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적없는 용병-341화 (341/361)

341화. 잠깐의 휴식 - (10)

“축하한다 미사키!!”

“행복해야 해!!”

이곳은 도쿄 시내의 호텔, 다카기는 먼 곳에서 행복해 하는 누나를 지켜봤다.

가족이라도 눈에 띌 수 있는 사람은 뒤로 빠져주는 게 예의, 부모님과 함께 피로연장으로 했다.

“서운하세요?”

“얘는 무슨 … 아니야.”

다카기는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를 다독여 드렸다.

하나둘 떠나는 자식들, 서운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마침 옆에 있던 막내딸은 엄마 팔을 꼭 끌어안았다.

“엄마, 언니는 배신했지만 저는 엄마랑 평생 같이 살 거예요.”

“얘는 또 쓸데없는 소리 하네. 너도 때 되면 결혼해야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요.”

“얘가 … 너 고3이야, 그 나이에 결혼 상대가 있는 게 이상한 거지.”

“오빠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결혼했잖아요.”

왜 나한테 불똥이 튀는 건가.

다카기는 눈치를 줬지만 오빠를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코하루는 눈웃음을 지었다. 동생에겐 조금 무른 게 사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너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니?”

“참 … 오빠는 간만에 만난 동생한테 그런 말밖에 못 해?”

“동생이니까 하는 말이지, 남이면 이런 말도 안 해.”

원하는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막판에 얼마나 몰아치기를 했나, 평소 공부를 해뒀다면 그런 일도 없었을 텐데, 다카기는 동생이 그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랐다.

“걱정하지 마라. 우리 코하루는 잘하고 있어.”

가만히 있던 아버지는 막내딸 편을 들어줬다.

마흔이 넘어 얻은 귀한 딸, 자유분방하게 크도록 내버려 뒀는데 극성 오빠의 잔소리 덕분에 공부는 제법 잘 해내고 있다.

아들이 아빠 노릇 하고 있는데 나까지 잔소리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지만 코하루는 뭐든 OK 하는 아빠보다 톡톡 튀는 오빠에게 더 마음이 끌렸다.

“오빠, 앞으로 단장 계속할 거야?”

“왜?”

“아니, 괜히 스트레스받지 말고 잘 나가는 구단을 사버려. 우리 집 돈도 많잖아.”

코하루는 오빠가 단장을 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우리 오빠가 뭐가 부족해서 주주들과 기싸움을 하며 투자금을 받아내야 하나.

그까짓 프로 구단 인수해버리면 그만, 동생의 푸념에 다카기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오빠 메이저리그 진출했을 때 여론에서 뭐라고 했는지 아냐?”

“뭐라고 했는데?”

“거리로 나온 왕자라고 했어. 다 포기하고 나왔는데 이제 와서 집안 돈 끌어다가 구단 사라고?”

“못 살 게 뭐가 있어? 오빠는 너무 고지식한 게 탈이야. 돈 부족하면 내가 빌려줄까?”

스스로 번 것도 아닌데,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을 가지고 까불거리는 녀석, 다카기는 가소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냐오냐 키웠더니 세상에 무서운 게 없는 동생, 한소리 할까 했지만 여느 때처럼 그냥 넘어갔다.

“그러지 말고 진지하게 생각해 봐라. 우리도 계획이 없는 건 아니니까.”

딸이 길을 터주자 무네요시도 아들을 설득했다.

교토 야구협회 회장까지 지냈던 고영길 회장, 그 손자가 메이저리그를 평정하고 일본으로 돌아왔다.

도쿄 자이언츠의 고문을 거쳐 이제 사카이 라이노스 단장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아들, 아버지가 도움을 주는 게 잘못된 일인가.

하지만 거리로 나온 왕자는 자기 힘으로 해보겠다는 고집을 이어갔다.

예전부터 뭐든 자기 힘으로 하는 걸 좋아했던 아들, 가끔은 부모한테 기대도 될 텐데, 부모 입장에선 조금 서운했다.

“은퇴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는데 힘들지 않니?”

“힘들긴요. 지금 휴식이 필요한 건 아버지 아닌가요?”

다카기는 오히려 아버지를 걱정했다.

사고로 죽은 형을 대신해 젊은 나이부터 집안일을 책임져온 아버지, 60이 다 된 지금도 일에 치여 사신다.

측근들을 믿고 잠시 일을 내려놓는 게 좋지 않겠나. 역습을 받은 무네요시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도 쉬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 남한테 일을 맡기면 불안해지거든”

“저도 그래요. 가만히 있으면 괜히 죄를 짓는 느낌이거든요. 모든 일은 제가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고요. 그래도 가끔은 쉬셔야 해요, 건강을 잃으면 일이 무슨 소용이겠어요?”

“하아 ~ 그래. 네 말이 맞다.”

이후, 무네요시는 아들의 조언대로 측근들을 믿고 잠시 일을 놨다.

쉴 줄 알아야 더 멀리 가는 법, 정말 휴식이 필요한 건 내가 아니었을까. 아들의 말에 정말 중요한 게 뭔지 깨달았다.

* * *

[사카이 라이노스 후반기 돌풍]

[올해는 B클래스 등극?]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달려가는 시즌,

하위권에 처져 있던 라이노스는 후반기에 25승 17패를 거두며 센트럴리그 3위로 올라섰다.

겨우 승률 5할을 맞췄을 뿐이지만 매년 C클래스 평가를 받은 오사카 팬들은 신입단장에게 찬사를 표했다.

1년 만에 팀이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건가. 그 비결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다카기는 침묵을 유지, 갈 곳을 잃은 마이크는 오가야 감독을 향했다.

“올 시즌 라이노스가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데요. 감독님은 그 비결이 뭐라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일단 공격적인 야구를 하면서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가장 큰 이유겠죠.”

오가야 감독은 그동안 너무 소극적인 야구를 했다며 인정했다.

투수들에게 타격훈련을 시키다니, 솔직히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예전에는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면 주자들은 번트를 기다렸지만, 이제는 기다리지 않고 적극적인 주루를 하기 시작했다.

투수가 안타를 치든 못 치든 적극적으로 타격을 하면 야수진은 긴장하기 마련, 정말 미세한 변화지만 팀플레이에 활력이 생겼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건 히야마 치카사다,

전반기까지 4승 4패 평균자책점 3.72, 지극히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후반기에 4승 2패, 평균자책점 2.90을 거두며 팀 내 최다승 투수로 올라섰다.

생애 첫 두 자릿수 승리도 바라볼 수 있는 페이스, 시즌 25번째 등판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자, 오늘 사카이 라이노스는 히야마 치카사다를 선발로 내세웁니다. 올 시즌 24경기 등판, 8승 4패 평균자책점 3.26, 135이닝 동안 볼넷 59개, 탈삼진은 102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소화하는 이닝이 점점 길어지고 있죠. 최근 3경기에서 22이닝을 던지고 있습니다.”

“볼넷도 많이 줄었죠. 최근 다른 선수가 된 것 같습니다.”

신입 단장의 조언대로 히야마는 바깥쪽 유인구를 줄이고 빠른 볼 비율을 높였다.

스리쿼터 폼에서 나오는 평균 145km, 최고 154km에 이르는 빠른 볼은 다른 선수와 비교할 수 없는 장점,

밸런스가 잡힌 폼에 체력도 좋아 경기 막판에도 구속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선수를 투수 타석이라고 교체해 버리면 본인도 얼마나 맥이 빠지겠나.

그동안 히야마가 성장을 하지 못한 건 감독의 잦은 교체와 유인구를 강요하는 코치진의 지도 때문이었다.

다만 빠른 볼을 제외하면 카운트를 잡을 공이 없다는 건 단점, 이것 때문에 좋은 구위를 가지고도 탈삼진 비율이 낮다.

통산 9이닝 당 통산 탈삼진율은 6.5개 정도, 올 시즌도 6.8개에 그치고 있다. 이것도 많이 던져봐야 극복할 수 있는 약점, 인내심 많은 다카기는 히야마에게 계속 기회를 줬다.

‘아직도 안 되는데’

결정구를 던진 히야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슬라이더, 잘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왜 헛스윙이 안 되는 걸까.

노력을 했는데 성과가 없다는 것만큼 절망적인 게 또 있을까. 그래도 잘 던지든 못 던지든 지켜봐 주는 단장 덕분에 위축되진 않았다.

‘커터형 투수인가?’

다카기도 히야마의 성장을 위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다.

절대적인 건 아니지만 슬라이더와 커터의 동반은 조금 위험하다.

커터는 패스트 볼 그립과 거의 비슷하지만 검지와 중지를 붙여서 던지고, 반면 슬라이더는 팔 회전과 관련이 있다.

문제는 슬라이더와 컷 패스트볼의 움직임은 크게 차이가 없다는 것, 비슷한 공을 굳이 구별해서 던져야 하나.

두 구종을 무리해서 구분해서 던지면 이도 저도 아닌 공이 될 위험이 크다.

거기다 히야마의 슬라이더는 우타자의 바깥쪽, 좌타자의 몸 쪽이라는 하나의 포인트만 가지고 있다.

좌타자 바깥쪽으로 던지는 백도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굉장히 제한적인 슬라이더, 그래서 다카기는 히야마에게 슬라이더를 줄이고 빠른 볼을 던지라고 한 거다.

우타자 기준으로 바깥쪽으로 커터처럼 휘어져 나가는 히야마의 빠른 볼, 코치들은 제구가 안 된다며 이 무브먼트를 다듬으려고 했지만 다카기는 정반대로 생각했다.

그냥 커터라고 생각하고 던지면 되는 거 아닌가.

무리하게 슬라이더를 던질 필요는 없었다.

[따악 ~ !]

“2루수 쪽으로 굴러가는 타구, 잡아서 1루로 송구!! 아웃입니다!! 히야마는 오늘도 많은 땅볼을 유도하고 있군요.”

“변화구를 줄이면서 장타가 줄어들었죠. 구속은 145km, 특별할 게 없는데 타격이 안 되고 있습니다.”

중계석에서는 보이지 않는 특유의 무브먼트, 해설위원과 달리 상대 타자들은 히야마에게 일어난 변화를 실감했다.

전반기에 비해 훨씬 까다로워진 투구, 배트 끝에 걸리면서 방망이가 부러지기도 했다.

‘내 빠른 볼이 이렇게 좋았었나?’

쌓여가는 아웃카운트에 히야마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슬라이더를 던지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던 코치들, 그런데 지금 나는 뭘 던지고 있나. 빠른 볼 딱 하나, 가끔 체인지업을 던져주지만 10개중 7 ~ 8개는 빠른 볼이다.

지난 4년 동안 슬라이더 제구를 잡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했는데, 나는 그동안 무슨 짓을 한 건가.

낭비한 세월이 아까워 가끔 슬라이더도 던져봤지만 이건 내가 추구하던 답이 아니라는 확신만 강해졌다.

‘나는 바보였어 바보였다고’

히야마는 마운드에서 울분을 토했다.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만뒀어야 했는데, 투수 코치의 권위 때문에 반항하지 못했다.

지금부터 달려도 늦지 않았겠지, 7회까지 140km 중반대 구속을 유지하며 1실점 투구를 펼쳤다.

“더 던질 수 있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히야마는 8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

커리어 최다 이닝 투구를 경신하는 순간, 투구 수 100개를 넘겼지만 마운드를 박차는 역동적인 폼은 건재했다.

“스윙!! 삼진입니다!! 151km!! 오늘 경기 6번째 탈삼진을 잡아냅니다!!”

“공이 움직이는 게 보이네요. 이제야 저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홈팬들도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최근 3년 동안 완투가 한 번도 없었던 라이노스 마운드, 오늘 그 고리가 끊기는 건가.

8회가 끝났을 때 투구 수는 115개, 멈추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고 히야마는 9회까지 책임졌다.

첫 두 타자는 모두 좌익수 플라이,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앞두고 홈팬들의 응원은 더욱 높아졌다.

딱 ~ !!

“내가 잡았어!! 잡았다고!!”

투수 앞으로 굴러오는 타구, 1루에 송구한 히야마는 달려오는 포수와 격한 포옹을 나눴다.

커리어 첫 완투승, 그렇게도 좋을까.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41회 완투를 해낸 전설에겐 별것 아닌 사건이지만 다카기는 그 자리에서 박수를 치며 경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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