관 카이아스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사령관님, 걱정되십니까?"

카이아스는 눈을 힐끗 돌려 부관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진군하는 기간트들을 바라봤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높게 세워진 이동식 철탑이었다. 탑 꼭대기에 사령관을 비롯한 수뇌부가 있었다. 그곳에서 전황을 살피며 순간순간 작전명령을 하달하는 것이다.

2기의 기간트가 밀고 당기며 철탑을 움직였기에 전선이 움직여도 얼마든지 따라다닐 수 있었다.

"체른산에 있는 적 병력은 고작 기간트 200여 기 정도입니다. 아무리 근위 기사들이 있다고 하지만, 500기에 달하는 기간트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부관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카이아스의 표정이 여전히 어두운 걸 보고는 조심스럽게 그의 눈치를 살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너무 쉬워."

"예?"

"적의 동태는 여전한가? 증원군이 올 기미는?"

"증원군은 없는 모양입니다."

"없다고? 그런데도 이상하지 않단 말인가?"

부관이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그 점은 이상했다. 체른산을 포기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다.

"100기를 따로 빼라. 혹시 있을지 모르는 증원군의 기습에 대비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100기를 빼도 400기나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적을 압도할 수 있었다. 물론 피해는 좀 더 감수해야 하지만 그래도 증원군에 당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 100기는 탈슨 백작에게 맡긴다. 제대로 척후 활동을 한 후, 증원군의 기미가 없으면 적군의 측면을 공격하게 하도록."

"예, 사령관님."

부관이 즉시 대답하고 서둘러 물러갔다. 이제 조만간 적과 마주치게 되니 서둘러 명령을 전달해야 한다.

잠시 후, 진격하던 기간트들 중 일부가 옆으로 빠졌다. 그리고 멀리 돌아서 이동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그들은 기간트를 아공간으로 돌려보내고 은밀히 움직였다.

탈슨 백작은 척후나 정보전에 상당히 강했다. 그가 나선다면 아마 적이 웬만한 수를 쓰지 않는 한, 들통 나지 않게 증원군을 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령관 카이아스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풀어졌다.

"쳐라!"

콰과과광!

굉음이 울렸다.

쇠와 쇠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고 기간트가 우그러졌다.

기간트들이 휘두르는 거검이 충돌하고, 또 그 검에 의해 기간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고 기간트를 보호하는 장갑이 우그러졌다.

전장의 싸움은 치열했다. 하지만 일방적이었다. 벨룸 왕국은 400기나 되는 기간트로 고작 200기에 불과한 레늄 왕국의 기간트를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였다.

레늄 왕국 측은 끊임없이 뒤로 밀리고 또 밀렸다. 벨룸 왕국은 승기를 놓치지 않으려 더욱 거세게 밀어붙였다.

전투는 꼬박 한나절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 결과 벨룸 왕국은 체른산을 비롯한 방어군의 기지를 완벽히 점령할 수 있었다.

미리 따로 뺐던 100기의 기간트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충분한 척후 활동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레늄 왕국의 증원군은 없었으며, 전투에서 끊임없이 밀리는 바람에 거의 후퇴한 거나 다름없을 정도로 멀리 물러났다.

벨룸 왕국 진영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하하하하! 경하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사령관님의 탁월한 지휘력 덕분입니다. 하하하하!"

카이아스는 여기저기서 자신을 칭송하는 소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이상해. 너무 쉬워.'

아무리 전력이 압도적이라 하더라도 이번 전투는 너무 쉬웠다. 고작 한나절 만에 체른산을 점령했으니 카이아스 입장에서는 전투 같지도 않아 보였다.

'게다가 레늄 놈들 피해가 너무 적어.'

카이아스는 높은 철탑에서 전황을 모두 살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번 전투로 레늄 왕국의 기간트를 최소한 100기는 박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데 막상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노획한 적 기체가 고작 20여 기에 불과했다. 이건 너무 적었다. 이 정도면 그저 국지전 한 판 벌여서 승리한 것과 비슷한 전리품이었다.

카이아스가 판단하기에 레늄 왕국은 꼭 일부러 이곳 체른산을 내준 것 같았다.

'얻을 건 다 얻었다 이건가?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건 못 얻었다고 아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하지만 어쨌든 승리는 승리. 지금은 그것을 만끽하고, 나머지는 다음에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내 책임은 딱 여기까지니까.'

책임져야 할 선 내에서는 충분한 공을 세웠다. 아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고, 적 기체를 노획했으며, 목표로 했던 지점을 점령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공이 어디 있겠는가. 카이아스는 일단 거기서 만족했다.

그렇기에 잠시 후 도착한 소식에도 크게 마음 쓰지 않을 수 있었다.

레늄 왕국군에 의해 골트산을 점령당했다는 속 쓰린 소식이었는데도 말이다.

☆ ☆ ☆

체른산 유적,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동공에 붉은 기간트 한 기가 서 있었다. 제론의 붉은 실바였다.

그리고 실바 앞에 제론이 앉아 간단한 음식을 먹고 있었다. 제론은 벌써 이틀째 이곳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제론은 이곳에서 수련을 하며 적들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작전의 핵심은 최대한 많은 적을 이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슬슬 실바를 숨겨야겠군."

일단 최대한 많은 적을 불러들이려면 처음 적들이 이곳을 정찰할 때 실바가 보여선 안 된다.

제론은 동공 한쪽 벽으로 다가가 능숙하게 벽을 밀었다. 그러자 네모난 모양으로 불이 들어오더니 그 부분의 벽이 안으로 슥 밀려들어 갔다.

그렇게 밀려들어 간 부분을 중심으로 벽이 양옆으로 열렸다. 마치 쌓아둔 벽돌이 하나하나 사라지면서 문이 나타나는 듯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지금까지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공간이었다. 제론도 이곳에서 이틀간 지내면서 알아낸 곳이었다.

그곳은 유적의 주인을 위한 장소로, 용도는 커다란 창고였다.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수백 기의 기간트를 보관할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제론은 실바를 그곳에 넣었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트랩은 모두 해체한 상태였다. 물론 충격을 주면 순간적으로 벼락이 쏟아지긴 한다. 하지만 건드리지만 않으면 아무 일 없다.

제론은 적들을 최대한 끌어들인 다음 일제히 모든 트랩을 작동시킬 계획이었다.

이곳에 머문 이틀 동안 태블릿을 통해 차근차근 유적의 주인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파악했기에 뭐든 할 수 있었다.

유적에 남은 유물은 거의 없었지만, 유적 자체가 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쿵! 쿵! 쿵!

제론은 멀리서 들려오는 육중한 소리에 눈을 빛냈다. 기간트가 걸어오는 소리였다. 벨룸 왕국의 기간트들이 들어오고 있는 게 분명했다.

드디어 시작되었다. 이제부터는 타이밍 싸움이었다. 제론은 벽에 손바닥을 올렸다.

지이잉.

사람 키만 한 빛나는 문이 나타났다. 제론은 망설임 없이 빛을 뚫고 들어갔다.

그곳이 바로 이 유적의 통제실이었다.

쿵! 쿵! 쿵!

5기의 기간트가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유적 안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라이팅!"

기간트 뒤를 따라가던 마법사들이 저마다 마법을 펼쳤다. 수십 개의 빛 덩어리가 허공에 떠올랐다.

유적이 워낙 넓어 그 정도 빛으로도 근처밖에 비추지 못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기간트를 움직이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더구나 기간트에도 조명 마법이 장착되어 있었다.

번쩍! 번쩍!

기간트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졌다. 5기나 되는 기간트가 빛을 쏟아 내니 근방이 환해졌다.

마법으로 만든 빛과 합해지자, 주변이 제법 밝아졌다.

쿵! 쿵! 쿵! 쿵!

기간트들이 이동을 시작했다. 일단 지금은 내부를 한번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었다.

중심에서 이동하는 기간트에는 카이아스가 타고 있었다.

"발굴이 쉽지는 않겠군."

"벽에 충격을 주면 트랩이 발동한다니까 조심하십시오."

"알고 있다."

카이아스는 천천히 걸었다. 뒤를 따라오는 마법사들을 배려한 행동이었다. 마법으로 만든 빛이 없다면 안을 살펴보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유적은 넓고 길었다. 그리고 그 끝에 거대한 동공이 있었다. 그곳을 모두 돌아본 카이아스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쉽지 않겠군."

어렵다는 건 이미 예상했다. 레늄 왕국의 전문가들도 아직 찾지 못했다. 당연히 막대한 인력이 필요할 테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그리고 이 어둠도 문제였다. 유적 내부가 너무 넓어 제대로 작업을 하려면 마법사들을 잔뜩 동원하거나 빛을 내는 마법 물품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그 두 가지 모두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이래저래 쉽지 않았다.

"돌아간다!"

카이아스의 명령에 기간트들이 돌아섰다.

쿵! 쿵! 쿵! 쿵!

마법사들이 띄운 빛 덩어리를 따라 기간트들이 유적에서 나갔다.

그리고 제론은 그 모든 광경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수십 기의 기간트가 유적으로 들어갔다. 모든 기간트의 눈에서 밝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수십 기의 기간트가 일제히 빛을 밝히니, 그나마 유적 내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동!"

수석 라이더의 명령에 기간트들이 앞으로 이동했다.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유적 내부를 뒤흔들었다.

유적 앞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서 있었다. 그중에는 사령관인 카이아스도 있었고, 또 벨룸 왕국에서 이번 발굴의 총책임자로 온 하트넥 공작도 있었다.

"2조 소환!"

하트넥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십 기의 기간트가 나타났다.

각각의 기간트에 라이더가 탑승하자, 2조의 수석 라이더가 명령했다.

"진입!"

쿵! 쿵! 쿵! 쿵!

수십 기의 기간트가 일제히 유적 안으로 진입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눈에서 광채를 내뿜으며 유적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3조 소환!"

하트넥 공작의 명령이 또 떨어졌고,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카이아스는 그 광경을 지켜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낭비야.'

하트넥 공작의 계획은 수백 기의 기간트를 이용해 유적 내부를 밝히고, 발굴을 돕게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이아스가 보기에 그건 완전히 낭비였다. 이 거대한 유적을 기간트로 밝히려면 적어도 200기 이상의 기간트가 필요하다.

그 정도면 전황을 더 유리하게 이끌 수 있는 전력이다. 체른산을 중심으로 몇 군데 중요한 거점을 더 점령할 수도 있었다.

한데 그 중요한 전력을 고작 유적 안의 불을 밝히기 위해 쓰겠다니, 이건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유적 발굴의 책임자는 카이아스가 아니라 하트넥 공작이었고, 또 그에게는 이곳의 모든 기간트를 통솔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니까.

쿵! 쿵! 쿵! 쿵!

카이아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수십 기의 기간트가 연달아 유적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슬슬 유적이 밝아졌으니 마법사와 유적 발굴 전문가들을 투입하면 되겠군. 자네도 가 볼 텐가?"

하트넥 공작의 말에 카이아스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유적 발굴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차라리 그 시간에 언제 도발해 올지 모르는 적을 방어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전 방어 라인을 점검하겠습니다."

"좋을 대로 하게."

하트넥 공작은 그 말을 남기고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굳이 기간트를 소환하지도 않았다. 기간트를 움직이는 데에는 많은 체력이 필요하다.

굳이 그런 힘든 일을 하트넥 공작이 할 이유가 없었다. 공작은 마차를 준비해 그것을 타고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마차에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기사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하트넥 공작의 마차가 유적 안으로 들어가자, 그를 따라온 수많은 귀족이 저마다 마차를 끌고 유적에 들어갔다. 수십 명이 넘는 기사가 말을 타고 마차를 호위하며 따라갔다.

카이아스는 그 광경에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속없는 것들."

하트넥 공작이 만일 이번 발굴에 성공한다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게 될 것이다. 조금 전 들어간 귀족들은 그때 떨어질 금 부스러기를 얻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다.

카이아스는 코웃음을 치며 사령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남은 기간트들을 재편성하며 방어 라인을 굳건히 다졌다. 최근 레늄 왕국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다. 언제 이곳으로 들이닥칠지 알 수 없기에 조금도 방심할 수 없었다.

카이아스가 사라진 유적 입구에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바글거렸다. 그들이 차근차근 유적 안으로 들어갔다. 마법사를 비롯한 유적 발굴의 전문가들이었다.

그들은 각 분야에서 벨룸 왕국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트넥 공작은 물론이고 왕실에서도 이번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만일 발굴형 기간트의 설계도를 얻을 수 있다면, 벨룸 왕국은 10년 내에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적 내부는 그들이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밝았다. 수십 기의 기간트가 곳곳을 비추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엄청난 양의 마법 물품이 동원되었다.

고작 밝은 빛을 내는 것 외에는 아무런 기능도 없는 물건들이었지만 각각 하나에 수십 골드는 하는 고가의 아티팩트였다.

유적의 시작부터 끝까지 기간트들이 쭉 줄을 섰다. 그리고 기간트 주위로 수많은 아티팩트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 ☆ ☆

"굉장하군."

제론은 유적 내부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상당히 감탄했다. 설마 이 정도 규모로 유적을 발굴할 줄은 몰랐다.

200기가 넘는 기간트에다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마법 아티팩트가 동원되었다. 게다가 마법사와 유적 전문가의 수는 또 어떠한가.

허공에 뜬 반투명한 화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제론의 눈은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화면 중 하나에 마차가 움직이는 모습이 비쳤다. 마차 안에 누가 탔는지는 모르지만 마차 주변을 호위하는 기사들을 보면 대단히 중요한 인물이 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 마차가 한두 대도 아니고 십여 대나 되니, 얼마나 중요한 인물들이 한꺼번에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다.

슬슬 때가 되었다. 제론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곳은 이 유적 전체의 마법 시스템을 모두 관리하고 컨트롤할 수 있는 장소였다.

손가락에 마나를 담아 한 번 까딱이는 것만으로 유적 전체를 뒤덮은 마법 트랩을 일제히 작동시킬 수도 있었다.

"몰레스도 제법 있군."

레늄 왕국과 마찬가지로 벨룸 왕국도 대부분의 기체가 카타락타였다. 그리고 중요한 기사들의 경우 몰레스를 몬다.

몰레스는 출력이 1.8이나 되는 벨룸 왕국의 상위 기체로, 출력이 1.7인 크라테르보다 뛰어났다. 당연히 몰레스가 더 나중에 개발된 기간트였다.

유적 안에는 200기가 넘는 기간트가 들어와 있다. 당연히 대부분 카타락타였지만, 그것만으로 유적을 전부 채우는 건 불가능했기에 상당한 수의 몰레스가 중간 중간 섞여 있었다.

"과연 몇이나 버틸 수 있을까?"

제론은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아무도 버텨 내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 현재 제론의 태블릿에는 유적에 사용된 모든 마법진이 저장된 상태였다.

그 마법진을 차근차근 살펴보고 있었는데, 트랩에 사용된 마법은 그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제론은 차분히 유적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확인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끝에 마나가 모여들었다.

딱!

마나 스파크가 튀었다.

빠지지직!

꽈르르릉!

유적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어마어마한 수의 벼락이 유적 내부를 가득 메웠다.

꽈릉! 꽈릉! 꽈르르릉!

빠지지지직! 파직! 파직!

벼락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치 벼락의 비가 내리듯 끊임없이 쏟아졌다.

유적 안에 있던 사람들은 첫 번째 벼락에서 모조리 새까맣게 타 죽었다. 입고 있던 옷과 함께 말이다. 그들이 남긴 거라고는 쇠붙이밖에 없었다. 무기와 갑옷들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다.

그나마 마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조금 나았다. 하지만 그들도 세 번의 벼락을 견디는 것이 한계였다.

말이 벼락에 맞아 죽은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마차 안에서 죽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기간트를 타지 않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죽어 나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기간트에 탄 사람들이 안전히 유적을 빠져나간 것은 아니었다.

200여 기의 기간트는 일제히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그 상태로 어떻게든 벼락을 버티려 애썼다.

무작정 유적 밖으로 도망치려는 기간트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금방 쓰러졌다. 움직이는 상태에서 벼락을 맞으니 그대로 몸이 튕겨 나가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벽에 충격을 준 순간 훨씬 더 강렬한 벼락이 쏟아졌다. 충돌로 인해 만들어진 충격이 고스란히 에너지로 변환되어 벼락에 담긴 것이다.

그들은 그저 웅크린 채로 벼락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기간트는 기본적으로 마법에 내성을 가진다. 마나 코어 때문이다. 게다가 최신 기간트일수록 대 마법 방어진이 잘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한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대 마법 방어진도 한계 이상으로 강력한 마법을 맞거나, 혹은 한계 이하의 마법이라도 그것이 무수히 중첩되면 부서지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그 한계를 넘어서는 상황이었다.

꽈르르릉!

콰직! 콰직! 콰직!

파지지직!

대 마법 방어진이 무력화되면서 기간트의 몸체를 타고 벼락이 흘러들어 갔다. 대부분은 마나 코어에 의해 중간에 흩어졌지만 일부는 조종석으로 들어가 라이더를 덮쳤다.

"끄아아아악!"

지극히 일부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인간이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했다. 대부분의 라이더가 10분을 버티지 못하고 죽어 나갔다.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기간트에 타고 있는 익스퍼트들뿐이었다. 물론 그들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숨이 끊어졌다.

벼락 공격은 무려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결국 유적에 들어온 모든 사람이 죽어 버렸다.

파직. 파직. 파직.

벼락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유적 안에는 잔벼락들이 남아 있었다. 기간트나 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타고 흐르며 호시탐탐 생명체가 들어오기만을 노렸다.

우르르르.

유적이 한 번 진동했다. 그리고 유적 끝에 있는 벽이 조용히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제론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제론은 눈앞에 펼쳐진 참상을 묵묵히 지켜봤다. 어차피 안에 있을 때, 화면으로 모두 확인했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파직!

스파크가 튀며 작은 벼락 하나가 제론을 향해 튀어 나갔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독사 같았다.

하지만 제론은 가볍게 손등으로 그것을 쳐내 버렸다.

퍽!

제론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마나를 이용해 자신에게 달려드는 벼락들을 쳐냈다.

파직! 퍽! 파직! 퍽!

제론은 일단 근처만 확인했다. 그러면서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잠깐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잠시 후, 동공 한 부분이 열리며 안에서 붉은 기간트가 나타났다. 제론은 붉은 실바에 올라탔다. 그리고 유적 안의 잔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유적에 있던 모든 기간트와 무구들, 그리고 아티팩트들은 유적의 창고에 고스란히 담겼다. 창고의 크기는 그 모든 것을 다 담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유적 내부를 깨끗이 정리한 제론은 앞으로의 일을 계획했다.

어쩌면 이미 사망자 처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일단 부대로 복귀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그래야 기반이 사라지지 않는다.

슈린 공작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기반은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백작이라는 작위 말이다.

"밖에 얼마나 많은 병력이 남아 있느냐가 관건이로군."

제론은 미리 유적 안에서 대기했기에 벨룸 왕국에서 얼마나 많은 병력을 이끌고 왔는지 모른다. 대충 짐작은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짐작일 뿐이었다.

"유적 발굴에 200기나 되는 기간트를 투입한 걸 보면 최소한 남은 병력이 그 2배는 된다고 봐야 하나?"

제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이곳에 투입한 기간트의 수가 무려 600기가 넘는다는 뜻이다. 그 정도라면 벨룸 왕국은 전선 곳곳에 뚫리는 구멍을 방치할 수밖에 없다.

한두 군데야 포기한다 하더라도 그게 너무 많아지면 자칫 전황이 일방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전쟁에서 기세를 잃으면 곧장 패망으로 이어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벨룸 왕국이 그런 무모한 일을 벌였을 것 같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조력자를 얻었거나."

제론이 눈을 빛냈다. 대충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봤다. 벨룸 왕국과 레늄 왕국 두 나라와 동시에 국경을 대고 있는 체스터 공국을 이용한다면 일시적으로나마 병력을 빼는 것이 가능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계라는 게 있지. 이곳 병력이 생각처럼 많지 않을 수도 있겠군."

만일 그렇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병력이 적으면 적을수록 다시 부대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테니까 말이다.

제론은 일단 조금 더 상황을 살피기로 했다.

붉은 실바가 발소리를 죽이며 유적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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