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8화. 비즈니스 - (7)
“자네들 라이노스가 최근 10년 동안 몇 승 몇 패 했는지 알고 있나?”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십니까?”
“묻는 말에 답이나 하게.”
단장의 무거운 목소리에 두 선수는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알지도 못하지만 분명한 건 라이노스가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는 거다.
특히 작년 시즌, 미요시 호크스에게 연패하며 팀의 탈락을 지켜봐야 했던 마크 프리젤은 단장이 무슨 생각으로 팀을 이끌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난 솔직히 누가 4번을 치든 상관없네. 팀이 승리할 수 있다면 만족할 뿐이야. 그리고 자네”
“예”
“자네가 지금 잘해주고 있는 건 사실인데, 시즌을 치르다 보면 안 풀리는 경기도 많아질 거야. 그때 자네가 하지 못한 일을 누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브레우를 향하는 화살,
40홈런 치는 타자라고 매 경기 잘할 수는 없다. 어느 날은 정말 형편없는 경기를 할 수도 있고, 팀에 민폐 되는 짓도 할 수 있다.
그때 내가 저지른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동료들 뿐, 4번을 치든 5번을 치든 승패에 짊어지는 책임감은 동등하다. 한 명이라도 실수하면 만회하기 위해 다른 선수들이 노력해야 하는 법, 하지만 아브레우는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팀보다는 개인 성적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했다.
“지금 타선은 내가 감독하고 고민해서 짜낸 거야. 다 이유가 있으니까 자네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돼. 앞으로 또 이런 소란 일어나면 그땐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명심하라고”
“알겠습니다.”
이렇게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단장의 권위로 억눌러 놨을 뿐, 여기서부터 라이노스는 약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도쿄 자이언츠, 12연승 질주]
[교류전 1위 등극]
그렇다고 승리를 못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5월 초까지 승률 0.450에 머물렀던 도쿄 자이언츠가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왔다는 게 문제,
도쿄 자이언츠는 원래 야수진은 탄탄했다. 문제는 투수진, 미요시 호크스에서 영입한 아사노를 중심으로 선발진을 재건하더니, 교류전이 시작되면서 말 그대로 싹쓸이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사카이 라이노스도 교류전에서 14승 7패, 나름대로 성적을 거뒀지만 마지막 마이니치 오리온즈와의 3연전에서 싹쓸이 패배를 당하며 14승 10패로 교류전을 마무리했다.
12연승을 달린 자이언츠의 위세가 대단했던 건 사실이지만, 마이니치 오리온스에게 3연패를 당한 건 이해할 수 없는 치욕,
라커룸을 방문한 다카기 단장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언제부터 우리가 강팀이었나? 초반에 잘 나간다고 다들 오만해진 거 아냐? 무슨 말이라도 해봐. 3연패 당하고 부끄럽지도 않아?”
단장의 노기 앞에 선수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교류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8경기 차, 압도적인 퍼시픽리그 1위를 달렸다.
하지만 도쿄 자이언츠가 무섭게 추격하면서 이제 격차는 2경기로 줄어들었다. 언제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은 순위, 특히 다이노스는 이번 교류전에서 투타 모두 문제점을 드러냈다.
최근 2년 동안 에이스 노릇을 해준 히야마 치카마사가 교류전동안 1승 1패, 평균자책점 4.20으로 부진, 그나마 이번에 영입한 용병 잭 프로보스트가 2승 무패 평균자책점 2.11로 버텨줬다.
나머지 선발진은 롤러코스터, 탄탄한 불펜진 덕분에 버티고 있지만 지금 분위기면 자이언츠에게 역전을 허용할 수도 있다.
타선도 마찬가지, 그렇게 잘난 척을 떨었던 아브레우는 교류전에서 타율 0.262, 3홈런, 9타점에 그쳤다. 특히 오리온즈 전에서는 11타수 무안타로 침묵, 도저히 눈뜨고 봐줄 수 없는 플레이를 했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 다카기 단장은 자리를 뜨기 전, 마지막 경고를 날렸다.
“지금 1위 한다고 팬들이 마지막까지 칭찬해 줄 것 같나? 아니야, 오늘 관중석 못 봤나?”
사카이 라이노스는 오늘 6대 4 패배를 당했다.
그 무시무시한 타선이 집단 슬럼프에 빠지면서 예전처럼 화끈한 경기를 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 중반까지 근소하게 리드를 잡고 있었지만 아슬아슬한 경기가 계속되면서 불펜 투입이 늘어났고, 지친 불펜이 얻어맞으면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설마 약체 오리온즈에게 3연패를 하겠나? 관중들도 설마설마 했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초반에 벌어둔 승리 덕분에 1위 자리는 지키고 있지만,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팬심, 다카기 단장은 팬들의 인내심도 한계가 있다며 선수들을 몰아세웠다.
“이기지 못하면 팀은 의미가 없어. 그리고 나는 패배에 익숙한 선수들과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 다시는 이런 잔소리 하게 하지 말라고, 아니 그때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 주겠지. 각자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선수들은 마른 침을 삼켰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경고도 없이 칼을 들겠다는 거 아닌가.
그리고 팀이 최근 형편없는 경기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 여기에 팬들의 민심도 흔들리고 있다.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이대로 역전 허용하고 붕괴, 뭣보다 돌아서는 단장의 뒷모습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자기야, 단장 힘들어?”
“아니, 힘들진 않은데 답답해 죽겠어.”
집으로 돌아온 다카기는 아내 앞에서 속마음을 털어놨다.
단장 일이 힘든 건 아니다. 선수를 적재적소에 투입하면 그만, 그 다음은 지켜보면 된다.
문제는 내가 예상한 만큼 결과가 안 나온다는 것, 본인이 워낙 뛰어난 선수시절을 보낸 것도 있고, 솔직히 경기를 보다 보면 내가 지금 뛰어도 저 선수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도 단장이 선수들 기죽여서 뭐 할 건가.
거기다 나는 이미 은퇴한 몸, 이제 와서 그라운드에 복귀할 건가?
어른이 애들하고 경기를 하는 꼴, 다카기는 아직 34살밖에 안 됐다. 몸을 만들고 시즌에 임하면 NPB 정도는 초토화 시킬 수 있는 수준, 복귀를 선언하면 메이저리그에서 손짓을 할 구단들이 있다.
하지만 이미 끝난 일, 이제 와서 복귀하고 싶진 않았다.
“솔직히 말해 봐. 지금 은퇴한 거 후회하지?”
“ … 아니야.”
“그냥 눈 딱 감고 복귀해. 솔직히 단장보다 선수로 뛰는 게 더 즐겁잖아. 아니야?”
“자꾸 날 유혹하지 마. 이미 끝난 일이야.”
“어디 가. 나랑 얘기 좀 해.”
키리코는 계속 남편 귀에 악마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선수 겸 단장 하면 안 되나? 남편이 지금 투수로 뛰면 라이노스는 무조건 1위라며 부추겼지만 다카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야.”
“왜?”
“나는 단장이라고, 여기서 내가 유니폼 입으면 선수들 무시하는 것밖에 더 돼? 그리고 난 단장으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직접 뛰면 그게 증명이 안 되잖아.”
“휴 ~ 자기는 어떨 땐 너무 고지식한 거 같아.”
“더 좋은 표현도 있잖아?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고 말해 줘.”
피식 웃던 키리코는 입을 쭉 내밀었다.
간만에 애정표현 좀 해달라는 뜻, 나는 단장이지만 그전에 한 집안의 가장 아닌가. 다카기는 집안의 평화를 위해 입술을 내줬다.
* * *
‘연패는 내가 끝낸다.’
교류전이 끝나고 시작된 3연전,
라이노스의 선발로 나선 잭 프로보스트는 마운드 위에서 몸을 풀며 각오를 다졌다.
무너진 불펜진을 위해서라도 오늘은 길게 던져야 하는 입장, 하지만 3회 초 다케다 쇼이치(요코하마)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하고 말았다.
[따악 ~ !!]
“아, 이 타구는 유격수 옆을 빠져나가는군요. 흔들리고 있는 잭 프로보스트입니다.”
“3회부터 계속 주자를 내보내고 있거든요. 그렇다고 투수를 교체할 상황도 아닙니다. 버텨줘야겠죠.”
5회까지 계속 이어지는 위기,
프로보스트는 1사 주자 1 - 2루에서 호세 크루즈를 삼진으로 잡아내며 한 숨을 돌렸다.
탈삼진 능력 덕분에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위태위태한 투구, 5회가 끝나자 오기야 감독은 프로보스트에게 교체를 권했다.
“제가 5회까지만 던져도 되겠습니까?”
하지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단장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도 어떻게든 경기를 끌고 가야 하는 게 에이스의 역할, 오늘 연패를 끊겠다는 의지는 굳건했다.
‘나도 이젠 주전이다. 뭔가 해야지.’
이어지는 5회 말 라이노스의 공격, 타석에 들어선 오기 나가야스는 장갑을 고쳐 끼며 자세를 잡았다.
올 시즌 성적은 타율 0.311 - 홈런 9개 - 29타점, 테이블 세터가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한 성적이다.
문제는 떨어지는 출루율, 선구안이 나쁜 건 아니지만 치고 나가겠다는 성향이 강해 볼넷은 많이 못 얻어내고 있다.
이게 나쁜 건 아니지만 팀이 연패를 당하고 있는 동안 16타수 4안타에 그치고 있다면 생각을 다시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일단 초구는 기다렸다.
“들어옵니다. 음 … 오기 선수가 왜 이걸 지켜봤을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경기가 안 풀리다보니 생각이 많아지는 거겠죠. 그런데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평소 하던 대로 하는 게 나을 텐데요.”
볼 카운트가 불리해지자 오기 나가야스는 바깥쪽 흘러나가는 변화구에 속고 말았다.
작년부터 드러냈던 문제점, 본인도 그걸 알고 빠른 카운트 타격으로 약점을 극복한 거다.
어떻게 공을 공략하겠다는 작전은 있었지만 실전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 나이 어린 선수가 감당하기엔 조금 벅찼다.
‘’지금이라도 뛰라고, 단장이 선수로 뛰면 안 된다는 법 있어?”
“아니지, 너는 단장이야. 선수들을 믿어야 돼”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다카기는 악마와 천사의 속삭임 사이에서 갈등했다.
너무 일찍 은퇴한 게 후회되지 않느냐는 아내의 말이 이런 후폭풍을 불고 올 줄이야.
애써 외면했지만 실망스러운 이닝이 반복될수록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
“다카기 단장이 뛰는 게 더 낫겠다!!!”
팬들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다.
시즌 초반 압도적인 위용을 보여 준 경기력은 도대체 어디로 실종된 건가. 차라리 단장이 뛰는 게 낫겠다는 말에 라이노스 선수단은 더욱 위축됐다.
이날 프로보스트는 8회까지 7피안타 3실점, 9탈삼진, 나름대로 뛰어난 투구를 했지만 타선이 침묵하면서 시즌 3패를 떠안았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유와 원성, 선수들도 얼굴을 들기 부끄러웠는지 서둘러 더그아웃을 떠났다.
“몸 좀 풀고 갈 테니까 먼저 퇴근해요. 열쇠는 내가 자리에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경기가 끝난 후,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카기는 구장 실내 연습장에 발을 들였다.
정말 내가 뛰는 게 답인가.
4년 동안 멀리 했던 야구공에 질문을 던졌다.
은퇴한 후에도 꾸준한 운동으로 몸 관리를 했고 나이도 아직 젊은 편, 뛰라면 까짓거 못 뛸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예전과 같은 공을 던질 수 있을지, 연거푸 공을 던지며 구위를 체크했다.
“하아 ~ 이렇게 던지면 되는데 왜 못할까.”
불행하게도 아직 죽지 않은 실력, 내가 너무 잘난 척을 떠는 건가.
단장이면 선수를 믿어야 되는데, 내가 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착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