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화. 비즈니스 - (4)
‘올 시즌도 한 5% 부족하네.’
9월 24일 다카기는 표정 없는 얼굴로 경기를 지켜봤다.
지난 9월 22일, 도쿄 자이언츠는 요코하마를 연장 승부까지 가는 접전 끝에 꺾고 센트럴리그 우승을 확정 지었다.
하지만 요코하마도 24일, 미요시 호크스를 꺾고 센트럴리그 2위를 확정, 사카이 라이노스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권이 걸린 3위를 두고 미요시 호크스와 맞붙었다.
사실 미요시 호크스는 8월 중순까지만 해도 안전하게 3위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최근 10경기에서 2승 8패라는 끔찍한 결과를 내며 라이노스에게 추격을 허용, 현재 양 팀은 71승 2무 67패로 동률이 됐다.
남은 경기에 따라 갈리게 될 운명, 객관적인 전력은 미요시 호크스가 조금 앞섰지만 시즌 막판에 6연패를 당할 정도로 호크스는 최근 페이스가 좋지 않다.
9년 만의 포스트 시즌 진출이 걸린 경기, 관중석을 채운 라이노스 팬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지만 다카기는 이런 장면을 원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1위 차지하고 위에서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닌가.
성적 안 되는 놈들이 커트라인을 따지기 마련, 메이저리그에서 1등만 했던 다카기는 이런 전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 오늘 사카이 라이노스의 선발은 히야마 치카마사입니다. 올 시즌 26경기 등판 13승 8패 평균자책점 2.98, 181이닝 동안 볼넷 67개, 탈삼진은 139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확실한 라이노스의 에이스로 올라섰죠. 남은 건 팀을 클라이맥스 시리즈로 이끄는 것뿐입니다.”
히야마는 초반부터 위력적인 공을 던졌지만, 미요시 호크스의 선발 아사노 아키히토에 비해 힘들게 경기를 풀어냈다.
아사노는 최고 150km의 빠른 볼과 투심, 커브을 구사하는 선수,
평균 구속은 145km 정도지만 공 끝이 좋은 일본 투수들 사이에서도 정상급의 무브먼트를 지니고 있다.
여기에 140km 정도의 투심은 싱커처럼 큰 낙차를 보이는데, 이런 능력 덕분에 통산 9이닝 당 탈삼진이 10개가 넘는다.
땅볼 비율이 높은 히야마는 야수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아사노는 그럴 필요가 없는 셈, 이대로 경기가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야수진이 수비에 집중하는 만큼 타석에서의 효율성은 떨어지기 마련, 선수들도 인간이라 경기 내내 집중하는 건 어렵다.
히야마는 좋은 투수지만, 볼넷이 많고 탈삼진 비율이 떨어지는 선수가 에이스 노릇을 한다는 건 팀 입장에선 조금 아쉬운 일, 냉정히 평가하면 에이스를 받쳐주는 2선발에 적합한 선수다.
내년에는 1선발 감을 어떻게든 영입해야겠지, 단장의 고민은 깊어졌다.
‘저 녀석 많이 컸네.’
다카기의 눈은 역투를 펼치는 아사노를 향했다.
아사노는 다이이치 고교 출신, 모교를 방문한 다카기가 지도를 해 준 적도 있다.
공은 빠르지만 체구가 작고 제구도 흔들리는 선수, 여론도 선발투수는 어렵겠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후배가 잘나가는 건 기쁜 일이지만 어쨌든 지금은 적, 바라보는 눈은 냉정하게 유지했다.
“스윙!! 삼진입니다!! 아사노가 오늘 경기 5번째 삼진을 잡아내는군요.”
“이렇게 되면 4년 연속 180탈삼진 이상이죠. 체구도 작은 선수가 정말 놀라운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속이 조금 안 나오네요. 역시 부상의 여파가 … ”
삼진을 잡아냈지만 아사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늘따라 너무 안 나오는 포심 구속, 컨디션이 안 좋을 때 140km 초반까지 떨어지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사노의 통산 9이닝 당 탈삼진은 10.7개, NPB에서 통산 13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들 중 역대 3위 기록이다.
그만큼 구위가 좋은 선수, 하지만 올 시즌 부상도 한 번 겪었고 그동안 너무 무리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마침 올 시즌이 끝나면 FA 자격을 얻는데 그런 평가를 받아야겠나, 아사노는 보란 듯이 호투를 이어갔다.
‘죄송합니다. 저도 제 갈 길 가야죠.’
7회까지 계속되는 호투, 아사노는 어디선가 이 광경을 보고 있을 선배를 의식했다.
단장 취임 2년 만에 얻은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기회, 그런데 후배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으니 은근 속이 쓰리지 않겠나.
하지만 나도 가야 할 길이 있는 법, 시즌 12승을 수확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오늘 8이닝 무실점 역투를 펼친 아사노 선수를 만나보시겠습니다. 오늘 아주 중요한 경기였는데 에이스다운 활약을 해주셨네요.”
“예, 감사합니다.”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아사노 선수는 라이노스의 다카기 단장님과 선후배 관계 아닙니까? 뭔가 전하실 말씀은 없나요?”
“프로의 세계에서 그런 걸 따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라이노스와 호크스는 클라이맥스 진출을 노리고 결전을 치렀죠. 목표가 같은 만큼 서로 경쟁을 벌이는 건 당연한 겁니다. 저도 선배님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죠. 그것뿐입니다.”
다카기는 후배의 메시지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니, 8이닝 호투를 펼치며 팀 승리를 이끈 선수에게 왜 그런 질문을 한 건가.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한 리포터가 이상한 사람, 다음 날도 그 자리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역시 5% 부족했어.’
안타깝지만 라이노스는 이번 경기도 밀리는 게임을 했다.
오늘도 지면 끝이라는 절박한 심정은 이해했지만 저렇게 긴장해서야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겠나.
베테랑도 이런데 경험이 부족한 젊은 선수들은 더 문제, 그렇게 5대 2로 뒤진 채 9회 말 공격을 맞이했다.
출루만 해준다면 어떻게든 될 텐데 탄식만 높아지는 관중석, 주자 없는 상황에서 오기 나가야스가 타석에 들어섰다.
“초구!! 지켜보는군요. 이 정도 공은 배트가 나가지 않았나요?”
“본인이 마지막 타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이 있는 거겠죠. 지금 이 경기에 얼마나 많은 팬들의 관심에 쏠려 있습니까? 어린 선수가 감당하기엔 조금 벅찰 겁니다.”
오사카 팬들은 오기의 이름을 연호하며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하지만 타구가 파울 라인 밖으로 흘러나가면서 노 볼 투 스트라이크, 관중들의 함성도 잦아졌다.
딱 ~ !!
“아!!”
“안 돼!!”
잘 때렸지만 2루수 글러브로 들어간 타구, 오기는 이를 악물고 내달렸지만 1루에서 아웃되고 몰았다.
9년 만의 클라이맥스 진출은 이렇게 무산, 그 자리에 주저앉은 오기는 눈물을 쏟았다.
지켜보는 팬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 다카기도 씁쓸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쉽지만 최선을 다한 선수들, 부족한 점은 내가 채워주면 되는 거 아닌가. 라커룸을 찾아가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단장님 죄송합니다.”
“뭐가?”
“저희를 그렇게 믿어주셨는데 … ”
어제 경기에서 패전 투수가 된 히야마는 모든 일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 연봉도 많이 올려주셨는데 겨우 이 정도밖에 못하다니, 다른 선수들도 얼굴을 감싸 쥐었지만 다카기는 헛소리하지 말라고 호통을 쳤다.
“내가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솔직히 우리 팀은 클라이맥스 진출하기엔 5% 정도 부족했어. 호크스가 연패하기 전까지는 자력 진출도 어려웠잖아? 다들 그렇게 생각 안 해?”
너무 솔직한 단장,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자 다카기는 검지로 선수 한 명 한 명을 가리키며 못다 한 말을 이어갔다.
“다들 잘 들어. 내가 원하는 건 아슬아슬한 순위 경쟁이 아니야. 압도적인 전력으로 상대를 찍어 누른 팀, 이게 내가 원하는 그림이라고, 자네들이 눈물 흘려봤자 나는 전혀 감동하지 않아. 내가 감동할 때는 승리했을 때뿐이라고, 다들 알아들었나?”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단장, 그제야 훌쩍거리던 오기도 고개를 쳐들었다.
“자네는 내 예상보다 훨씬 잘 해줬어, 그러니까 울지 마. 얼른!!”
“예 … ”
그렇게 흘려보낸 두 번째 시즌, 다카기는 1선발 용병을 구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FA 선언하고 팀을 떠나는 선수는 배신자 취급을 하는 일본, 이런 시장에서 어떻게 당장 쓸 에이스 투수를 구하나.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묘해졌다.
“호크스 구단은 팬과 선수를 존중하지 않는다. FA를 선언하겠다.”
아사노 아키히토가 FA를 선언해버린 것,
메이저리그 진출도 생각해봤지만 아사노는 내가 커리어를 보낼 곳은 호크스 구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해도 부상을 안고 클라이맥스 진출을 위해 역투를 펼친 것,
시즌 평균자책점은 2.95로 작년(2.48)에 비해 많이 올랐지만 어쨌든 189탈삼진을 잡아내며 건재한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양측의 입장 차가 명확했다는 것, 구단은 4년 15억 엔을 제시했다.
선수 입장에선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적은 액수, 아사노는 18억 엔을 달라고 했지만 돌아온 답은 부정적이었다.
“자네 작년에 부상 있었지 않나. 내년에도 건강하다는 보장이 없는데 어떻게 우리가 18억 엔을 줄 수 있겠나. 15억 엔도 많이 쳐준 거라고”
“제가 그동안 호크스에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곤란하죠.”
아사노는 프로 첫 2년은 중간계투로 활약했지만 3년차 시즌부터 선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시작된 전설, 23살에 평균자책점 2.90, 181이닝 동안 190삼진을 잡아내며 선발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2년 연속 10승 이상을 거두다 25살에 폭발한 잠재력, 212이닝을 던지며 탈삼진 254개를 잡아냈다.
이닝과 탈삼진 모두 NPB 전체 1위, 평균자책점은 2.18로 아깝게 2위에 머물렀지만 170cm를 겨우 넘는 작은 체구지만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전설을 써버렸다.
이때부터 아사노를 향한 호크스 팬들의 인기와 지지는 절대적,
팬 사인회가 열리면 아사노는 오후 3시까지 자리를 지키며 팬들에게 성의를 표했다.
“죄송합니다. 내년에는 우승할게요.”
“괜찮아요. 저희는 언제나 지켜볼 거예요.”
실력과 팬들을 위하는 마음을 모두 갖춘 선수,
아사노는 우승에 실패할 때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했지만, 팬들은 계속 응원하겠다며 변함없는 신뢰를 표했다.
팀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선수에게 부상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연봉을 깎겠다는 건가. 메이저리그 진출도 포기하고 팀에 남겠다고 하는데 이런 대우를 할 줄이야, 솔직히 실망했다.
‘이젠 남이라 이거야?’
하지만 이건 2차적인 문제였다.
연봉협상에서 입장 차로 구단과 선수가 충돌하는 건 늘 있는 일이다. 아사노는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팬 사인회에 참석, 그런데 여기서 또 사건이 터졌다.
“아사노 선수 잡는 거죠?”
“그건 저희도 잘 모르겠네요. 메이저리그 진출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팬 사인회는 매년 3만 명이 참석하는 미요시 호크스 구단 최대의 축제, 그런데 여기서 구단 직원이 팬들의 질문에 책임 못 질 말을 하고 말았다.
깜짝 놀란 팬들은 아사노에게 달려가 그게 정말이냐고 물었고, 당연히 아사노는 그런 일 없다며 반박했다.
“하지만 구단 직원이 메이저리그 진출도 생각하고 있다고 … ”
“뭐라고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사노는 당장 문제의 구단 직원을 찾아 나섰다.
내가 언제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세워 구단을 협박했나? 다만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할 정도로 팀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걸 밝혔을 뿐, 그런데 그걸 이렇게 해석하고 팬들에게 답을 하면 어쩌라는 건가.
그래도 아사노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마지막 협상에 임했지만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눈물을 쏟으며 선언한 FA 선언, 다카기는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비즈니스다. 선후배 관계 따질 이유 없음’
아사노는 일단 구위 하락의 징조가 보이고 있다.
본인은 4년 18억 엔을 원하고 있는데 내가 그만한 투자를 해야 되나,
FA 선언했다가 다시 미요시 호크스로 돌아갈 수도 있고, 지금은 미국에서 용병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