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9화. 비즈니스 - (8)
[순위 경쟁 최종전까지 간다]
[라이노스 - 자이언츠, 도쿄 돔에서 격돌]
교류전부터 불이 붙은 퍼시픽리그 순위경쟁,
KBO나 MLB는 포스트시즌을 계단식 경쟁으로 이해하지만 NPB는 일본시리즈를 정규시즌의 연장선으로 여긴다.
양 리그 1위 팀이 일본시리즈를 치르면 그만, 잡것들까지 최강자를 가리는 축제에 끼워줘야 하나.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가 도입됐지만, 이것도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정규 시즌 1위 팀은 부전승으로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 여기에 1승을 먹고 시작한다. 2 - 3위전에서 박 터지게 싸우고 올라온 팀이 1위 팀을 넘을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 실제로 지난 2018년 이후 2 ~ 3위 팀이 파이널스테이지 우승을 차지한 건 단 2회뿐이다.
16년 동안 겨우 2회, 정규시즌 1위가 주는 혜택이 얼마나 큰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일본시리즈 직행 티켓이나 다름없는 1위 자리, 자이언츠와 라이노스는 격전을 예고했다.
‘우리가 유리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라이노스는 현재 자이언츠에 2경기 앞선 1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 경기만 잡아도 우승은 확정, 하지만 원정에서 치르는 경기라 자이언츠 팬들의 압도적인 응원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
정말 만약이지만 스윕 당하면 1위에서 내려와야 하는 입장, 다카기 단장은 오가야 감독에게 몇 가지를 요구했다.
“클라이맥스를 치른다는 생각으로 하세요. 지금 우리는 아낄 선수가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상 포스트 시즌이나 다름없는 경기,
1경기만 잡아도 우리가 1위다? 그런 어설픈 자신감이 패배로 이어지는 법, 벤치 멤버는 물론 불펜까지 출격대기 명령을 받았다.
‘왜 내가 3번이지?’
한편, 오기 나가야스는 출장라인업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평소 1 ~ 2번 타자로 나왔는데 오늘은 특별히 3번, 내가 이런 중책을 맡아도 되는 건가.
평소 3번을 치던 피터 스마일리는 올 시즌 타율 0.303, 홈런 35개, 104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그에 비해 나는 타율 0.310 홈런 14개, 69타점, 이게 맞는 건가? 아니나 다를까 경기를 앞두고 오가야 감독이 말을 걸어왔다.
“자네가 3번을 치는 게 나아. 그러니까 자신 있게 치라고”
“왜요?”
“다 이유가 있어.”
“아니, 설명을 해 주셔야 제가 납득을 하죠.”
오가야 감독은 타점 당 잔루를 예로 들었다.
지난 3년 동안 스마일리는 320타점을 올리는 동안 잔루 882개를 남겼다. 타점 당 잔루는 2.75개, 많은 타점을 올리긴 했는데 의외로 효율성이 높진 않았다.
그렇다면 작년부터 주전 자리를 꿰찬 20살 청년은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표본은 적지만 130타점을 올리는 동안 251개의 잔루만 기록했다.
타점 당 잔루는 1.93개, 직접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이건 두 선수의 타격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스마일리는 일단 볼을 많이 보는 편, 장타력이 있으니 출루율은 따라왔지만 문제는 타석에서의 적극성이 떨어진다.
반면 오기 나가야스는 일단 치고 나가는 스타일, 거기다 발도 빨라 잔루가 많지 않다.
득점권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타격을 요구하는데 스마일리는 안타깝게도 그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선수의 플레이 스타일을 간섭할 순 없는 일, 그럼 자리를 바꾸면 되는 거 아닌가. 라이노스가 오기에게 원하는 건 득점권에서의 적극적인 타격, 그 정도면 충분했다.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오늘 못 치면 제 탓 아니에요.”
“그런 말이 어디에 있어? 중책을 맡았으면 하나라도 더 칠 생각을 해야지”
오가야 감독은 패기 없는 청년을 나무랐다.
병살타를 치든 삼진을 당하든 좋으니 일단 휘둘러보라는 것, 그리고 젊은 선수가 무슨 패기가 이렇게 없나.
아브레우처럼 팀 동료와 갈등을 일으키는 건 문제가 있지만 너무 소극적인 것도 문제, 타격은 망설임이 없으면서 왜 자신감은 이 모양인가.
잔소리에 나가야스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 * *
“자, 오늘 도쿄 자이언츠는 하시마 츠요시를 선발로 내세웁니다. 올 시즌 24경기 등판 11승 6패 평균자책점 3.35, 153이닝 동안 탈삼진은 149개를 기록했습니다.”
“아사노 선수가 부상을 당한 게 치명적이죠. 왜 하필이면 이때 부상을 당했을 까요.”
마침 중계카메라가 벤치에 앉은 선수의 얼굴을 집중 조명했다.
올 시즌 아사노는 14승 4패, 평균자책점 2.04를 기록하며 어깨 부상을 염려했던 전문가들의 평가를 비웃었다.
하지만 그 활약은 딱 8월 말까지, 작년에 당했던 어깨 부상이 도지면서 10일 동안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가벼운 부상이라 일단 지켜보고 있는데 클라이맥스 시리즈 등판은 어렵다는 게 중론, 하지만 선수와 구단 모두 등판에 미련이 남아 있다.
자이언츠가 오늘 경기를 잡아낸다면 다음 경기는 등판할 예정, 아사노의 운명은 하시마의 손에 쥐어졌다.
“자!! 1회 초!! 사카이 라이노스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됩니다!! 선두 타자는 마츠다 코사쿠, 올 시즌 타율 0.274, 홈런 없이 33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도루를 47개나 기록했거든요. 나가면 골치 아픕니다. 하시마 선수도 … ”
[따악 ~ !!]
“말씀드리는 사이!! 이 타구는 중견수 앞으로 향합니다!! 마츠다가 초구를 받아쳐 안타를 만들어 내는군요!!”
“시작하자마자 이러네요. 자이언츠는 출발이 좋지 않습니다.”
대기 타석에서 몸을 풀던 스마일리는 천천히 타석으로 향했다.
3번을 치다 2번으로 올라왔지만 딱히 불만은 없는 편, 원래 볼을 많이 보는 스타일이라 초구는 걸렀다.
‘못 들어가겠어.’
마운드 위의 하시마는 포수와 신중하게 사인을 주고받았다.
정말 스마일리가 볼만 거를 줄 아는 선수라면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 거다.
몰린 공은 기가 막히게 받아치는 타자, 구석에 제구 된 공도 때릴 만큼 정확도가 좋은 건 아닌데 실투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게 타자가 해야 할 일, 바깥쪽 꽉 차는 공을 택했지만 방망이는 나오지 않았다.
카운트는 투 볼 노 스트라이크, 도쿄 자이언츠의 야스히토 감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은 특이하게 오기 나가야스를 3번에 배치한 라이노스, 나이는 어려도 무시할 수 있는 타자가 아니다.
올 시즌 홈런은 14개뿐이지만 2루타가 33개, 컨택 능력도 좋아 2년 연속 3할을 치고 있다.
배드 볼 히터 스타일의 중장거리 교타자, 야수 입장에선 이런 타자가 더 까다롭다. 홈런을 많이 치는 타자는 구장에 따라 편차가 좀 있는 편이지만 오기 나가야스 같은 스타일은 그런 게 거의 없다.
차라리 스마일리에게 승부를 거는 게 나은 편, 벤치 사인을 받은 배터리는 집요하게 바깥쪽을 공략했다.
‘의도한 대로 되고 있어.’
스마일리가 6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어 나가자, 관중석에 앉은 다카기는 박수를 쳤다.
역시 자기 공이 아니면 건들지 않는 선수, 오기에게 기대를 걸었다.
‘난 믿는다. 선수가 아니라 내 눈을’
배드볼 히터들은 대부분 긴 팔과 타고난 힘 그리고 엄청난 배트 스피드로 존을 벗어난 공도 인플레이 타구로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건 메이저리그에서나 통용되는 개념, 아시아 야구에서 이런 스타일의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기는 파워는 떨어지지만 특유의 컨택 능력으로 넓은 스트라이크 존을 스타일을 커버하는 스타일, 배트 스피드도 빠른 편이다.
본인은 자신이 없는 것 같은데, 다카기 단장은 자신의 눈을 믿었다.
[따악 ~ !!]
“자!! 이 타구는 좌측으로 멀리!! 담장을 원 바운드로 때립니다!! 그 사이 2루 주자 마츠다는 3루를 돌아 홈으로!! 들어옵니다!! 선취점은 라이노스의 차지가 되는군요!! 무사 주자 2 - 3루의 기회도 계속됩니다!!”
“지금은 몸 쪽 약간 높은 공이었거든요. 그런데 138km … 이 정도 공은 오기 선수에게 통하기 어렵습니다.”
선취점이 나자 다카기는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다.
저 선수를 3번으로 배치한 건 내 안목, 나는 옳다는 확신을 얻었다.
따악 ~ !!
따아악 ~ !!
이날 라이노스 타선은 1회부터 엄청난 폭발력을 과시했다.
4번 타자 마크 프리젤의 적시타가 나오면서 스코어는 3대 0, 다음 타자 토니 아브레우가 병살타를 쳤지만 후속 타자 사토 요시시게의 안타 그리고 호조 아키노리의 투런 홈런이 터지면서 5대 0으로 앞서 나갔다.
“됐어!!”
“우리가 1위라고!!”
한껏 달아오른 라이노스 벤치, 반면 홈팬들의 아우성은 높아졌다.
“얼른 내리라고!!”
“뭐 하는 짓이야?!!”
팬들의 독촉에 밀린 야스히토 감독은 마운드로 뛰쳐나갔다.
내일이 없는 입장이라 불펜을 대기시켜 놓긴 했는데, 시즌 내내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하시마가 이렇게 무너질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나는 지금 악몽을 꾸고 있는 건가?’
감독에게 공을 내준 하시마는 비난을 받으며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프로에서 4년 동안 공을 던졌지만 1회도 못 채우고 강판당한 건 처음, 코치가 엉덩이를 쳐줬지만 그대로 벤치에 동화되고 말았다.
5회까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그 모습 그대로, 무너져 내리는 팀을 지켜봐야 했다.
[따악 ~ !!]
“이 타구는 이번에는 우중간에 떨어집니다!! 2루 주자는 홈으로!! 1루 주자까지 홈으로 내달립니다!! 타자 주자는 천천히 2루까지 들어가는 군요!! 스코어 9대 0!! 라이노스가 도쿄 돔을 침묵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제가 경기 전 왜 오기 선수를 3번에 기용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했는데요. 사과드리겠습니다. 정확한 선택이었네요.”
오기 나가야스는 5회 초, 3번째 타석에서 다시 치명타를 날렸다.
자비 없는 맹공에 그로기 상태에 빠진 자이언츠, 불펜에 앉아 있던 아사노는 고개를 떨궜다.
“자네에게 17억 엔을 투자해야겠다는 확신이 없어.”
돌연 다카기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8월 말까지만 해도 그 평가를 보란 듯이 비웃었는데 막판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팀 내 투수 중 최고 연봉을 받고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이날 라이노스는 자이언츠를 13대 1로 대파하고 무려 17년 만에 퍼시픽리그 1위를 확정지었다.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오는 선수들, 하지만 경기가 끝난 후 가장 많은 조명을 받은 건 다카기 단장이었다.
정말 3년 만에 팀을 리그 1위로 올릴 줄이야. 소름 돋는 예언에 기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다카기 단장님, 오늘 오기 선수가 3번에 기용됐는데, 이것도 단장님의 뜻이었습니까?”
“그런 걸 따져서 뭘 어쩌겠습니까? 저는 단장으로서 재능 있는 선수를 적재적소에 배치했을 뿐입니다. 성과를 내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선수들의 몫이죠.”
다카기는 그라운드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
잠시 내가 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나는 선수를 사고 파는 입장이다.
사업을 해야지 직접 플레이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앞으로도 나는 사업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