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1화. 전설의 용병 - (2)
[사카이 라이노스 역대 2번 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50년 묵은 한 풀어낼까?]
사카이 라이노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2034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2014년 이후 20년 만의 우승에 오사카 팬들은 흥분했다.
그 다음 목표는 일본시리즈 우승,
오사카에서는 처음 본 사람이라도 라이노스 팬이라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로 강성 팬이 들끓는다.
문제는 인기에 비해 성적이 형편없다는 것, 1985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마지막으로 무려 49년 동안 일본 시리즈 우승이 없다.
100년 역사에 우승이 겨우 1번이라니, 이런 초라한 성적 때문에 최다 우승팀 도쿄 자이언츠와 늘 비교당하곤 한다.
그런데 이번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자이언츠를 격파하고 우승을 차지했으니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우승하면 다카기 단장의 동상을 세우겠다.”
오사카 시장 히구치 미노리는 내년에 시작되는 총선 공약으로 다카기 단장 동상 설립을 약속했다.
본인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팬들의 목소리를 그대로 읊은 것뿐, 여기에 강성 팬덤은 라이노스 팬 자격시험에 다카기 단장에 대한 항목을 추가했다.
라이노스는 정식 팬이 되려면 자격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이 시험에 대비하라고 예상 문제집을 만들어 파는 출판사까지 있다.
구단에서 정식으로 지원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팬들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대단한 열정 아닌가.
흥미가 생긴 다카기 단장은 팬덤에 예상 시험문제를 요구했고, 직접 풀어보기까지 했다.
‘누가 이딴 걸 기억해?’
라이노스의 역대 감독 40명을 적으라는 내용, 이딴 걸 기억해서 뭘 어쩌라는 건가. 심지어 다카기 단장의 메이저리그 통산 기록을 적으라는 문제까지 나왔다.
선수인 나도 기억을 다 못하는데 팬들에게 이런 걸 요구해서 뭘 어쩌자는 건가.
실제로 라이노스의 열혈 팬을 자처한 16세 여고생도 문제가 너무 난해하고 어려웠다며 불만을 표했다.
2년 연속 자격증 시험에서 탈락했다는데 그래도 또 응시할 생각이라는 후기를 남긴 여고생, 다카기 단장은 앞으로 팬 자격증은 구단에서 관리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역대 감독 이름을 줄줄 꿰고 선수의 기록을 기억하는 게 팬의 자격은 아닙니다. 라이노스를 응원한다면 누구나 팬이 될 수 있죠.”
“그래서, 앞으로 자격증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시즌 권을 구매한 팬들에 한해 자격을 부여할 생각입니다. 그 다음은 출석으로 점수를 매길 생각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야구장을 방문한다면 그 자체가 팀을 향한 애정 아닌가.
시즌 권을 구매하고 계속 구장을 찾아준다면 자격증을 수여할 계획, 그리고 홈경기에 개근 출석한 관중에겐 다음 시즌 티켓 할인과 각종 혜택을 부여하기로 했다.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단장님은 그 시험 몇 점 받으셨습니까?”
“한 20점 받았을까요? 문제지를 봤을 때 머리가 멍해지더군요. 단언하건대 제가 역대 받았던 점수 중 최악이었습니다.”
솔직한 답에 기자들은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라이노스의 돌풍을 주도하고 있는 단장이 겨우 20점을 받았다니, 강성 팬덤 입장에선 충격적인 결과 아닌가.
그렇다고 욕을 할 수도 없는 상대, 떠들썩한 분위기가 잠시 가라앉자 다카기 단장은 못다 한 말을 이어갔다.
“팬 여러분들이 구단의 역사와 세세한 것까지 기억해주려고 노력하는 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깊게 알아도 좋을 게 없죠. 라이노스는 지난 100년 동안 일본시리즈에서 겨우 1번 우승했습니다. 이런 건 절대 문제에 안 나오겠죠? 그런 자격시험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제가 추구하는 응원 문화는 그런 게 아닙니다. 팬 여러분들이 마음 편히 오셔서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이 발언은 중도 팬들의 호응을 이끌어 냈다.
라이노스를 사랑하는 마음은 똑같은데, 꼭 시험을 치러서 정식 팬과 비정식 팬을 구분해야 하나.
학교 시험도 아니고 야구장에서까지 서열화를 하는 건 이상한 일, 다카기 단장은 역시 뭘 아는 사람이라며 지지를 표했다.
“라이노스는 앞으로 일본시리즈 우승을 몇 번이나 할까요?!!”
“열 번!! 백 번!! 아니 1만 번!!”
응원석의 구호도 변화가 일어났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때만 해도 라이노스 팬들은 ‘자이언츠 죽어!!’를 연발하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중도 팬들 입장에선 인상 찌푸릴 사건, 하지만 다카기 단장의 충고 덕분에 응원 문화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누구나 와서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 다카기는 특별석에 앉아 일본시리즈 1차전을 지켜봤다.
‘잡을까?’
오늘 라이노스의 선발 투수는 잭 프로보스트, 그냥 메이저리그 가라고 했지만 사실 저만한 투수 구하기는 쉽지 않다.
선수의 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 20승? 200탈삼진? 이런 세부적인 기록도 중요하겠지만, 그 선수를 대체할 선수가 없을 때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그래, 쓸 만한 투수들은 많았지. 하지만 날 대체할 선수는 없었어.’
나는 어떻게 메이저리그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걸까.
다카기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날 포기하면 쓸 만한 에이스급 투수 2명을 운영할 수 있었는데, 수더랜드 단장은 왜 4천 만 달러라는 거액을 주고 고개까지 숙이며 날 잡아뒀던 걸까.
그건 결과로 증명됐다.
보스턴은 통산 16회 우승을 달성했는데, 그 중 8번을 다카기와 함께 이뤄냈다.
1903년부터 시작된 월드시리즈, 그로부터 2018년까지 보스턴은 8번 우승을 달성했다. 116년 동안 겨우 8번, 다카기와 함께 한 10년이 얼마나 위대했는지 부정할 수 있는 보스턴 팬들이 있을까.
한 마디로 대체 불가능했던 선수, 그만한 대우를 받는 건 당연했다.
잭 프로보스트는 그만한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 선수인가. 이번 시리즈에서 확실히 하기로 했다.
[스트라이크!!]
“들어옵니다. 오늘도 프로보스트는 공격적인 투구를 하고 있군요.”
“일각에선 프로보스트의 성공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는데요. 켄이치 씨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발전을 했습니다. 이 선수의 성공이 NPB의 수준을 폄하하는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계석도 프로보스트의 활약을 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MLB에서 8승 11패, 평균자책점도 5.18에 불과했던 선수가 일본을 폭격하고 있으니, 거기다 외국인 용병이 오노다 상 수상 조건까지 채웠으니 보수주의자들 눈에는 자존심 상하는 활약이다.
하지만 프로보스트는 일본에 와서 분명히 발전했다.
원래 구위와 커브는 수준급이었고 쓸 만한 수준의 체인지업이 완전히 깨어나면서 타자를 공략하는 패턴도 다양해졌다.
타자 수준이 NPB보다 월등히 높은 MLB에서는 이 정도 활약을 못해주겠지만, 예전처럼 쉽게 공략당한 투수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 켄이치 위원은 프로보스트를 NPB 역대 최고의 용병 투수로 평가했다.
“하지만 프로보스트도 이분 앞에서는 한 수 접어야죠.”
“하하 ~ 그렇습니다. 프로보스트가 NPB 역대 최고의 용병이라면, 이분은 일본 역사상 최강의 용병이라고 해야겠죠.”
프로보스트의 호투와 타선의 활약으로 앞서가는 라이노스, 중계진은 마침 카메라에 잡힌 인물을 두고 대화를 이어갔다.
다카기는 고교 시절부터 자신을 용병으로 칭했다.
일본이 날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지나가는 용병으로 취급하라는 것, 실제로 다카기는 NPB를 거치지 않고 MLB로 직행했다.
말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지는 활약,
메이저리그 출범 이후, 단일 시즌 피 OPS 4할을 찍은 선수는 역사상 단 6명뿐이다. 다카기도 그중 한 명, 하지만 다른 5명과는 차원이 다른 활약을 선보였다.
10년 동안 기록한 피 OPS가 0.495, 단일 시즌으로 취급해도 엄청난 기록인데 이런 짓을 10년 내내 해냈다.
통산 3000탈삼진을 기록한 역대 24명의 선수 중 통산 이닝도 최소, 이닝 당 출루율 0점대를 7번이나 기록한 유일한 선수다.
이런 선수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말 그대로 역사상 최강의 용병, 예전에는 넌 일본인이 아니라는 욕으로 쓰였지만 이제는 경의를 표하는 쪽으로 의미가 변했다.
거기다 이제는 단장으로서 일본시리즈에 도전하는 입장, 이래저래 대단한 사람이라며 극찬했다.
‘잡아야겠네.’
1차전을 지켜본 다카기는 결정을 내렸다.
원래는 잡을 예정이 없었지만 이번 시리즈 투구를 보고 결심을 내렸다.
프로보스트의 에이전트와 접촉해 4년 22억 엔을 제안, 받아들인다면 NPB 역사상 최대의 계약이 된다.
이제 선택권은 선수의 몫, 프로보스트는 계약서를 두고 망설였다.
아내와 가족을 생각한다면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22억 엔은 거부하기 힘든 금액이다.
미국 화폐로 대략 2000만 달러 이상인데 메이저리그에 진출한다고 이만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
일본의 젊은 투수들이라면 포스팅을 거쳐 거액을 받아내겠지만, 프로보스트는 그럴 수가 없다.
메이저리그 구단이 라이노스처럼 다년 계약을 제시한다는 보장이 없고 계약규모도 기대하기 어려운 수준, 실제로 작년 시즌 일본에서 미국으로 넘어간 에디슨 켈리도 3년 1420만 달러에 계약했다.
얼핏 보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지만 3년차 시즌에 구단이 행사할 수 있는 옵션이 걸려 있다.
켈리가 2년 동안 만족할 만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 구단이 위약금을 주고 방출할 수 있다는 뜻, 보장금액은 높게 쳐줘봤자 3년 1100만 달러 정도다.
그에 비해 안정적인 4년 계약에 총 계약금도 2000만 달러가 넘는 라이노스의 제안, 옵션 따윈 달려있지 않다.
구단에서 최대의 성의를 표한 것, 6차전을 앞두고 프로보스트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일본시리즈 중에 터진 대형계약, 기자들이 내민 마이크 앞에서 다카기 단장은 덤덤한 목소리로 입장을 밝혔다.
“분명 프로보스트는 안 잡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대체 선수가 없다고 판단됐을 땐 잡는 게 맞는 거죠. 그리고 그때 한 말은 농담이었습니다.”
농담이라고 하면 다 농담이 되는 건가.
어쨌든 오늘 승리로 라이노스는 나고야 파이터스를 상대로 시리즈 전적 3승 1패를 기록하게 됐다.
한 경기만 잡아내면 역대 2번째 우승, 주요 용병들에게 다년 계약을 제시했다는 건 앞으로도 우승을 계속 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거 아니겠나.
다카기는 본심을 숨기지 않았다.
“사카이 라이노스는 지난 100년 동안 겨우 1번 우승을 했습니다. 인기에 걸맞지 않은 형편없는 성적이었죠. 하지만 기죽을 것 없습니다. 명문으로 소문난 보스턴도 제가 오기 전까지는 116년 동안 겨우 8번 우승했죠. 하지만 절 만나 10년 동안 우승을 8번이나 했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라이노스의 우승을 위해 달릴 겁니다. 라이노스의 역사는 앞으로 다시 쓰여질 겁니다. 팬 여러분들도 그 위대한 여정에 동행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인터뷰로 다카기 단장은 팬심을 확실히 틀어쥐었다.
선수보다 더 인기가 좋은 단장, 오사카 팬들은 이날부터 다카기에게 세계 최강의 용병이자 세계 최고의 단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