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화. 비즈니스 - (1)
[사카이 라이노스 75승 68패로 시즌 마무리]
[7년 만에 B클래스 등극]
단장 자격으로 보낸 첫 시즌, 한 해 농사가 끝났지만 다카기는 쉴 틈 없는 행보를 이어갔다.
일단 내부 단속부터 시작, 1년 단기 계약을 맺은 피터 스마일리와 2년 6억 3천만 엔 계약에 합의했다.
스마일리는 올 시즌 타율 0.303, 홈런 33개, 98타점을 올리며 팀 타선을 이끈 선수, 다른 구단이 추파 한 번 던질 틈도 주지 않았다.
‘이 선수도 잡자.’
다카기는 프리젤에게도 연장계약을 제시했다.
시즌 중반 장타력이 급감하면서 고전했지만 후반기에 살아나면서 타율 0.272, 19홈런, 73타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눈에 띄는 활약을 한 건 아니지만 지켜볼 가치가 있는 선수, 1년 2억 엔으로 붙잡았다.
다시 마이너리그로 돌아가 봤자 메이저리그에 올라간다는 보장도 없고 금전적인 부담도 감수해야 하는 입장, 프리젤은 재도전을 택했다.
반면 오바타 도이처럼 팀에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선수는 방출, 억지로 트레이드 시켜봤자 잡을 팀도 없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자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계약에 앞서 주주들은 신입 단장에게 돈다발을 건넸다.
사실 이렇게 많은 돈을 풀 예정은 없었지만, 다카기는 지원을 안 해주면 자기 돈으로 선수를 잡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올 시즌 사카이 라이노스는 평균 관중 4만 3천 명을 돌파했다.
야구의 도시답게 작년에도 평균 관중 3만 8천명을 넘겼지만 올해는 유독 많은 환호를 보내준 팬들, 그 배경엔 신입 단장의 적극적인 행보도 한몫했다.
그런데 구단이 지원을 안 해주면 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갑자기 늘어난 팬은 골수 야구팬이 아니다. 잠깐 일어난 돌풍에 올라 야구장을 방문했을 뿐, 열기가 식으면 다시 빠져나간다.
그들을 붙잡으려면 적극적인 투자는 필수, 회의를 거친 주주들은 결단을 내렸다.
‘그래도 내부 단속이 먼저다.’
돈 다발을 손에 쥐었지만 다카기는 내부 단속부터 철저히 했다.
FA 영입보다 내부 단속을 우선했던 수더랜드 단장의 정책을 벤치마킹, 1년 후 FA 자격을 얻는 히야마 치카마사를 3년 5억 4천만 엔으로 묶었다.
내년 연봉은 1억 엔, 그 다음 시즌부터 2억 2천만 엔씩 받는 계약,
통산 평균 자책점 3.58, 43승 43패를 거둔 선수에게 이런 거액을 제시해도 되는 건가.
올 시즌 팀의 에이스 노릇을 했지만 리그를 평정한 선수도 아니라 라이노스 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계약을 추진하는 건 단장의 권리, 고향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던 히야마는 서둘러 오사카로 향했다.
뛰지 못하면 기어서라도 와야 할 자리, 히야마는 단장보다 30분 일찍 구단 사무실에 도착했다.
“단장님, 감사합니다. 다음 시즌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한테 감사할 필요 없어. 자네는 조만간 팔려나갈 거니까.”
“예?”
히야마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팔아버릴 선수에게 3년 계약을 제시하다니, 농담하는 건가. 하지만 다카기는 진심이라며 대화를 이어갔다.
“자네를 메이저리그 구단에 판 돈으로 더 좋은 선수를 데려오는 게 내 목표야.”
“제가 메이저리그를 간다고요?”
“그래, 그러니까 열심히 해서 몸 값 올리라고, 성장하지 못한다면 지금 만지는 돈이 노후자금밖에 더 되겠나?”
히야마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농담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말을 할 줄이야, 하지만 다카기는 진심이었다.
“자네, 시즌을 치르면서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지 깨달았나?”
“예. 어느 정도는 … ”
“그럼 설명해 보게.”
“빠른 볼 외엔 카운트를 잡을 공이 없습니다. 슬라이더를 좀 더 가다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슬라이더를 던지더라도 지금 같은 슬라이더는 안 돼.”
다카기는 오프 시즌 동안 히야마에게 슬라이더를 전수하기로 했다.
일반적인 슬라이더가 아니라 커브를 약간 개량한 것, 보스턴의 계투 스티븐 루카스에게 전수해 준 그 공이다.
슬라이더 그립에서 손목만 조금 더 세워주면 되는 작업, 릴리스 포인트만 일정하게 유지하면 좌타자를 상대할 때도 써먹을 수 있다.
문제는 히야마가 그걸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는 거겠지. 좌타자 상대로 백도어 슬라이더를 던지는 능력도 필요했다.
“자네 체인지업 잘 던질 자신 있나?”
“아니요. 솔직히 보여주는 공입니다.”
“그럼 슬라이더를 스트라이크 존 근처로 던지라고, 헛스윙을 유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야.”
메이저리그에도 슬라이더로 땅볼을 유도하는 투수는 제법 있다.
히야마는 좋은 구위를 가졌지만 삼진을 잡아내는 능력은 떨어지는 편, 그렇다면 맞춰 잡는 것도 방법이다.
내 특징을 살려주는 투구를 해야 성장도 빠른 법, 그렇게 훈련이 시작됐다.
“단장님, 제가 성장하면 정말 메이저리그 구단에 파실 건가요?”
“난 두말 안 하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연습이나 하라고”
조금씩 잡히기 시작한 변화구, 하지만 히야마의 마음은 복잡했다.
메이저리그 진출이라니, 가슴 뛰는 일이지만 오사카에서 야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냥 여기서 커리어를 마감하면 안 될까.
그렇다고 나 팔지 말라고 태업을 할 수도 없는 일, 제발 팔지만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비즈니스를 하는 거라고, 자네가 팔릴만한 선수라 신경을 써주는 거야.”
“아니 … 그러니까 저는 일본에서 야구를 하는 것도 괜찮아요. 그냥 여기서 열심히 야구 할게요.”
“알았으니까. 훈련이나 하게.”
정말 알아들은 걸까. 어쨌든 내년을 위한 히야마의 훈련은 계속됐고, 그 사이 다카기는 미국에서 날아온 전화를 받았다.
“어쩐 일이야?”
[어쩐 일이긴, 볼 일이 있으니까 전화했지]
목소리의 주인공은 앤디 프론스키, 친구에게 아들의 양아버지가 돼 달라고 부탁했는데 다카기는 매정하게 일본으로 날아가 버렸다.
2년 후 드래프트 참가 자격을 얻는 카일 프론스키는 대학 진학보다 프로 진출을 생각하고 있다.
마이너리그에서 푼돈 받고 뛰는 것보다 NPB에서 좋은 대우를 받으며 MLB 진출 기회를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
하지만 다카기는 냉정한 반응을 내놨다.
“확실하게 말해. 써달라는 거야? 키워달라는 거야?”
다카기는 이제 단장, 개인적인 감정으로 선수를 평가할 지위가 아니다.
앤디 프론스키는 메이저리그에서 200승을 거두고 명예의 전당까지 입성한 전설, 하지만 그 아들이 아버지와 비슷한 활약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아버지보다 못한 아들이 더 많은데, 내가 친구의 명성만 믿고 카일 프론스키를 뽑아줘야 하나.
뭣보다 날 상대로 장사를 하겠다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다.
“그러니까 네 아들한테 전해줘.”
[뭐라고?]
“일본으로 오겠다면 말리진 않겠는데 내가 키워주길 바라지는 말라고, 난 재능 없는 선수한테는 관심 없어.”
앤드 프론스키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단장이라고 옛정마저 치워낸 건가. 하지만 친구가 하는 말이 정론, 어느 단장이 정으로 선수를 뽑아주나.
실력이 없으면 도태되는 건 사회나 프로나 다를 게 없다.
거기다 NPB는 투수 레벨이 높기로 유명한 리그, 내 아들이 그곳에서 통한다는 보장이 있나. 단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환경, 아들과 함께 미래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난 솔직히 네가 대학에 가서 실력을 더 키웠으면 좋겠다.”
앤디 프론스키는 아들에게 대학 진학을 권했다.
아들의 재능을 낮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래도 공부를 해야 메이저리그 도전에 실패했을 때 대안이 있다.
대학 졸업생이 고등학교 졸업생보다 평생 100만 달러를 더 번다는 건 통계로 증명된 일, 하지만 카일 프론스키는 대학 진학을 거부했다.
“아빠, 솔직히 저는 공부에 흥미 없어요. 공을 던지는 게 더 좋다고요.”
“정말 안 되겠냐?”
“예, 죄송해요.”
앤디 프론스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내가 공부를 안 했는데 아들이 그렇게 하길 바라는 게 웃긴 일, 그렇다면 길은 프로 진출밖에 없다는 건데 마이너리그부터 차근차근 밟아나갈 건가.
카일 프론스키는 NPB 진출에 관심을 보였다.
세계대회에서 4강 안에 들어가는 일본야구 수준, 미국 마이너리그보다 수준이 낮다는 근거는 없다.
거기다 미국은 유망주가 넘쳐나는 환경이라 코치들이 선수 개개인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 살아남는 선수만 뽑아 쓰면 그만이다.
그에 비하면 일본은 프로 구단이 육성 팀을 따로 꾸리고 운영, 그곳이라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양아버지에게 좀 키워달라는 SOS를 보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대학가서 드래프트 신청해”
[아니, 제가 일본으로 가겠다는데 왜 그러세요?]
“거기 스카우터 눈에 띌 정도면 여기 올 필요도 없어.”
다카기는 진입장벽을 쳤다.
요즘 드래프트 1라운더는 650에서 700만 달러 사이를 계약금으로 받는데, 그 정도면 일본으로 오는 것보다 훨씬 좋은 대우다.
그런 대우를 받을 자신이 없으니까 일본으로 오겠다는 거 아닌가.
쉬운 길만 찾는 녀석에게 성장이라는 게 있을까. 공부든 운동이든 열심히 하는 게 학생의 자세, 대학 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분명히 말하는데 난 쓸 만한 선수 외에는 관심 없다. 남한테 선택을 받고 싶으면 실력을 키워. 다른 말은 안 한다.”
이와 별개로 육성 선수를 꾸리는 일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일본은 육성선수라면 무제한 보유가 가능,
최근 국제 드래프트가 성업하면서 도미니카 - 베네수엘라의 야구 유망주들은 어려움에 부닥쳤다.
해외에 야구 아카데미를 세워도 우리 팀 전력으로 수급하는 게 아니라 국제 드래프트를 거쳐 시장에 나오는데, 누가 비싼 돈 들여 유망주를 육성하겠나.
그런데 요즘은 일본 프로야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 유망주를 들여와 키우면 연봉 부담도 줄일 수 있고, 잘 키워서 메이저리그 구단에 수출할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 사업 아닌가.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는 일본 구단들,
사카이 라이노스는 이번에 쿠바에서 토니 아브레우, 베네수엘라에서 에드가르 디보프를 영입했다.
디보프는 올해 17살밖에 안 된 선수지만 최고 159km를 던지는 아기 공룡, 메이저리그 구단도 관심을 보였지만 디보프는 좀 더 안정적으로 생활 할 수 있는 일본행을 택했다.
‘저 선수도 눈여겨볼 가치가 있군.’
다카기는 날을 잡아 육성 선수들을 살펴봤다.
디보프만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토니 아브레우의 잠재력도 만만치 않았다.
체격은 182cm 몸무게 89kg으로 그렇게 두드러지진 않지만 스탠스를 넓게 쓰면서도 밸런스가 잡힌 타격이 인상적, 시간을 두고 지켜보면 성장할 선수라고 평가했다.
“우리에게 팔지 않겠습니까?”
이때 보스턴 구단이 협상을 제시했다.
예전부터 토니 아브레우를 눈여겨보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일본으로 넘어갈 줄은 예상 밖의 전개였다.
부랴부랴 이적료 450만 달러를 제시, 하지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그럴 생각 없습니다.”
“하하 ~ 옛정도 있는데 너무 냉정하신 거 아닙니까?”
“이봐요. 내가 한때 보스턴에서 용병으로 뛴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입장이 서로 대등할 텐데요? 그 선수는 키워서 비싸게 팔 겁니다. 그때 생각 있으면 다시 오세요.”
수더랜드 단장은 측근의 보고를 받고 폭소했다.
한때 내가 부렸던 선수지만 이제는 대등한 입장,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