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7화. 전설의 용병 - (8)
“저는 이렇게 가르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정식으로 라이노스의 코치가 된 김인호는 감독에게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화두는 내야진 편성, 3루수를 보고 있는 토니 아브레우는 공격만큼은 나무랄 곳이 없다.
문제는 수비, 각 포지션이 요구하는 능력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지만 일본 프로야구는 공격보다 수비가 안정적인 3루수를 선호한다.
그렇다면 일본야구가 요구하는 안정적인 3루 수비는 뭔가.
보통 아시아 3루수들은 송구할 때 오른발-왼발-포구-오른발-왼발-송구, 이런 과정을 거치며 스텝을 밟는다.
왼발을 포인트로 잡아야 그만큼 송구에 힘이 실리고 안정적이라는 이유 때문, 하지만 김인호는 선수시절 그런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스텝을 한 번 더 밟아야 하는 과정 때문에 송구가 늦는 것도 있고, 뭣보다 어깨가 어느 정도 받쳐준다면 굳이 왼발을 포인트로 잡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아브레우의 송구 동작은 어떨까.
무리하게 왼발을 포인트로 잡다 보니 스텝이 꼬이는 느낌이랄까. 상체가 들리면서 송구가 위로 뜨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김인호 코치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던 오가야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번 지도해 보겠나?”
“예”
감독의 허락을 받아낸 김인호는 용병 조련에 나섰다.
얼마 전 이런저런 일을 겪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 스승과 제자의 입장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아브레우는 남미에서 수비는 거의 배우지 못했다.
수비보다 공격이 눈에 띄어야 스카우터의 선택을 받는 입장, 체계적으로 수비 훈련을 받은 건 일본에서다.
이제야 진짜 야구를 배웠다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뭘 또 가르치겠다는 건가. 아브레우는 됐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대들었다가 멱살을 잡힌 경험도 있고, 그냥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된 1대 1강습, 김인호 코치는 우타자가 타석에 들어선 상황을 가정하고 훈련을 지도했다.
“이 상황에선 어떻게 해야 돼?”
“일단 강습타구에 대비해야겠죠.”
코치의 질문에 아브레우는 나름대로 답을 내놨다.
우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면 3루수는 시야에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만큼 수비 범위는 좁아지고 강습타구가 날아들 위험도 높아지겠지, 여기에 느린 타구에 신속하게 전진스텝을 밟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걸 잘 해내고 있을까. 아브레우는 코치에게 냉정한 평가를 받았다.
“자네는 딱 기본만 하고 있어. 프로가 되려면 그 이상을 해야지.”
“그게 뭔가요?”
“예를 들면 이런 거지”
김인호는 직접 시험에 나섰다.
글러브를 이용해 오른손으로 공을 넘기는 핸들링, 그리고 오른발로 포인트를 잡고 한 박자 빠른 송구를 했다.
내가 했던 방식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간결한 송구, 아브레우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관심을 보였다.
“제가 육성군에서 배운 거랑 정반대의 개념인데요?”
“그래 맞아. 나도 학교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배웠지, 그런데 그게 아닐 수도 있어. 아니 싶으면 다른 길도 찾아봐야지.”
계속되는 조언에 아브레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첫날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아브레우는 이후 다른 선수들보다 일찍 나와 코치의 지도를 받으며 훈련에 열중했다.
“그게 아니지!! 더 적극적으로 나오란 말이야!!”
김인호는 우물쭈물 거리는 아브레우를 몰아세웠다.
어차피 3루수는 수비 범위가 제한적, 강습타구가 날아오면 옆으로 몸을 날릴 뿐이다. 정말 중요한 건 느린 타구에 반응하는 전진스텝, 1루로 공을 던지는 훈련은 계속 됐다.
“이것만 잘해도 한 경기에 내야안타 1 ~ 2개는 지워낼 수 있어. 그게 얼마나 투수에게 큰 힘이 될지 생각하면서 훈련을 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아브레우는 이제 김 코치에게 대드는 건 꿈도 꾸지 않았다.
딱 기본에 멈춰있었던 수비능력, 그런데 내 멱살을 잡았던 사람이 앞길을 터 줄 줄이야.
내색은 안 했지만 솔직히 고마웠다.
* * *
“자, 1회 초 미요시 호크스의 선공으로 경기기 시작됩니다. 객석은 오늘도 만원이군요. 팬들도 이 경기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다는 뜻이겠죠?”
“그렇습니다. 오늘 승리를 거두면 라이노스는 2년 연속 지구 1위 확정이거든요. 이제는 정말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강팀에 올라섰습니다.”
시간은 흘려 9월 20일, 길었던 시즌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사카이 라이노스는 83승 2무 53패로 리그 1위를 질주, 리그 2위 도쿄 자이언츠에 4경기 앞선 리그 1위를 지키고 있다.
오늘 경기만 이기면 팀 역사상 역대 7번째 지구 우승, 거침없는 진격에 들뜬 라이노스 팬들은 필승을 외치며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하지만 선발 투수 시즈마 타키야스는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내줬고, 후속타자 오무라 유우히데를 상대했다.
‘저 자식 요즘 수비 잘하던데’
미요시 호크스의 감독 후쿠나가 토모시게는 생각을 정리했다.
몇 달 사이 몰라보게 향상된 아브레우의 수비, 뭣보다 느린 땅볼이나 기습 번트 대응 능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공격은 원래 뛰어났고 수비는 평범했는데 이제는 완전체가 된 건가. 초반부터 보내기 번트를 지시하는 건 너무 소극적, 강공을 지시했다.
[딱 ~ !]
“느린 타구, 아브레우가 잡아서 1루로 송구합니다!! 그 사이 1루 주자는 2루까지!! 타자주자만 잡아내면서 1사 주자 2루가 됩니다.”
“지금도 한 박자 빠른 송구죠. 몇 달 전과는 스타일이 완전 달라졌는데, 뭔가 계기가 있었던 걸까요?”
멋지게 타구를 처리한 아브레우는 선발투수 시즈마 타키야스와 엄지손가락을 주고받았다.
예전에는 공격만 잘해도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수비 능력이 좋아지면서 팀과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도 강해졌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기대하기 어려웠던 전개, 특별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다카기 단장도 만족한 반응을 보였다.
‘성과급 따로 지급해야겠네.’
뭣보다 친척 형의 지도력에 높은 평가를 내렸다.
저 문제아를 휘어잡은 것도 대단한데, 수비 능력까지 발전시킬 줄이야. 이 정도면 따로 상여금이라도 지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친척 형을 영입한 건 솔직히 예정도 없었던 일, 한국에서 실시한 2차 트라이아웃이 이런 전개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인재가 알아서 굴러들어온 것도 행운, 다카기 단장은 역시 나는 운이 따라주는 인간이라며 당당히 어깨를 폈다.
어쨌든 호수비에 힘을 얻은 시즈마는 1회를 무실점으로 막고 내려갔고, 라이노스의 1회 말 공격이 시작됐다.
중간에 잠시 슬럼프가 있었지만 올 시즌 경기당 5.74점을 내고 있는 라이노스, 막강 화력은 초반부터 불을 뿜었다.
“자, 1사 주자 1루에서 오기 나가야스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285, 홈런 24개, 8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피터 스마일리가 부상으로 이탈한 이후, 3번을 책임지고 있는데요. 최근 15경기 타율이 0.405나 됩니다. 홈런도 4개가 있고, 시즌 내내 들쑥날쑥했던 타격감이 완전히 살아났다고 봐도 좋겠죠.”
[따아악 ~ !!]
“자!! 말씀드리는 사이 이 타구는 좌측!! 높게 날아가!! 담장 위로 넘어갑니다!! 오기 나가야스의 시즌 25호 홈런!! 투런으로 장식을 합니다!! 스코어 2대 0!! 라이노스가 오늘도 선취점을 가져갑니다!!”
깨어난 천재소년의 활약에 팬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나가야스는 23살밖에 안 됐지만 이제는 라이노스의 주축을 이루는 선수, 이런 환호가 얼떨떨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제 천재소년은 당연한 듯 고개를 쳐들었다.
‘3할을 못 치고 있는 게 불만이야.’
선취점을 올리는 홈런을 쳐냈지만 나가야스는 뚱한 얼굴로 그라운드를 응시했다.
초반에 겪은 슬럼프만 아니었다면 2년 연속 3할을 달성했을 텐데, 남은 5경기에서 3할을 달성하는 건 사실상 어려워졌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겠지, 유격수 자리에서도 몸을 날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야!! 이건 영역 침범이라고!!”
하지만 그 공(功)은 동갑내기 친구가 가로챘다.
유격수 방면으로 날아오는 깊은 타구, 나가야스는 경쾌한 스텝을 밟았지만 한 발 앞선 아브레우가 1루 송구를 마쳤다.
최근 전진스텝에 자신이 붙은 아브레우는 유격수가 처리할 타구에도 욕심을 내고 있는데, 수비 범위는 나가야스가 한 수 위지만 어깨는 아브레우가 더 좋다.
팀 내부에서도 송구 거리가 더 긴 아브레우가 유격수를 보는 게 낫지 않느냐는 말이 돌고 있는 상황, 유격수에 애착이 있는 나가야스는 그런 음모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긴 중립지대야. 네 영역은 없다고”
“웃기지 마!! 넌 거기서 강습타구나 잘 처리하라고!!”
“네 약한 어깨로 저기까지 송구할 수 있어?”
평소처럼 티격태격하는 23살 동갑내기, 이때 3루 코칭 박스에 앉아 있던 김인호 코치가 목소리를 높였다.
“딴짓하지 말고 경기에 집중해!!”
“예 ~ 예 ~ ”
아브레우는 잔소리가 심한 코치에게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
몇 달 전 서로 멱살잡이를 한 사이라곤 믿을 수 없는 훈훈한 분위기, 하지만 그라운드에서 누구보다 진지한 김인호 코치는 제자의 애정표현을 받아주지 않았다.
솔직히 귀여워 해주기에도 부담스러운 녀석,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이 정도면 충분했다.
[딱 ~ !]
“높게 뜬 타구, 파울 존에서 3루수가 잡아냅니다!! 아브레우의 멋진 수비!! 오늘도 수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공격도 이렇게 잘해줬으면 좋겠는데요. 솔직히 최근 방망이는 썩 뛰어난 편이 아닙니다.”
타구를 쫓다 관중석으로 넘어갈 뻔했던 상황, 하지만 쿠션을 자처한 팬들 덕분에 아브레우는 상처 하나 없이 제 자리로 복귀했다.
수비만큼 공격도 따라줘야 할 텐데,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278 - 홈런 24개 - 80타점, 35홈런을 넘긴 작년에 비해 장타력이 너무 떨어졌다.
이것 때문에 김인호 코치에게 코칭도 받았는데 아직은 결과가 신통치 않다.
오늘도 첫 타석은 2루 땅볼,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없다는 조언을 믿고 경기에만 집중했다.
“자, 이제 4대 0으로 앞서가는 사카이 라이노스의 3회 말 공격입니다. 선두 타자는 토니 아브레우, 첫 타석은 2루 땅볼로 물러났습니다.”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최근 8경기에서 홈런이 없거든요. 역시 아브레우하면 경쾌한 풀스윙에서 나오는 홈런 아닙니까? 그 모습이 한 번 나왔으면 좋겠는데요.”
해설위원의 불만을 들었는지 아브레우는 풀스윙을 돌렸다.
하지만 빗맞으면서 파울, 내가 혹시 뭐 잘못한 건 없을까. 3루 코칭 박수를 힐긋거렸지만 엄격한 코치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저 녀석은 내 능력을 벗어났다.’
김인호 코치는 사실 아브레우에게 도와 줄 게 별로 없었다.
수비는 내가 가르침을 줬지만 타격만큼은 예외, 코치라고 선수에게 어떤 도움이든 줄 수 있는 건 아니다.
내 능력을 벗어난 타격을 하는 선수에게 조언을 하는 게 가능한 건가. 아브레우가 잘 나갔던 시절의 폼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주는 건 가능했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
나머지는 선수의 능력에 달린 일,
여기서 홈런이 나와도 내 코칭 덕분이라는 말은 감히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