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비즈니스 - (5)
“잠깐 만나자고 하게”
“알겠습니다.”
이곳은 보스턴 구단 사무실, 수더랜드 단장은 다카기 단장에게 회담을 제의했다.
FA 영입은 잘 하지 않지만 마음에 드는 유망주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업어오는 게 수더랜드 단장의 방식, 다카기도 13년 전 그렇게 보스턴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37세였던 젊은 단장은 이제 50에 접어든 중년이 됐지만, 팀 운영 방식이나 유망주에 대한 집착은 변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토니 아브레우를 일본 구단에 빼앗길 줄이야. 그러나 최근 남미 유망주가 대우가 좋은 일본으로 진출하는 빈도가 높아진 건 사실이다.
국제 드래프트가 활성화 되면서 벌어진 예상 밖의 전개, 받아들여야 했다.
“정말 오랜만이군. 한 2년 만인가?”
“네, 고메즈 추모식 이후 처음이네요.”
그렇게 얼굴을 마주하게 된 오랜 인연, 수더랜드 단장은 곁가지를 건드리며 분위기를 풀었다.
“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왜요? 관심 있으신가요?”
“하하 ~ 없다고 할 순 없지.”
다카기의 장남 타다요시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사방에서 구애를 표하고 있는 명문 야구부, 아버지의 후광을 업은 덕도 있겠지만 실력이 없다면 이런 일이 벌어질 리 없다.
중학교 3학년이 키 187cm에 최고 151km 속구를 던지는데 일본에서도 이미 괴물로 명성이 자자하다.
역시 괴물의 아들은 괴물이라 이건가.
다카기를 데려와 대박을 친 보스턴이 관심을 표하는 건 당연, 수더랜드 단장은 미국에 두지 왜 일본으로 보냈냐며 아쉬움을 표했다.
“공만 빠르지 아직 다듬을 구석이 많은 녀석입니다.”
“아들이라고 너무 엄격하게 보는 건 아닌가?”
“그런 것도 없진 않겠죠.”
다카기는 솔직히 장남의 성장을 기뻐했다.
투수보다는 타자 재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본인의 노력을 실력을 끌어올린 경우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다듬을 구석이 많은 건 사실, 주변에선 다들 미래의 에이스라고 칭찬하는데 내가 눈이 너무 높은 건가. 어쨌든 이런 시시한 얘기나 하자고 부른 건 아니겠지, 워밍업은 이 정도로 하고 본 게임을 시작했다.
“아브레우 때문에 만나자고 한 거 아닙니까?”
“솔직히 그렇네. 값은 섭섭하지 않게 쳐줄 테니 넘기는 게 어떻겠나?”
수더랜드 단장은 이적료 650만 달러를 제시했다.
드래프트로 선수를 업어오려면 라운드마다 쓸 수 있는 돈이 정해져 있지만, 트레이드라면 얘기가 다르다.
실제로 지난 2029년, LA 머린스는 국제 드래프트 허점을 이용해 일본 구단을 이용했다.
일본 구단에서 유망주를 영입하면 대가를 지불하고 쓸어 담는 방식, 돈은 조금 많이 들었지만 원하는 선수를 모두 데려왔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거기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기에 여론의 비난은 받았지만 LA 머린스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논의되는 트레이드도 약간 논란이 될 수 있는 일,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선수 한 명 더 내주시죠.”
“누굴 원하나?”
“잭 윌슨입니다.”
윌슨은 작년에 메이저리그 데뷔를 했지만 기량 부족으로 마이너리그에 내려갔다.
그래도 나이가 젊고 가능성이 있는 선수라 수더랜드 단장도 눈여겨보고 있는 선수, 아무리 토니 아브레우를 원해도 윌슨을 내주기는 껄끄러웠다.
“650만 달러면 괜찮은 조건 아닌가?”
“급한 건 당신이지 제가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조건을 들어줄 수 있는지, 그것만 말씀하시죠.”
다카기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다.
토니 아브레우는 육성 선수로 라이노스에 입단했지만 2년 만에 3군/ 2군을 초토화 시키고 라이노스와 정식 선수계약을 맺었다.
조건은 1년 21만 달러, 내년부터 주전 멤버로 쓸 수 있는 전력이다.
일본 리그가 메이저리그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18살 선수가 프로리그에 이 정도로 빠르게 적응하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스마일리, 프리젤, 아브레우로 중심타선을 짜고 여기에 용병 투수 하나만 더하면 완료, 그런데 뭐가 아쉽다고 라이노스가 보스턴에 끌려다녀야 하나.
아브레우를 원한다면 그쪽도 그에 합당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이걸 어쩌지.’
수더랜드 단장은 고민에 빠졌다.
잭 윌슨은 내년에 다시 로스터에 올릴 선수, 팔 선수가 아니라 협상은 무리였다.
“그럼 저는 여기에 더는 볼 일 없군요. 그만 가보겠습니다.”
“아니, 벌써 가는 건가?”
“저는 여기에 투수를 구하려고 왔습니다. 목적도 달성 못했는데 여기서 시간이나 때울 순 없죠.”
옛 추억에 잠겨도 될 텐데 사업 얘기만 하고 돌아선 과거의 에이스, 수더랜드 단장은 이제 저 친구를 보스턴 선수로 대해선 안 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라이노스, 용병 투수 구했다.]
[선택을 받은 선수는 잭 프로보스트]
그렇게 미국을 떠돌던 다카기는 계약을 맺고 일본으로 넘어왔다.
프로보스트는 캐나다 출신으로 지난 2025년, 국제 계약으로 플로리다 에이커스에 입단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8승 11패, 평균자책점 5.18로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평균 93마일 빠른 볼에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투심 등을 활용할 줄 아는 선수, 지난 2029 WBC에서 캐나다 국가대표로 출전해 네덜란드를 상대로 7이닝 3피안타(1실점) 2볼넷 11k 역투를 펼치기도 했다.
뭣보다 탈삼진 능력이 뛰어난 선수, 원하던 스타일이라 다카기는 망설이지 않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제는 새로운 시즌을 기다릴 뿐, 하지만 FA 선언을 한 아사노 아키히토는 소속 팀을 찾지 못했다.
도쿄 자이언츠에서 4년 17억 계약을 제시받긴 했지만, 사실은 미요시 호크스가 자신을 잡아주길 바랐다.
그 정도로 애정이 있는 팀, 그런데 이렇게까지 냉정하게 나오자 속이 뒤집혔다.
‘날 버리겠다 이거지? 어디 두고 보자.’
아사노의 에이전트는 라이노스 구단과 접촉했다.
작년 시즌, 아사노는 8이닝 무실점 투구를 펼치며 라이노스의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좌절시켰다.
그런 내가 1년 만에 라이노스 유니폼을 입고 미요시 호크스를 침몰시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통쾌한 복수, 하지만 라이노스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단장이 이미 용병 투수를 구했고 뭣보다 아사노가 한두 푼으로 영입할 선수인가.
더 큰 문제는 구위 하락의 징조가 보이고 있다는 것, 그래도 다카기 단장은 일단 아사노를 만나보기로 했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건가? 복수? 그것도 아니면 명예?”
“둘 다 원합니다.”
아사노는 선배님이 자신을 잡아주길 바랐다.
4년 17억 엔 대우를 해준다면 그만한 성과를 낼 자신도 있고, 뭣보다 미요시 호크스에 복수하는 게 최대 목표, 도쿄 자이언츠로 갈 수도 있었지만 라이노스에 입단하는 게 최고의 복수라고 생각했다.
“소속 팀에 대한 미련은 없나? 그래도 내심 잡아주길 바라고 있을 것 같은데?”
“그건 … ”
아사노는 말을 아꼈다.
FA 선언은 자신을 키워준 구단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하는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일본, 하지만 내가 구단을 위해 노력한 것도 있지 않은가?
그건 생각 안 하고 구단의 입장만 반복하고 있으니, FA 선언을 했을 때부터 욕을 먹을 건 각오하지 않았나.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아니요. 저는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뭐 … 그건 그렇다고 쳐도, 우리는 자네에게 17억 엔을 투자해야 할지 확신이 없네.”
다카기는 호크스 구단이 했던 말을 되풀이 했다.
후배를 아끼는 건 둘째 치고 지금 나는 단장 아닌가. 도쿄 자이언츠에서 4년 17억 엔 제시했다면 그곳으로 가면 그만, 자네가 그곳에서 좋은 활약하길 바란다는 덕담도 건넸다.
결국 아사노는 도쿄 자이언츠와 4년 17억 엔 계약에 합의, 아사노는 입단식에서 속마음을 드러냈다.
“다들 제가 부상 때문에 하락세를 타고 있다고 하는데, 결과로 증명하겠습니다.”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날 걷어찬 모든 이들에게 서운함을 느낀다는 것, 다카기 단장은 그 소식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어린애네. 이게 앙심을 품을 일이야?’
미요시 호크스가 4년 17억 엔 계약을 거부한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다.
그건 라이노스도 마찬가지, 다만 도쿄 자이언츠는 위험부담을 짊어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뿐이다.
그럼 그걸로 끝, FA 선언까지 한 놈이 그런 일로 상처를 입었단 말인가. 보기보다 유약한 가슴, 겨우 그 정도 선수였다면 놓쳤다고 아쉬워 할 것도 없었다.
“15억 엔 이상의 활약을 해줄 수 있는 선수입니다.”
반면, 이번에 영입한 잭 프로보스트는 열심히 홍보를 하며 띄워줬다.
그리고 그만한 활약을 할 수 있는 선수, 프로보스트도 마이너리그를 뒹굴던 내게 기회를 준 단장에게 보답하고 싶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다카기 단장께서 15억 엔 이상의 활약을 할 선수라는 평가를 내렸는데,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뭐 … 제가 정말 그만한 활약을 한다면 구단에 15억 엔 청구할 생각입니다.”
초반부터 세게 나오는 프로보스트, 옆에서 그 말을 듣고 있던 다카기는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Don't you dare talk to me that way, I could send you back to the minors”
= 그딴 식으로 말하면 마이너리그로 돌려보낼 거야.
“You're the one who brought me here.”
= 날 여기로 데려온 건 당신이잖아요.
“Our relationship is built on reciprocal benefit, It's all up to you
= 우리의 관계는 서로의 이익에 기반 된 거야. 모두 자네 하기 나름이라고
영어로 나누는 대화라 일본 기자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어쨌든 프로보스트는 단장의 뜻을 확실히 이해했다.
못하면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가는 건 당연, 솔직히 돌아가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에 이곳으로 온 거다.
실패하면 그걸로 끝, 15억 엔 대형계약을 맺고 못 맺고는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충고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보스턴에서 자네를 650만 달러에 팔라고 하더군요.”
“정말이요? 그럼 저 메이저리그 갈 수 있는 건가요?”
“그런데 난 팔 생각이 없어. 누구 좋으라고?”
다카기는 토니 아브레우에게도 자극을 줬다.
키워서 포스팅으로 팔면 훨씬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아니꼬우면 본인이 노력해서 그만한 실력을 키우면 그만,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면 일본에서 성과를 내라고 약을 올렸다.
“두고 보세요. 올 시즌 3할에 30홈런 칠 거니까.”
“마음대로 하라고, 할 수 있다면 말이지.”
마지막까지 약을 올리고 가는 단장, 하지만 그 진심을 알고 있는 아브레우는 성적으로 보답하기 위해 전의를 불태웠다.
“아버지, 제 얘기는 안 하셨나요?”
“뭐가 말이냐?”
“그쪽 단장님하고 얘기 나누셨잖아요.”
한편, 타다요시는 먼 길을 돌아온 아버지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나도 아버지처럼 보스턴에 지명받고 메이저리그에서 뛰면 좋지 않겠나. 하지만 돌아온 답은 냉정했다.
“나도 단장이야 이 녀석아. 왜 남의 집 단장을 찾아?”
“아니 … 저는 그냥 … ”
“네가 정말 실력이 있으면 스카우터들이 알아서 찾아 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하고 운동이나 열심히 해”
“네 … ”
타다요시는 입을 비쭉 내밀었다.
아들 칭찬 좀 해주고 오실 것이지 너무 냉정한 아버지, 그래도 정론이라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