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비즈니스 - (2)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 인가.’
선수단을 재정비하고 야심차게 맞이한 시즌, 좌석에 앉은 다카기는 씁쓸한 얼굴로 경기를 지켜봤다.
히야마, 마츠다, 스마일리 등 쓸 만한 선수들은 제법 찾아냈다.
문제는 그 선수들이 계속해서 기대한 만큼 역할을 해 줄 수 있느냐는 것, 기대와 예상은 늘 일치하지 않는다.
특히 실망스러운 건 2억 엔을 주고 재계약을 한 프리젤,
프리젤은 작년 시즌 타율 0.272, 19홈런, 73타점, OPS 0.824을 기록했다. 대박은 아니지만 어쨌든 자기 역할은 해 줬던 선수, 그런데 올 시즌은 빠른 볼에 약점을 보이며 고전하고 있다.
프리젤은 본래 변화구에 약점을 보였다.
특히 몸 쪽으로 바짝 붙는 변화구에 속수무책, 그래도 후반기에 답을 찾으면서 성적을 끌어올렸다.
문제는 타격 폼을 바꾸면서 빠른 볼 대처 능력이 떨어졌다는 것, 다카기는 메이저리그 시절부터 이런 유형의 선수들을 수도 없이 봤다.
한 군데를 수정하면 다른 곳에 구멍이 뚫리는, 아쉽지만 이런 유형의 선수는 대성하기 어렵다.
차라리 빠른 볼을 잘 쳤을 때가 나았는데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선수, 경기가 끝난 후, 다카기는 오가야 감독과 의견을 주고받았다.
“2군으로 내려서 타격감을 조율하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2군으로 내리기 전, 다카기는 프리젤과 잠시 얼굴을 마주했다.
어쨌든 다시 1군으로 승격시켜야 하는 선수, 팀이 자네에게 원하는 건 30, 40홈런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자네는 작년에 충분히 잘해줬어. 물론 자네는 그 성적에 만족이 안 됐으니, 타격 폼도 바꾸고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거겠지. 하지만 못하는 걸 잘할 필요는 없어. 내가 정말 잘했던 게 뭔지 생각하라고”
프리젤은 지적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사카이 라이노스가 소속된 퍼시픽리그 투수들은 빠른 볼을 앞세우는 정면 승부보다 변화구 제구를 중시한다.
당연히 타자들도 대부분 변화구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러면 당연히 빠른 볼 대응력은 떨어진다.
프리젤도 그런 분위기에 물들었다고 해야 하나.
더 잘해보겠다고 택한 변화였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얼굴은 웃고 있지만 속마음은 씁쓸했다.
“어쨌든 난 지금 당장은 용병을 교체할 생각이 없네, 자네가 작년과 비슷한 활약만 해준다면 바랄 게 없어.”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수정해서 돌아오겠습니다.”
프리젤을 내려보낸 다카기는 다시 시즌에 집중했다.
쫓아낸다고 해서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즌을 치르다 보면 누구나 슬럼프는 한 번씩 온다.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을 내다보고 시작한 단장, 잠깐 미끄러진다고 급할 게 뭐가 있나.
프리젤의 빈자리에 이런저런 선수를 써보며 전력을 재정비했다.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다.’
고졸 신인 오기 나가야스도 그 중 한 명,
계약금 8천만 엔을 받아낸 신인답게 오기 나가야스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고교 시절 40홈런을 넘기는 파워를 보여줬지만, 프로에서 나무 배트를 쓰면서 장타력이 급감, 그래도 올 시즌 2군에서(23경기) 타율 0.357, 홈런 1개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내야 수비도 아직은 가다듬어야 하고 이래저래 손봐야 할 게 많은 선수, 다카기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에 속마음을 드러냈다.
“오늘 오기 선수를 1군으로 승격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 당장 1군에서 통할 선수라고 보십니까?”
“저 선수는 아직 젖먹이에요. 언젠간 스스로 일어나야겠지만 지금은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슈퍼 루키라고 그렇게 빨리 프로에서 활약할 수 있을까.
다카기는 마이너리그도 1년 만에 졸업한 우등생이지만, 그런 선수는 정말 드물다.
내가 그렇게 했다고 다른 선수도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산,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따악 ~ !!
“앗!!”
1회 초 도호쿠 이글스의 선공, 나가야스는 옆으로 굴러가는 땅볼을 놓치고 말았다.
타구 판단 능력이 부족해 빠른 발과 어깨로 승부를 봐야하는 젖먹이 유격수, 이런 선수는 아무리 어깨가 강해도 급하게 송구를 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정확도가 떨어진다.
저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면 외야로 돌릴 뿐, 초반부터 실책을 범한 나가야스는 불안감을 애써 떨쳐냈다.
‘아니야, 아니지, 그게 아니라고’
계속되는 엉성한 플레이에 다카기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스텝이 타구를 따라가지 못하는데 몸을 날린들 무슨 소용인가, 2군에선 그나마 괜찮은 수비를 보였다고 하는데 직접 보니 1군에서 돌리는 건 무리, 그래도 아직 젖먹이 아닌가.
단장인 내가 키워주지 못하면 누가 키워주나. 인내심을 발휘했다.
“자, 오기 나가야스의 타석입니다. 오늘이 1군 무대 첫 타석, 2군에서는 타율 0.357, 홈런 한 개, 7타점을 기록했습니다.”
“2군 기록이지만 타석 대비 볼넷 비율이 20%를 넘겼거든요. 정확도도 괜찮지만 특히 인내심이 인상적인 선수입니다.”
나가야스는 바깥쪽 떨어지는 볼을 골라냈다.
아직 파워가 부족해 왼발을 약간 높이 들지만 밸런스는 안정적인 편, 다카기는 수비보다 타격에 높은 점수를 부여했다.
따악 ~ !!
가볍게 밀어친 타구는 우익수 앞에 떨어졌다.
2년 차 루키 치고는 제법 폼이 나는 타격, 원래는 몇 경기 쓰고 2군으로 내릴 생각이었지만 다카기는 오기를 당분간 1군에 놔뒀다.
그리고 가끔 현장으로 나와 수비를 지도, 그렇다고 무리하게 유격수가 되라고 하진 않았다.
“자네 혹시 유격수가 부담 되나?”
“아니요. 재미있긴 한데 잘 안 되는 게 문제네요.”
“그래, 경험이 쌓이면 타구 방향은 어느 정도 보이겠지, 그런데 나는 자네가 외야수로 전향하고 타격에 집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다카기는 파워 향상에 집중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했다.
3유간 깊은 땅볼을 노 스텝으로 아웃시키는 강견은 인정했지만 문제는 송구 정확도, 운동 신경은 분명 있는 편이지만 스텝이 안 따라주다 보니 정확한 송구가 안 되고 있다.
경험을 쌓으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타격 발전이 더뎌질 수 있다는 것,
저 나이에 나무배트로, 그것도 1군 투수들을 상대로 밀어쳐서 타구를 외야로 보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선수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을 집중 육성하는 게 다카기의 방식, 당분간 좌익수로 뛰면서 타격에 집중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단장님은 제가 유격수로 성장하긴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야, 스텝은 노력하면 발전할 수 있어. 문제는 타격이지, 지금 자네는 타격에 집중할 때야. 수비는 노력하면 발전할 수 있지만 타격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이 없거든, 어떻게 생각하나?”
“ … 알겠습니다. 단장님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단장과 감독, 그리고 선수의 합의가 이뤄지면서 오기는 당분간 좌익수로 출전하게 됐다.
지명 타자를 제외하면 수비 부담이 제일 적은 자리, 유격수에서 벗어난 건 조금 아쉬웠지만 오기도 팀에 부족한 건 타격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때부터 20살 청년의 거침없는 진격이 시작됐다.
6월, 24경기에서 타율 0.293을 기록한 오기는 7월 들어 13경기 연속 안타 포함, 타율 0.333을 기록하며 1군 무대에 정착했다.
특유의 인내심으로 볼을 골라내는 능력도 수준급,
오기와 마츠다가 테이블 세터를 이루면서 중심타선이 소화하는 타점도 많아졌다.
[따악 ~ !!]
“스마일리가 이 타구를 좌중간으로 보냅니다!!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는군요!! 사카이 라이노스가 3대 0으로 점수 차를 벌립니다!!”
“스마일리는 벌써 73타점이네요. 퍼시픽리그 뿐만 아니라 NPB 전체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다카기가 6억 3천만 엔을 들여 잡은 스마일리는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작년 시즌 홈런 33개, 98타점을 올리며 정착하더니, 올 시즌은 39홈런 118타점 페이스, 여기에 1군에 복귀한 프리젤이 타선의 방점을 찍었다.
2군으로 내려가기 전까지 타율 0.211, 홈런 3개, 8타점에 그친 프리젤은 복귀 이후 맹타를 휘두르면서 시즌 성적을 타율 0.266, 홈런 10개, 40타점으로 끌어올렸다.
여전히 뭔가 빠진 성적이지만 다카기 단장이 원했던 활약은 딱 이 정도, 그 이상은 바라지도 않았다.
‘이렇게까지 해 주길 바란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프리젤은 그 기대를 넘어서는 활약을 보였다.
7월에 타율 0.326, 홈런 7개를 뿜어내며 폭발, 시즌 종료까지 두 달이나 남았는데 작년과 같은 19홈런을 기록했다.
[다카기 단장의 눈은 정확했다]
[스마일리, 프리젤, 동반 30홈런 달성?]
여론은 다카기 단장의 선수 기용에 찬사를 표했다.
극단적인 투고타저 성향을 보이는 NPB, 외국인 용병이 20홈런만 쳐줘도 잘했다고 해주는 시대다.
그런데 용병 2명이 모두 30홈런을 바라보는 페이스라니, 하지만 다카기는 기자들 앞에서 겸손을 표했다.
“솔직히 저는 올 시즌 프리젤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습니다. 첫 20경기에서 프리젤은 2할을 겨우 넘기는 타자였고, 저는 그 친구를 2군으로 내려 보내기 전에 20홈런만 쳐도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칭찬을 하려면 프리젤에게 하세요.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습니다.”
반면 프리젤은 인터뷰에서 단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냥 2군으로 내려보냈어도 됐을 텐데, 용병 교체할 일은 없으니 컨디션 회복에 집중하라고 배려해 준 게 누구인가.
내 타격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해 준 것도 단장, 오기 나가야스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단장님은 제 단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장점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솔직히 좌익수로 옮기라고 하셨을 때 약간은 서운했는데, 지금은 타격에 집중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충고에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게 오기 선수의 마음을 움직인 겁니까?”
“예,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하길 잘한 것 같습니다.”
오기는 지금까지 타율 0.325를 기록하고 있다.
겨우 72경기에서 거둔 성적이고 규정타석도 채우지 못했지만 어쨌든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건 사실이다.
단장의 정확한 판단이 이끌어낸 선수의 성장, 여론은 어린 단장의 안목에 찬사를 표했다.
‘그래봤자 야구는 비즈니스지. 도박이라고’
다카기는 쓸데없이 어깨를 들썩이진 않았다.
나는 가능성 있는 선수를 그 자리에 기용하는 것뿐, 결과는 장담하기 어렵다.
투자를 한다고 그게 이익이 된다는 보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 그런 점에서 야구는 사업과 똑같다.
프리젤과 오기의 활약도 솔직히 기대 이상의 결과, 나는 정말 실력이 있는 단장인가 아니면 단순히 운이 좋은 것뿐인가.
사업은 운도 따라줘야 할 수 있는 것, 나는 앞으로도 승승장구 할 수 있을까.
쓸데없는 소란은 자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