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화. 비즈니스 - (6)
[프리젤, 꼭 잡았어야 했나?]
기대 속에 맞이한 2034시즌,
사카이 라이노스는 유망주 투자와 외부 영입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며 무섭게 치고 나갔다.
첫 20경기에서 13승 7패, 특히 타선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일단 3번 스마일리는 타율 0.313, 홈런 6개, 17타점을 올리며 3년 연속 30홈런 달성에 청신호를 켰다.
다카기 단장이 2군에서 끌어 올린 토니 아브레우도 타율 0.325, 홈런 4개, 13타점으로 활약, 작년 시즌 신인왕을 수상한 오기 나가야스와 만년 벤치 멤버였던 마츠다 코사쿠도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하면서 팀 타선을 이끌었다.
문제는 4번을 치고 있는 프리젤,
프리젤은 일본에서 보낸 첫 시즌에서 19홈런 OPS 8할을 넘기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덕분에 재계약에 성공, 작년 시즌 초반에 잠시 부진에 빠지면서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반등에 성공하며 33홈런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다카기는 그 능력을 높이 사 2년 8억 4천만 엔을 제시했고, 그렇게 프리젤은 일본에서 3번째 시즌을 맞이했다.
지금까지 성적은 타율 0.300, 홈런 3개, 7타점
얼핏 보면 딱히 불만 없는 성적이지만 중심타자 치고 홈런과 타점이 너무 부족하다.
특히 득점권 타율이 0.214로 심각한 수준, 이러니 타점이 쌓일 리가 없다.
3번 타자 스마일리가 타점을 쓸어 담고 있는 탓도 있지만 어쨌든 4번 타자가 이런 효율성을 보인다는 건 실망스러운 일, 뭣보다 프리젤은 이제 NPB에서도 손꼽히는 고액 연봉자가 됐다.
특히 NPB는 득점권 타율을 신봉하는 리그,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득점권 타율이 나쁘면 욕을 퍼붓는다.
3할을 쳐도 대역죄인 취급을 받는 신세, 프리젤도 고민이 많았는지 연습 배팅을 앞두고 단장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타구가 너무 안 뻗는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말게. 치다 보면 괜찮아질 거야.”
다카기는 득점권 타율을 신봉하지 않았다.
3할을 치고 있는 프리젤, 운이 좋은 게 아니라 타구 질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뭣보다 득점권 타율이 정말 의미가 있는 기록인가?
최근 5년의 기록을 살펴보면 득점권 타율 상위 10명의 이름은 매년 바뀌고 있다.
2년 전 최고 득점타율을 기록한 선수는 도쿄 자이언츠의 타키야마 요이치, 무려 0.434를 기록하며 103타점을 쓸어 담았다.
하지만 작년 시즌 기록은 0.293, 그래도 93타점을 기록하며 퍼시픽리그 최다 타점 6위를 기록했다.
이런 흐름은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 득점권 타율 순위는 매번 바뀌지만 홈런이나 타점 타이틀의 주인공은 거의 정해져 있다.
뭣보다 타율은 운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기록, 득점권이라는 한정된 상황에서의 기록은 통계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
그런데도 유독 득점권 타율에 집착하는 일본 여론, 다카기는 프리젤에게 자네는 앞으로도 우리 팀의 4번 타자라는 신뢰를 보였다.
‘투자는 길게 보고 하는 거지. 우리는 이대로 간다.’
주식이 떨어지면 바로 팔아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니 잠깐의 손해도 인정을 못하는 것, 3할을 치고 있는 타자가 득점권에서 조금 못한다고 빼야 하나.
서민이라면 우왕좌왕하겠지만 다카기는 장기적인 투자를 할 수 있는 공룡, 그 정도 손해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럼 단장님 입장이 곤란해지지 않나요?”
“뭐가 말인가?”
“제가 못 치는 만큼 팬들이 단장님을 욕하잖아요.”
“욕은 내가 먹을 테니까 자네는 타점이라 먹으라고, 어떻게 줘도 못 먹어?”
최근 라이온즈를 상대하는 배터리는 스마일리를 피하고 프리젤을 상대하고 있다.
기회가 왔으면 타점을 쓸어먹어야지 욕이나 먹고 있는 프리젤, 다카기 단장도 답답한 속마음을 드러냈다.
“내가 볼 때 자네는 득점권에서 홈런을 쳐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 일단 안타를 치는 데 집중하라고, 주자를 불러들이는 방법이 홈런만 있는 게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그날부터 프리젤은 컨택 위주의 스윙에 집중했다.
덕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냈지만 이제 팬들은 홈런이 너무 없다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4억 2천만 엔이나 받는 똑딱이를 어디에 쓸 건가. 프리젤은 덩치는 크지만 보기보다 마음이 여린 성격, 스마일리가 홈런과 타점을 적립할수록 어깨는 더욱 위축됐다.
* * *
“자, 오늘 마이니치 오리온즈는 토메모리 후쿠이를 선발로 내세웁니다. 올 시즌 4경기 등판 1승 2패, 평균자책점 4.01, 24와 2/3이닝 동안 볼넷 9개, 탈삼진은 14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비하면 기록이 너무 떨어졌죠. 역시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덧 5월 하순으로 접어든 시즌,
퍼시픽리그 1위 사카이 라이노스와 퍼시픽리그 4위 마이니치 오리온즈가 맞붙었다.
토메모리는 작년 시즌 14승 5패, 평균자책점 2.46을 기록했지만 수비도움을 걷어낸 DIPS로 따지면 평균자책점은 3.70까지 올라간다.
라이노스의 타선이라면 문제없이 공략할 수 있는 투수, 다카기 단장은 편안하게 경기를 지켜봤다.
초반부터 몰아치는 타선, 마츠다 코사쿠와 오기 나가야스가 볼넷과 안타로 출루하면서 무사 주자 1 - 3루가 됐다.
‘또 거르겠네.’
특별석에 앉은 다카기 단장은 배터리의 생각을 읽었다.
이제 타석에는 피터 스마일리, 최근 5경기에서 3홈런, 7타점을 몰아치고 있다.
구위가 떨어지는 토메모리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오리온즈 배터리는 만루를 채우고 프리젤을 상대했다.
“자, 이제 프리젤이 타석에 들어섭니다. 올 시즌 타율 0.301, 홈런 6개, 16타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홈런과 타점 페이스가 너무 아쉽죠. 지금 페이스라면 21홈런, 58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 하는데, 중심 타선이 58타점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다카기 단장이 올 시즌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요. 물론 성공적인 계약이 많았지만 프리젤에게 8억이 넘는 돈을 투자한 건 … 그래도 일단 지켜봐야 합니다. 경기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하지만 프리젤은 이번에도 팬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힘껏 당겼지만 2루수 정면, 병살타가 적립되는 사이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왔다.
“우우 ~ 우 ~ ”
“이 멍청아!! 땅볼 치라고 그 돈 주는 거 아니라고!!”
너나 할 것 없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유,
중심 타자가 3할을 치면 뭐 하나 득점권에서 못 치면 대역적,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팬들의 원성은 더욱 높아졌다.
왜 다카기 단장은 저 짐덩이를 계속 4번에 박아두는 건가.
5번 토니 아브레우를 기용했다면 지금까지 20점은 더 냈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아브레우는 좌중간을 가르는 시원한 장타를 뽑아냈다.
더욱 심해지는 야유, 하지만 다카기 단장은 귀를 닫았다.
‘타구질은 나쁘지 않다고, 운이 없을 뿐이지.’
지켜보면 언젠가는 터질 선수, 작년에도 그렇지 않았나.
마지막까지 터지지 않는다면 비난은 내가 감수할 뿐, 원래 고집과 신념은 종이 한 장 차이 아닌가.
결과가 좋으면 신념 나쁘면 고집, 지금이 클라이맥스 시리즈라면 벌써 타순을 조정했을 거다.
하지만 팀은 정규시즌 1위를 달리고 있고, 조금은 고집을 부려도 되지 않을까. 내 눈은 옳다는 생각을 끝까지 고집했다.
“와 ~ 주자 없을 때는 귀신 같이 때려내네!!”
“지금 우리 놀리는 거야?!!”
프리젤은 2번째 타석에서 우중간을 훌쩍 넘어가는 대형 홈런을 쏘아 올렸다.
물론 솔로 포, 팬들은 격노했지만 다카기 단장은 팔짱을 풀고 박수를 쳤다.
3대 0으로 앞서나가는 홈런인데 뭐가 불만인가. 안 뜨는 타구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프리젤, 이 홈런이 반전의 계기가 되길 기원했다.
[따아악 ~ !!]
“자!! 이 타구는!! 다시 한 번 높게!! 그저 바라볼 뿐입니다!! 마크 프리젤의 홈런!! 오늘 홈런 2개를 추가합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닙니다. 올 시즌 처음 아닌가요?”
5회 말에 또 터진 홈런,
프리젤은 앞서 홈을 밟은 오기 나가야스, 피터 스마일리와 하이파이브를 주고받았다.
올 시즌 득점권에서 터진 첫 홈런,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마음의 짐을 던 프리젤은 관중석을 향해 손가락 세리머니를 날렸다.
날 끝까지 믿어준 단장에게 보내는 성의, 반면 다카기는 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원래 이렇게 해줬어야 하는 선수, 첫 홈런이 나왔을 때 친 박수는 힘내라는 뜻으로 보낸 응원이지만, 타격감이 살아난 지금은 얼른 달리라며 질책을 할 때다.
몸값을 하려면 최소 30홈런에 90타점은 해 줘야 하는 선수, 앞으로 지켜보기로 했다.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데’
한편, 토니 아브레우는 약간 토라진 얼굴로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은 잘 해주고 있지만 프리젤이 날려 먹은 기회가 몇 번인가.
오늘 첫 타석에서도 무사 만루에서 병살타, 내가 4번을 쳤다면 팀도 더 잘 나가지 않겠나?
뭣보다 일본에서 4번 타자는 가장 중요한 자리, 아브레우는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단장님께 말씀 좀 해주세요.”
“뭐가?”
“제가 4번을 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요.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시잖아요?”
오가야 감독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당돌하다고 해야 하나 괘씸하다고 해야 하나, 일단 단장에게 보고는 했다.
“정말 네가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당연하지. 프로는 실력으로 말하는 거 아냐?”
“건방진 자식, 네 분수를 알아라.”
“내가 너보다 잘 치거든?”
프리젤과 아브레우는 이때부터 대립각을 세웠다.
프리젤은 메이저리그 진출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U턴 한 입장, 하지만 아브레우는 보스턴에서 관심을 보일 정도의 유망주다.
내가 저런 실패자와 비교해서 뒤질 게 뭐가 있나. 내가 4번을 쳤다면 4 ~ 5승은 더 했을 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최근 무서운 기세로 홈런과 타점을 쌓아 올리고 있는 프리젤은 20살 건방진 꼬맹이의 도전을 가소롭게 여겼다.
“너 일본에서 30홈런 쳐 봤어? 이 무대는 네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아. 초반에 잘 나간다고 건방 떨지 말라고”
“됐고, 판단은 단장님이 할 테니까 두고 보라고, 결국 4번은 내가 칠 거니까.”
예상보다 격해지는 대립, 다카기는 일단 두 선수와 면담을 나눴다.
현재 피터 스마일리는 타율 0.311 - 홈런 11개 - 31타점, 토니 아브레우는 타율 0.323 - 홈런 10개 - 38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아브레우가 약간 우세하지만 최근 페이스를 따져보면 프리젤도 뒤질 게 없다.
뭣보다 프리젤에게 자네가 우리 팀의 4번이라고 못을 박았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건 웃긴 일,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단 프리젤의 의견을 물었다.
“이 친구가 자네보다 4번 타자 노릇을 잘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저는 이 팀에서 50홈런 203타점을 올렸습니다. 아직 풀타임도 못 치른 애송이하고 비교되는 것 자체가 불쾌합니다.”
다카기는 입가를 들썩였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날 4번에 배치하면 단장님의 입장이 곤란하지 않겠냐고 말했던 프리젤이다.
성과를 냈다고 자신감이 붙은 건가.
하지만 아브레우도 물러서지 않았다.
“저 올 시즌 득점권에서 0.353 쳤습니다. 프리젤은 0.262 밖에 안 되잖아요? 프리젤이 앞에서 말아먹지만 않았어도 저는 벌써 50타점 넘겼을 겁니다. 그걸 고려해주세요.”
“까불지 마라. 득점권 타율은 어차피 평균 타율에 수렴하게 돼 있어.”
“득점권에 특히 강한 선수도 있어. 그런데 너는 아니야.”
프리젤은 기가 차다는 반응을 보였다.
잘 나가는 유망주라고 어디까지 기어오르는 건가. 뭣보다 날 자기 아래로 평가하는 게 너무 기분 나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