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50화 (350/361)

350화. 전설의 용병 - (1)

[다카기 단장, 야구의 전당 입성자격 충족?]

클라이맥스 파이널 스테이지를 앞두고 기자들은 여론 몰이를 시작했다.

일본에는 명구회와 별개로 야구의 전당이 존재한다.

명구회는 2천 안타, 200승처럼 일정 기준을 채우면 자동으로 헌액 대상이 되지만 야구의 전당은 기자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다.

투표 대상자는 프로 선수로서 은퇴 후 5년이 지났고, 은퇴 후 20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하지만 다카기 단장은 은퇴한지 3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말이 나오고 있는 건 특이한 경력 때문,

명구회나 야구의 전당에 헌액된 감독 - 코치 - 선수 중, 일본 프로야구 경험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다카기는 프로생활을 MLB에서 보냈고 지금은 라이노스 단장으로 활동하는 중, 하지만 단장 자격으로 명구회나 야구전당에 입회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일본에서 단장은 감독에 비해 존재감이 없는 게 사실, 하지만 다카기 단장은 그 편견을 깨버렸다. 이 정도면 선수자격뿐만 아니라 단장으로도 입회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거 아닌가.

은퇴한 지 3년이 지났으니 조만간 투표 자격 얘기가 오르내리겠지. 기자들은 다카기 단장 앞에 마이크를 들이밀었다.

“단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수와 단장, 어느 쪽이 좋을까요?”

“기왕이면 단장 쪽이 좋겠죠.”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단장으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선수 시절의 영광을 등에 업고 야구의 전당에 입성하는 것도 좋겠지만, 지금은 제가 하고 있는 일로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2년 후, 야구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는 자격을 사실상 거부한 것

나는 아직 현역인데 왜 은퇴자 취급을 하는 건가. 그런 건 단장의 임무를 다한 뒤에 해도 늦지 않은 일, 2년 후 기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해도 나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럼 명예의 전당은?]

기사를 접한 미국 현지 여론은 물음표를 띄웠다.

다카기는 2년 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도 얻는다.

너무 일찍 은퇴했지만 10년 동안 펼친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압도적, 95% 이상 득표율은 당연한 거고 반대표를 던진 사람을 걸러내는 게 빠를 정도다.

그런데 아직 현역이라며 일본 야구의 전당 입회를 거부한 전설, 그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은 어떻게 되는 건가.

여론은 거듭 질문을 던졌지만 다카기 단장은 별다른 반응 없이 파이널 스테이지를 맞이했다.

“자, 파이널스테이지 1차전!! 사카이 라이노스가 도쿄 자이언츠를 홈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선발 투수는 잭 프로보스트, 올 시즌 17승 9패, 평균자책점 2.47, 233이닝 동안 볼넷 62개, 탈삼진은 227개를 기록했습니다.”

“오노다 상 자격을 충족한 선수는 정말 오랜만이죠. 그만큼 대단한 시즌이었습니다.”

“다카기 단장이 확실히 보는 눈이 있어요. 용병으로 데려온 선수들이 연달아 터지면서 파이널 스테이지까지 올라왔는데, 이 정도면 단장으로 야구의 전당 들어갈 자격 있습니다.”

오노다 상은 일본 최고의 투수에게 내리는 영예,

한 시즌 동안 25경기 등판, 15승, 완투 10회, 승률 6할 이상, 200이닝, 평균자책점 2.60, 탈삼진 180개 이상을 잡아내야 수상할 수 있다.

이 엄청난 기록을 16년 연속으로 해낸 오노다 신이치, 한국계라는 소문도 있지만 어쨌든 일본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라는 건 일본 여론도 인정하고 있다.

문제는 수상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것,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완투를 한 시즌에 10번이나 하나. 하지만 보수적인 일본 야구 협회는 이 조건을 1947년부터 유지하고 있다.

수상 조건을 채운 투수가 한 명도 없으면 그 해는 시상 없이 종료,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조건에 약간 못 미쳐도 수상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라이노스의 용병 잭 프로보스트가 무려 17년 만에 오노다 상 자격을 채워버렸다.

외국인 용병이 오노다 상을 수상한 건 NPB 90년 역사상 1번 밖에 없는 기록, 그만큼 올 시즌 프로보스트가 보여준 활약은 대단했다.

특히 팀이 연패에 빠졌을 때 많은 이닝을 소화하며 버텨준 에이스, 편안하게 투구를 지켜볼 수 있는 선수라 다카기 단장도 살짝 마음을 놨다.

‘뭐 … 그래봤자 나보다는 못하지만’

다카기는 잠시 자아도취에 빠졌다.

프로보스트가 NPB에서 보여주고 있는 활약은 분명 뛰어나다. 하지만 내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했을 때 보여준 퍼포먼스에 비할까?

데뷔 후 한 달 동안 다카기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23이닝 동안 삼진 41개를 잡아냈다.

이후 완전히 선발로 정착했고 시즌 최종 성적은 12승 평균자책점 1.57, 규정이닝을 채우지 못했지만 213삼진을 잡아내며 메이저리그를 폭격했다.

그렇게 시작된 전설, 프로보스트가 NPB를 정복한 것도 떠들썩한 일인데 당시 메이저리그를 점령한 루키를 바라보는 미국인들의 시선은 어땠을까.

단장이 되고 나니, 이 자리에서 내 활약을 지켜봤을 수더랜드 단장의 마음도 이해는 됐다.

‘그때 난 정말 굉장했어. 좋은 시절이었지.’

되돌아보면 내 인생의 전성기는 그때였다.

나이도 어렸고 뭣보다 이 무대를 정복하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다카기? 올 시즌도 최소 15승은 하겠지.”

“15승만 하겠어? 300탈삼진도 당연히 하겠지.”

15승을 하든 20승을 하든 팬들은 이제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고, 다카기도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그 때부터 서서히 시작된 권태기,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그까짓 300승 못 했겠나. 하지만 이제는 새로운 자리에서 성과를 내야 할 때, 3년 동안 단장 노릇을 하며 나름 애는 썼지만 우승을 거머쥐진 못했다.

지나간 영광보다는 지금의 도전에 집중할 때, 차분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봤다.

“스윙!! 헛칩니다. 카운트는 원 볼 원 스트라이크”

“5월 초만 해도 평균 구속이 147km 정도였는데 여름에 접어들면서 153km까지 올라왔거든요. 여기에 수준급의 커브와 체인지업으로 타자를 상대하고 있습니다.”일본 타자들은 올 시즌 프로보스트의 빠른 볼을 집중 공략했다.

프로보스트의 높은 탈삼진율은 수준급의 커브 덕분, 원래는 슬라이더도 던졌지만 여기서는 커브가 더 잘 통한다는 걸 깨닫고 전략을 바꿨다.

하지만 이것뿐 만이라면 성공할 수 없었겠지, 타자들이 커브를 골라내기 시작하자 프로보스트는 투심과 체인지업을 섞어 던졌다.

다소 제구가 들쑥날쑥하기도 했지만 체인지업 제구가 잡히면서 난공불락 수준으로 올라섰다.

여기에 7 ~ 8회 들어서도 떨어지지 않는 체력, 일본에서 일궈낸 프로보스트의 성장에 메이저리그 여론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칠 수가 없다.’

격전을 벌이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올라온 자이언츠 타자들은 항복을 선언했다.

상대는 공만 빠른 게 아니라 커브를 바깥쪽 몸쪽으로 던질 수 있는 제구까지 갖추고 있다.

커브가 워낙 위력적이라 높게 들어오는 빠른 볼도 헛스윙할 수밖에 없는 신세, 가끔 타이밍을 뺏으러 들어오는 체인지업도 답이 없긴 마찬가지다.

속수무책으로 나가떨어지는 타자들, 라이노스 팬들은 17년 만의 파이널 스테이지 무대를 편안히 즐겼다.

[따아악 ~ !!]

“자!! 이 타구는!! 우측으로 멀리!! 담장 위로 넘어가는 쓰리 런!! 마크 프리젤의 홈런이 터지면서 라이노스가 5대 0으로 앞서나갑니다!!”

“누가 이 선수가 득점권에 약하다고 했습니까? 다카기 단장이 이 선수를 2년 계약으로 묶은 건 정말 잘한 일입니다.”

3회 말 라이노스의 공격,

홈 팬들은 유유히 베이스를 도는 프리젤에게 환호를 보냈다.

시즌 초만 해도 득점권 쓰레기라고 욕을 먹었지만 시즌 최종 성적은 타율 0.282 - 홈런 37개 - 103타점,

전반기 타점 페이스가 워낙 떨어진 탓에 타점왕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후반기에 60타점을 올리며 팀 공격을 주도했다.

단장이 2년 계약으로 묶은 덕분에 내년에도 얼굴을 볼 수 있는 용병, 프리젤은 7회 말 공격에서도 우중간을 넘어가는 투런 홈런을 쏘아 올렸다.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화려하게 날아오른 프리젤, 쏟아지는 커튼콜에 헬멧을 벗어 답하는 여유를 부렸다.

여기에 볼넷 2개 2득점을 기록한 스마일리, 4타수 1안타 1홈런을 기록한 토니 아브레우, 8이닝 1실점 투구를 펼친 프로보스트까지, 용병들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라이노스는 시리즈 2승을 챙겼다.

정규 시즌 1위로 올라왔으니 1승은 처음부터 주어졌고, 일본시리즈 진출까지 남은 건 2승뿐이다.

2009년 이후 26년 동안 일본시리즈 진출이 없는 라이노스, 올해는 그 한을 풀 수 있을까.

지금 분위기라면 틀림없겠지. 경기는 끝났지만 흥분한 팬들은 팀 응원가를 부르고 응원 봉을 두들겼다.

4만 7천 관중이 밀집한 장관, 오늘의 영웅 마크 프리젤이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성은 도욱 높아졌다.

“오늘 2홈런 5타점 경기를 펼친 마크 프리젤 선수와 인터뷰를 나눠보겠습니다. 오늘 활약 축하드립니다.”

프리젤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사를 표했다.

일본 생활도 어느덧 3년 차, 아직 의사소통이 완벽하진 않지만 말을 알아들을 정도까지는 올라왔다.

미국에선 듣지 못했던 환호와 대접, 물론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그래서 이 자리가 더욱 특별했다.

“이곳은 야구를 포기할 뻔했던 제게 기회를 줬습니다.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합니다.”

프리젤이 고개를 숙이자 관중석에서 다시 한 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팬들에게 인정을 받는 입장, 프리젤은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선수생활을 마치고 싶다는 뜻을 표했다.

“메이저리그 재도전은 생각 없으신 겁니까?”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전설의 용병이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죠. 명구회에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사방에서 세계 최강의 용병이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나는 이만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선수, 프리젤은 양손을 높이 들어 올리며 더 큰 환호를 유도했다.

그 다음 차례는 오늘 8이닝 1실점 투구를 펼친 잭 프로보스트, 프리젤과 달리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입장이라 사방에서 민감한 외침이 날아들었다.

어색한 미소를 짓는 용병 투수, 잠시 뜸을 들이던 프로보스트는 마이크를 입에 댔다.

“단장님한테 계약서 가져오라고 하세요.”

“내년에도 여기 남으시겠다는 겁니까?”

“최소 4년 20억 엔입니다. 그 이하는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

초반부터 세게 나오는 프로보스트, 기자들을 통해 그 소식을 접한 다카기 단장은 코웃음을 쳤다.

“그냥 메이저리그 가라고 전해주세요.”

“진심이십니까?”

“저는 선수 보는 눈이 있습니다. 선수는 또 찾아내면 됩니다.”

단장의 반응에 프로보스트는 정말 메이저리그 간다고 엄포를 늘어놨다.

1년 동안 가치를 끌어올렸으니 나도 팀에 미련 없다는 입장, 대형 계약 맺고 메이저리그 가면 그만이라며 콧대를 세웠다.

[축하하네. 얼른 짐 싸서 가라고]

다카기도 바로 답을 줬다.

오는 선수 막지 않고 가는 선수 잡지 않는 게 내 정책, 이렇게 양측은 시리즈 내내 흥미 있는 기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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