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53화 (353/361)

353화. 전설의 용병 - (4)

“야, 너 한국 유망주 약탈하고 다닌다며?”

“누가 약탈이래?”

“내가 아니라 기자들이 하는 말이야.”

출국을 앞두고 다카기는 친척 형 김인호와 얼굴을 마주했다.

한국 유망주를 일본으로 데려가는 게 법적으로 문제 될 일은 아니지만,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한국 팬들이 많은 게 사실이다.

일본이 유망주의 MLB 진출을 꺼려하는 것과 같은 논리, 일부 네티즌은 문화재 유출에 버금가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왜 몸값을 올리는 거야?’

프로야구 구단도 다카기 단장의 행보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저 사람이 관심을 보인 유망주가 가치가 폭증하고 있는데, 이건 구단 입장에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부모들이 해외 진출 가능성을 무기로 구단을 압박할 수도 있고, 뭣보다 요즘 한국 유망주 사이에서 일본 진출이 은근 인기를 얻고 있다.

“미국으로 직접 가는 것보다 일본을 거치는 게 낫겠지?”

“그렇지, 대우도 거기가 더 낫잖아.”

1년 전, 사카이 라이노스는 대만 출신 천진롱(陣金龍)과 계약을 맺었다.

대만 체육대학 2학년 때 MLB 구단 3팀과 일본 구단 2팀의 오퍼를 받았는데, 본인도 메이저리그 진출에 관심이 있었는지 세인트루이스와의 계약을 우선으로 삼았다.

하지만 대우가 너무 좋지 않아 포기, 결국 라이노스와 계약을 맺었다.

계약 조건은 계약금 110만 달러와 연봉 1800만 엔,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다면 이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까.

거기다 일본에서 활약하면 그 기반을 바탕으로 메이저리그 구단과 협상도 벌일 수 있다. 이래저래 유리한 일본 진출, 한국 유망주들이 관심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일본 거친 유망주는 국가대표로 뽑으면 안 됩니다.”

“어째서죠?”

“한국 야구의 발전보다 본인의 출세를 택한 거 아닙니까. 그런 선수가 태극마크를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기껏해야 군 면제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겠죠.”

한국 야구 관계자들은 기자 앞에서 노골적인 불만을 표했다.

어쩌다 태극마크가 개인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는가.

하지만 태극마크를 군 면제 수단으로 삼는 건 국내 프로 선수들도 마찬가지, 일부 팬들은 축구 유망주의 유럽 진출을 예로 들어 반박에 나섰다.

[유럽에서 뛰는 젊은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서 군 면제 받는 건 뭐야? 왜 야구만 걸고넘어지는 거지?]

[NPB는 메이저리그 다음 가는 야구시장이다. 젊은 유망주들이 그곳에서 실력을 쌓고 돌아오면 한국 야구도 그만큼 발전하는 거 아닌가?]

-> 나도 동감한다. 유망주들이 일본 진출한다고 비난하는 놈들 있는데, 이건 프로야구 출발점을 이해 못 한 거다.

-> 맞아, 일본에서 뛴 한국 선수들이 프로야구의 기반이 된 거지. 유망주들 일본으로 가는 거 절대 나쁘지 않다. 나는 찬성

-> 언제까지 반일감정 앞세울 거냐? 이건 그리고 반일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일본에서 선진 야구를 배워오는 건데 뭐가 문제야?

[일본 진출한 유망주는 국대에 안 뽑겠다는 그 창조적인 발상에 경의를 표한다. 이러니 KBO가 발전이 없지.]

다카기 단장의 행보는 한국 여론을 반으로 쪼개 놨다.

일본 진출은 절대 안 된다는 의견과 나가서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이 맞서는 상황, 하지만 다카기는 논란에 끼어들지 않았다.

일본으로 오고 안 오고는 학생이 선택할 일, 나는 이번 사건과 관련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리고 간만에 형제가 얼굴을 마주했는데 사업 일만 논할 수도 없는 일, 다카기는 화제를 돌렸다.

“형은 어떻게 … 계속 프로 생활 할 거야?”

“글쎄 … 나도 모르겠다.”

“은퇴하고 할 일 없으면 나한테 연락해. 자리 알아봐 줄게”

“나보고 네 밑에 들어가라는 거냐?”

“뭐 어때? 형이 지금 자리 가릴 때야?”

김인호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잖아도 한국 여론은 언제까지 해먹을 가냐며 비난이 엄청나다.

문제는 연봉, 김인호는 올해 37살에 접어든 노장이지만 그래도 타율 0.311, 홈런 17개, 67타점을 기록하며 팀 타선을 지탱했다.

문제는 예전과 같은 생산력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 그래도 김인호는 자신감을 가지고 구단에 연봉 10억을 요구했다.

“겨우 67타점 올렸는데 10억 요구는 너무 한 거 아닌가?”

“제가 못 쳐서 67타점 올린 겁니까? 타선이 엉망이잖아요. 그리고 지금 팀에서 저만큼 쳐 줄 사람 있습니까?”

김인호는 구단의 주장에 콧방귀를 뀌었다.

타점이 하락한 게 장타력의 실종 때문인가. 아니, 타점은 타자의 능력보다 팀 사정에 좌우된다.

앞에 주자가 출루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타점을 올리나

득점을 올리는 정석은 강타자 앞에 얼마나 많은 득점 기회를 주느냐다. 그걸 못한 팀이 책임을 한 선수에게 떠넘기는 건 웃긴 일,

어쨌든 구단은 6억 이상 못 준다는 입장이고, 김인호는 협상을 지금까지 끌고 있다. 조만간 전지훈련이 시작되는데 언제까지 답이 없는 구단과 기싸움을 벌여야 하나.

김인호는 구단의 홀대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형은 무조건 10억 받아야겠어?”

“무슨 뜻으로 한 말이냐?”

“아니, 그게 형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마지노선이냐고”

계속되는 동생의 부추김, 머리를 긁적거리던 김인호는 작은 목소리로 속사정을 털어놨다.

“ … 솔직히 8억까지는 양보를 했어.”

“그런데?”

“6억 이상은 못 준다잖아. 그런데 여론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더라? 내가 그 이상 받는 건 욕심이래. 내가 그 정도 가치밖에 안 되나? 이런 생각도 들더라.”

“기자들이 하는 말이 다 그렇지 뭐, 뭘 안다고 선수 가치를 측정해? 내가 봤을 땐 형은 최소 8억 이상은 받아야 해.”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어, 그 이하는 형이 손해 보고 뛰는 거야.”

김인호는 홈런은 많지 않아도 여전히 많은 2루타와 3할이 넘는 정확도를 보여줬다.

앞에 판만 잘 깔아줘도 득점이 따라올 텐데, 이 선수의 연봉을 깎아내리는 게 답인가?

연봉을 깎는 게 사업인 줄 착각하는 구단 관계자들, 일본도 그렇지만 한국도 별다를 건 없었다.

“선택은 형이 하겠지만 자존심까지는 팔지 않았으면 좋겠어. 남자가 그것까지 집어던지면 남는 게 뭐가 있겠어?”

“하하 ~ 그래. 그건 네 말이 맞다.”

김인호는 쓴 술잔을 기울였다.

은퇴하고도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동생, 몇억 가지고 구단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FA 계약도 2번이나 했고, 돈이라면 먹고 살 만큼 벌었다.

너무 욕심을 부린다는 여론 앞, 내가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선수생활을 해야 하나. 전지훈련까지 연락 안 오면 은퇴하겠다는 결심을 세웠다.

[김인호, 프로 15년 생활 종지부 찍는다.]

[공식 기자회견은 1월 27일]

그렇게 시간은 흘러 1월 25일, 한국 야구팬들은 김인호의 은퇴 소식에 발칵 뒤집혔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의 마지막, 전성기에 비해 기량이 하락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자기 몫을 해 줄 수 있는 선수다.

그런데 연봉 협상 때문에 은퇴를 결심하다니, 다른 팀에서 뛸 생각은 없었나.

1월 27일, 기자들은 김인호 앞에 마이크를 내밀었다.

“은퇴를 발표하셨는데, 진심이십니까?”

“예, 많이 해먹었으니 이제 그만 물러나겠습니다.”

나이 많다고 뭐라고 했던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을 겨냥한 발언, 한 기자는 다른 팀에서 뛸 생각은 없었냐는 질문을 던졌다.

“제가 원하는 연봉에 맞춰주겠다는 팀이 없었습니다.”

“결국 돈이 문제라는 건가요?”

“예, 그건 프로의 자존심입니다. 양보를 하고 뛰느니 자존심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생각보다 강경하고 날이 많이 선 인터뷰, 평소 언제나 다소곳한 목소리로 기자회견에 임했던 그 선수가 맞나.

발언권을 얻은 기자가 화제를 돌렸다.

“그럼 앞으로 지도자 수업을 받으시는 겁니까?”

“저도 해외 진출 좀 해보고 싶습니다. 제 가치를 알아주는 팀을 만나면 더 좋겠죠.”

은퇴한다더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아니나 다를까, 한국 야구의 전설에서 놀라운 말이 흘러나왔다.

“NPB에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제 실력이 거기서 어디까지 통하는지 시험해 보고 싶습니다.”

“은퇴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한국에서 뛸 일 없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2군에서 막히든 3군에서 막히든, 어쨌든 도전은 해보겠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폭풍을 부르는 수준,

혹시 친척 동생이 있는 라이노스와 계약을 맺는 건가. 김인호는 아직 정해진 게 없다며 말을 아꼈다.

* * *

[백승호, 사카이 라이노스와 계약]

[계약금 1억 엔, 연봉 1600만 엔]

다카기 단장이 일으킨 바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외 진출을 망설이던 백승호가 라이노스와 덜컥 계약을 맺어버린 것, 국내 최고 유망주 3명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백승호가 MLB도 아니고 NPB를 택할 줄이야.

백승호는 인터뷰에서 담담한 소감을 밝혔다.

“일단 단장님이 제 능력을 높게 평가해주신 게 무엇보다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대우도 좋게 해주셨고요.”

“일본을 거쳐 MLB 무대에 진출하실 생각이십니까?”

“저는 일본에서 공 하나도 던져보지 못했습니다. MLB 진출을 언급하는 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이상입니다.”

백승호는 여권 발급을 마치고 일본으로 향했다.

말도 안 통하는데 내가 거기서 잘 할 수 있을까.

쿠바,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일본 선수들이 뒤섞여 있는 라이노스의 육성군.

이제 나까지 합류하면 한국인까지 추가되는 건데 그런 난장판 속에서 동료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을지, 솔직히 걱정도 됐지만 이제 와서 결심을 물릴 순 없었다.

“환영하네. 비행기 몇 시간 탔나?”

“글쎄요 … 2시간 조금 안 됐을 것으로요?”

“하하 ~ 그렇겠지. 일본과 한국은 그만큼 가까우니까.”

육성군 감독 가네다 마사히로는 백승호를 환영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뭘 그렇게 망설였을까. 가네다 감독은 젊은 유망주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했다.

“여기엔 야구를 하고 싶은 각국의 청년들이 다 모여 있어. 자네도 그중 한 명이고”

“예,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국적은 중요하지 않아. 오로지 실력으로 평가받을 뿐이지, 자네가 한국에서 얼마나 대단한 유망주였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모두 동등한 조건에서 시작되는 거야. 다카기 단장의 선택을 받았다고 자만하지 말라고, 단장의 선택을 받은 건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니까.”

냉정한 조언에 백승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교야구에서는 내가 최강이었지만, 여기는 말 그대로 세계에서 야구 좀 한다는 유망주가 다 몰려 있다.

나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을 인정받았을 뿐, MLB 진출이 문제가 아니라 일단 이곳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덕분에 동기부여가 됐고, 첫날부터 다른 선수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떻습니까?”

[확실히 전달했습니다.]

“예, 앞으로도 젊은 선수들 가슴에 바늘 좀 많이 꽂아주십쇼.”

[하하 ~ 알겠습니다.]

다카기는 마사히로 감독을 통해 육성군 상황을 수시로 보고 받았다.

토니 아브레우의 성공으로 불이 붙은 육성군 사업, 칭찬만 해 준다고 유망주가 성장하는 건 아니다.

가끔은 가지를 치고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내야 하는 법, 사업가답게 다카기 단장의 행보는 냉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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