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전설의 용병 - (5)
[2차 트라이아웃을 실시합니다.]
사카이 라이노스는 개막 두 달을 앞두고도 선수모집에 열을 올렸다.
꼭 드래프트를 거쳐야만 프로선수가 될 수 있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또는 순간의 망설임 때문에 잠시 방향을 틀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트라이아웃,
다카기 단장은 지난 11월, 경기 성남에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트라이아웃을 실시한 적이 있다.
겨우 1 ~ 2명을 뽑는 자리지만 몰려든 인원은 무려 134명, 그 중 서류와 입단 테스트를 거쳐 후보 선수 94명을 추려냈다.
“이건 물건이다.”
라이노스는 여기서 이성모를 발굴해 냈다.
지난 2028년 드래프트를 받고 자이언츠에 입단했지만 부진과 부상으로 방출됐고, 2년간 방황하다 라이노스 트라이아웃을 신청했다.
나이는 28살로 적지 않지만 입단 테스트에서 155km를 던져 라이노스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고, 다카기 단장은 바로 계약을 맺었다.
‘기왕 긁어가는 거 바닥까지 긁자.’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에서 2차 트라이아웃을 개최했다.
1차 트라이아웃에서 무려 134명이 몰려들었는데, 아무래도 인원이 많다 보니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공 하나, 배팅 한 번으로 자신의 가치를 보여줘야 하는 자리, 구단 스카우터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 많은 인원을 제대로 살펴봤겠는가.
유망주는 10명이 있든 100명이 있든 부족한 법, 이렇게 라이노스 구단 관계자들은 그물을 들고 다시 한국을 찾았다.
“아직 기회가 있었구나.”
1차 트라이아웃에서 눈물을 삼켰던 선수들이 다시 관심을 보였다.
문제는 지난 11월부터 지금까지 몸 관리를 얼마나 제대로 했느냐는 것, 트라이아웃에 탈락한 후 몸 관리에 소홀히 했던 선수들은 심사과정에서 다시 고배를 마셨다.
‘응? 38살?’
라이노스 구단 직원은 서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28살 먹은 선수도 노장 취급을 받는 트라이아웃에 40이 다된 사람이 참가하다니, 지금 장난하는 건가.
하지만 그 정체를 알아차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무려 단장의 친척 형, 거기다 KBO에서 2000안타를 기록한 거물 아닌가.
어쨌든 서류상으로 딱히 문제될 것도 없고 체력 테스트도 통과, 일단 고사카 노리미치 총무에게 보고를 올렸다.
“문제없으면 통과시키는 거 아닌가?”
“아니 … 나이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나는 45세까지 현역생활 했어. 38살이면 아직 젊은 거지”
고사카 노리미치는 나고야 파이터스에서만 26년을 보냈다.
말년을 백업으로 보냈지만 어쨌든 꾸준히 대타로 출장하면서 2228안타를 기록, 체력만 따라줬다면 50살까지 뛸 자신도 있었다.
38살이면 한창 젊은 나이, 거기다 한국에서 2000안타를 친 거물이 트라이아웃에 신청할 줄이야.
거기다 단장의 친척 형, 이것도 인연이겠거니 하는 생각에 현장으로 나왔다.
‘생각보다 빠른데?’
고사카 총무는 김인호의 플레이에 고개를 끄덕였다.
김인호는 전성기 시절 내야수를 봤지만 나이가 들면서 좌익수로 전향했다. 그래도 타구 위치 선정이나 판단 능력이 뛰어나 안정적인 수비를 보여줬는데 지금도 타구 지점까지 이동하는 능력은 확실하다.
타격 능력도 준수한 편, 하지만 트라이아웃은 젊은 선수가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작년까지 프로생활을 했으니 어중간한 젊은 선수들보다 훨씬 나은 게 사실, 그렇다고 해도 38살짜리 선수를 트라이아웃에서 뽑아야 하나.
하지만 45세까지 선수생활을 하다 은퇴한 고사카 총무는 최선을 다하는 노장의 투혼에 감명을 받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해외 진출하려고 했는데 받아주는 구단이 없더군요.”
김인호는 통역에게 자신의 입장을 전했다.
호기 있게 도전을 선언했지만 역시 나이가 문제, 호주나 독립리그에서 뛰며 훗날을 기약할까 했지만 마침 라이노스가 2차 트라이아웃을 실시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혹시 다카기 단장이 정보를 준 거 아닌가.
고사카는 단장과 뭔가 사전협의가 있었던 게 아니냐며 농담을 던졌다.
“그런 일 없습니다.”
“정말입니까?”
“뭐 … 솔직히 동생 덕 볼 생각도 해봤는데, 형이 동생한테 애걸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 아닙니까. 실력으로 평가를 받고 싶었습니다.”
“이거 제가 실례되는 말을 했군요. 사죄드립니다.”
고사카 총무는 무례에 용서를 구했다.
농담이라고 해도 ‘당신 단장하고 짜고 온 거 아닙니까?’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어쨌든 실력만 따지면 트라이아웃에서 합격할 수 있는 수준, 고사카 총무는 단장에게 보고를 올렸다.
“아니 … 이 형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보고를 받은 다카기 단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해외진출을 선언했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역시 그 나이에 뛰어든 선수를 받아줄 구단은 없었다.
그럼 동생인 내가 형을 품어야 하나.
다카기도 형의 입장은 이해했지만 비즈니스는 그런 개인적인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다.
철저히 실력으로 선수를 평가할 뿐, 혹시 고사카 총무는 내 눈치를 보느라 형을 트라이아웃에 합격시킨 건가.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정말 합격시킬 수준이 된다고 생각한 겁니까?”
“예, 합격할만한 수준이라는 게 문제지만요.”
고사카 총무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일본 투수들이 유인구와 약점을 파고드는 투구를 한다는 것도 이젠 옛말이다.
강속구로 밀어붙이는 투수들이 늘고 있는 추세, 김인호는 KBO에서 통산 타율 0.317을 기록할 정도로 컨택 능력은 뛰어났다.
하지만 한국보다 훨씬 빠른 공을 던지는 일본 투수들을 상대로 버텨낼 수 있을지, 김인호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했던 후보들 중에서는 가장 뛰어났지만, NPB 무대에서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중계권도 … 아마 안 될 거야.’
다카기 단장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봤다.
한국 야구팬 중 일본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나. 나라도 메이저리그를 보지 일본야구 중계를 보진 않을 거다. 백승호 등 한국에서 좋은 유망주를 대거 끌고 왔으니, 이 선수들이 1군에서 자리를 잡고 활약한다면 그땐 상황이 조금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무리, 그렇다고 형한테 ‘당신은 안 돼!!’라고 말하려니 그것도 찝찝했다.
“형, 여기 오면 최저연봉도 못 줘. 그래도 올 거야?”
[나는 이미 잃을 게 없는 몸이다. 남자가 칼을 뺏으면 무라도 베야지.]
“아 … 진짜 … 자꾸 나 못된 동생으로 만들 거야?”
“한 번 기회를 줘라 부탁한다.”
김인호는 결국 동생에게 애걸했다.
은퇴 회견장에서 KBO에 복귀하는 일은 없다고 큰소리쳤는데, 이제 와서 복귀하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일본에서 도전이라도 해봐야 내 체면이 서겠지, 고민을 거듭하던 다카기 단장은 형에게 1년 600만 엔 단 년 계약을 제시했다.
한국에서 받던 연봉의 1/20도 안 되는 대우, 다만 1군에 승격한다면 NPB 최저 연봉은 보장해주기로 했다.
[정말 서운했나 보다. 이 정도 계약을 받아들일 정도면 … ]
[김인호 FA 두 번 하면서 총연봉 160억 넘었다. 솔직히 돈이 문제가 아니었겠지, 자존심의 문제다.]
-> 나도 동감, 다들 연봉 깎거나 은퇴하라고 압박했는데 나라도 뭔가 보여주고 싶을 것 같다.
-> 정말 만약이지만 일본에서 성공하면 웃기겠다.
-> 그런 일 절대 없음. 연봉 보면 모르겠냐? 2군 전전하다 KBO 복귀다. 100%
돈 밝히는 노장이라며 비난을 하던 한국 여론도 슬쩍 관심을 주는 분위기, 하지만 다카기는 형을 1군으로 올릴 생각이 없었다.
본인이 해보다 안 되면 포기하겠지, 일단 3군에 넣고 지켜봤다.
‘3군 정도로는 안 되는 건가’
4월 중순, 다카기는 측근이 올린 보고를 받았다.
3군에서 12경기를 뛰며 타율 0.453, 홈런 3개를 때린 형, 역시 3군의 벽으로 KBO 스타를 막는 건 역부족인가.
그나마 KBO 수준과 엇비슷한 2군으로 올려 더욱 큰 시련을 내렸다.
‘이제야 좀 할 만하네.’
하지만 김인호는 동생이 내리는 시련을 받아들였다.
3군에 있는 녀석들은 수준이 떨어져서 놀아주기도 싫었는데 2군은 붙어볼 만한 수준, 초반에는 살짝 헤맸지만 이후 적응하면서 타율 0.342, 홈런 2개를 기록했다.
‘그래도 안 올릴 거야. 자리 없어’
하지만 다카기는 눈을 질끈 감았다.
라인업을 빈틈없이 채운 정예멤버, 그리고 이렇다 할 부상선수도 없이 다들 잘해주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팀을 이끌 리더가 없다는 것, 작년에도 라이노스는 마크 프리젤과 토니 아브레우가 사소한 소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단장이 권력으로 찍어 누르긴 했지만, 그래도 리더 역할을 해 줄 선수가 필요하긴 했다.
“어때, 캡틴 노릇은 익숙해졌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닙니다.”
다카기 단장은 마츠다 코사쿠에게 그 역할을 기대했다.
벤치 멤버로 4년을 보내다 잡은 스타팅 멤버의 영광, 실력도 어느 정도 있고 뭣보다 마츠다는 언제나 겸손한 언행으로 팬들의 민심을 얻고 있다.
이런 선수가 캡틴이 된다면 멤버들도 납득하겠지, 하지만 마츠다는 캡틴 자리에 부담을 느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분위기 좀 잡아보려고 해도 그게 안 되네요.”
솔직히 마츠다는 스타급 선수는 아니다.
그냥 저냥 스타팅 멤버를 볼 수 있는 수준, 거기다 평소 조용한 성격이라 까불거리는 선수를 제어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도 말을 함부로 하는 토니 아브레우에게 한소리 하려 했는데, 그 녀석은 듣기 싫다며 피해버렸다.
“단장님한테 이를 거예요?”
“뭐?”
“단장님한테 이르면 저는 또 혼나겠죠. 좋은 생각이네요.”
심지어 아브레우는 대놓고 마츠다의 권위를 무시했다.
당신이 이 사건을 단장에게 이르면 나는 혼나고 당분간 조용히 지내겠다는 뜻, 결국 캡틴의 권위보다 단장의 권위를 더 높게 평가한 거다.
‘진짜 내가 혼내?’
속사정을 알게 된 다카기 단장은 흥분했다.
이번 기회에 정말 제대로 휘어잡아야 하나, 하지만 이런 날이 반복되면 마츠다의 입장만 난처해질 뿐이고 뭣보다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된다.
뭔가 방법이 없을지, 일단 지켜보다 부진에 빠진 아브레우를 2군으로 내려보냈다.
작년 시즌 타율 0.292, 홈런 34개를 때려낸 선수가 5월 들어 갑자기 추락하고 말았다.
거기다 마츠다 캡틴의 권위를 무시한 사건으로 단장의 미움을 받고 있던 선수, 이렇게 문제아는 원치 않는 2군행을 받아들였다.
‘내가 왜 2군이야?’
아브레우는 2군에서 태업 시위를 이어갔다.
분명 캡틴이 단장에게 이른 탓이겠지, 아직 22살밖에 안 된 어린 선수는 프로답지 못한 행동으로 팀 분위기를 흐렸다.
‘저 XX가 죽고 싶나.’
김인호는 발끈했다.
여기 1군으로 올라가고 싶어도 못 올라가는 선수들이 차고 넘쳤는데, 저 자식은 뭘 믿고 태업을 하는 건가.
구단과 맺은 450만 달러 계약금? KBO에서도 불성실한 용병들을 휘어잡았던 김인호는 건방진 애송이의 태업을 용서하지 않았다.
“야, 이 XX야. 네가 그렇게 잘났어? 어?!!”
참다 참다 폭발한 노장, 깜짝 놀란 선수들과 코치들이 말렸지만 김인호는 기어이 아브레우의 멱살을 잡았다.
라이노스에 입단한 이후 줄곧 최고의 대우만 받았던 아브레우, 이런 대접은 처음이라 순간 당황했다.
“야구하기 싫으면 때려치워 이 XX야!! 다른 선수들한테 피해주지 말고!! 우리가 여기서 장난하는 줄 알아?!! 어?!!”
“兄貴!! 落ち着いて(형님, 진정하세요)!!”
라이노스 2군 선수들은 펄펄 뛰는 형님을 말렸다.
말은 잘 안 통해도 어떻게든 선수들과 대화를 해보려 했던 한국인 손님, 거기다 야구에 대한 진지한 자세는 2군 선수들에게도 적지 않은 귀감이 됐다.
그런 형님이 이렇게 미쳐 날뛰다니,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오늘 끝장을 보자. 내가 옷을 벗든지 네가 옷을 벗든지 둘 중 하나야.”
김인호는 유니폼을 벗고 덤비라는 손짓을 했다.
김인호는 잃을 게 없지만 아브레우는 그 반대의 입장, 거기다 멱살을 잡혔을 때 상대의 힘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